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론 앤 리버티(TL)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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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는 지난 12월 7일, 신작 MMORPG '쓰론 앤 리버티(Throne and Liberty, 이하 TL)'를 정식 출시했다. 2017년 '프로젝트 TL'이란 명칭으로 공개된 지 약 6년, 그리고 해당 명칭으로 타이틀명이 정해진지 1년 10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셈이다.

오래도록 준비한 만큼, TL은 엔씨소프트에게 있어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타이틀이기도 하다. 그래서 2017년 이후 CBT를 하지 않고 바로 출시하던 엔씨소프트가 오랜만에 CBT를 진행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때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개선을 약속하고 글로벌 테크니컬 테스트까지 감행했던 만큼, 과연 2017년 이래로 모바일-PC MMORPG만 내왔던 엔씨소프트가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CBT와는 다른 발전, 약속은 지켰다


CBT 당시의 TL은 모바일 MMORPG로 헤게모니 전환 이후 엔씨가 줄곧 밀어왔던 리니지식 공식을 BM과 무차별 PVP 요소 일부 빼고는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래픽은 PC MMORPG라는 기준에 맞춰 일신했지만 최적화 문제가 있었다. 여기에 그냥 타겟 잡아두고 무빙도 무엇도 없이 서로 무기를 붕붕 휘두르면서 맞딜하는 단조로운 전투에 자동을 켜두고 관람만 하게 되는 구성까지. 그런 상황에서 보스 패턴이니 날씨와 시간대의 변화니 이런 것을 논했지만 유저들에게 어필하기엔 전자의 그림자가 너무도 컸다.

그 뒤 7개월 동안 여러 가지 개선안이 언급됐고,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확실히 발전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체감된 것은 전투의 조작감이었다. 무빙샷도 없이 그저 말뚝딜에, 스킬 타이밍 싸움을 하고 싶어도 스크롤을 구하지 못하면 스킬조차 못 배우던 것이 CBT 당시의 TL의 모습이었다. 그걸 구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은 어떻게 할 것이며, 이를 단축하기 위해 어떤 BM을 또 넣을까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아니,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던 '리니지라이크'에 BM만 덜어낸 수준이었다.

그랬던 TL이었지만 정식 출시 버전은 달랐다. 우선 자동 전투와 자동 이동이 사라졌다. 그리고 전투의 감각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가 시행됐다. 채널링 스킬을 제외하면 공격 중 이동이 가능해졌으며, 스킬 습득 조건도 스크롤 제작이 아니라 레벨을 올리면서 점차 배우는 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무기 교체 없이도 부무기의 스킬을 조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간 순간부터 전투 감각이 확실히 달라졌다. 개선 중이라고 발표했을 때 공개한 영상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창 MMORPG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바삐 놀리면서 스킬을 쏟아내고 극딜하던 시절이 떠오를 만큼 끌어올리긴 했다.



▲ 자동으로 말뚝딜만 하던 CBT 당시의 TL



▲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자동 사냥이 없어지고 스킬 습득도 쉬워지면서 액션의 폭이 늘었다

특히 콘솔을 고려한 듯 패드를 지원한 것도 인상 깊었다. 이미 TL은 지난 9월 글로벌 테크니컬 테스트에서 PC뿐만 아니라 콘솔 버전을 선보였던 바 있었다. 그래서인지 패드 조작 대응도 무난했다. 그리고 UI도 패드에 맞춰서 변화할 뿐만 아니라 기능도 새롭게 더했다. 일례로 일종의 탐색 기능인 스텔라비전은 패드로는 활용하기 어렵다. 리스트창을 보고 커서를 바로 그쪽으로 움직여서 클릭하는 그 동작이 아무래도 마우스보다 패드가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걸 인지해서 오른쪽 아날로그 스틱을 활용한 록온 및 록온 전환을 추가하는 등 기본적으로 콘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은 의외로 다 갖춰진 상태였다.






▲ 패드를 연결하면 UI까지도 자동으로 바뀌고, 조작감도 나쁘지 않다

자동사냥을 없애고 수동 전투의 경험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아주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아니긴 했다. 그래서 결국 자동사냥에 맞춰진 '노가다'를 얼마나 줄이느냐도 관건이었다. 타겟팅 액션에 광역기술도 상당히 적고 거기다 배우는 시점도 늦다보니 소위 몰이사냥이나 닥사가 빠르고 호쾌하지 못하다는 단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CBT 당시에 요구됐던 몬스터 사냥 수량을 절반 이하로 낮추면서 어느 정도는 보완했다. 또한 원래 있던 탑 콘텐츠인 '타이달의 탑'뿐만 아니라 인스턴스 던전들을 추가하고 경험치도 상당히 배분하면서 늘 똑같은 닥사와 퀘스트만으로 렙업하던 그 패턴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줬다.

특히 인스턴스 던전은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인 패턴으로 파티원의 협동과 연계 그리고 개인 컨트롤의 재미를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구성이었다. 기존 MMORPG 레이드나 인던에 비하면 단조롭지만, '빗나감'이 뜰 수 있는 특성에 여기서 빛을 발했다. 정예몹도 전멸기에 가까운 위력을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끊을 필요가 있었고, 이를 헛치는 순간에 다음에 바로 후발주자가 기절을 걸거나 얼리는 등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센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스가 광역기를 쓸 때 각자 대응하지 못하면 바로 사망하거나 혹은 연이은 후속타에 비명횡사하는 등, 리니지라이크가 아닌 PC MMORPG에서 흔히 겪던 그 맛이 확연히 느껴졌다.



▲ "어 기절 쿨인데" "일단 얼릴게요"



▲ 보스 패턴 잘 막으시고 모이세요~첫 던전 악몽의 심연으로 기초 과정을 시작했다면



▲ 이후에는 징표 꺼질 때까지 헤쳐모여 범위기 피하고 막기 등등 심화 과정이 이어진다

'통제'에 대한 부분도 개선이 됐다. 이제 필드에서는 분쟁 이벤트를 제외하면 PVP를 할 수 없으며, 심지어 필드 보스도 분쟁 시간대와 평화 시간대가 나뉘어 있었다. 또 평화 시기에는 충돌을 악용한 '길막'으로 다른 유저가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게 아예 충돌을 꺼두는 식으로 조치했다. 필드 던전에서는 밤에만 분쟁이 가능하게 했으며, 저렙부터 열리는 실라베스 사원은 밤에는 아예 문을 닫아서 모르고 갔다가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했다.

소위 도감, 콜렉션이라 불리는 장비 탁본집, 아미토이 탁본집, 그리고 변신 수집은 전투 스탯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편성됐다. 장비 탁본집은 장비 강화 혹은 상위 아이템 제작을 위한 재료를 1회에 한해서 수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고, 아미토이는 등급 차이 없이 효과는 동일했다. 그리고 게임플레이에서 얻는 아미토이들만 조합해서 경험치 혹은 재화 수급량을 조금 높여주는 콜렉션으로 구성됐다. 변신은 특정 조합을 요구하는 콜렉션 대신 많이 모으면 레벨이 올라가면서 변신 후 이속을 증가하는 시스템을 채택했다.

여기에 육성 과정에서 선택의 부담감도 상당히 낮추는 작업도 이어졌다. 스탯을 초기화해서 다시 찍을 수 있는 모래시계를 게임 내 재화인 솔란트로 판매하고, 어떤 스탯을 올려도 주무기와 부무기의 피해량 자체는 높아지기 때문에 육성 부담감은 비교적 덜했다. 또한 희귀템까지는 30레벨 이후부터, 영웅템은 50레벨 이후부터 인스턴스 던전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템을 파밍하고 세팅하는 난이도도 낮아졌다.












▲ 우려스러웠던 BM은 덜어냈고



▲ 영웅등급 장비는 파티 던전에서 파밍할 수 있다


덜어내기만 한 TL, 무엇을 채워넣을 것인가




앞서 이야기한 대부분의 내용은 예전의 TL과의 비교였다. 리니지M 이후 엔씨소프트가 CBT를 한 것도 그리고 CBT의 결과를 두고 피드백을 한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지 않았나. 그러기에 확인과 검증은 피해갈 수 없는 절차였다. 그리고 지금 정식 출시 직후에는, 약속한 대로 개선이 이루어진 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TL을 이야기하기엔, 지금 이 순간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나아졌지만, 다른 경쟁작과 비교했을 때 과연 TL이 그간 쌓인 유저들의 불신을 걷어낼 만한 위력을 보여줬나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현재의 TL은 그런 위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00% 완벽히 그 시대의 고증을 따른 건 아닐지라도 클래식한 멋이 나는 중갑과 가죽갑옷의 미가 드러나는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지형의 필드를 심리스로 구현해낸 그래픽 기술은 인정할 만하다. 거기에 날씨나 시간대의 변화도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쟁하는 것까지 구현한 데다가 살짝만 타점에서 뒤로 빠져도 피격되지 않는 후판정 시스템까지 더했으니, 기술력은 아직 살아있다는 게 체감은 된다.






▲ 분쟁 시간에 보스가 잡히면 일단 광역기 쳤던 거 정산부터 시작, 교전이 벌어진다



▲ 필드 보스 분쟁 중에 전설 스킬 발동 문구와 함께 월드 전역에 일식이 적용됐다

그렇지만 그건 업계 관계자들이 게임을 전반적으로 분석한 과정에서 느껴진 것이지, 일반 유저로 플레이했을 때는 크게 체감되는 부분이 아니다. 유저들은 게임 내의 무언가를 구현한 과정이나 그 기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결과물을 체험하면서 재미있나 재미없나가 중요하다. 그 관점에서 봤을 때 'TL'은 상당히 제한된 정도를 넘어서 움츠러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보듯 흔히 말하는 '리니지라이크'의 맹독성은 어느 정도 제거한 느낌이었다. 그 핵심 중 하나인 콜렉션과 도감의 스펙업 요소는 더욱 더 착실하게 뺐고, 각종 재료나 재화를 패키지로 구매해서 저렙에도 여러 스킬을 채워넣은 뒤 비대칭전력으로 경쟁자를 제거하는 구도도 없어졌다. 뽑기 대신 패스 상품에, 패스 상품은 강화석이나 버프를 주는 음식 혹은 무기를 제작하는 재료 위주로 구성됐다. 거래소는 유료 재화 기반이라 거래소의 템을 과금으로 쓸어서 장비를 빨리 맞추고 좀 더 빠르게 '용캐'가 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약도 없이 낮은 확률과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면 전혀 의미가 없는 유사 천장을 보면서 계속 지르던 군비 경쟁 체계에 비해선 상당히 착해진(?) 편이다. 심지어 나중에 던전을 계속 돌다보면 영웅 등급 템을 얻을 수 있으니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긴 정도에 불과하다.



▲ 영웅 등급 템들이 올라오고 있지만, 쭉 하다보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급하게 구할 필요까지는...

그런데 착해졌다는 말이 재미가 있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2017년 이후 엔씨소프트가 기획했던 게임이 대부분 그 시스템을 성장의 코어로 삼아서 개발이 됐지만 TL에서는 그게 빠진 상황이다. 그만큼 이를 보완할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TL은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TL은 쇼케이스부터 무엇인가 '없다'는 것에 치중해서 설명해왔다. 자동사냥이 없다, 뽑기가 없다, 스펙에 영향을 주는 과금이 없다 등등. 그간 '리니지라이크'를 대표하는 키워드들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착해졌다'는 말 자체에 아마 의문을 가질 수는 있고 그간의 사례를 들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의심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현 단계만 두고 보면 어쨌거나 그간의 BM을 많이 덜어냈으니 그렇게 말할 여지는 있긴 하다.

어쨌거나 과금으로 성장하는 요소를 덜어낸 만큼 다른 방향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재미를 보충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TL은 그 시점이 상당히 늦다. 그나마 쓸만한 스킬은 20레벨 후반부터 배우고, 인스턴스 던전에서 패턴을 공략하는 재미는 30레벨부터 시작된다.



▲ 소용...아니 섬멸 회오리 배우기 전까지 돌려깎기로 하나하나 잡으며 퀘와 사냥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유저가 하는 루틴은 극히 단순하다. 퀘스트와 의뢰, 그리고 사냥의 반복. 물론 저것이 MMORPG라는 장르가 레벨을 올리고 성장하는 기본 문법이지만, 그 템포가 TL은 최신 트렌드와 맞지 않게 느리다. 물론 타이달의 탑의 패턴이나 좀 더 높은 단계의 인스턴스 던전은 PC MMORPG 전성기 시절을 생각나게 하지만, 그 전까지 몹들을 하나하나 때려잡으면서 레벨업하는 지루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압축한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파티를 짜서 고렙 지역까지 빨리 돌입해서 코덱스를 뚫으면 빠르게 렙업할 수는 있지만, 모든 유저가 그렇게 플레이하는 건 아니다. 길드에 가입하는 시점이 빠른 것도 어찌 보면 그렇게 플레이하라고 유도한 것이겠지만, 유저들이 꼭 개발진의 의도대로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간과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 전까지 소위 '득템'을 해서 강해지거나, 좋은 아이템을 얻어서 판다는 그 개념이 상당히 희박해져있는 것도 문제였다. 물론 초반부터 격차가 나버리면 그 스노우볼을 겉잡을 수 없는 게 PVP 기반 MMORPG니 이를 경계해서 성장을 둔화시키는 구성을 취할 수밖에 없긴 하다. 그렇지만 레벨업을 하고 장비를 강화하면서 성장하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강화 재료는 그나마 빨리 풀고 실패를 없애서 부담 없이 템을 강화시키는 맛까진 구현했지만, 그 강함을 배가해줄 스킬의 빌드업이 빠르게 뒷받침되지 않아서 성취감이 그만큼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여기에 UI도 그 불편함을 가중하는 요인이었다. 여러 가지 챙겨봐야 할 게 많으니 UI를 작게 그리고 최대한 많이 아이콘을 한꺼번에 늘어놓은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게 내세운 것들마저도 보기 어렵게 일괄적으로 작게 귀퉁이에다가 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밤낮과 날씨, 바람의 방향 같은 것을 그렇게 어필했는데 게임의 구조상 거의 볼 일이 없는 월드맵 우측 하단 귀퉁이에 둔 것이라던가, 바람의 방향을 미니맵에서 확실히 보기 어렵게 만들어둔 것 등등. 심지어 이런 요소들은 일부 코덱스를 클리어할 때 필수 조건인데도 알아보기 어렵게 해둘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거기다가 닥사를 지양하게 하기 위해서 코덱스를 강제로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경험치를 높게 책정하고 코덱스 수도 렙업 과정에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 여러 제동을 걸어놓은 셈이라 갑갑함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 비 와야 되는 코덱스가 있어서 살펴보는데, 날씨 정보가 너무 구석에 있는 거 아니오

하다못해 이야기나 캐릭터, 설정에 몰입할 여지가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아쉽게도 TL은 그 부분에서 상당히 부족한 느낌이었다. 스토리가 단순히 클리셰를 고스란히 따라가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클리셰'라는 것은 사실 여러 말이 필요 없다는 장점도 있으니, 그걸 잘만 요리하면 파괴적인 위력을 보여준다는 걸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지 않던가. 실제로 연출이나 스토리의 흐름 자체는 왕도적인 흐름대로 가고 있고, 성장해서 악마가 됐든 뭐가 됐든 공략해보자는 생각이 들 정도의 구성은 됐다.

그러나 TL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빨리 풀어내고 싶다는 조급함이 느껴졌다. 여기에 엔씨소프트 특유의 '유저가 만드는 스토리'를 의식한 나머지 NPC의 비중을 너무 줄여버리고 본론도 갑작스럽게 내던지는 바람에 이야기가 붕 뜨는 느낌이 있었다. 사방팔방에 놓인 텍스트를 읽으면서 맥락을 알아야 하는데, 그 단서를 준 NPC는 스토리에서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아서 이야기가 허공에 뜨는 일이 많았다고 할까. 그나마 가면 갈수록 그 파트의 핵심 NPC를 내세우고, 이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이곳저곳에 배치된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맥락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끔 밀도 있게 풀어가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다. 혹은 그 텍스트로부터 이어지는 코덱스가 여러 도전 과제나 기믹으로 이어지고 여러 보상과 연계가 되면서 충분히 의미를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만 체감이 되는데, 그 이전에 진입장벽이 상당한 편이다.



▲ 어허 너가 악마인 거 다 알고 왔으니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 찾아다니던 악마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악마는 맞으니 퇴치



▲ 악마들의 흔적을 찾다가 혹은 레벨업거리를 찾다 보면






▲ 여러 기믹과 퍼즐이 가득한 시련 속에서 여러 정보들을 탐색해나가게 된다

그마저도 어느 순간이 되면 퀘스트는 거의 다 한 상태에서 레벨업이 막혀서 흐름이 끊긴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는 엔씨소프트의 전작 '블레이드&소울'의 초창기가 떠오른다고 할까. 그렇지만 그때와 달리 TL은 사냥 위주로만 흐르는 걸 경계한 나머지 그때보다도 사냥을 통한 레벨업이 힘들게 설정을 해놨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리니지라이크식으로 마련한 좋은 사냥터인 필드 던전이 붕 뜨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의 리니지라이크라면 스펙을 뽑기 등으로 빨리 갖춘 이후 자동사냥으로 빠른 렙업과 득템을 하기 위한 장소로 마련됐을 텐데, TL은 그런 수단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동레벨로 가기엔 체력도 높고 강한 몹들이 포진해버린 그곳을 필연적으로 파티플레이로 공략을 해야 하는데, 그런 수고에 비해서 얻는 소득이 없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그저 퀘스트만 돌고 거의 일회성에 가까운 탁본템을 드랍하는 것만으로 쓸모를 다한다.

물론 리니지라이크에서 탈피하기 위한 차원에서 보면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던전에서 보상을 얻기 위한 심연의 계약이 계속 쌓이는데, 그걸 소진할 곳인 필드 던전이 방치되고 성장은 중단이 되는 그 디자인이 현 시점에서 효율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덜어내기와 리니지라이크 지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갈팡질팡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 리니지라이크식이었다면 필드 던전이 고효율 사냥터였겠지만, 방향성이 바뀐 이후로는 애매해졌다


고지식한 MMORPG 'TL', 장기적인 방향성을 제시해야




공성전, 쟁 등 대규모 PVP로만 귀결되는 결말을 뺀다면 TL은 그간 우리가 즐겨왔던 PC MMORPG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액션의 재미나 그런 부분에서는 다소 평이 갈리겠지만, 그냥 방치하고 내버려두지 않고 손수 플레이하면서 성장해나갈 때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는 다 갖췄다. 그걸 기반으로 협동하고 경쟁하면서 성장할 때 대체로 과금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그 옛날의 순수했던 PC MMORPG 시절의 감성을 다시 보여주고자 했다. 랜덤매칭도 없어서 일일이 채팅창에서 파티를 구해서 들어가거나 퀘스트 어떻게 클리어하는지 물어보던 그 옛날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할까.

여기에 최근에는 보기 힘들었던 대규모 PVP를 강요하지는 않되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들이 있었다. 보통 대규모 PVP하면 떼로 덤벼들어서 싸우는 막피 구도를 생각하지만, 실제로 공성전을 비롯해 대규모 PVP 다수가 어떤 '목표'를 두고 싸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만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충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전력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지휘하느냐도 관건이다. 실제로 기원석 쟁탈전은 길드장이나 부길드장급이 기원석과 상호작용을 하고 그 구역에 계속 있어야만 점령이 된다. 따라서 이들을 지키거나 혹은 밀어내기 위한 구도가 연출됐다. 몹을 잡아서 이벤트 재화를 수급한 뒤 NPC에게 반납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필드 이벤트에서는 많이 모은 키플레이어에게서 재화를 강탈하거나 혹은 역으로 빼앗기 위한 격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 많이 안 갖고 있더라도 레벨이 낮은 사람을 노리는 건 기본이라지만...단독행동 하는 순간 바로 당할 줄은

그러는 한편, 현재까지는 기원석 쟁탈전이나 리스크를 감수하고 분쟁 시간 필드 보스 혹은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게끔 설계했다. 기원석이 주는 버프나 자원은 현재로서는 그리 비중이 크지 않았고, 분쟁 시간대에도 평화 이벤트나 필드 보스를 배치해서 PVP를 원치 않으면 평화 구역으로 가서 참가하는 대안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TL은 앞으로 다가올 공성전, 그리고 각 서버 대형 길드들이 각자 1등 길드임을 증명하기 위해 잠깐 벌였던 기원석 점령전을 제외하면 자신만의 뚜렷한 색채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리니지라이크에서 지탄 받은 BM 요소는 덜어냈지만, 그에 기반해서 설계한 성장 요소를 완벽히 재구축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성장의 재미를 초반부터 확실하게 제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쇼케이스 때부터 BM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고 또 사람들이 그걸 본다는 걸 너무 의식해서인지, 그 상품 자체의 매력을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주요 BM으로 꾸미는 상품을 내세웠는데 그 종류도 적고 디자인도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었다. 더군다나 탈것이 아닌 '변신' 시스템 때문에 그 디자인도 한계가 있다. 크고 웅장한 변신으로 자기를 뽐내고 싶어도, 최초 튜토리얼에서 나왔듯이 질주 변신 시스템은 좁은 틈새를 지나가는 식으로 종종 활용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그런 과시욕을 충족시킬 만한 상품이 나오기 어렵다.






▲ 뭔가 웅장한 크기를 기대하다가도 질주 변신 시스템의 특성상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늦게 깨달은 1인






▲ 코스튬은 아직 종류가 많지 않지만 염색과 패턴을 넣으며 꾸미는 맛은 있다

패스 상품만 구매해도 괜찮다는 걸 어필하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너무 덜어내기만 치중한 나머지 내실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BM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흐름 곳곳에서 그런 것이 느껴지는 게 현재 TL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까. 그 지탄 받았던 부분을 제거하고 나면 쟁 위주의 고전적인 PC MMORPG가 남게 되는데, TL은 여기에 그래픽을 일신하고 여러 요소를 끼워 맞춰나가면서 보완하고자 하는 시도가 엿보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 덜어낸 부분을 완벽히 메우지는 못했다. 자동으로 슥슥 지나갈 것을 상정해서 짰던 퀘스트 동선은 난잡했고, 초반부터 콘텐츠의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성장의 재미를 온전히 전달하지는 못했다. 이 단계에서 느낀 감상을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이 결핍을 대체 무엇으로 채우려고 할지 우려부터 든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그 시기를 넘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그 옛날 PC MMORPG의 전성기 시절에 느꼈던 추억과 재미를 느낄 만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여기에 초반에는 각종 설정과 스토리만 썰로 풀던 것들이 나중에는 코덱스, 그리고 여러 다양한 보상과 연출에 기믹 풀이까지 다양한 요소가 더해지면서 콘텐츠로서 확장하는 느낌을 더하는 모습이 보였다. 더군다나 플레이 진도에 따라서 너무 격차가 나는 것을 방지한 '연대기' 시스템 때문에 아직 TL이 준비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공개되지는 않은 상황이고, 더 확장될 여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정식 출시 이후 첫 패치를 통해서 부족했던 부분을 차근차근 채워가고자 하는 모습은 보였다. 메인퀘스트를 하다가 레벨링이 단절되는 일을 줄이고자 의뢰 보상에 경험치를 추가했으며, 초중반부 몬스터들의 체력과 공격력을 낮춰서 성장 과정에서 부담감을 덜었다. 맵 UI 외에도 유저들이 불편을 호소했던 가방 슬롯은 확장하고 패드 조작 중 불편했던 사항을 어떻게 개선했는지 자세하게 기록했다. 또한 너무 환경적 요인과 운에 의존해야만 했던 코덱스 일부를 개편하면서 스트레스는 완화하고 그 맥락을 더 쉽고 연결해서 볼 수 있도록 조율하는 모습을 보였다.



▲ 업데이트 전날인 12일 프로듀서의 편지가 공개되고






▲ 오늘(12일) 패치로 여러 가지가 개선됐다. 특히 저 동남...아니 북풍 강풍을 기다리던 거 생각하면 ㅂㄷㅂㄷ

이러한 변화는 환영할 만한 하지만, 아직까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엔드콘텐츠가 '공성전'으로 귀결되는 느낌이긴 하다. 스톤가드 성의 구조부터 너무도 훤히 '공성전'이라는 구도가 눈에 그려진다. 그러니 그 공성전을 즐기건, 즐기지 않건 TL을 지금 당장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쭉 플레이하게끔 유도하려면 장기적으로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고전적이라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덜어내기만 치중해서 부족했던 초반을 채우고, 쟁과 공성전 외에도 'TL'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폭넓게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 이번 초반 업데이트뿐만 아니라 좀 더 길게 봐야 할 필요는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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