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나이 서른여덟의 나 '계약x연애'로 설렘 회복?

게임소개 | 정재훈 기자 | 댓글: 6개 |



"소개팅에 나온 상대는, 내 고백을 거절했던 여자애였다.

그렇게 된 이야기다. '다락방친구들'이 개발하고, 스토브를 통해 서비스되는 '계약x연애'. 대충 학교 다니다 고백하고 차였는데, 어찌저찌하다 그 상대와 계약서를 쓰고 가장 연애를 하게 된다는, 말 그대로 드라마 각본같은 내용의 연애 시뮬레이션이다.

연애 시뮬레이션이니만큼, 해당 장르의 법칙도 충실히 따른다. 미연시 국룰답게 코 위로는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 주인공이 좋아하는 히로인과 주인공을 좋아하는 히로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선택지를 통해 풀어가는 서사와 결말까지. 이렇다 할 패러미터 시스템은 없기에 비주얼 노벨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연애 게임이다. 이런 꿀맛 게임을 게임 웹진이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문제는, 이걸 내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벤 취재팀의 기자들은 하나같이 미혼이다. 심지어 편집장님까지 미혼이다. 나만 빼고. 그럼에도 누구도 이 게임을 선뜻 손에 잡지 않았다. 출장이나 밀린 기사로 바쁜 기자는 그렇다 쳐도, "제가 연애를 잘 못해서"나 "어떻게 하는지 모름"은 뭔지 모르겠다. 격겜하는 사람들은 다 사람 팰 줄 알아서 하나?

그렇게 다들 '노노제겜'을 선언하자, 남은 건 내가 되었다. 전부 다 미혼인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결혼한 사람이 나라서. 일종의 경력자 특채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게임 설치 완료. '계약X연애'는 15세 이용가인 일반판과 청소년 이용불가인 '시크릿 플러스'가 존재한다. 당당하게 시크릿 플러스를 켰다. 내 나이 서른 여덟. 성인이 두 번 될 나이를 살아왔다.



▲ 낼 모레 마흔인데 무슨 검열이야


※ 본 기사에는 극초반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사실 봐도 큰 문제 없습니다.

1타 강사가 시원하게 말아주는 실전 연애 백서


게임을 시작하면, 일단 차인다. 놀랍게도 시작부터 차이고 시작하는 게임이다. 0승 1패로 시작하는 연애 게임이 바로 '계약x연애'다. 여튼 그렇게 고백했다가 차이는데, 여주의 멘트가 심상치 않다.



▲ 바빠서 연애할 생각 없음 = X, 안 바빠도 '너랑' 연애할 생각은 없음 O

아직 사랑의 맛을 보지 못한 친구들은 잘 알아두자. 한 번 보고 헤어질 사이면 모를까, 학교나 강의 등에서 계속 얼굴을 보게 되는 경우 가장 흔하게 듣는 거절 멘트 중 하나다. "나는 지금 바쁘니까 연애 못 함"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하루 3잡을 뛰는 극한 가장도 애가 있고, 2시간씩 쪽잠을 자는 전성기 연예인들도 몰래몰래 연애를 한다. 그냥 너라서 안 되는 거다. 새봄 씨, 무서운 사람이네?

그렇게 차이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주인공의 후배가 나타나 달래준다. 물론, 현실이었다면 나와 비슷하게 생긴 친구가 나타나 'ㅋㅋㅋ X신~' 하며 소주나 먹으러 가자 하겠지만, 이건 게임이기에 여주인공 못지 않은 비주얼의 후배가 나타나 주인공을 위로한다.



▲ 현실이었으면 십중팔구 속으로 고소해 하고 있다

여기서도 조심해야 하는 사안이 있다. 현실에서도 가끔 이렇게 사랑에 실패한 상황에 갑자기 인연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절대 성급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접근은 십중팔구 '나 빼고 둘이 시시덕대는게 꼴보기 싫었는데 마침 잘 됐다' 하고 오는 경우니까. 아주 가끔 진짜인 경우가 있는데, 이 때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마인드로 시작된 연애는 결코 상대를 꿩으로 바꿔 주지 않는다. 사랑의 세계는 냉혹한 정글이니까. 내친 김에 시작해서 잘 되는 연애를 본 적이 없다.

여튼 그렇게 연애에 실패한 주인공은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알바로 시간을 보내게 되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아버지로부터 여자 소개 한 번 받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사실 이 대목에서 살짝 위화감을 느끼긴 했다. 고백하고 차이자마자 다가오는 후배와 여사친도 수상한데 아버지까지? 이 정도면 온 세상이 연애 좀 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 아닌가. 하여튼 명목 상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 딸내미와 한 번 만나 보라는 말에 나선 주인공, 무서운 새봄 씨를 다시 만난다.



▲ 집안에 손이 귀한가...?



▲ 바쁘다면서 한 달 만에 여유로워진 새봄 The Terrifying

알고 보니 무서운 새봄 씨는 원래 '예린'이라는 어릴 적 친구가 개명한 버전이었고, 한 달 전엔 분명 바빠서 연애를 할 여건이 아니었지만(본인 주장에 따르면), 지금은 연애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 주인공과 '새봄 The Dread'는 각자의 니즈에 맞춰 3개월 간 계약을 맺고 각자의 연인인 척 하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마지막엔 주인공이 차는 거로, 그리고 큰 거 세 장에 인센티브 지급까지 포함한 쿨거래로 말이다.



▲ 4대 보험도 되면 평생직장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위태로운 가짜 연애 계약이 효력을 발휘하고, 여러 히로인들 사이에서 공길이마냥 외줄을 타야 하는 주인공의 애정 서커스가 시작된다. 그 이후부터는 게이머의 몫.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주인공의 곁에 있는 인물은 당연히 달라진다. 무서운 새봄 씨가 안 무서운 새봄 씨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선배에서 후배 위하는 선배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거다.



▲ 꿀팁 하나. 고개를 모로 꺾어 줘야 코가 부딪히지 않는다. 괜히 할리우드 배우들이 목을 모로 꺾는 게 아니다.



▲ 올려도 되나 고민하긴 했는데, 더 심한 짤도 많으니 뭐 이 정도야.


나에게 설렘은 살인이다


'계약x연애'는 분류 상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사실 시뮬레이션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과거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냈던 일본의 연애 시뮬레이션들이 패러미터 조정을 통해 이벤트 조건을 만들고, 히로인 하나하나를 '공략'해 나가는 과정에 가까웠다면, '계약x연애'는 그보다 인물들의 서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무서운 새봄 씨가 어쩌다 자비 지출해가며 본인에게 불공정한 계약을 맺게 되는지, 그리고 후배인 유영은 왜 주인공을 좋아하게 된 건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이 게임의 핵심이다.



▲ 문 안 열었다... 그냥 클릭만 했어

3개월 간 이어지는 비밀 연애(가짜)의 과정에서 이를 진짜 연애로 바꿔낼 지, 혹은 깔끔하게 들키지 않고 계약 기간을 채운 후 내 사랑을 찾아 떠날지는 주인공의 선택. 어차피 비주얼 노벨은 루트 분기에 따른 다회차 플레이가 당연한 장르이기에 결국 다 보게 되긴 하겠지만, 어릴 적 친구였다가 나이 들어서는 이미 한 번 차였다는 과거, 그리고 계약으로 맺어진 위장 연애라는 기묘한 배경이 만들어내는 상황의 특수성이 각 루트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 현실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착각하지 말자. 그냥 주변을 좀 더 살피라는 충고다

아직 루트는 둘 밖에 없지만, 각 인물들의 감정선 연출이나 대사는 꽤 훌륭하게 뽑혔으며, DLC로 두 히로인이 더 추가될 예정이기에 가격 대비 분량 또한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의 대사에 VA가 들어가 있기에 그냥 오토 모드로 놓고 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한 가지 궁금했던 건 이 '풋풋함'이 사실상 사멸해 버린 내가 이 게임을 하면서 설렘을 느낄 수 있는지였는데, 아쉽게도 설렘까지 와 닿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결혼을 하고도 수 년이 지나 세상의 쓰고 단 맛을 모두 맛본 아저씨니까. 세상엔 설렘을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 설레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이도 있다. 물론 나는 첫 번째다. 절대 설렜다고 하면 후환이 두렵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아직 배우자가 없는 우리 팀원들이라면 게임을 하며 가슴이 몇 번은 술렁 하지 않을까?



▲ 윤홍만 기자였다면 여기서 벅찬 감동을 느꼈을지도

하지만, 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그리고 설렘을 허락 받은 상황이었다면 분명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거다. 연애라는 게 두 사람의 밀고 당기기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기묘한 상황과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해프닝과 그걸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의 교류. 오래 된 커플에게 썰 좀 풀어 달라 하면 '가만있어보자' 하고 빌드업을 시작하는 이유가 다 있다. 단순히 두 사람이 존재해서가 아닌, 함께 해 온 이야기가 있기에 지금이 있는 거니까. '계약x연애'가 그렇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휘어지고 튕겨져 돌아오는 연애 시뮬레이션 '계약x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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