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찾는건 아마도 나나 이 아이. 그 증거로 내가 마을 밖으로 나가자마자 적들이 몰려왔다. 밖에서 대기중인 예비조였을테지. 하지만 중요한건, 지금은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표적이든 잡히면 별로 좋은꼴은 못본다. 이 마을로 올때의 지형을 생각해낸다. 이 마을이 이렇게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건 강 때문이다. 이 강은 온갖지역으로 연결된다. 심지어는 로체스트로도. 그래, 내가 지금 가야할 곳.
선착장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뛴다. 큰 배는 출항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혼자서 그걸 움직인다는것도 무리다. 작은배를 찾아야지. 적들과 거리는 좀 있지만 내가 멈춘다면 금방 따라잡을 거리. 배를 타고 거의 논스톱으로 출발해야한다는... 강이 시야에 보인다. 마을과 강의 거리는 그리 떨어져 있지 않다. 멀리서 배를 찾는다. 작은배.. 작은배.. 정말 딱 좋게 준비되어있는 배면 좋겠는데...
선착장에는 큰 배들이 정박되어 있다. 이래서야 시야가 가려져서 배를 찾기가 힘들다. 적이 이리 올때까지는 몇초만 있으면 된다. 한번은 다 훑어 보았다. 그럼, 내가 보지 못한곳은? 딱 두곳이다. 끝과 끝. 어느 쪽인가. 기회는 한번.
고민할사이도 없이 적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오른쪽으로 뛰었다. 제발, 있어라!
함성소리가 다가오며 더 커졌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다. 이미 배는 출발했고 저 녀석들이 헤엄을 칠 수 있으리란 생각하지 않는다. 물속에서 사는 마족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없다.
지금 와서 안 사실이지만 여기서 보니.. 왼쪽에도 배가 있었다. 뭐 어느쪽으로 가도 배는 탈 수 있었단 이야기인거다. 내 행운도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일단 지금은 북쪽으로 올라가야한다. 남쪽으로 간다면 지금은 이미 없어진 마을이 있을뿐이고.. 갈곳은 로체스트밖에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검문을 분명 받을테니 골치아프겠지만 지금은 그게 최선이 아닐까.
강을 거슬러서 올라가는거고, 더구나 배도 그리 크지 않아서 속도가 느렸다. 아이는 이미 잠들어있다. 시간은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다. 잠을 자둬야 하겠지만 그래서야 일이 났을때 대처하지 못할것이다. 하늘에는 별천치다.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듯한. 여자랑 같이 있다면 분위기 잡을땐 딱이겠으나.. 꼬맹이랑 같이 있어도 별로 좋지도 않고 말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마차로는 콜헨에서 로체스트까지는 한나절쯤 걸린다고 했는데.. 배로 가면 그것보단 빠르리라 생각한다. 다만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과 약간 빙돌아서 간다는점이.. 비도 오고 있어서 물살이 강해, 어쩌면 하루를 넘길지도 모른다. 그 경우 나는 괜찮지만 이 아이는.. 식량이 문제가 되는데.. 생선이라도 날것은 아마 먹지 않겠지. 일단 한번 가보고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할것 같다.
아이의 이마에 손을 짚어본다. 열은 아직 없다. 다행히 감기에는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보기완 다르게 나름 튼튼한 아이라는건가. 하늘을 다시 올려다 본다. 변함없이 별들은 그곳에 있었다. 마침 옛날 생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분명히, 아이도 이 나이쯤 되었겠지
계속 노를 젓다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래서야 제대로 가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노를 젓는것을 멈추면 오히려 남쪽으로 내려간다. 후.. 할 수 없다. 어차피 날도 저물었고.. 이렇게 노를 저어봤자 효율은 제대로 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육지로 가는게 빠를것 같다. 배를 육지에 댔다. 우선은 쉴 장소를 찾는게 좋을것 같다. 아이는 둘째치고 내가 견디지 못할것 같다.
이 부근에는 마을은 없다. 콜헨으로 가면서 확인했으니까 이건 확실하다. 노숙을 해야한다는건데.. 어디서 해야한담? 계속 걸어도 보이는건 숲이다. 내가 일전에 오면서 표식을 해놓았는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조금 곤란한데.. 새로 표식을 내며 임시로 쉴 수 있을 만한 장소를 계속 찾는다. 마침 탁 트인 장소를 발견 했다 그런데 문득 눈에 익숙한 장소를 봤다.
"…모리안은, 진정으로 날 저주하는가 보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한때는 성역이었으나 이미 지금은 폐허일뿐인 곳. 그리고 내가 죽을 뻔한 곳. 한때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꿈을 꾼건.. 이것 때문인가. 신은 어째서 날 이곳으로 인도한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신의 거룩한 뜻을 내가 어떻게 알랴.
기분이 착잡해짐을 느끼면서 어쨌든 더 깊숙히 들어갔다. 과거는 과거일뿐이고 지금은 일이 집중해야한다. 성역이라면 건물도 있다. 낡았어도 비를 피할만한곳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의 상태는.. 자고 있지만 곧 깨어날기도 하다. 건물 내로 들어가서 불이라도 지펴야할텐데.. 비가 와서 시야도 좁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비는 몇시간동안 내렸는데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바닥도 미끌거리는 대리석인데다가 비까지 와서 뛰는 것도 힘들다. 그 때 구세주 처럼 눈앞에 커다란 신전이 보였다. 몇십년이, 혹은 몇백년 동안 있었는지 모를 건물은 빗속에서도 웅장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온기 유지에는 좁은 장소가 적당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때가 아니다.
신전안은 당연히 어두웠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빛이 들어오는 입구쪽에 잠깐 아이를 내려놓았다. 장작을 찾아야 하는데 젖은 땔감은 불을 피우기 어렵다. 고로 마른 장작이 있어야하는데.. 비오는 날에 마른 장작 구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더구나 이 판국에.. 아쉬운대로 신전안에 있던 잡목을 모아서 불을 지폈다. 불을 피우는데 애좀 먹었지만 어떻게든 됬다. 그리고 불을 안쪽으로 옮겼다.
신전안은 넓어서 온기가 잘 전해지지 않았다. 가림막 같은게 있다면 어떻게든 온기를 모을수가 있겠는데.. 방패로 가림막을 대신해봤더니 그럭저럭 쓸만했다. 역시 이놈은 쓸모가 많아. 아이는 열은 없지만 분명히 추울거다.
밖은 아직도 어둡다. 하긴. 몇시간 지났다고 벌써 해가 뜰까. 아침이 되려면 멀었을거다. 차라리 여기서 하룻밤 지내는것도 나쁘진 않을성 싶다. 나도 잠은 자야하지만.. 미칠듯이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자기보다는 그냥 앉아서 쉬기로 했다.
불을 쬐면서 바라보는건 텅빈 허공. 바깥 풍경이라도 보고 싶지만 `나 여기있수`하고 광고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어둡고 비가 내리니 잘 보이지도 않겠지만.. 사람의 시야가 곧 그들의 시야란 법은 없으니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를 용병단에 넘기고 나서는, 어떻게 될까? 부모는 죽었다. 가족도 물론 없을테다. 친척이 있다고 하더라도 데려가고 싶어할까?
보는 사람 눈이 있으니까 데려 간다하더라도 가족처럼 대해줄까? 양녀로 들어가도 과연 행복하게 살 수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냥 용병단에서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건 정말 싫은 일이다. 피를 보는 일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나도 미쳤군."
내가 데려가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차라리 어딘가에 양녀로 집어 넣는게 백배 천배는 낫겠지. 적어도 죽을 위험을 감수하며 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난 정말로 미쳤나보다.
옛 일을 오랜만에 생각해낸다. 떠올려진게 아니라서 어쩐지 그립게도 느껴진다. 전장에서는 정말 필요 없는 것이지만 사람으로써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정말 쉽게 울지 않았다. 자주 울먹이기는 했어도.
`아빠, 같이 있어줘….`
어리광을 곧잘 부리고는 했지만 잘 타이르면 잘 알아들었다.
`응.. 알았어.`
그렇지만..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곤 했었다. 항상, 전장에 나갈때마다.. 사실 그랬다. 그 좋은 가문을 나와서 기사단따위 할 필요 없었다. 귀족으로써 행세나 떵떵 부리며 백성들 등이나 쳐먹으면서 가족이나 편하게 챙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게 나쁜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난 기사단 따위를.. 백성이.. 가족보다 중요한 것인가..?
`당신이라면 잘 알겠죠. 휴식은 언제나 잠깐이라는걸.`
잘 알고 있다. 집으로 돌아갔을때 그 웃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저 기분뿐이었다. 그건 정말로 잠깐. 잠깐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짧은 시간이다. 내 일상이란 평화가 아닌 전장이었다. 늘상 피를 보고 항상 감정을 죽여왔다. 늘상 생각을 지워버렸다. 생명의 존중 따위는 개에게 줘버렸다. 인간성 같은건 중요하지 않았다. 항상 우선시 되는건 전설과 다름 없어진 예언.. 그러나 지금 투아하 데 다난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유일한 목표..
항상 의문을 품어왔다. 모리안은 어째서 마족을 멸절하라 했을까. 어째서 마족의 피가 없어져야만 에린의 문이 열리는 것일까. 어째서? 마족의 입장에서는 우리들이 적일 것이다. 절대악이란 없다.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왜 그걸 한치의 거짓없이 받아들인걸까? 신이라는 이유로 ? 우리를 구해준 여신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역시 전장에서는 쓸모가 없는 것이기에 속으로만 삭혀왔다. …어쨌든 나에게 중요한건 이런것이 아니었으니까.. 시선을 꼬마에게 돌린다. 이 녀석 이름이 뭘까. 이름 정도는 물어볼껄 그랬다. 그렇다고 이름 때문에 굳이 일으킬 필요는 없을 거다. 불이 꺼지지 않게 장작을 몇개 더 던지고 다시 앉았다. 신기하게도 정말 잠은 오지 않았다. 이것도 직업병인가. 곤란하다.
귀에서 익숙하지 않은 소음이 났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의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렇기엔 규모가 컸다. 이를테면 군대라는 느낌이다. 재빨리 불을 밟아서 꺼버렸다. 꼬마는 깨진 않았다. 이 때 깨면 곤란하니.. 밖을 살짝 내다보았다. 이쪽은 어두우니 잘 보이진 않을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나는 적이 보이지도 않는데 적은 내가 보인다는 건가? 검을 챙겨들었다. 소리로는 일개 부대는 될정도의 물량이다. 나 혼자서 어떻게 되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아이는 지켜야겠지.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갖고 있던 폭죽을 꺼내들었다. 원래 불량품이 많고 지금 비도 오고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신전의 반대편입구로 가서 폭죽을 터트렸다. 다행히 그럭저럭 높히 날아가 불똥이 튀었다. 이제.. 내가 있는 장소를 광고해주는 꼴이되었다.
꼬마를 다시 들고 다른 구석에 찾아서 잘 눕혔다. 옷가지로는 아무래도 안심이 안되서 방패로 모습을 감춰주었다. 언제나 찬란한 빛을 내는 방패였지만 이럴때만큼은 칠흑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 들어온 신전 입구밖에는 흐릿한 형체가 많다. 형태들은 인간처럼 생겼다. 일단은 오거들은 아닌가보다. 입구에 검 한자루를 들고 서있었다. 여기서 난 죽는다. 틀림없는 기정사실이다. 난 너희들을 죽일 이유는 없다. 너희들도 날 죽일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우리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사이다. 단지 그것뿐으로 우리들은 검을 겨누어야 한다.
여신의 예언따위 난 어찌되든 모른다.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모리안의 말 때문에 전쟁을 해야한다고? 낙원으로 가기 위해서 마족들을 죽여야 한다고? 이상하잖나. 누군가를 죽이는건 죄악이다. 죄악을 저지르고서 낙원에 간다고? 그럴리가 없다. 전설이 와전되었거나 모리안이 거짓말을 했거나. 그래, 너희들을 죽여도 낙원은 열리지 않겠지.
아니.. 한가지만은 내가 틀렸다. 난 너희들을 죽일 이유가 있다. 너희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너희들을 죽이지 않으면 저 아이가 죽고 너희들을 죽이지 않으면 난 약속을 지킬수 없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 너희들도 마족이 된건가? 스스로 된것인가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된것인가. 아니.. 옷을 입고 있는걸 보면 전자겠군. 너희들은 무엇때문에 우리들을 죽이는 거지? 붉은 놀은 분명히 내게 말했었어. 우리 종족이 너희 종족을 해칠일은 없다고. 그럼 너희들은 무엇이냐?
비 때문에 시야가 흐리지만 거리가 제법 가까워서 적들의 형체가 잘 보였다. 놀들이 든 무기는 검 따위가 아니다. 그 모두가 둔기며, 휘두르는 속도는 검과 같다. 방패 없이 싸운다면 버티는 것조차 힘들지만.. 할 수밖에 없지 않나?
버티는 것조차 힘들다고? 아아 잘못이었다. 역시 영웅노릇이란 쉬운 모양이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두 다리는 화살을 맞아서 잘못 디디면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다. 개새끼들인 주제에 머리는 잘 굴러가나 보다. 둔기를 직접 막으면 검이 견디질 못한다. 이 검에 마력을 불어넣지 않았으면 진작에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괜시리 쟈레스 영감한테 고마워지는걸.
신전을 등지고 있어서 공격은 전방에서만 왔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더구나 지원사격까지 있으면 한 사람으로써 버틴다는것 자체가 이상한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웅 노릇이란 쉬운 것이다. 고로, 난 여기서 쓰러지지 않는다.
우의 공격은 회피하고 좌의 공격은 받아 넘기고 눈 앞에 보이는 놀의 목을 찌른다. 이 개새끼들은 갑옷도 뭐 같이 단단해서 빈틈에 정확히 꽂아 넣지 않으면 공격이 의미가 없다. 레인져들은 경갑이지만 저 멀리서 화살만 쏘니 내 공격이 닿을 턱이 없다. 다리의 통증은 비가 오는 덕분에 얼어버렸다. 별로 아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느낌은 익숙하다.
다리를 움직이는데 피가 흐르는 것 같다. 비와 구분이 잘 안되지만 무언가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기분이 묘하군. 마치 샤워라도 하는것 같았다. 샤워보다는 목욕을 하고 싶었는데…. 무엇인가 휘둘러져 온다. 그걸 별 생각도 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막아냈다. 나도 정말 미친걸까 생각하곤 한다. 사실 아이든 뭐든 데리고서 도망쳤으면 됬을지도 모른다. 난 어째서 이들에게 맞서는가?
화살이 몸에 계속 꽂힐때마다 출혈량은 늘어났다. 현기증이 날정도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비가 통증을 씻겨주었다. 그러고보면 그날도 비가 왔었지. 신은 날 저주하는건지 축복하는건지. 바람을 가르며 무엇인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검을 들어 막지만 검째로 몸이 날라가버린다. 곤란한걸. 한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다. 날 날려버린건 무식하게 큰 망치를 든 놈이다. 내 검은 산산히 부서졌다. 핫, 하지만 내 검은 죽을때도 곱게 죽지는 않는다. 산산히 부서진 검조각들은 주위의 적에게 박힌다.
그러나 그뿐이다. 최후의 발악일뿐이지. 내가 쓰러진 장소는 움푹 파인 장소라 물이 고여있었다. 정말이지.. 신은 날 축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게 해주다니 말이다. 그런데.. 비누가... 없잖아...
눈에 빗물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젠 눈꺼풀조차 움직일 수 없다. 눈에선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게 자꾸 흘러 넘친다. 아프지는 않다. 소나기인지 모를 이 비가 통증을 완화시켜주었다.
계속 잠이 안오더니 드디어 잠이 오기 시작했다. 불안감은 없다. 왜냐하면... 황금빛 가죽 너머로 보이는건.. 부드러워 보이는.. 따뜻한 붉은 털이 있었기 때문…….
◈ ◈ ◈
"오호.. 이게 황금빛 가죽..."
그녀는 말 없이 가죽을 건네주었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가죽은 죽어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고가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걸 구해온 이는 보상을 바라는 듯이 트레져 헌터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보수는 확실히 하죠."
트레져 헌터는 작은 돈주머니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돈주머니를 챙겨들고 더 이상 볼것 없다는 듯이 매정하게 대장간을 나섰다. 트레져 헌터는 그걸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 남자... 끝까지 고집을 부렸군요."
트레져 헌터가 보는건 다름아닌 그녀가 들고 있던 방패. 찬란한 독수리 문양이 있는 화려한 방패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꼬마가 저런걸 구할 수 있을리가 없는데다가 이미 몰락한 가문. 그럼에도 들고 다니는 이유는 하나밖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트레져 헌터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놀은 인간에게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이 여성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놀이 그런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도 종류가 있듯이 놀들에게도 각기 다른 생각을 지녔고 다른 가치관을 지녔으리란 당연한 사실이다. 단지 그 차이뿐.. 놀 종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그들이 모를리가 없다. 모든 놀이 척결 대상이 되버린것도... 법황청이 멍청하거나 다른 속셈이 있거나 둘 중 하나가 틀림없는 일이었다. 트레져 헌터는 분명히 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트레져 헌터는 눈을 떴다. 방패를 든 자는 빛나는 의지(shining will). 누구라도 등에 짊어질수 있는 자. 그런 사람을 영웅이라 부른다. 그 남자는 꼬마를 짊어졌을 뿐이고 저 꼬마는 앞으로 무수한 생명을 짊어질것이다. 그 방패를 든 순간부터 그것은 정해져 있는 것. 그런 꼬마를 등이 업은 남자야 말로 사실은 영웅일지도 모른다.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시오?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있소?"
대장간의 주인이 트레져 헌터의 옆으로 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트레져 헌터는 대답은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소... 아저씨는 싫다 이거로군."
대장간 주인은 밖을 쳐다봤다. 그걸 보고서 대장간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져 헌터가 가만히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내가 만든 것이긴 하지만.. 역시 바탕이 되야 하는 법이로군"
대장간 주인은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딸기주 병을 비웠다. 그리곤 망치로 용병단이 맡김 검을 내리쳤다. 이 때 손이 미끄러져서 무기가 부셔졌다는건 대장간 주인 자신만이 아는 사실이다. 똑같은 다른 검으로 바꿔주고 강화가 초기화됬다고 둘러대는 것도 주인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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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프롤로그로 할까 단편으로 할까 고민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단편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장편은 연재할 엄두도 안나고 스토리 라인 짜놓은것도 없어서요...
사실.. 이걸 프롤로그로 피오나 중심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ㅠㅠ
내용이해가 안되는 분들을 위한 설명
주인공의 정체
> 귀족 출신의 기사단. 그러나 마족과의 전쟁에서 참패해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나 도망쳐다니는 신세.
트레져 헌터
> 당연히 아네스트.. 주인공에게 트레져 헌터 일을 찔러본건 그의 정체를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었는데 그걸 확신하기 위해서.
황금빛 놀
> 당연히 엠버메인.. 회상할때 주인공을 구해준게 엠버메인이 이끄는 군대. 구해준 이유는 그 때 주인공의 아군은 스카드블랙의 군대에게 당했는데 엠버메인이 이걸 보고 스카드 블랙 군대를 물리침.
붉은 털을 가진 놀
> 놀칲밖에 더 있나요. 죽어가는 주인공을 대신해서 스카드 블랙의 놀들을 처치함. 아이는 방패와 함께 콜헨 마을에 갖다 줌. 갖다 줬다기 보다는 그냥 두고 왔다는 표현이 어울린달까.
회수하지 못한 떡밥
> 오른팔 부상건은 써먹으려고 했다가 의미없는 떡밥이 되버림.. 복선도 아님 사실..
> 주인공에겐 딸이 있는데 죽은건 아님... 마지막에 딸이랑 주인공이 구한 아이랑 매치시키려고 했는데 여러모로 무리 ;ㅅ;
> 마족들의 목표는 주인공이 구하려던 아이. 이 아이가 사실 미래엔 영웅이 된다는 예언이 있었다거나 어쨌거나 그래서 해치울려고 하는 설정이지만 여러모로 무리수인것 같아서 소설 내에선 언급 안함..
왜 제목이 소나기 인챈트 스크롤?
> 소나기 인챈트의 효과는 아시다시피 `통증 완화`. 전쟁의 상처를 완화시킨다거나 어쩌구 저쩌구 등등.
> 마지막에서는 제목의 의미를 알려주려고 했으나 여러모로 실패한것 같음..
그 외
> 주인공의 방패는 눈치챘겠지만 이글 하트. 참고로 리블. 레어 색입니다(는 유머).
> 주인공의 검은 홀리디펜더. 참고로 인챈트는 풍요로운 꽃잎... 15강쯤 됩디다.(은 구라)
>콜헨은 불타기는 했는데 망한거 아닙니다 ㅠㅠ 용병단이 잘 처리했음
>주인공이 구해준 아이는 피오나라는 설정.. 이지만 원래 마영전 설정이 뭔지 잘 모르겠음. 여하에 따라 무리인 설정인듯..
>샤이닝 셋은... 트럴잡고 나오는 거긴 한데 뭐 원래 설정에서 어디서 구한다더라~ 하는 설정이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걍 끼워넣음. 피오나 하면 샤이닝이잖슴까!
> 주인공이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곳은 북쪽폐허. 스카드블랙의 군대가 온 이유는 마족의 군대 중에서 스카드의 군대가 가장 가깝기 때문
> 그런데 갑자기 놀치프틴이 뜬끔없이 나타난 이유는 주인공이 쏘아올린 폭죽 때문에. 원래는 기사단끼리 신호를 주고 받을 때 사용하는 것(이라는 설정). 근처에 있는 아무 군대에게나 도움을 청한다는 느낌~?
> 중세시대에 왠 폭죽? 할수 있겠지만 갈고리도 있고 폭탄도 있는데 뭐 어때요 (....)
마지막 결말이 왜 이럼
> 재밌잖아요....
> 사실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이 있지만... 이것보다 더 길게 쓸 수는 있지만 힘들어서 걍 여기서 스탑.
이상으로 끝~
P.S 쓰는데 하루에 2~3시간씩 일주일가량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관심좀 굽실굽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