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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어제 글 둘러보면서 궁금한게- 조선

아이콘 개인주의
댓글: 6 개
조회: 742
2018-06-16 12:13:48


물론 조선이 노비 비율이 동시대 다른 나라보다 높았던건 사실이고, 결코 바람직했던 사실은 아니지.

그런데 자국민 오랑캐 취급 한다는건 뭘 말하는건지 궁금하네.

그리고 사농공상의 구분같은 사회적, 경제적 계급신분 구분은 딱히 조선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전근대 문명에서 찾을 수 있을텐데.



또, 사대정책이 그렇게 욕을 들어먹어야 하나?

어쨌든 개항 이전까지 동아시아의 기본적인 국제 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대관계였고, 조선의 기본 외교전략도 사대교린이었지.

사대는 조선 시대 뿐 아니라 고구려나 고려에서도 실시했어. '전쟁도 제대로 안한' 조선과 달리 수, 당, 요 등과 치고 받았던 그 나라들도 말이지.

주변의 강대국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건 당연한 외교 전략이고, 그것인 천자-제후 관계로 나타나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 굴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전부 패배주의 노예근성에 찌들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판단에 의해서 행동한 것이지.

그 쓰레기 같은 조선을 없앴다는 일본도 에도 막부가 쇄국하기 전까진 고대부터 중국 왕조에 칭신한 것으로 아는데.



물론 과도한 조공이 부담이 됐던 적도 있고, 임진왜란 이후 명에 대한 재조지은을 문제시 하는 시각도 상당하지만.

당시 명에 대한 외교적, 감정적 부채를 가지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임진왜란 참전은 명에 있어서도 상당한 부담이 됐으니까.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것처럼 조선인들이 명에 대한 재조지은을 가지는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

문제는 그것이 외교 전략의 실책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인데, 한마디로 망해가는 명을 끝까지 붙잡고 청과 대립하다 얻어 터졌다는 주장이지.

난 그렇게 안 보는데, 역사를 아는 우리가 보기에는 명청교체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병자호란 시기에도 명과 청의 국력은 명이 우세했고, 청군은 산해관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명의 경제 제재로 청은 상당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거든. 명이 멸망한 것은 이자성의 농민 반란 때문이고, 청군이 중원에 진입할 수 있었던건 이자성군에게 후방을 위협받은 오삼계가 산해관을 열어주었기 때문.

물론 당시의 명이 상당한 국력 쇠퇴를 겪고 있었으며 이자성의 난도 그 결과로 볼 수 있기에 명이 지고 청이 떠오르는 시기인게 당연한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를 사는 사람들이 그걸 예견하는것이 얼마나 가능했을까?


광해군은 마치 고려가 송과 금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했던 것처럼 명을 지지하면서도 후금(청)과도 등을 지지 않으려 했었고, 그걸 문제 삼은 인조 정권은 숭명배금을 외치면서 후금과 외교를 단절한게 문제가 됐지.

사실 홍타이지가 권좌에 오른 이상 광해군이 남아 있었어도 전쟁이 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긴 하지만, 인조가 여러가지 삽질을 하면서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남한산성에 갇혀 있다가 기어나온게 문제지, '청나라가 떠오를게 뻔한데 병신같이 명만 붙잡고 청에 대들었다' 이런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왜 그렇게들 조선을 싫어하는 애들이 많은지 모르겠네. 물론 깔 부분도 많지만 쓰레기라고 혐오할 정도는 아닌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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