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K의 '마피아' 시리즈도 그 구도를 충실히 따르던 작품이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마피아부터 시작해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기를 무대로 한 '마피아2', 케네디 대통령 암살 등 드라마틱한 사건이 많았던 1960년대와 그 이후를 소재로 한 '마피아3'로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마피아의 모습을 그려내는 장르의 전통을 따라갔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픈월드로의 변화를 3에서 잠시 꾀하긴 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해 그 뒤로는 리마스터인 데피티니티브 에디션만 나오곤 했다.
그 뒤로 약 9년이 지난 8일, 2K는 '마피아: 올드 컨트리'로 다시금 마피아의 이야기를 꺼내왔다. 이번에는 미국의 대도시가 배경이 아닌, 마피아의 기원인 시칠리아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5. 8. 8
리뷰판: 사전 리뷰 빌드 버전개발사: 행거13
서비스: 2K
플랫폼: PC, PS5, XSX|S
플레이: PC
밀도 있게 흘러가는 클래식
알고도 맛난 의리와 로맨스, 항쟁의 레퍼토리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마피아' 1편으로부터 약 30년 전, 1905년의 시칠리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엔조는 아버지의 노름빚 때문에 스파다로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유황광산에 팔려온 청년으로, 언젠가 친구와 함께 광산에서 도망쳐서 미국으로 건너가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지진으로 광산 일부가 매몰되고, 같이 조사하러 나갔던 친구도 그 잔해에 묻혀버리고 만다. 이에 좌절할 틈도 없이 엔조는 혼란을 틈타 탈출을 시도, 어쩌다 보니 토리시의 구역까지 넘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스파다로의 수하들에게 붙잡힐 뻔했던 엔조는 스파다로의 수하들을 쫓아내러 온 돈 토리시의 눈에 들어 잡일꾼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서 '마피아: 올드 컨트리'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까지의 전개를 듣는 순간, 촉이 좋은 유저라면 초반부의 대강의 이야기 흐름은 짐작했을 것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주인공이 조직에서 착실히 공을 세우면서 신임을 얻고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는 극히 정통파적인 구성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의 행보가 비범하지 않은 것 역시 당연지사다. 처음부터 조직의 후계자로 꼽히는 망나니 조카와 보스의 딸이 눈길을 주고 있고, 보스의 신임을 받고 있는 간부가 멘토로 나서는 등 어떻게 보면 상상한 범주 내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러한 구성을 두고 지난 몇 년 동안 세간에서 '클리셰'를 언급하면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많이 나와서 뻔한 구성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게 그만큼 검증된 위력을 보여주기에 많이들 채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토리가 호평을 받았던 게임 중에서 유저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반전이나 암시, 복선으로 깜짝 놀라게 한 것도 있지만 검증된 구성을 탄탄한 연출과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로 아는 맛을 차근차근 제시한 게임도 많았다.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그 중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토리시와 스파다로라는 두 세력의 대립과 항쟁, 그 사이에서 활약하는 밑바닥부터 올라온 주인공, 그리고 그와 보스의 딸 사이의 이루어지기 어려운 로맨스까지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구성들이 꽉꽉 눌러담겨 있다.


점차 '오메르타', 즉 마피아 사이의 침묵의 계율조차도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항쟁은 점점 격화되는 상황. 조직에 대한 의리와 사랑 사이에 고민하는 주인공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또 그들에게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내러티브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마 이전에 마피아 시리즈를 했던 플레이어라면, 본편에 등장했던 조직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도 있으니 더욱 뜻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배경 지식 없이도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클래식한 마피아물로써 검증된 내러티브를 밀도 있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즐기는 것에 부담은 없다. 앞서 '패밀리'라는 영어를 '가문'이라고 번역한 것이 좀 걸렸을 텐데, 이 작품이 그 지역의 유력 가문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자경단부터 시작해 범죄집단으로 나아간 '마피아'의 근본을 보여주다 보니 실제로 한국어 번역이 그렇게 적용되어 있었다. 그 번역이 처음에는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신분의 차이나 고전적인 의리와 명예 같은 것이 자주 언급되는 초반부 이야기에서는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러다가 점차 범죄쪽으로 기울면서 우리가 아는 '패밀리'처럼 바뀌는 상황에서도 '가문'이라 지칭하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는 부분도 이 작품을 감상할 때 묘미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섬세한 그래픽과 손맛 있는 총격전
게임을 넘어 직접 가보고 싶어지는 시칠리아

이렇듯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오픈월드였던 마피아3와 달리, 스토리 중심의 일자형 구조로 밀도를 높이는 선택을 했다. 마피아3의 오픈월드가 밀도도 낮고 엉성했던 부분이 있던 만큼, 이 선택 자체는 옳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피아: 올드 컨트리'가 이번에 도시가 아닌 시칠리아 그리고 무법자들을 막아주는 자경단부터 시작했던 마피아의 기원을 다룬 만큼, 오히려 오픈월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만큼 한 1시간 정도의 프롤로그 그리고 극초반부가 끝난 뒤에 유저가 접하게 되는 시칠리아의 풍경은, 당장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고대 유적과 화산 그리고 드넓은 포도밭이 자리잡은 지중해의 섬,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조합을 '마피아: 올드 컨트리'에서는 섬세한 광원 표현과 디테일로 눈길을 사로잡는 광경을 빚어냈다.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조직 간의 항쟁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구도나 연출만 그럴싸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마피아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가서 총격전을 벌이는 것 같은 손맛이 있었다. 그래픽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일반 2채널 스피커나 헤드셋부터 홈씨어터 사양까지 폭넓게 옵션을 준비할 만큼 신경을 썼고, 그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몰입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내와 실외에서 사운드나 울림이 다른 점도 디테일하게 구현하면서 눈도 귀도 즐거운 경험이 완성됐다.
물론 여기에는 총격전 자체의 기본기도 준수한 것이 한몫을 했다. 마피아 시리즈가 으레 그랬듯, '마피아: 올드 컨트리'도 빠른 에임과 반응속도로 적의 헤드를 따는 현대 TPS류가 아닌, 엄폐와 정조준 위주의 고전적인 아케이드식 슈팅이 기반이었다. 그래서 웅크리면서 침착하게 전황을 보면서 적이 정조준하기 전에 먼저 조준해서 제압하는 서부영화 같은 총격전의 묘미를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 토리시 영역을 침범한 강도단을 소탕할 때는 서부극을 보는 듯한 구도가 연출됐고, 이런 미션이 좀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느껴졌다.



다만 행정력이 미처 닿지 않는 광활한 서부가 아닌, 시칠리아 섬을 무대로 하는 만큼 그런 현실적인 제약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마피아' 시리즈는 그런 총격전 말고도 경찰이나 다른 조직 몰래 잠입해서 공작을 벌이는 구도도 많은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조직 간의 싸움에서 '명분'이 없으면 압도적으로 불리하니, 꼬리 밟히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나서야 하는 것이 주인공의 입장이다. 그래서 초반 잠입 미션은 조금 답답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주인공이 온갖 부적과 미국에서 건너온 최신 총기까지 갖춘 인간병기(?)가 되면서 '들켜도 다 죽이면 암살'이라는 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다. 그때는 통상 실내에서 자주 싸우는데, 엄폐물 사이에 숨어 살금살금 샷건을 먹이러 오는 적을 역으로 샷건으로 보내버렸을 때의 쾌감이 짜릿한 편이다.
물론, 마피아 시리즈가 옛날부터 그랬듯 근접 전투는 그리 기대하기 힘들다. 심지어 이번에는 나이프로만 싸울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구도에서 근접 전투는 손맛이 상당히 떨어진다. 나이프를 휘두르는 동안 적은 개머리판 같은 걸로 더 긴 리치에서 두들겨대니, 맞추기도 힘들다. 그래서 근접전 특화 나이프는 종종 적을 제압해서 확실하게 킬을 낼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했지만, 대체로 다수의 적들이 견제 사격을 하며 들어오기 때문에 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근접전의 아쉬움은 중간중간 나이프로 벌이는 결투가 어느 정도 상쇄하기는 했다. 일반 베기나 찌르기에 패링, 강타의 물고 물리는 상성과 복싱을 방불케 하는 현란한 스텝의 회피는 나이프 파이팅이라는 소재의 재미를 확실하게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 또한 메인 스토리에서 싸우는 것 말고도 오픈월드 서브퀘스트에서 다양한 도전자와 한 판 더 붙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다.
게다가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거리를 질주할 수 있는 경마와 레이싱, 그리고 추격전들은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당시 기술적인 문제로 조작감이 안 좋았던 마피아 시리즈지만, 세 차례의 데피니티브 에디션을 거치면서 보완한 이후에 낸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그 문제를 상당히 개선해서 나왔다. 다만 레이싱 미션에서 강제로 사용하게 되는 차량은 핸들 조작감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 이 부분은 도전 과제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만한 정도였다.
다시 클래식으로, 올드 컨트리
디저트가 살짝 아쉬운 고전적 어드벤처

그렇게 좋았던 시절은 물론, 시칠리아 섬에 닥쳐오는 한 차례 거친 항쟁까지 짜임새 있게 풀어낸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그야말로 왕도적인 클래식 그 자체였다. 마피아 시리즈를 알건 모르건 바로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러티브, 섬세하게 빚어낸 아름다운 그래픽, 고전적이지만 손맛 하나는 확실한 총격전 구도까지 이 장르에서 유저들이 재미와 매력을 느낄 포인트는 확고하게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본기만으로도, 2025년 현재에도 얼마나 게이머들에게 큰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증명해낸 셈이다.
그렇기에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플레이를 마치면서 아쉬움이 짙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는 맛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알고 먹는 그 맛이란 게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는 그 아는 맛을 좀 더 끌어올리거나, 혹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무언가가 더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클래식한 정찬은 잘 차려놨는데 입가심하며 쭉 즐길 디저트가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이를 준비한 흔적들이 있는데, 전작의 실패 때문인지 보수적으로 유보해둔 느낌이라서 더더욱 아쉬웠다.


실제로 여러 편의 기능이나 곁가지 같은 것이 최대한 배제된 고전적인 구성인 만큼,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플레이하면서 쭉 다소 불편하면서도 익숙한 어드벤처의 맛을 계속 체감하게 된다. 그것을 2025년 현대에 걸맞는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밀도 있는 이야기로 다듬은 '마피아: 올드 컨트리'는 알고도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은 확실히 있었다. 이미 그 다음의 이야기는 마피아 시리즈로 나왔기에 이를 어떻게 더 확장할지 모르지만, 다음에는 좀 더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뒷심까지 확실히 갖춰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