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달려다가 길어질 것 같아서 따로 글을 써봅니다.
저도 한 때는... 아니 어쩌면 지금도 게임을 기획하고자 했던 기획지망생이었거나 지망생이고...
비록 프로그래밍한 게임은 아니지만, 오프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보드 게임을
제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1993년이니 벌써 18년전의 일이네요.
제가 처음 보드 게임을 만들면서 게임을 만드는 목적을
친구들과 함께 쉬는 시간에 놀 수 있는 거리를 찾고자함이었고,
삼국지2를 모방한 주사위를 이용한 게임이며,
지뢰찾기를 변형한 잠수함 찾기 게임이며 여러 가지 게임을 만들면서
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논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 지를 배웠습니다.
그 후 전공하고자 했던 것이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차질이 생겼고
결국은 전산쪽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온라인 게임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드는 게임을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숨쉬며 즐길 수 있다는 흥분감.
그렇게 저는 게임을 만들고자 발품을 팔기 시작했죠.
제가 처음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것이 2003년의 일입니다.
이미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라는 당시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3대 MMORPG라고 하는 것들이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많은 투자자들이 MMORPG의 기획자를 찾고 있었고,
저도 수많은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며 프리젠테이션도 하고 했었습니다만...
오늘날 게임들 중에 상업성과 함께 게임성까지 갖춘 게임이 있을까요?
물론 패키지 게임들 중에서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가지고 시리즈물을 내놓음으로써
상업적 성공까지 거머쥐는 게임성을 갖춘 게임들도 있습니다만,
MMORPG에서는 상업성과 게임성을 모두 갖춘 게임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인벤에는 리니지/아이온 등을 위시한 NC의 게임을 선호하는 유저분들도 계실테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과 같은 해외 게임을 선호하는 유저분들도 계실 겁니다.
분명 제가 MMORPG 중에서는 상업성과 게임성을 모두 갖춘 게임은 없다는 말에
좋아하는 게임들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으며, 게임성도 충분히 갖추었다고 말씀하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리니지를 필두로 한 우리 나라 게임들의 모습입니다.
캐릭터 모델과 배경 그래픽만 다를 뿐 다 거기서 거기인 시스템들입니다.
게임성이라함은 기존에 성공이 확인된 게임시스템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저들은 지난 시스템들로 충분히 게임을 즐겼기에
새로 나오는 게임들은 새로운 재미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하며,
그렇게 충족시켜 줌에 따라 새로운 게임은 비로소 게임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게임은 근 10여년간 새로운 시스템이라는 것을 전혀 선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새로운 게임성을 보여준다고 하나 사실 알고 보면 이미 다른 게임에서 보였던 시스템들 뿐이고,
단지 자신들이 기존의 게임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따른 "우리가 처음이다" 라는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최근, 아니 최근이라고 하기엔 오래전의 일이지만, 기획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에이카 온라인의 경우에도 해외의 대규모 RvR 게임 중 인기를 끌었던 게임조차도
해보기는 커녕 들어본 적도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게임성을 논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서비스 초기에도 분명히 밝혔듯이
타 게임들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잘 버무려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와우만의 컨텐츠라고 할만한 요소는 하나도 없고,
기존 게임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진입장벽을 낮춘 것' 외에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더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게임성이 풍부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은 온라인 게이머들이 식상한 컨텐츠 때문에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패키지로 다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재의 MMORPG들은 게임성이 없다" 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게임성이 없는 MMORPG들이 계속해서 나올 지도 모른다" 는 것입니다.
중국과 남미, 그리고 동남아의 온라인 게임 시장 성장으로 인해
전세계적인 MMORPG시장은 더욱 성장하겠으나, 제 생각에는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다시 하향세를 탈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이는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투자자들에 욕심에 의한 과도한 투자에 걸맞는
상업적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퇴출되거나,
혹은 획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시장 진입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보다 더 뛰어난 크리에이터들도
기획지망생의 길을 걷다가 현실을 직시하고 다들 다른 생업의 길로 떠나갔습니다.
정말 폐인처럼 PC방 알바를 하며, 문서들 속에 파묻혀서 게임 기획을 하던 그 시절.
제가 투자희망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이 게임 리니지랑 비슷한가요?"
이건 거짓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투자자들을 만났을 때는 물론 저런 말을 듣지 않았지만,
단지 투자할 곳이 필요하고 그 투자로 인해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는
게임에 전혀 무지했던 투자자들은 꼭 "이 게임 뮤랑 비슷한가요?" 등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의 입장 역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투자자들은 그 게임을 보고 적게는 몇 억에서 많게는 몇 십 억까지도 투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투자자들의 재력이 엄청나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의 금액이라면 꼭 성공해야한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성공이 확인된 시스템을 가져다가 쓰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나라 게임시장도 그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 게임시장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대성공 이후
기존의 개발 투자가 적었던 MMORPG 시장은 거액의 개발비를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는 못 미치더라도 그에 가까워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지요.
비록 지금은 인기가 없는 게임이 되었지만, 현재도 RvR의 바이블로 칭송받는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의 경우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오리지널 패키지의 경우 개발비가 한화로 약 15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엄청난 성공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매니아층만을 겨냥해도
충분히 개발비를 뽑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 당시에는 상업성보다는 게임성이 짙은 MMORPG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해외 게임들의 개발비는 어떤가요?
우리 나라만 게임 개발에 수백 억을 쓰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투자 비용 회수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포맷들은 아무리 참신하고 재미 있더라도 폐기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우리가 게임성을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