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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UMP45) 나는 그날 그녀의 미소를 잊을수가 없다.

렝가는op다
댓글: 10 개
조회: 2386
추천: 18
2017-10-30 22:50:17

 

UMP45. 그녀를 처음 만난건 내가 그리폰의 지휘관으로 취임한지 두 달도 채 안 되는 날이었다.

내 인생에서 최악이라 자부할 수 있는 그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르게 지휘부 근처 풀이 가득한 들판을 거닐고 있었다.

물론 상부에 걸린다면 분명 근신처분을 받아야하는 행위지만 이번만큼은 상부의 허가가 떨어졌다. 아마 근 한 달간 자리에서 보고서만 써야했던 내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해준 것이리라. 덕분에 오랜만에 자유롭고 당당하게 밖으로 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저녁노을은 이미 사라지고 어두운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나는 들판에 외로이 놓여있는 내 허리 높이의 바위에 앉아서 오랜만의 바깥바람을 마음껏 만끽했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자유의 맛에 나는 황홀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덧 행복했던 시간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이 되어갔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지휘부 반대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부터 순탄한 레일이 있던 내 지휘관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풀이 울창한 평지가 끝나고 흙 밭을 조금 걷자 어두운 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암흑으로 둘러싸인 산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만 산에 흥미가 생긴 나는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 선택은 내 인생에서 최악의 선택이었다. 애초에 이런 야밤에 산을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심지어 나는 등산을 좋아하던 사람도 아니다.

무슨 생각으로 올라갈 결심을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제 와서 유추해보자면 지루한 지휘부 생활에서 잠시 벗어난 해방감으로 사리분별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평소에 요란한 강아지가 목줄에 묶여있다 풀려났을 때 심하게 발광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무튼 나는 산을 올라갔다. 그나마 땅을 비추어 주던 달빛도 울창한 나뭇잎에 막혀 한치 앞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즐겁게 산을 올라갔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정신병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즐거웠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바위에 무릎이 찍혀도 산을 올라갔다.

마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사람처럼 움직였다.

정상에 도착하면 무엇을 할까? 역시 야호~하고 소리친다면 동물들에게 누가되겠지? 등의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정상을 도착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기다리는 걸 잘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여기서 잠깐 스포일러를 하자면 나는 결국 정상에 도착하지 못했다. 정상은커녕 산중턱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고 질문을 한다면 그날 그 산에서 사신이 사냥 중이었다고 대답하겠다.

 

한참을 산을 오르자 슬슬 체력이 한계에 부딪쳤다. 한 달 정도 운동은 고사하고 제대로 걷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지휘관을 뽑는데 왜 체력을 보는 건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근처 나무뿌리에 걸터앉았다.

그제야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자 앞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작했다.

보이는 쪽과 안 보이는 쪽을 선택 하라면 차라리 안 보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무들이 기괴하게 느껴지고 주변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것들을 무시하기위해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댔다.

풀벌레 우는소리와 올빼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부엉이인가?

어떤 새의 울음소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점이라면 내가 그 상태로 깜박 잠에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시계를 확인 했다. 적어도 3시간은 지난 것 같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다시 산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 까지 온 김에 정상은 보고 가자...라는 생각이다.

나는 산을 오르기 위해 차갑게 식어 굳은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이었다.

타다다다닥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여기서 멀지않은 곳이다. 풀벌레가 운다거나 올빼미인지 부엉이인지가 우는 소리가 아니다. 새가 날아가는 듯한, 혹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듯한 소리다. 나는 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한 두번 스쳐지나가듯이 들은본 소리가 아닌 매우 익숙한 소리다.

곰곰이 생각 했다.

어디서 들었던 것일까.

이윽고 소리의 정체를 떠올려냈다.

소음기가 달린 기관단총의 총성.

순간 나는 몸의 피로도 잊은 채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갔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소리의 근원지는 아주 가까웠다. 왼쪽 위 대각선 500m전방. 짧은 순간 이지만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했다. 산울림 현상 때문에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내가 지휘관자리에 앉아있는게 포커로 딴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취임한지 2달도 안된 풋내기지만 사명감 때문인지 아니면 위선적인 정의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총성이 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는 사신과 조우했다.

한 소녀가 서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둘이었지만.

 

회색의 긴 머릿결 중 일부를 옆으로 묶고, 검은색 후드 점퍼에 검은색 스타킹, 짧은 검은 치마와 팔에 달린 노란 완장을 장비한 소녀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가녀린 손에는 그녀의 상체보다 큰 검은 단총이 들려있고 반대 손에는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그리폰 소속 인형이 멱살을 붙들린 채 쓰려져있었다.

충격적인 관경이었다. 그리폰소속 마크가 옷에 달린 인형이 처참하게 죽어있다면 그 시신을 들고 있는 그것은 철혈의 인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복장은 철혈의 인형의 형태와 심각하게 달랐다.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부서진 그리폰 인형. 어깨 부근에 보이는 0/l l이 조합된 마크.

기억났다.

404 Not Found.

그저 괴담인줄 알았다.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준 상사도 그럴 것이다.

그리폰의 암부, 그리폰의 그림자라고 불리는 자들이 존재한다.

인형의 기억을 지울 수도 있고, 즉결처분의 권한이 주어진 비밀소대.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하는 소대.

그런 소문만 무성한 404소대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그것도 그리폰 인형을 처분한 직후다. 목격자가 없어야하는 그녀들에게 나는 바로 그 목격자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내존재를 눈치 채고 나를 바라보았다. 가녀린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단총이 내게 겨누었다.

 

그날 나는 사신과 마주했다. 그것도 최악의 상태로.

 

이게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이다.

 

2.

그런 일이 있고도 벌써 8개월이 지났다.

, 그날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자면 그녀는 나를 보자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 선택지를 2개드릴게요~. 선택은 지휘관이 하시면 되요.”

내가 지휘관이라는 걸 뻔히 꿰뚫고 있었다. 이제야 생각하는 거지만 괜히 404의 실질적 리더가 아니다.

“1. 이대로 죽는다~.”

그 순간 나는 철렁하며 순간 다리가 풀릴 뻔 했다.

내가 긴장한 모습이 재밌었는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떨어요~? 아직 2번도 말안했는걸요? 2. 우리의 지휘관이 되어준다.”

물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당연하다. 누가 저기서 전자를 선택할까. 나중에 되어서야 안 것이지만 그녀들의 즉결 처분권은 사람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아서 사람에게 들킨 경우 상부에서 압력을 넣거나 자신들의 소대에 끌어들인다고 한다.

그것만 알았다면 그때의 그런 굴욕을 안 당했을 텐데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걸 알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되어서 나는 404 소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동기들에게는 내가 퇴사한 것으로 되어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름만 지휘관이지 딱히 하는 일은 없다. 작전을 나갈 때면 나는 45에게 지휘권한을 넘겨줬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에게 살해를 당할 것 같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들이 작전을 나갈 때면 나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리에 앉아서 스크린만 바라보았다. 이건 소설적인 과장이 아니라 진짜영화를 보는 것 같이 보았다. 기어코 나를 따라온 카리나씨와 함께 팝콘을 먹으면서 본적도 있다.

물론 이 사실을 45416이 안다면 나는 분명 이 세상에 남아있었단 흔적이 없어질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적응하기가 꽤나 힘들었다. 나를 경계하며 가끔 구박하는 HK416과 잠만 자서 문제인 G11, UMP45의 신봉자인 UMP9,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던 속을 알 수 없는 UMP45.

하나같이 정상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소대다.

그나마 HK416이 나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분명 나는 압박감에 눌려 죽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나를 구박하지만 UMP9의 말처럼 HK416의 마음씨가 이중에서 가장 곱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소대원들의 숙소에 들어가서 농담 따먹기도 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중에서도 45는 나에게 터울 없이 다가와줘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날의 이미지는 상관하지 않는지 언제나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내방에서 핫쵸코를 먹고 갔다. 그녀가 한번도 무섭지 않았다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겠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날이갈수록 바뀌어갔다. 물론 그녀의 가식적인 웃음과 이따금식하는 소름돋는 대사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 . .

한참동안 하던 과거 회상을 뚫고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건 UMP45였다.

지휘관~. 들어가도 될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이미 들어와서 내 옆 책상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이야?”

별거는 아니고 내일부터는 우리들의 지휘를 본격적으로 해줬으면 해요.”

뜻밖의 말이었다. 그녀는 내가 어째서?‘라고 질문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8개월이나 지났잖아요. 언제까지 놀기만 할 생각이었어요? 어머나~”

그녀는 진심이 섞여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게다가 언제까지 팝... 먹게 할 수도 없잖아요? 건강해친다고요~지휘관

들켜버린건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씩이지만 식은땀도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것에 대해 크게 화를 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해주세요. 게다가 내일 임무는 우리소대의 미래가 걸렸다고요?”

내일 임무는 매우 중요한 임무다. 404의 정보를 가진 그리폰의 인형을 잡는 임무. 그때 산에서 그녀가 처리한 인형과 같은 일이다. 실패할시 그녀들의 정보는 세계에 퍼지게 되고 그녀들을 결국  폐기처분...해야 할지도 모르는 임무다.

알았어..”

내 대답을 들은 45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휘관. 핫쵸코 타줘요.”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방구석에 있는 작은 주방으로 향했다.

분명 45는 작학무도한 인형이다. 분명 그렇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그녀는 나에게 있어 공포 그 자체였다. 때문에 내가 어떻게 그녀와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걸 알려면 다시 그날 산으로 기억을 되집어야한다.

그날 산에서 그녀는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달빛을 조금씩 통과시키고 그녀의 머리도 조금씩 흩날렸다.

그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총을 겨누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볼에서 달빛을 반사시키는 작은 빛을.

내 예상이지만 그저 내 망상에 불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 의견을 내보자면 그녀는 그날 거기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폰 인형을 죽이고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부대원 앞에서는 보여주기 싫어서 아무도 없을 때 잠시 그런 것이겠지만 운이 없게도 나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그 순간 그녀에게 느꼈던 혐오의 감정들이 전부 녹아 없어져버렸다.

나는 그걸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그녀에 관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쓸만한 건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어젯밤에 과거자료에서 UMP의 이름을 가진 다른 인형의 이름만은 찾아냈다.

UMP40.

 

고마워요~.지휘관.”

그녀가 내가 건넨 핫쵸코를 홀짝이며 말했다.

나는 지금이 아니라면 물어 볼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저기 말이야...UMP40이라고 알아?”

순간 그녀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그렇게 좋아하던 핫쵸코를 내려놓고 조용히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음날. 그녀들은 작전을 준비하고 전장으로 투입되었다. 목표는 AWP전술인형의 사살.

작전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나는 내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지휘를 했다. 내 어깨에 그녀들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기합이 들어갔다.

소대원들은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잘해주었다. 워낙에 넓은 환경 탓에 소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작전을 속행했다.

그러던중 UMP45의 무전이 들려왔다.

목표확인. 명령을, 지휘관

제압해

확인

UMP45의 다리 사이에 AWP가 깔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45는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대고 그녀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오랜만이네 AWP”

45가 달갑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둘이 아는 사이였던 모양이다.

AWP는 실성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너였구나? 45. 정말 오랜만이네. 나도 이제 너의 손의 죽는건가? ..누구였지? , 맞아 UMP40처럼 말이야.”

그 순간 45의 총구가 약간이지만 흐트러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AWP가 품에 있던 권총을 꺼내들어 45의 어깨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UMP45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AWP가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사살하라는 명령이 아닌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린 탓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금 45가 죽을 위험에 처해졌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럼 잘 가 45”

.

 

45의 앞에서 AWP가 쓰러졌다.

뒤늦게 달려온 HK416이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멍청아 뭐 하는 거야.”

그건 나를 향한 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45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16이 시신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품에서 이상한 물건을 찾아냈다. 상자 같은 모양의 검은 물건은 이상한 신호음을 내고 있었다. 정보수신기다.

이런 미친, 전부 전송됐어!!”

 

임무는 실패다. 처음 맛보는 실패지만 그에 합당하는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소대의 소멸만이 우리를 기다렸다. 그 이후 임무를 하러가는 일은 없었다.

물론 임무가 들어오기는 했는데 내가 다 거절해버렸다.

이유라면 그이후로 45의 상태가 심각해져 버린 탓이다. 처음 맛보는 실패, 404부대의 공중분해가능성, 자신들의 폐기처분. 그런 압박감이 그녀를 방구석으로 몰아넣었다. 45는 방에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그건 G11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나는 매일 그녀의 방에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내가 가져다주는 핫쵸코 컵은 다행히도 늘 비어있었다. 그녀의 방에서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의 곁에 앉아 있어주었다. 그것 말고는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답지 않다고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때 산에서 보았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사실 원래부터 이런 성격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모종의 이유로 이전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것을 잃은 45는 이전처럼 행동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뒤로 며칠이 더 지났다. 뉴스에서 빠져나간 404 Not Found의 정보가 전부 누출이 되었다. 그로인해 그리폰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명성이 실추되었다.

때문에 더 이상 그녀들의 존재 의의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집무소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카리나씨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고급진 서류케이스가 들려있었다. 카리나씨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눌렀지만 조금 눈물을 흘리며 내게 서류를 건넸다.

,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서류를 자리에 앉아서 펴보았다.

‘404 Not Found소대의 폐기처분으로 시작하는 서류는 나를 제외하고 모두의 사인이 들어있었다.

이 사인이 축구선수였다면 좋았을려만. 하고 나름 나 자신에게 농담을 던져보았지만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펜은 들었다 놓았다하며 내리 5시간을 앉아있었다. 이제 곧 6시간을 채우려던 때,

. .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이 열렸다. UMP45였다. 그녀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내 옆 책상에 앉았다.

실례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는 책상위의 서류를 보았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휘관, 시간있어요? 아참 이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려나~?”

그녀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괜찮았다.

있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정도로.”

~...그럼 그 시간 좀 제게 빌려주시지 않을래요?”

안될건 없지.”

그전에 핫쵸코 좀 타주지 않을래요?”

나는 여느 때처럼 피식 웃으며 일어나 핫쵸코를 타서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만족스럽게 받아 들어서 조심스럽게 홀짝였다. 이런 모습을 이젠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깊은 곳이 저려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뻔했다. 가까스로 나오는 눈물을 참고 그녀와 함께 핫쵸코를 마셨다.

한참동안 대화가 없었다. 45가 홀짝이는 소리만 방안에 울려 퍼졌다. 한참동안의 정적의 깨고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지휘관 나랑 외출하지 않을래요?”

그녀는 지금 나와 함께 죽지 않을래요?’를 돌려서 말한 것 일지도 모른다. 404 부대는 지금 철저히 감시중이다. 여기서 외출을 감행한다면 분명 자살시도를 하자는 것이다.

감시가 이렇게 철저한데?”

제가 누구에요~? 지휘관

그녀가 그런 말을 하자 어딘가 엄청난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러지 뭐

 

그 뒤 그리폰 기지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굳이 서술하지 않겠다. 만일 그 내용을 서술한다면 이 글은 장편소설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폰 기지를 빠져나오고 나서 우리는 정처 없이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바다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기지가 바닷가 근처였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는 바닷가도로의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품에서 보온병을 꺼내 홀짝였다. 냄새를 보니 또 핫쵸코였다. 나와 그녀는 한동안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부에서 도방칠때 많은 체력을 사용했는지 45는 기운이 많이 없어져 있었다.

오늘밤 우리는 그리폰에서 도망칠거에요.”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덕분에 나는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다만 이 이후의 말은 전부 예상치 못한일 들이라 충격을 받았긴 했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이...마지막이라는 거지?”

“...

그렇구나...”

예상은 한일이지만 마음이 아려왔다. 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했던 그녀들과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전부 꽤나 끔찍한 기억이긴 했지만 지금 보니 나름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야 용기가 났어요.” 그녀가 잠시 침묵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휘관은... 가족을 죽여본적..... 있어요?”

 

 

3.

“UMP45? 여기서 뭐하는 거야?”

지휘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넓은 들판.

UMP40이 엎드려서 무언가를 만지고 있는 45에게 말을 걸었다.

45는 웃으면서 바닥에 있던 것을 힘차게 들어올려 40의 앞에 가져갔다.

강아지에요 40. 귀엽지 않나요?”

45는 철없게 웃었다. 4045는 사격장에서 처음 만났다.

실제 총기술에는 재능이 없던 45가 낙담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둘은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진 것뿐만 아니라 같은 전자전 전용인형이라 금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자의식이 강해서 항상 어른 같이 행동하고 속이 깊은40은 자신의 가치관을 45에게 들려주었다. 45는 그런 40을 동경하였다. 40도 그런 45가 좋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40은 그런 45를 보며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휘관에게 데려가 보자. 어쩌면 키울 수 있게 해줄지도 몰라.”

45는 그 말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강아지를 안고 지휘부로 달려갔다.

지휘부에 도착한 45는 지휘관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안에 누군가가 고함을 치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윽고 문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오고 뒤따라온 40과 함께 45는 안으로 들어갔다.

지휘관은 꽤나 지친 상태였다. 그의 뒷모습에서 방금 나간 사람과 엄청나게 감정싸움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45는 그런 상태의 지휘관에게 말을 걸어도 되는지 망설이며 우물쭈물했다. 그런 45를 슬쩍 본 40이 지휘관에게 말을 걸었다.

지휘관 여기를 좀 봐줬으면 하는데.”

, 어 무슨 일이야? 안 그래도 부를 참이었는데

"여기 있는 강아지를 우리숙소에서 키웠으면 해."

지휘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다만 그게 본주제가 아니었다.

지휘관은 그녀들을 안전국으로 발령 보냈다. 4540은 납득할 수 없었지만 명령이니 따르기로 했다.

 

며칠 후 안전국에서 그녀들의 과거 기록을 전부 말소하고 40의 머리에는 이상한 프로그램 하나가 설치되었다. 4045와 통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하며 45의 머리에는 프로그램이 설치되는 것을 막았다. 다행히도 그녀의 주장은 먹혀들었다.

그 후 이른바 나비사건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리코리스의 확보. 4045의 임무는 전자전으로 철혈의 네트워크에 침투하여 진입부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실제 전투에는 자신이 없던 45지만 전자전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작전은 순조로웠다.

이윽고 돌격부대가 리코리스 확보에 성공하였다.

작전성공.

45는 이걸로 돌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나있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알 수 없는 채널에서 61번 명령을 실행하라는 무전이 들려왔다. 45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지만 40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그 순간 모든 철혈의 인형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노려 리코리스는 도망에 성공했다. 45는 당황하여 주변 둘러보았다.

.

45의 머리 옆으로 총알이 한발 스쳐지나갔다. 45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가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다.

어째...

40은 바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달렸다. 그녀들의 등뒤로 총알 이 비가되어 쏟아졌다. 한참을 달려 그나마 안전한 장소에 도착했다.

45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왜 우리에게...”

그순간 45는 직감했다. “설마.... 40이 그런거야? 60 몇 번인가 하는 그명령...”

맞아 내가 그랬어.”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담담해서 45는 분노를 느낄수도 없었다.

“....? 왜 그런 짓을 한거야? 그대로 다 같이 집에 돌아가면 되는거였잖아?”

40이 소리쳤다.

바보야 우리는 버려진거라고!”

무슨...”
내 머리에 심어진 이 프로그램은 클라운드 마인드맵을 파괴하기 위해 설치 된거야. 우리는 돌아가도 어차피 죽는거라고!“

말도 안돼...”

다만..너를 살릴 계획은 세워났어.”

그 말이 끝나고 그녀는 45의 총구를 잡아 자신의 머리로 가져다댔다.

.”

단호하고 요점만 말하는 한마디.

무슨...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40!”

40은 총구를 잡은 채로 무릎을 꿇었다.

내가 죽으면 너에게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져. 너는 소속이 없는 인형이 되는거야. 그러면 너는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권리가 생겨. 그러니 쏴.”

“....못해.”

쏴 빨리!!”

“..........!!!”

!!!!!!”

못해!!!!”

빨리 쏴!!!!!!!“

......

 

여기서 그녀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4.

그녀의 과거이야기를 들은 나는 역시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런 인형이에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염치없게 옆에 있어도 괜찮을까요?”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괜찮지.”

그녀가 작은 미소를 띄우며 핫쵸코를 마셨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도 그녀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좋아해요 지휘관.”

너무 갑작스러운 고백이라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더니 그녀는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취임 했을 때부터 쭉 보고 있었어요. 지휘관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래서 산에서 만났을 때 속으로는 지휘관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이런 모습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게 슬펐어요. 조금 더 좋은 분위기에서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그리고 지휘관이 우리 지휘관이 되어주었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그녀는 그때를 떠올리면 행복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그러니까...지휘관

그녀가 보온병을 세게 쥐며 말했다.

“ ‘지금'이니까 하는 말인데.... 이런 저라도 괜찮다면,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도 혹시라도 실망하지 않았다면....저랑 결혼해주시지 않으실래요?”

나는 생각 할 필요도 없이 내마음속에서 지금까지 꾹꾹 눌러가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감정을 놓아주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UMP45를 처음 만났을때 부터 그녀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래. 당연하지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나는 슬쩍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도 아무 말하지 않아주었다.

결혼인데 반지가 없는 결혼식이었다. 그걸 생각한 그녀가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서 내 손목에 걸어주었다. 나는 답례로 내가 늘 차고 다니던 시계를 그녀의 팔에 걸어주었다. 물질적인 가치로 따지자면 내가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딴 현실적인 생각은 개나 주라지.

우리는 손을 잡고 계속 노을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행복했다. 내가 지금까지 그부대에있었던건 다 이때를위해서 였구나 하는등의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겟다, 이대로 같이 도망을 가버릴까 등등의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지 결국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억지로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에 펑펑 울어버리면 그거야 말로 정말 꼴 사나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 손을 놓고 점점 멀어져갔다. 그녀가 조금 걷자 404 소대가 어디선가 나타나 그녀를 반겨주었다. 소대원들은 나에게 예의를 갖춘 경례를 하고 돌아서서 떠났다. 나도 뒤를 돌아서 지휘부로 향했다.

그 뒤로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다만 그때의 그녀가보여준 진심어린 미소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5.

그 뒤 지휘부에 도착한 나는 404폐기건의 서류를 찢어버리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3년이 지난 나는 지휘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게를 차리고 지금은 어엿한 사장이 되었다. 사장이라고 해봤자 한 달 순이익이 300뿐이지만...

아무튼 나는 이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다만 나는 그날 그녀의 미소를 잊을수가없다.

또한 그녀들의 소식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새드엔딩도 아니고 해피엔딩도 아닌 그저 평범한 엔딩. 그렇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준 사람이 존재한다면 정말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이제부터 가게의 문을 닫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 가게 정리하는 일은 매우 귀찮지만 1인 운영가게니 어쩔 수가 없다.

딸랑 딸랑

이런, 손님이 들어온 모양이다.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잠시만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손님을 돌려보내고 확실하게 마무리를 하고 끝내겠다.

장사 끝났습니다.” 라고 나는 손님을 등진 채 말했다.

저기~ 혹시 여기 핫쵸코 있나요~?”

 

 

fin


 

처음 올리는 글이라서 많이 미숙하지만 읽어주신다면야 감사하겠습니다

Lv28 렝가는o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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