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RA] 세계 최대 게임 학회 '디그라' 한국지회, 첫 학술대회 개최

게임뉴스 | 김규만,이두현 기자 |



사단법인 국제디지털게임연구학회(DiGRA) 한국지회(이하, 디그라한국학회)는 금일(21일), 연세대학교 성암관에서 제1회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진행된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국제디지털게임연구학회, DiGRA는 디지털 게임과 관련된 학문적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국제 학술 단체다. 2003년 핀란드에서 설립되어, 현재 18개 지역의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게임 연구 단체이기도 하다. 디그라한국회는 지난 2024년 3월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초대 회장은 윤태진 연세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디그라한국학회는 게임 연구자, 학생, 업계 종사자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과 게임문화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일반 게이머 또한 입회 신청이 가능하다. 입회 신청 및 디스코드 서버 참여 등은 디그라한국학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참고 가능하다.




이날 진행된 제1회 정기 학술대회는 세 개의 세션과 라운드테이블, 키노트 발표 및 총회 등으로 구성됐다. 먼저, 기획 세션은 '디지털 게임의 정체성과 그 변화'라는 주제로, 그동안 발전하고 변화해 온 디지털 게임에 대해 돌아보고, 플레이어와 장르, NPC의 정체성과 그 변화에 대해 다루는 발표가 진행됐다.

가장 먼저 발표를 맡은 순천향대 이정엽 교수는 '게임적 게임의 등장과 그 정치적 함의'라는 주제로, 자신이 출간한 저서 인디 게임(2015)이후 10년이 지난 현재 변화한 인디 게임 시장의 모습에 대한 연구를 전했다. 자기 표현과 대중성의 문제 사이에서, 이정엽 교수는 인디 게임, 개인적 게임의 정체성 또한 담론을 통해 새롭게 정의되고, 그 정체성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Games and Life Lab 도영임 교수, 채지훈 연구원(석사과정)은 게임 NPC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NPC(Non-Player Character)는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해 존재하며, 스크립트 기반 반응에 한정됐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플레이어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며 게임의 경험을 조형하는 역할을 한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은 NPC의 역할 확장을 앞당기고 있으며, 이에 따라 NPC의 정체성이 변화할 가능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발표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아름(서울대) 발표자는 서브컬쳐 향유자의 핵심 매체가 수집형 게임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주효했던 내러티브 방법론은 무엇이었으며, 또 이를 향유하는 주체성에 대한 이해를 세분화한 과정과 결과를 공유했다. 플레이어의 역할이 '프로듀서'나 이와 유사한 성격으로 대변되는 것은 서브컬쳐 문화 향유자의 주체성의 변화 뿐 아니라, 엔딩이 없는 게임의 서사적 구조에 따라 나타나게 된 현상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미몽(연세대) 발표자는 추리, 호러 게임 장르를 중심으로 비주얼 노벨 게임의 장르적 정체성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텍스트 기반 서사와 시청각적 요소가 결합된 비주얼 노벨은 다른 게임보다 관람에 더 적합한 장르로, 이러한 '보기'경험은 게임 방송을 통한 낭독극 형태로도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또한, 시청자들의 집단적 선택이나 토론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 또한 창출될 가능성이 있다.

조원준(청강대)와 박민수(한기대)발표자는 UEFN(언리얼 에디터 for 포트나이트)과 로블록스가 이끄는 디지털 게임 플랫폼의 정체성 전환, 그리고 문화적 확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두 플랫폼을 통해 플레이어는 창작자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이고 있으며, '게임을 게임처럼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진화가 이러한 정체성 이동의 촉매재가 되어주고 있다.

이들 발표자에 따르면 이러한 정체성 이동은 게임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물론, 이용자의 여론이 게임 정체성 재구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발표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추세는 확실하며, 단순 트렌드를 넘어 게임 문화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일반 세션은 수용자에서 행위자로 변화하고 있는 '플레이어'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진행됐다.

서울대학교 이상혁 교수는 욕설(혐오 발언)은 언어 특성의 문제와 탐지 단위의 문제 등 기술적인 한계가 분명한데, 이를 LLM을 활용해 보완할 수 있을지 테스트한 결과를 공유했다. 결론적으로 LLM을 활용한 욕설 탐지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정확도와 효과적으로 작동할 여지는 있지만, 욕설 탐지는 탐지된 욕설을 처리하는 과정에 포함된 일부일 뿐이다. 시간 복잡도가 높지 않거나, 명시적 욕설이 없이 모욕적인 채팅도 검출할 필요가 있는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창석(경희대)는 게임을 하며 딴짓(멀티태스킹)을 하는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미디어에 있어 '딴짓'은 최근 학술주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게임 측면에서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발표자는 연구를 통해 게임을 하면서 하는 멀티태스킹은 그 맥락이 중요하며, 몰입이 좋아야 이용자의 만족이 높다는 기존 연구와 달리 인지적, 정서적 만족도를 높이고 지속적인 사용 의도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실증한 사례라고 밝혔다.

전려화(경희대)는 '디지털 시대 e스포츠 브랜드 연상 네트워크의 구조적 탐구'라는 주제로 e스포츠 산업에서의 브랜드 연상(Brand Asscociation)의 중요성을 바라봤다. 특정 브랜드 연상이 소비자 인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e스포츠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연우(연세대), 박솔잎(알토대) 는 '게이머-소비자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2020년 이후 '트럭 시위'로 대변되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례를 조명하고, 이러한 운동의 범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했다. 이들은 소비자 운동의 원인으로 서비스형 게임의 운영 문제, 가상 자산에 대한 가치변동이 핵심적이라고 바라봤지만, 더 많은 돈을 지불한 게이머의 손을 들어주는 기업 운영 등은 게이머 집단 분리와 차별 심화를 야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전했다.




두 번째 일반 세션은 '게임의 행위성과 젠더 연구'라는 주제로 논의가 이어졌다.

박다흰(독립 연구자) 발표자는 요한 하위징아가 제시한 '매직 서클(현실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활동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음)'이라는 개념을 들어, 게임 속에서 다양한 괴롭힘 문제에 직면하는 여성 게이머에게는 '매직 서클'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다.

누구나 안전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이상적인 환경이지만, 플레이어가 '여성'이라는 것이 알려질 경우 왜곡된 현실의 규범(다수에 따라 정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일)이 게임에 발현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여성 게이머 대다수는 자신의 성별을 숨기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대응은 여성 게이머들이 젠더 규범을 체화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여성 게이머가 매직 서클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호규현(서강대) 발표자는 각종 게임에서 나타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사례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사상 검증의 시발점은 게임 문화 등 복합적인 토대에서 출발했으며, 이러한 혐오는 사상검증 당사자, 게임 이용자, 기업 및 문화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하며, 앞으로도 해당 분야에 대한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동수(연세대) 발표자는 '게임의 행위성과 다큐멘터리'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자캐커뮤(자캐 커뮤니티)와 플레이어를 조명한 작품 에스퍼의 빛(2024)을 사례로 들며 게임과 영상물의 경계에 선 새로운 경험을 소개했다.

김광희(경기 진말초) 발표자는 행위성 중심의 게임 교육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게임을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그는 모뉴먼트 밸리를 활용해 행위성 교육을 진행했던 사례를 토대로, 그는 서사, 매커니즘, 설정, 세계관 등 게임을 구성하는 일련의 요소들이 행위성에 대한 교육을 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소개했다.




세션이 모두 마무리되고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서는 '넥슨의 게임 다큐멘터로 살펴보는 온라인 게임의 아이덴티티'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넥슨의 온라인 게임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박윤진 영화감독은 이날 "온라인 게임의 경우 계속 업데이트되어 예전이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며, 과거의 온라인게임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2000년대 초반, 온라인 게임 성행 당시 플레이어를 조망한 연구나 기록이 적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게임 산업을 조망할 수 있는 연구 및 사료가 부족한 현 상황에 대한 학계의 의견을 묻는 패널 질문에 경희대학교 유창석 교수는 게임 연구 초창기에는 기존 전문 영역에서 새로운 것(게임)을 응용하려는 형식의 접근이 주류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린 시절부터 게임을 접해 온 연구자들이 증가했으며, 연구 주제 또한 산업이나 구조적 특성이 아닌, 이용자(플레이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관련 논문을 받아주는 리뷰 프로세스 및 학계의 전반적인 반응 또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추후 플레이어 관점의 연구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내 게임 산업의 BM이 가진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창석 교수는 "현재 이용자들이 느끼는 거부감의 원인은 한국 게임 개발사들이 연구에 소홀한 탓"이라며, 중국의 경우 산업 특성상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혁신적인 BM들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다만, 지금이라도 연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최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마음도 누그러들 가능성이 있다고도 전했다.

게임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사회적 논의 속에 앞으로 게임이 건강하게 나아가기 위한 조언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 유창석 교수는 그간 많은 연구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게임이 아니라 사회가 새로운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언급했다. 유창석 교수에 따르면, 최근 학자들의 결론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나눠 이야기하는 순간, 그 무엇도 역기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순기능, 역기능이) 기존 미디어 체제를 지키고 싶은 분들이 의도한 프레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러한 프레임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 공통적으로 (게임의)특성을 살펴보고 해당 프레임을 벗어나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현재 학자들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 윤태진 DiGRA 한국학회 학회장

이번 학술대회는 DiGRA 한국학회의 학회장을 맡은 윤태진 교수의 키노트 강연으로 마무리되었다. '호모 루덴스 다시 불러내기: 게임 연구는 인간 연구를 지향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키노트 발표를 진행한 윤태진 교수는 인간 본연의 발현을 위한 디지털 게임의 정체성, 인간 본성의 철학적/심리학적 고찰 등을 바탕으로 게임을 연구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게임을 연구하는 것은 곧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 연구를 통해 게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디그라한국학회는 이번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국제 게임 연구자 교류 및 협력 연구 진행, 디그라 본부 및 타 지회와의 공동 학술사업 진행은 물론, 게임 학술 연구 및 학문 후속 세대 지원 등에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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