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불편하지만, 세련된 허무함 - '인디카'

1
젊은 수녀 '인디카'의 여정은 오드 미터의 공동 창립자, 디미트리 스베틀로프(Dmitry Svetolov)의 어린 시절 경험과 맞닿아 있다. 그는 독실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종교를 저버렸다. 종교, 정확히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이기도 한 '인디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를 비롯한 오드 미터의 개발진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카자흐스탄으로 거취를 옮겨야만 하기도 했다.

종교, 그리고 도덕적인 딜레마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인디카'의 게임 플레이 메커니즘과 어두운 유머가 숨어 있는 대사들은 한 편의 독립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의미를 담은 엔터테인먼트'를 만든다는 개발사의 기업 이념과도 그 맥락을 일치하고 있다.



게임명: 인디카(INDIKA)
장르명: 어드벤처, 시뮬레이션
출시일: 2024. 5. 2.
리뷰판: 4.27.2.0
개발사: 오드 미터(Odd Meter)
서비스: 11bit 스튜디오
플랫폼: PC(Steam), XBOX, PS
플레이: PC


보편적이지 않은 연출로 풀어낸 보편적인 이야기

수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선과 악 사이에서 고뇌하고, 그간 품어온 신앙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도 꽤 보편적인 축에 속한다. '인디카'는 이처럼 보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그리 보편적이지 않은 연출 방법을 활용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게임의 이야기는 수도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젊은 수녀 '인디카'의 이야기를 그린다. 물론, 그녀는 여느 수녀들과 같지 않다. 언제나 사탄의 목소리가 그녀의 신앙심을 시험하고 있으며, 그녀의 고뇌는 종종 다른 수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게임은 초반부부터 '인디카'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수도원의 모습, 동료 수녀들의 쌀쌀한 표정, 매일같이 반복되는 허드렛일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 이걸 무려 다섯 번이나 시키다니...

'인디카'의 보편적이지 않은 연출은 카메라 각도나, 배경 건축물의 디자인 등에서도 잘 나타나는 편이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인디카를 조작하는 '게임'이라는 측면을 연출의 요소로 활용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가장 몰입을 선사해야 하는 초반부부터 양동이에 물을 채우게 하는 데만 10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한다. 우물로 걸어가 양동이를 내리고, 다시 올려서 물을 채우는 과정은 플레이어가 직접 방향키로 조작해야 하고, 이를 다섯 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스킵을 하는 등 편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디카가 수도원 생활에서 느끼는 따분함을 플레이어에게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지루한' 연출은 없을 지도 모른다.

이토록 따분한 시간이 흐른 뒤, 사실상 수도원에서 '없어도 되는' 존재나 다름없는 인디카는 한 편지를 배달하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수녀장에게 뭔가 중요한 일을 받았기 때문이든, 수도원 나가 바깥 공기를 쐴 기회가 왔기 때문이든, 그렇게 주인공 인디카는 자신에게 허구헌날 말을 건네는 사탄의 목소리와 함께 여정을 나서게 된다.



▲ 기도하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

수도원을 나선 인디카는 얼마 안 가 여러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말 그대로 '기묘한 여정'을 겪게 된다. 왼팔이 거의 다 썩어 문들어진 탈영병, '일리야(Ilya)'를 만나 일련의 위기를 극복한 인디카는 그와의 선문답을 통해, 그리고 매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탄의 목소리를 통해 종교에 대한 의구심이 서서히 자라는 것을 느낀다.

사뭇 보편적인 발걸음을 따라가는 '인디카'의 여정은 앞서 언급한 보편적이지 않은 연출들이 가미되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본격적인 전투는 없지만, 여러 종류의 퍼즐을 풀어가며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개중에는 사탄의 목소리로 인해 주변 환경이 변화하는 것도 존재한다. 이 때 인디카는 기도문을 읊어 사탄의 목소리를 저항하는데, 이 과정 자체도 퍼즐 풀이의 요소로 활용되는 연출을 보여준다.



▲ 오드 미터 개발진 대부분은 건축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환경의 기묘함이 더욱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여정이 계속되며 마주치는 주변 환경도 마찬가지로 '보편적이지 않음'을 기반으로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진행된 해외 외신의 인터뷰에 따르면, 디미트리 스베틀로프를 비롯한 개발진 대다수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이들의 의도는 게임 속 건축물의 디테일이나 완성도보다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플레이어에게 '불편함'을 주려는 것 처럼 보였다.

인디카와 일리야의 여정이 후반부에 이르러, '생선 공장'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이 불편함은 더욱 격해진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크기의 물고기, 그만큼 거대한 통조림이 쌓여 있는 공장은 마치 주인공이 한 없이 작아졌다는 느낌을 받게 하기도 한다.




게임으로서 '인디카'는 대략 3-4시간 정도 분량의 워킹 시뮬레이션 장르를 생각하면 대충 맞다. 하지만, 개발사 오드 미터는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에 기반한 영화적 연출에 도전한다. '영화 같은' 게임이지만, 영화보다는 게임에 더 가까운 형태로.


"포인트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진짜 없다니까요?"



▲ 일부 구간은 생각보다 더 순발력을 요구한다. 꽤 많이 죽었다.

'인디카'가 인상깊었던 점은 또 있다. 한 편의 독립 영화와 같은 분위기와 연출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동시에 영화이기를 처음부터 강하게 부정하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세상에 영화같은 스토리, 연출, 그리고 경험을 추구하는 게임은 무수히 많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 때는 "한 편의 영화같다"는 말은 게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 중 하나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을 직접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상호작용'은 게임이 가진 큰 장점이며, 이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오히려 영화보다도 더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디카'는 얼핏 게임 메커니즘이라고할 것이 거의 없는 '워킹 시뮬레이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여타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요소를 군데군데 집어넣고, 종국에는 그것의 정체를 밝히는 이야기 전개를 통해, 게임이라면 보여줄 수 없었을 법한 연출을 완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픽셀'은 이러한 '인디카'의 게임적 면모를 강조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전개는 섬세하게 만들어진 그래픽으로 되어 있지만, 인디카가 수녀가 되기 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은 마치 오래 전 오락기에서 즐겼을 법한 픽셀 그래픽의 미니 게임 형태로 다가온다. 이 구간에서, 또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전반에서 플레이어는 일종의 '포인트'를 보상으로 획득할 수 있고, 일정 포인트를 모으면 레벨업을 하며 스킬(로 보이는 무언가)를 찍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같은 게임 맞다.



▲ 그 밖에도 게임 플레이를 하며 픽셀로 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반을 만들어 놓은 게임은 기이하게도 플레이 초반부터 "그렇게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애쓰지 마라. 사실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강조한다. 개발자의 말을 믿고 별 생각 없이 스토리만 진행하는 것도, 아니면 여느 게임에서나 그랬듯 '뭔가 숨겨둔 게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곳곳의 종교 물품을 찾아 다닐지는 모두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몫이다.

포인트 시스템 외에, 퍼즐 구간의 경우에도 스토리 전개와 퍼즐 배치 사이에서 나름대로 고민을 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플레이어로서 풀 수 있는 퍼즐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수 없이 죽음을 맛봐야 할 정도로 순발력을 요구하는 퍼즐(?)이 존재하기도 한다. 플랫포머를 싫어하는, 그저 스토리만 맛보고 싶은 게이머에게는 어쩌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 갑자기 분위기 출발 드림팀

'인디카'의 게임적 요소는 사뭇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플레이어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방지턱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느닷없이 픽셀 그래픽으로 떠오르는 포인트는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고민을 함께 하고 있는 플레이어를 게임 밖으로 잠깐 빼내는 역할을 한다.

결국, 플레이어가 기를 쓰고 모으는 포인트는 무엇이었냐고? 글쎄. 게임을 클리어한 순간 까지도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일정 포인트를 얻으면 슬픔, 고통, 인내와 같은 스킬(?)을 찍을 수 있고, 이 스킬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더 많은 포인트를 얻게 해주는 것 뿐이다. 결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포인트의 정체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것을 '신앙심'에 빗댔다고 하는 주장에 공감을 표하는 편이다.

개발자가 게임 처음부터 보여주는 "포인트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오드 미터'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



▲ 누군가에게 불편할 연출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플레이어가 잔뜩 모아 온 쓸모없는 포인트와 마찬가지로, 인디카의 여정은 다소 허무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스팀 상점 페이지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 불가코프 등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의 작품을 '야만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을 보면, 작품 전반에 깔린 허무주의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말과는 상관없이 '인디카'는 허무하게 잊혀지기엔 아쉬운 타이틀이다.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종교적 딜레마, 윤리적 규범을 독창적인 스타일로 무덤덤하게 풀어나간 이번 작품은 러시아 개발사가 게임 개발 중 정부와 종교가 보여주는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이웃 나라로 떠나게 된 '스토리'가 합쳐지며 비로소 완성된다.

게임에서 특정한 사상을 표현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게이머들은 그간 몇 차례의 예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상이 어떤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그 만큼이나 표현을 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같은 메시지라도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인디카'를 통해 보여 준 오드 미터는 앞으로 어떤 가려운 구석을 긁어낼까. 불편한 구석 보다는 그 연출 방법이 더 기대가 된다.



  • 초현실적 환경이 만드는 몰입감
  • 게임의 특성을 활용한 독특한 연출 기법
  • 불편하지만, 세련되게 전하는 보편적 메시지
  • 게임으로서는 부족한 콘텐츠 요소들
  • 다소 불친절한 일부 퍼즐 구간

리뷰 플랫폼: PC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