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 슈터는 재밌다.
웬만하면 통용되는 정의에 가깝다. 게임으로서 기본을 갖춰야 하는 전제 조건이 따라붙고, 그 외에도 각종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겠지만, 협동 슈터는 웬만하면 재미있다. 원래 친구랑 같이 하면 뭐든 재미있는 법이니까.
때문에, 협동 슈터는 참 많이도 나왔다. '레프트4데드'로 시작한 좀비 배경 협동 슈터, '페이데이'부터 이어진 하이스트 슈터, 그리고 조금 독특한 설정의 '딥 락 갤럭틱'이나 '헬다이버스'까지. 조금씩 룰과 설정이 다르고, 건플레이 감각과 게임 진행은 다를지언정, 장르적 측면에서 협동 슈터는 대부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와중, '10 챔버스'의 'GTFO'는 일종의 이단아였다. 대부분의 협동 슈터는 목적지에 도달하거나, 특정 목표를 완수해야 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재미 비중의 큰 부분을 '몰려오는 적을 분쇄'하는 과정이 차지했다.
반면, 'GTFO'는 비중이 반대다. 적들이 워낙 강하게 몰아치고, 공격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에 GTFO의 플레이어들은 굉장히 복잡하게 꼬인 미션을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고 탈출해야 승리할 수 있다. 몰려드는 적을 때려잡는 재미보단, 손발을 맞춰가며 빈틈없이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얻는 카타르시스. 이것이 개발사인 '10 챔버스'가 추구하는 게임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철학이 그대로 녹아든 그들의 신작인 '덴 오브 울브즈'에 대한 미디어 프리뷰가, 3월 중순 도쿄에서 진행되었다.
'하이스트'의 재해석
금괴가 아닌, 뇌 속 기억을 훔쳐라
'덴 오브 울브즈'의 시대적 배경은 AI가 패권을 장악한 근미래다. 인간의 삶이 벼랑 끝에 몰린 상황. 자본을 내세운 기업들이 우후죽순 들어와 구역을 나누면서 '사이버펑크 2077'의 '나이트 시티'와 비슷한 모양새를 띈 태평양 한복판의 도시 '미드웨이'를 배경으로, 게이머는 각 기업의 의뢰를 받고 온갖 불법적인 일을 수행하는 해결사가 된다.

주된 작업은 '정보의 탈취'.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인터넷 보안이 AI에 의해 손쉽게 파훼되어 버리면서 정보 저장 체제가 더 이상 디지털 디스크가 아닌, 인간의 뇌를 활용한 바이오 디스크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제 정보를 훔치기 위해 하드 디스크를 뜯어 도망치는 것이 아닌, 생체 디스크 역할을 하는 인간의 뇌 속으로 진입해야 한다.
이 과정은 게임 내에서 '다이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후술할 온갖 과정을 수행하다 보면 마치 호박 속에 갇힌 모기마냥 구속된 인간 디스크를 볼 수 있는데, 플레이어들은 이 디스크의 심리 속으로 뛰어들어 머릿속을 헤집으며 정보를 찾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덴 오브 울브즈'만의 독특한 게임 경험이 만들어진다.
'다이브'를 통해 진입한 뇌 속 세계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시연에서는 다이브와 동시에 게임 장르가 플랫포머 퍼즐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개발진은 그 외에도 다양한 장르나 독특한 플레이를 융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마치 영화 '인셉션'처럼, 기저 심리에 침입해 기억을 빼내는 과정을 게임 세계관에 맞춰 연출해 놓은 셈이다.
이 '다이브'는 '덴 오브 울브즈'라는 게임의 킥이자, 정체성이다. 개발사의 방점이라 할 수 있는 빡빡한 게임 플레이 속에서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하며, 하이스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다이브'의 존재만으로 '덴 오브 울브즈'는 '생각했던 대로의 게임'을 넘어 '생각 이상의 경험을 주는 게임'이 된다.

'준비'부터 '돌입'까지
단판이 아닌, 미션으로 이어지는 서사
하지만, 다이브의 참신한 활약 이면에 전체적인 게임 플레이는 10 챔버스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GTFO'는 숙련된 유저끼리 파티를 구성해도 의사소통이 꼬이거나 불운이 터지면 클리어에 난항을 겪을 정도로 치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했는데, 이번 작품 또한 이 기조는 그대로 들고 간다.
각 미션의 종장은 말한 대로 '하이스트'로 불린다. 그리고, 그에 앞서 플레이어는 몇 차례에 걸친 '프렙 미션', 즉 준비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 준비 단계는 선택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 프렙 미션을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금고를 돌파하는 '스파이더 드릴'을 추가로 가져가거나, 방벽의 보안을 저단계로 낮추는 등, 단순 보상 차원을 넘어 하이스트의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플레이어 파티의 숙련도에 따라 프렙 미션을 정하고, 하이스트의 완수까지 이어지는 모든 과정은 한 편의 범죄 액션물처럼 막힘없이 이어지며, GTFO가 추구하던 '완수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기존에 없던 재미를 끼워넣는 수단이 '다이브'라면, 프렙 미션에서 하이스트로 이어지는 뼈대 구조는 개발진이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을 더 극대화시키는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역시나 높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한다. 시연에서는 실제 전지 크기에 인쇄된 지도와 마커를 두고 작전을 짠 후 게임에 돌입하고서야 클리어가 가능했는데, 사실 이 부분은 다소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불특정 다수와 함께 게임을 진행하게 될 온라인 플레이에서도 이와 같은 심도 깊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덴 오브 울브즈'의 게임 경험은 그간 출시된 다양한 코옵 슈터 중에서도 단언컨대 상위에 해당하는 즐거움을 준다. 가젯 설정과 작전 수립, 프렙 미션과 건플레이, 그리고 피날레가 되는 다이브까지 모든 과정이 말이다.
'코어 플레이'는 좋다. 나머지는?
아직 다듬기가 필요한 건플레이
또 다른 게임의 핵심 포인트인 '건플레이'는 아직 의문이 남아 있다. 시연 빌드의 건플레이 완성도는 후한 말로도 좋다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적들의 시인성부터 총기의 사용감, 피격이나 타격에 대한 인지 등 여러 면에서 아직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개발진은 아직 게임이 풀 프로덕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주요 개발 작업이 얼추 끝나 다듬어가는 과정이 아닌, 아직 게임의 핵심을 왕성히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즉, 결코 시연 빌드의 그것이 최종판과 같다 할 수 없으며, 아직 개선의 여지가 무척 많이 남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큰 문제로 여겨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일말의 불안함이 존재하는 이유는, 과거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다수의 작품들이 개선에 대한 공수표를 남발했던 까닭일 터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다를 것이다'라는 말은 비교적 개발 중인 빌드를 플레이할 일이 잦은 게임 기자들이 무척 자주 듣는 멘트인데, 실제로 다른 경우는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시연에서 드러난 문제를 그대로 들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심한 경우 시연 빌드에서는 없었던 문제마저 생기기도 한다. 다만, '덴 오브 울브즈'는 하이스트의 종장까지 플레이가 가능한 수준은 만족하고 있으며, 드러난 아쉬움들도 결정적인 문제라기보다 조금 더 다듬어지면 좋겠다는 정도의 감상을 남길 뿐이니 상황은 희망적으로 여겨진다. 유니티6 엔진의 레퍼런스로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인 만큼, 완성도와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도 분명 높을 테니 말이다.

'GTFO'보다는 분명 편하다
하지만 쉽다고는 안 했다
종합하자면, '덴 오브 울브즈'는 하드코어 협동 슈터를 추구하는 10 챔버스의 철학이 유지된, 정말 그들다운 후속작이다. 적들의 존재가 하나하나 가볍지 않으며, 수없이 쏟아지는 적을 격멸하며 얻는 말초적 재미보다는 치밀한 커뮤니케이션 끝에 복잡한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겪을 밀도 높은 카타르시스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전작인 GTFO보다는 분명 더 편하다. 여전히 비참한 세계관과 빛이라곤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듯한 테마를 지니고 있지만, 호러 태그를 달 정도로 어둑하고 절망적인 설정이었던 GTFO와는 달리 한 편의 범죄 활극을 경험하는 듯한 게임 플레이를 지향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게임플레이보다 너무 어두운 배경이 GTFO의 장벽으로 느꼈던 입장에서 분명 '덴 오브 울브즈'는 보다 편하다.

프렙 미션에서 하이스트, 다이브로 이어지는 콘텐츠 구조는 훌륭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전체 게임 플레이에서 견고하게 작동하는지는 얼리 억세스 이후, 정식 출시 사양을 보아야겠지만, 시연 빌드에서는 이들이 어떤 의도를 지니고 게임을 만들었으며, 어떤 재미 구조를 추구하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아직 개발이 많이 남은 만큼, 조금 더 두고 볼 여지는 남았다. 충분히 '찜'은 할 수 있겠지만, 알다시피 모든 찜 목록이 실구매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다음 기회에서 더 나은 모습을, 여전히 훌륭한 게임 플레이를 보여 준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그 즈음에 이르면, '10 챔버스'라는 이름이 매니아층을 넘어 다수의 대중 게이머들에게 각인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