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용량이 이런 게임을?'
아마 '애니멀 웰'에 대한 호평의 큰 부분은 매우 적은 필요 용량에 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수십을 넘어 100GB가 넘어가는 게임의 대용량화는 일상이고, 에뮬레이션 복각 타이틀도 100MB가 훌쩍 넘는 시대입니다. 그 속에서 수십 MB로 구현된 '애니멀 웰'은 정말 특별한 게임일 겁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용량'이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이런 게임'입니다. 게임이 1MB던, 100GB던 결국 그 용량을 뛰어 넘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만 용량 값한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애니멀 웰'이 보여준 메트로배니아와 퍼즐 플랫포머 그 사이에 보여준 무언가는 용량이 얼마나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저 이 게임을 2024년 꼭 해봐야 할 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게임명: 애니멀 웰
장르명: 메트로배니아/퍼즐 플랫포머
출시일: 2024.5.9.
리뷰판: V1.0.4개발사: 셰어드 메모리
서비스: 빅 모드
플랫폼: PC, PS, NSW
플레이: NSW
지하에서 연결된 너른 맵 디자인과 메트로배니아
게임을 시작하면 아무런 이야기도, 배경 지식도 없이 그저 사라지는 네 개의 불꽃과 꽃봉오리에서 나오는 주인공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찰흙덩이 같은 그 주인공의 조작으로 게임이 곧장 시작되죠.
간단한 조작 소개가 끝나면 태양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은 눅눅한 지하를 거닐며 그 공간에서의 탐험을 시작합니다. 이 탐험은 게임의 근본 정체성이며 그것과 함께 컨트롤러를 붙잡게 하는 탐색을 이끄는 에너지원이 됩니다.
이 탐험은 잠시 멀리 돌아 메트로배니아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구간입니다.
오늘날 장르별 정의는 꽤 흐트러져있고, 그중에서도 메트로배니아는 그 장르적 구분을 명확하게 가져가기 어려운 게임입니다. '슈퍼 메트로이드', 그리고 그 정체성을 이어가는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부터 이후 캐슬배니아 시리즈에서 발현한 일종의 게임 특색이었기 때문이죠. 더 쉽게 이야기하면 비슷하게 장르적 구분으로도 쓰이지만, 정작 여러 게임 장르에서 활용되는 로그라이크(트), 소울라이크 같은 라이크류 게임이라는 겁니다.
특히 메트로배니아의 시초가 되는 '슈퍼 메트로이드'는 총을 쏘며 달리는 런앤건 요소도 있지만, 맵이 존재하는 플랫포머. 점프하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게임으로서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건 오늘날 메트로배니아를 표방하는 수많은 게임이 이어가고 있고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탐험입니다.
맵은 크게 보면 다양한 갈림길과 장소들을 연결하는 지름길이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모든 길을 처음부터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닫힌 문의 반대편에서 빗장을 풀거나, 막힌 지름길을 뚫어낼 아이템을 얻고, 또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공간이 새로운 능력이나 게임 플레이로 얻어낸 플레이어의 지식으로 도달할 수 있게 되는 식이죠. 다크소울의 맵 디자인이 메트로배니아의 3D 버전이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결국 이런 형태의 맵의 탐험과 탐험을 위한 탐색은 게임 플레이, 클리어를 위한 근간이 되는 거죠.
전투 하나 없는 플랫폼 중심의 게임임에도 메트로배니아로서의 특징이 있음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특징이 맵과 그 디자인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전투를 대신해 퍼즐이 채우는 공간
그런데 전투가 없다고 했다고요? 맞습니다. 애니멀 웰은 주인공 체력도 있고,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지나가기 어렵게 하는 적도 있고, 보스와의 대결도 있는데 전투 하나 없는 메트로배니아입니다. 재밌는 건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게임 초반 주인공은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에 덩그러니 놓이고 중간중간 떠있는 반딧불이와 랜턴만이 그런 어둠을 잠깐씩 걷어내며 길을 안내합니다. 그리고 곧 최초의 적을 맞이하게 됩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어둠 덩어리 비슷한 무언가. 그냥 부딪혔다간 곧장 사망인데 다음 길로 가는 크랭크 손잡이를 막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죠. 그때 지나오면서 본 폭죽 아이템이 떠오릅니다. 던지면 파바밧하고 불꽃을 터트리는 아이템. 그걸 던지면 잠시 강한 빛이 터지고 곧 어둠의 존재를 지워버립니다.
아마 이쯤에서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될 겁니다. 이제 저런 적은 폭죽을 통해서 없앨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아이템을 통해 적들을 제압해 나갈 수 있다는 것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저 어둠 덩어리 무언가를 폭죽으로 없앤 건 클리어까지 기억상 서너 번 정도 더 있었나 싶습니다. 더 정확히는 '적을 죽여 없앤다'라는 개념이 게임에 거의 존재하지 않죠.
애니멀 웰은 버튼 안내 정도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조작 가이드나 별다른 아이템 활용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게임 안에 그것을 유추하게 만들어놨죠. 물론 이런 게임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플레이를 통해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건 이제 더 수준 높은 게임 디자인으로 해석되기도 하니 플레이어 역시 충분히 익숙해졌겠죠.
당연히 폭죽은 적을 없애는 용도로서 안내됐다고 인식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볼 건 '폭죽으로 적을 없앴다'가 아니라 '빛이 무언가를 바꾸는 상호작용을 일으킨다'에 집중해야 합니다.
게임을 풀어나가며 어둠이 깔린 지하 공간에서 빛은 유려하게 그려집니다. 주인공의 길을 완벽하게 틀어막는 새가 빛에서는 투명해진다거나, 앞을 막고 서있는 독소들이 랜턴 빛에 물러나게 되는 것처럼 게임 진행을 위해 필수로 익혀야 할 빛의 활용법이 존재합니다. 폭죽은 그걸 큰 그림에서 안내한 거고요. 실제로 폭죽은 적을 없애기보다는 섬광에 관심을 보이는 보스를 잠시 멈춰두는 용도로 더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폭죽의 활용법을 플레이어가 잘못 인지하도록 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반쯤은 폭죽의 활용법을 알려주려는 게 맞고, 또 반쯤은 거기에 눈을 돌리게 해 빛의 유용성을 살짝 엇나가게 보이려고 속였다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의도적 비틀기가 이 게임의 매력을 더욱 살리는 요소가 되었고요.
이 퍼즐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드는 법
퍼즐 플랫포머, 나아가 플레이어의 조작과 아이템 활용이 게임 진행에 핵심이 되는 작품은 많습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게임들이 주는 기믹, 해결 방법은 대개 한 번 풀고 나면 그걸 다시 활용하도록 만듭니다.
사실 이건 플레이어게 주는 배움을 통한 우월감, 그리고 쾌감의 영역과도 연결되어 있는데요.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길을 새로운 능력, 전에 몰랐던 퍼즐 해법으로 갈 수 있게 만드는 거죠. 게임을 통해 얻은 무언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여기서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기믹이나 아이템은 해결, 혹은 획득을 어렵게 만들어 그 반동이 될 즐거움을 키웁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놓았기에 변주를 주기도 어렵죠. 대개는 준비해놓은 해법들을 순서만 다르게 반복할 뿐입니다. 많은 메트로배니아에서 발판이 없는 길이 여럿 등장해 진행을 막지만, 이단 점프를 얻으면 그 길들이 단 번에 이동 가능한 경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대신 새로운 능력의 획득은 곧 그걸 활용한 해법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단 점프 해결 구간만 봐도 결국 그 능력의 '획득'에 집중되어 있지 얻고 난 이후에는 그 능력으로 갈 수 없던 곳 찾아다니기 바쁜 것처럼요.
애니멀 웰에서도 새로운 아이템이 전에 가기 어렵던 곳을 갈 힘을 만들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도 합니다. 한 번 푼 퍼즐이 비슷하게 세부적인 방법만 다르게 재활용되는 구간도 있죠. 하지만 그것들을 오묘하게 비틀어 반복적이라는 느낌을 내지 않을 디자인에 온 역량을 다했습니다.
게임이 직접적으로 해결책을 알려주지 않는 만큼 주변 상황, 아이템, 적들의 움직임, 발판 등 많은 것을 복합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렵게 퍼즐의 해결책을 풀면 아마 같은 배경 디자인을 가진 지역에서는 그와 관련된 해결법을 찾으려 하겠죠.
방울을 공중에 띄워 그걸 밟아 더 멀리 뛸 수 있는, 이단 점프와 비슷한 능력을 주는 방울이 생기면 이제 일반 점프로는 갈 수 없었던 지역에 가보게 될 겁니다. 그럼 이제 더 높은 점프로 갈 수 있는 곳에 집중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높은 점프만 쳐다보고 있는데 실제 해법은 아래로 뛰어들기, 혹은 다른 아이템 활용 등 이전, 혹은 아예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해법을 필요로 합니다.
또 같은 해결책도 꽤 심화한 방법으로, 더 다양하게 머리를 굴려 활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막힌 곳을 통과하면서 '해결책이 A가 아니라 B였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만듭니다. 앞에서도 A로 깼고, 또 디자인도 A가 답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건 곧 플레이어의 허점을 노린 동시에 그렇게 플레이를 유도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도록 만든 개발진의 의도가 담긴 것이기도 하고요.
문제를 해결한다, 그 자체를 어떻게 그려내는가
생각의 전환, 혹은 익숙함을 떨쳐내야 하는 해결 구간은 게임 곳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때로는 지금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인지, 아니면 내가 그냥 못 찾아서 못한 것인지. 당장 알 수도 없고요. 이른바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이게 완전한 퍼즐 플랫포머였다면 아마 이는 곧 게임의 불만으로 다가왔겠죠. 하지만 맵 곳곳이 연결되고, 또 그걸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맵 디자인은 답답함을 탐험과 탐색으로 바꿨습니다.
지금 못 가면 맵에 있는 기본 기능으로 위치 체크해두고 다음에 다시 오면 되는 거죠. 반대로 이 구간을 해결한 아이템을 찾으러 더 멀리 탐험하고, 또 막히는 구간이 생기고, 놓친 것은 없나 맵을 탐색하고.
물론 이렇게 막히는 구간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걸 그저 탐험이니 탐색이니 하며 좋게만 넘길 수 없기도 합니다. 여기서 퍼즐과 다양한 해결책이 등장하니 얘기가 달라집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아이템은 분명 특별한 능력으로서 전에 해결하지 못한 퍼즐을 푸는 데 필요합니다. 이것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죠. 그저 막히는 곳에서 써보며 하나하나 깨닫게 됩니다. 대신 그 활용법을 꽤 다양하게 주며 문제 해결에 다양성을 더하죠.
부족한 점프력을 해결하는 방울을 획득하면 당연히 더 높은 곳으로의 점프만을 생각합니다. 실제로 획득 직후에는 이렇게 높아진 점프력을 활용한 퍼즐이 구현되고요. 그런데 방울은 밟았다 점프하면 터지지만, 그대로 타고 있으면 조금씩 느리게 하강하죠.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아래로, 즉, 생각했던 게임 플레이의 방향을 뒤집는 진행이 가능한 겁니다.
게임 속 원반도 가장 처음에는 개 모습의 적들의 눈을 돌리는 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스위치를 켜고, 심지어 튕기는 원반 위에 몸을 올려 멀리 날아가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하죠. 물론 그런 활용법을 게임에서 직접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몇 퍼즐은 이런 활용법이 없어도, 노력만 하면 깰 수 있도록 해법을 다양하게 만들어 놨죠.
이런 자유로움은 자칫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게임 초반 꺼져버린 네 개의 불꽃을 찾으면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내러티브, 그 느슨하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이런 게임 구성이 가능했던 거고요.
요는 이렇습니다.
이 아이템이 여기서 쓰이는 게 맞는지, 내가 쓰는 방법이 제대로 된 건지, 지금 생각한 풀이 방법이 정말 맞는 풀이인지, 지금 내가 가진 아이템으로 깰 수 있는 구간인지, 맵에서 보이는 다른 길은 없는지, 이 지역 안에 숨겨진 곳은 없는지, 당장 눈앞에 따라오는 적이 있는데 얘를 어떻게 피해서 나아갈지. 수많은 선택과 때로는 뒤통수 맞는 해법이 존재하죠.
물론 뇌지컬이 아니라 피지컬로 풀어나갈 여지도 꽤 많아서 얻는 능력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더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피지컬 부분이 게임에서 조금 의외, 혹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한순간의 타이밍도 놓쳐서는 안 되는 극악의 플랫포머 게임들과 비교할 수준의 물건은 아닙니다만, 퍼즐 중심, 혹은 전통적인 RPG 기반 메트로배니아를 생각했다면 꽤 분노할 구간이 더러 등장합니다.
세이브 포인트인 전화의 배치, 그리고 낙사 지역에서 돌아오는 안전 지역 거리 등 꽤 어렵다고 느껴지는 구간이 좀 있습니다. 뭐 그래도 몇 번 반복하면 깰 정도로 아주 어려울 정도는 아니지만요. 이는 반대로 플랫폼 액션에 대한 만족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대신 준비 없이 이를 맞이하는 것, 그리고 실수가 없어야 하는 구간을 길게 반복시키는 배치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합니다.
어둡고 텅 빈 공간을 진짜 게임스럽게
사실 이렇게 게임 내적인 짜임새가 좋아, 또 개발진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깨달아가며 플레이해 어쩌면 게임이 먼저 내세운 강점은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아직 설명조차 하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요소들은 아직 게임의 내적 모습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 공개 초창기부터 게임에 눈을 가게 만든 요소였거든요.
게임 공개 당시 인디 게임에서 흔히 사용되는 픽셀 아트지만, 어두운 공간을 아름답게 비추는 형형색색의 라인과 광원의 활용. 또 어둠 속에서 만들어지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는 그걸 쉽게 자각하지는 못합니다. 이게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게임을 플레이한 첫날 촬영해 둔 영상을 돌려보니 적들 움직임에 맞춰 나오는 공명음에 맞춰 이동하고, 효과음이 박자가 되어 이동 타이밍 잡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실제로 게임은 별다른 배경음악은 없습니다. 대신 그 공허함을 더 강조하듯 지하 속 느낌을 내는 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울림을 살린 각각의 효과음, 괴물 울음은 플레이 내내 긴장하고, 집중하고, 몰입해 게임을 즐기게 합니다. 흥얼흥얼 따라하는 부류는 아니지만, 오히려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 그 자체에 녹아있는 방식이죠.
흔히 도트가 튄다고 말할 법한 픽셀 아트는 기본 옵션으로 적용되는 스캔라인으로 더욱 고전적인 느낌을 냅니다. 애니멀 웰은 어찌보면 약점이 될 수 있는 그래픽 안에서도 분명한 상황 식별, 오브젝트 구분을 그려냈습니다. 이 명확한 구분은 그저 미적 아름다움을 위한 것만도 아니고요.
멀리 보이는 것부터 겹겹이 쌓아올려 만들어진 레이어는 때로는 그저 배경처럼, 혹은 게임과 아무런 상관 없이 심미성을 위해 준비된 오브젝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게 게임의 암호가 되기도 하고, 풀어나갈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수많은 비밀들이 이 배경과 맵 곳곳에 숨어져 있고, 풀고 나면 그게 거의 모든 방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 배경이 '그런 뜻이었구나' 싶은 순간이 오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 게임이 가지는 불분명한 안내와 그걸 풀어나가는 퍼즐 요소는 그래픽을 통한 이 비언어적 묘사들이 만들어 내는 거죠. 그저 넘어갈 수 있는 배경 하나에도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풀어나가고, 이야기를 유추하고,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쌓아나가는 힘을 싣습니다.
애니멀 웰의 사운드와 그래픽은 그저 보이고 들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걸 게임으로 훌륭하게 녹여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저 훌륭하다는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처음 엔딩을 보기까지 대여섯 시간이 걸린 듯합니다. 꽤 느긋하게 플레이했고, 퍼즐로 막히는 구간이 많았는데 아마 이미 해결법을 알고 있었다면 두세 시간 안에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엔딩 이후로도 남아있는 퍼즐, 없어도 됐지만 얻어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아이템, 남아있는 이야기 등 여전히 비밀은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지금도 지도를 들여다보고, 피리를 불며 이곳저곳 옮겨 다니고 있고요. 개발자 빌리 바소는 그런 깊이를 만들기 위해 한동안 1인 개발로 제작을 이어간 이 작품에 7년이란 긴 시간을 쏟았던 걸 겁니다.
게임은 아이템을 활용한 단순한 플랫포머 정도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작품은 실제로도 많았고요. 하지만 그게, 정확히는 그런 간단할 수 있는 재료만으로 이 정도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게임이 얼마나 될지 떠올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반복할수록 깊어지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게임.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호기심이 문제를 해결하는 키가 되는 게임.
애니멀 웰은 그런 게임입니다. 그저 다른 이들의 플레이가 아니라 직접 플레이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채워진 게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