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게이머, 아니 내 또래의 게이머라면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해봤지 않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딸을 열심히 키워 한 명의 어엿한 어른, 사람으로 키워내는 인생이 담긴 게임, 엔딩 한 번마다 눈물도 한 방울 흘리게 되던 게임, 그게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였다.
그리고 시리즈의 신작, 프린세스 메이커: 예언의 아이들이 드디어 얼리 액세스로 출시됐다. 기나긴 시간을 건너 새로운 딸을 마주할 순간이 온 것이다.
정말 순식간에, 무려 영상까지 찍으면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네 명의 딸을 키워냈다. 안타깝게도 두 명의 딸은 백수가 되었지만, 실패를 벗삼아 다음 딸들은 각자 다른 직업의 엔딩을 봤다.
이제 네 딸의 아버지이자 어머니로서 예언의 아이들의 얼리 액세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많이 부족할지언정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두근거림은 ‘있다’.
※ 얼리 액세스 버전의 공략 과정 및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비어 있는 ‘얼리 액세스’
일단 예언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확실히 해야 할 게 있다. 게임이 너무 많이 덜 만들어졌다. 아무리 얼리 액세스라지만, 이건 얼리 액세스보다는 데모에 가깝게 느껴진다.
정식 출시가 아닌 얼리 액세스 체험기인 만큼 본격적으로 뭔가를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게임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도 전체적으로 많은 것이 덜 만들어진 느낌이 크다. 뭐랄까, 거의 모든 콘텐츠가 기초 틀만 잡혀 있고, 미완성인 상태다.

가장 큰 아쉬움은 게임의 제일 중요한 뼈대이자 줄기이자 플레이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딸의 성장 시스템이 중간에 뚝 끊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진짜 뚝 끊어져 있다. 딸을 분명 8년 육성해야 엔딩을 보는 게 예언의 아이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뿌리이자 토대 시스템인데, 지금 당장 우리가 플레이하는 얼리 액세스 버전에서는 4년만 지나면 그냥 엔딩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를 제대로 경험할 수가 없다. 나름 착실하게 딸의 인생 계획을 세워 플레이에 돌입하지만, 그 계획이 딱 반밖에 이루어지지 않는 시점에 게임이 끝나버린다. 그리고 얼리 액세스라 그런지, 부모의 직업 선택이 안 되는 와중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고작 100원이다. 100원! 수업 한 주차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금액인 100원이 들어온다.

즉, 우리가 엔딩을 보게 되는 13살에는 아직 뭘 제대로 해보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다. 처음 두 번의 백수 엔딩 역시 어정쩡하게 아르바이트도, 아니 여기선 활동이다. 활동도 돌리고 수업도 돌리고 이러다 보니 안타깝게 맞이한 결과다.
나름 특정 직업군을 노리면서 능력치를 맞춰 스케줄을 돌렸으나, 고작 4년으로는 그야말로 턱도 없었달까. 아무래도 초반부엔 특정 활동과 수업을 반복하며 등급을 올리고, 후반부에는 그렇게 올린 등급으로 빠르게 능력치를 맞춰나가는 게 원활한 엔딩을 위한 플레이 방식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안타깝게도 초반 4년의 시간만이 주어진다.

어쨌든, 이렇게 가장 중요한 딸의 성장 과정이 반토막인 상태라, 성장과 엔딩 시스템에 대해서는 크게 지금 뭔가 이야기하는 건 어려울 듯하다.
사실 가장 아쉬운 점도 바로 여기다. 미완성 상태라도 일단 오래 기다려온 팬들에게 게임의 모습을 선보이고 싶었던 마음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의 토대, 이 게임의 핵심, 중심이 되는 ‘기본’ 시스템 자체가 아예 미완성된 상태로 등장해 버렸다.

이외에도 미완성된 부분은 너무나 많다. 하나하나 짚어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콘텐츠가 20~30% 정도만 열려 있다. 당장 매달 스케줄이 끝나고 갈 수 있는 마왕성, 그 안에서 접견할 수 있는 인물들도 아직 4명밖에 열려 있지 않고 마왕성이 포함된 외출 콘텐츠에도 아직 두 가지 콘텐츠가 막혀 있다. 스케줄 쪽에서도 화면 구현이 안 된 것들이 몇 개 있다.
1년에 한 번 참여할 수 있는 수확제 역시 4개 중 1개의 대회만 구현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구장창 요리 대회만 참여하게 된다. 하나만 더 있었더라도, 4명의 딸을 키우면서 이렇게까지 수확제가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던 프린세스 메이커 2의 무사 수행에 대응하는 콘텐츠인 탐험 역시 아직 1개 맵만 갈 수 있고, 공략 가능한 호감도 캐릭터 역시 해당 맵과 연결되어 있는 두 명뿐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아직 미구현 상태이다 보니, 지금 당장은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 자체가 너무 적다. 초반 한두 번만 플레이하고 나면, 모든 것들이 너무 반복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좀 더 다양한 이벤트와 콘텐츠를 경험해야 다양한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을 텐데,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콘텐츠가 정말 적어도 너무나 적다.


그래도 기본은 분명 ‘프린세스 메이커’
기본적으로 콘텐츠와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걸 제외하면, 일단 잡혀 있는 전체적인 틀 자체는 나쁘지 않다. 복잡하지 않은 UI를 비롯해 능력치와 기력에 따라 성공 확률이 달라지는 듯한 스케줄과 외출, 수확제, 수업이나 활동 중 발생하는 이벤트, 딸의 특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바캉스 등 우선 갖춰야 할 만한 틀은 모두 갖추고 있다.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를 단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떠오르는 추억의 시스템이 다수 포함돼 있달까.

가장 중요한 딸의 이미지를 비롯해 활동과 수업 등에서 보이는 도트 이미지, 아직 너무나 부족하지만 호감도를 쌓다 보면 확인할 수 있는 특별 일러스트, 엔딩 일러스트 등 시각적인 부분 역시 개인적으로는 충분하다 느껴졌다.
너무 과하게 레트로하거나, 과하게 현대적이지 않게 균형을 잘 잡아냈고, 손으로 그려낸 듯한 동화적인 분위기라 게임과도 참 잘 맞는 편이다.


활동이나 수업에서 마주하는 인물들 역시 매력적이다. 일러스트뿐만이 아니라, 개별적인 성격도 잘 살아 있다. 또한 인물들이 엮여서 중간중간 발생하는 이벤트도 꽤 잘 마련되어 있다.
비슷한 계열의 특정 수업들을 많이 들으면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능력치를 올려주기도 하고, 아르바이트 고용주와 학교 선생님이 아는 사이라며 부탁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각 수업과 활동마다 특별한 이벤트들이 다른 콘텐츠들에 비하면 좀 더 자주 발생했다.


반복 플레이를 좀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동일 대화를 넘길 수 있는 스킵 기능, 그리고 다음 플레이에 추가 능력을 제공하는 카드 시스템 등이다.
카드의 경우 새로운 엔딩을 볼 때 획득할 수 있는데, 이 카드들은 특정 활동의 수입을 늘려주거나, 성공률을 늘려주는 등 다양한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다. 플레이 시작 시점에 카드를 세 개 장착할 수 있다.

현재 얼리 액세스 버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호감도 공략이 가능했던 두 사람, 클리비아와 올리아가 아닌가 싶다. 아직 마왕성의 공략이 거의 대부분 막혀 있고, 다른 탐험 맵 등도 구현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스케줄을 제외하면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이 두 사람은 마치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마주하는 일러스트나 대사, 성격, 이벤트 등이 모두 흥미로운 편이었고, 나이에 따라 해당 캐릭터의 일러스트가 변화하는 것도 구현돼 있었다. 이야기를 잘 따라가며 호감도를 쌓다 보면 특별 이벤트와 일러스트도 등장했다.

다만, 공략 방식이 너무 단순하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 활동이나 수업, 탐험은 스케줄을 짜는 단계에서 미리 표시가 되기에, 그냥 꾸준히 따라다니며 대화만 나눠도 엔딩 시점에서 두 사람 모두 호감도 최대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게 탐험 필드에서 특정 지점을 찾아가는 건데, 이 역시 필드가 별로 크지 않다 보니 운이 좋으면 한 번에, 그게 아니더라도 두세 번 안에 어지간하면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치열하게 공략해서 그들의 호감을 얻어내는 데서 오는 그런 즐거움이 너무 적다. 그냥 이루어질 일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달까.

사실 이러한 ‘쉬운’ 부분은 당장 능력치와 스케줄에서도 볼 수 있다. 가장 큰 건, 활동과 수업에서 반대 능력치가 떨어지는 하강 시스템이 없다. 모든 수업과 활동은 관련 능력치를 상승시켜주기만 한다. 활동의 경우 능력치 상승폭이 초반에는 매우 적지만, 어느 정도 등급이 오르고 나면 꽤 많은 능력치가 상승하고, 신규로 상승하는 능력치도 생겨난다.
즉, 돈을 벌기 위해 활동을 하면서 특정 능력치를 포기해야 하는 그런 기회비용이 전혀 없다. 내가 공략하고 싶은 능력치를 올려주는 활동을 꾸준히 하면, 돈도 벌리고 능력치도 오르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초반부터 활동으로 벌리는 돈도 꽤 많다.
물론 이는 단점이라고 할 순 없다. 추후 후반부 플레이가 오픈되면 돈과 능력치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기에 수월하게 특정 능력치를 올려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다만 다양한 고민을 하며 딸을 키워가던 유저들에게는 조금 아쉽게 다가올 수 있을 듯하다.


예언의 아이들은 확실히 얼리 액세스라고 보기에 아쉬울 정도로 아직 많은 것들이 비어 있는 게임이다. 육성 시뮬레이션에서 육성 기간이 반밖에 되지 않는다니,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쉽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리즈의 특징은 살아 있다. 기본적인 플레이 스타일, 아트 스타일 등은 분명 ‘프린세스 메이커’의 그것이다. 분명 아, 4년밖에 못 키우는데, 아, 또 똑같은 이벤트인데, 아, 마왕성 가도 이제 만날 사람도 없는데, 더 예쁜 옷도 보고 싶은데,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플레이를 시작하게 되는 그 맛이 있다.

실제로 금요일 밤에 퇴근하고 네 명의 딸을 키운 뒤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벌써 세 명의 딸을 더 키워냈다. 사실 지금도 기사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딸을 만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쉬운데, 분명 부족한데, 다시 하고 싶다.
다만 예언의 아이들이 기존 시리즈 팬과 신규 유저까지 모두 제대로 잡고자 한다면, 게임의 개발 진척도를 올릴 필요가 있을 듯하다. 현재 얼리 액세스 버전은 정말 너무 많은 것들이 텅 비어 있다. ‘8년의 육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반밖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건 너무나 큰 단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