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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과거 (1)

아이콘 렝가는op다
댓글: 8 개
조회: 890
추천: 10
2018-03-08 02:56:14





1.


 가족들이 죽었다.
형체를 알 수 없이. 아니,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아침에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던 빈민촌은 이제 고대 유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망가졌다. 먼지가 자욱하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무시무시한 주둥이를 벌리고 나를 기다렸다. 핏자국이 난잡하게 얽혀있다. 주인 없는 팔다리와 머리가 굴러다니기도 했다.
어린아이의 비명소리. 여인의 절규. 시끄럽게 울리는 헬기소리.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무기를 들은 여성. 여러 발의 총성. 공기부터가 바뀌어버린 마을에서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도망쳤다.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슬픔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인간의 본성에 따라 움직였다. 날카로운 돌에 맨발바닥이 찢어졌다. 그래도 달렸다. 아픔을 느낄 시간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는 것도 잠시였다. 막다른길은 내가 신에게서 버림받음을 증명해 주었다. 무너져버린 동네 아저씨의 집이 길을 막아섰다.
 총탄하나가 내 긴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멈추면 죽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어차피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다. 끝이 다가온 것이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죽음이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심장박동이 더욱 빨라졌다. 숨이 거칠어졌다. 뒤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요동쳤다.
 사신이 내 바로 뒤까지 다가왔다. 그의 손짓 하나면 나의 육신은 한낱 고기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불합리하다.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억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까. 어쩌면 당연하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현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 죽는구나.
 입술을 악물고 울음소리를 참아냈다. 그럼에도 삐져나오는 울음 때문에 몸이 들썩였다.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너. 뒤돌아봐.”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마 앞에는 검은색 물체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것이 총이라는 건 바로 알아챘다.
 눈물이 범벅된 눈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검은색 옷과 푸른색의 머리카락뿐이다.
 눈물을 닦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바람구멍이 날 것 같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정말 쓰레기 같네.” 검은 옷의 여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 이딴 임무를 수락한 거야? 45.”
 검은 옷의 여자는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포에 질려 시야가 좁아진 탓에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보수가 짭짤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조심스레 눈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은색의 머리카락과 검은색상의 옷 말고는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뭐해? 빨리 끝내.”
 “....먼저 돌아가. 금방 끝낼게.”
 푸른 머리의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은색머리의 여자가 부서진 잔해에 등을 기대며 푸른 머리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떨림과 물방울 때문에 불안정한 시야로도 그녀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무슨 뜻이지?416. 다시 말해줄래?”
 “먼저 가있어. 금방 끝...”
 “쏴. 당장.”
 다시 한 번 정적이 흘렀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나는 눈을 감고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팽팽한 기 싸움의 공기가 피부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현장의 사람은 전부 사살하라. 그게 명령이야.”
 푸른 머리의 여자에게서 빠드득하며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명령? 그딴 거 좆까라 그래. 크루거가 잘못 날린 미사일하나 때문에 이게 뭐하는 개짓거리야. 오늘 우리가 몇이나 죽인 줄 알아? 그중에 어린 아이는 몇 명인지 기억하냐고.” 일장연설을 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한명정도는.... 괜찮잖아.”
 크루거? 아아. 이일의 원흉인가.
잠시 고민을 하던 은발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좋아. 너 좋을 대로해.”
 그녀는 그 말을 마치고 발길을 옮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푸른 머리의 소녀가 떨리는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총을 든 그녀는 한손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마음을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서럽게 울었다. 세상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미안함이 어린마음을 엄습했다. 마을의 붕괴와 가족의 상실은 불과 17살의 소녀가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뼈가 사무치게 괴로웠다.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리에 주저앉아 나약하게 우는 것뿐이었다.
 푸른 머리의 여자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녀는 나의 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난 그녀에게 설움을 토해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 나의 상태가 조금 진정되자 푸른 머리의 여자가 허공에 총탄 한발을 발사했다.
 “목표사살. 임무종료.”
 무전기를 종료한 여자는 떠나기 전에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특별한 질문은 아니었다.
 “너 이름이 뭐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루니샤.



2.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나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근처 시장에서 구걸을 하며 일자리를 구해보았다. 당연하게도 나를 받아주는 가게는 아무 곳도 없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유흥업소의 남성들과 여성들이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기도 했다.
 아무리 생활이 궁핍하더라도 저런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나 자신과의 맹세이기도 하고 그것이 내 부모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피로에 찌들어갔다. 굶주림과는 친구가 된지 오래다. 밤이면 공중화장실에서 몰래 몸을 씻고, 도심가를 걸어 다니며 사람들이 먹다버린 음식을 찾아 다녔다.
 낮에는 도시의 어두운 골목 가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그때였다.
 쾅.
 도로 쪽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교통사고가 난 듯 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그때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귀 옆에서 들려왔다. 총성이 들려오고 여러 폭발음이 뒤섞였다.
 나는 다리를 끌어안았다. 몸의 떨림이 점점 더 심해졌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고 머릿속을 파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흘러나왔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주먹으로 광대뼈를 때리기도 했다.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피가 흘러 턱밑으로 흘러내렸다.
 아. 차라리 폭발로 가족들과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내가 땔감을 구하러 나가지 않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하나의 이름을 떠올렸다.
 크루거.
 강한 증오심이 꽃피웠다. 그를 죽여 버리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목에 칼을 꽂아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으로 옷깃을 강하게 쥐었다.
 아니야.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올바르지 못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성이 나를 타일렀다. 분하고 서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입안에서는 씁쓸한 피 맛이 맴돌았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잘 모르겠다. 이제 잠에 들고 내일 아침이 다가오는 게 무섭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버텨나갈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를 버티게 해주던 버팀목들이 전부 사라진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의문이다.
 밤이 되자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행동을 시작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먹다버린 핫도그를 발견했다.
 한입을 삼키자 속에서 거부반응이 거세게 일어났다. 오랜 공복이 문제였다. 헛구역질이 났다. 배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몸속에 날카로운 돌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아팠다.
 모처럼의 식사가 끝났을 때는 이미 정신을 잃고 난 후였다.



3.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한 가정의 침대 위였다. 꿈인가. 하고 내 뺨을 살짝 때려보았다. 감각은 제대로 느껴졌다. 누더기 같던 내 옷은 새하얀 새 옷으로 갈아 입혀져 있다.
 누구지? 누가 나를 데려온 거지. 납치 인건가.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고문도구로 보이는 물건은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 보였다.
 작은 곰 인형. 파란 머리핀. 하늘색 잠옷. 작은 오리가 그려진 흰 티셔츠. 그리고 내 옆에 누워있는 어떤 사람.
 어? 사람?
 얇고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너무 놀란 나머지 침대에서 떨어져 등이 땅에 부딪쳤다. 땅이 진동하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야!”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는 위아래가 뒤바뀐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보자마자 바로 알아 차렸다. 잊어버릴 수가 없다. 그 푸른 머리 여자다.
 “우으으. 무슨 일이야?”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돌려서 침대 앞에 주저앉았다. 침대에는 회색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그때의 그 회색머리의 여자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말투나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좋은 아침...416. 그리고 어...루...어...아, 루니샤.”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아마 저 푸른 머리 여자가 알려준 것이겠지.
 “야. 11 여기서 뭐하는 거야.”
 회색머리의 여자가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얘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침대가 너무 편해보여서 그만...”
 “어휴, 내가 못살아.”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말속에서 따듯함을 찾을 수 있었다. “미안. 침대에 누워있어. 먹을 것 좀 가져올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에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잠들어 있는 회색머리의 여자를 살짝 옆으로 밀고 나서야 편하게 누울 수 있었다.
 나는 회색여자 머리를 슬쩍 바라보았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귀여워 보였다. 호기심에 볼을 살짝 찔렀다. 그러자 잠꼬대를 하듯 웅얼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푸른 머리여자가 죽을 가지고 방에 들어왔다. 죽을 받아 들고 숟가락을 들려고 손을 뻗었다. 근육경련이 일어나듯 손이 떨렸다. 왼손으로 오른 팔을 붙잡아 떨림을 멈춰보려 했다. 소용없었다. 쟁반에 떨어지는 숟가락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보다 못한 푸른 머리의 여자가 쟁반을 뺏어갔다. 그녀가 숟가락으로 죽을 퍼서 나에게 내밀었다.
 “아. 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그러자 숟가락이 강압적으로 들어왔다. 맛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음식다운 음식이라 그런지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죽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죠?”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보았다. “어쩌다가 여기에...”
 그릇을 정리하던 푸른 머리의 여자가 말했다.
 “알 필요 없어.”
 “아... 네.” 무심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쟁반을 가지고 나가버렸다.
 곧바로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다. 회색머리의 여자와 갈색머리의 여자였다.
 아.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엄습했다. 등골이 차가워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때의 압박감이 다시 느껴졌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나는 황급히 그녀들에게서 눈을 돌려 내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 여자다.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색머리의 여자가 침대에 살며시 앉았다.
 “안녕? 몸은 좀 어때?”
 “괘,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네.”
 갈색머리의 여자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내 웃음을 지은 그녀가 말했다.
 “반가워. 나는 UMP9이야. 편하게 나인이라고 불러.”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자, 확인 했으니 이제 그만 나가자 9.” 회색머리의 여자가 나긋나긋 말했다. “쉬게 해줘야지.”
 “어? 잠시만 있으면 안 될까? 이야기 좀 나눠보고 싶어.”
 “그래? 뭐, 좋을 대로.”
 회색머리의 여자는 조용히 방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9이 나를 껴안았다. 반가움에 그러는 것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미안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그녀의 목소리와 몸이 떨렸다. “정말이야...미안해.”
 그녀의 행동으로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대체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좋을까. 마을 사람들을 몰살한 그녀들? 그녀들을 고용한 고용주? 마을을 날려버린 크루거란 사람? ....잘 모르겠다. 머릿속이 혼란하다.
 “아니,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짜잔!” 눈물을 닦고 다시 해맑게 웃기 시작한 그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받아. 선물이야.”
 나는 그녀가 건넨 물건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작은 물개인형이었다. 새하얀 몸에 박혀있는 검정색 두 눈이 반짝였다.
 나는 그녀의 미소에 보답하듯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아니야! 천만에. 겨우 이것밖에 못줘서 오히려 미안한걸.”
 “아니에요. 이거면 충분해요.”
 “아...그래? 다행이네.” 그녀가 내 앞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면서 말했다. “머리카락 좀 잘라야겠다. 예쁜 얼굴 다 가리네.”
 잠시 방밖으로 나간 그녀가 가위와 긴 천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앉아.”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흰 천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예전에 어머니가 이렇게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기억이나 코가 시큰거렸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올 해 몇 살이야?” “17살이요.”
 “그래? 나도 그쯤일 거야.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아... 네.”
 “거참! 편하게 말하래도.”
 “아... 네. 그럴게요.”
 “전혀 안 그러고 있거든.”
 “그렇네요.”
 나도 모르게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녀도 나를 따라서 웃음 지었다. 기분이 묘했다. 마을사람들을 학살한 사람들과 이러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한심하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도 걸린 것일까.
마을사람들과 우리 가족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잘은 몰라도 추방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저를 왜 살려주신 건가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째서...”
 “글쎄. 416은 그렇게 보여도 마음은 따듯한 아이니까. ...그런데 언니까지 왜 눈을 감아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무슨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유야 어찌됐든 나는 네가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조금은 침울해 하는 나를 향해 그녀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밝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자, 다 됐다!”
 그녀가 신나는 목소리로 흰 천을 걷어냈다. 그리곤 작은 손거울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다 죽어가는 소녀하나가 보였다. 이게 나인가. 하마터면 못 알아 볼 뻔했네.
 머리카락은 확실히 마음에 들었다. 반듯하고 가지런하게 잘 정돈되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네. 마음에 들어요.”
 “어허! 편하게 말하라니까.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다시 침대에 들어온 나는 그녀에게 받은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운 털이 손에 닿자 불안정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맑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옆에 누워있는 회색머리의 여자가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잠을 자는 사람이 우리 마을 사람들을 죽였구나.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손바닥에서 맴돌았다.
침대 맞은편 밤하늘에 물든 창문을 바라보았다. 남색으로 물든 하늘에는 별 하나 떠있지 않았다. 어둠만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품에 흰 물개를 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미안해요. 당신들의 원수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아무것도 못해서. 그들에게 복수심조차 느끼지 못해서. 아니, 오히려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서. 미안해요. 정말.
 늦은 밤의 개구리 우는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부엉이 우는 소리도 간혹 들렸다. 나는 그들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다.






 2편은 빠른 시일내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v28 렝가는o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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