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블소2 RAID, 엔씨가 틀을 벗기 위한 시발점이기를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70개 |

지난 6월 12일, 블레이드&소울2가 'RAID'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모든 지역이 안전지대로 설정돼 PVP가 불가능한 레이드 서버 '이름 없는 자'를 추가하고 해당 서버에 신규 유저 점핑 지원 및 각종 장비를 얻을 수 있는 패스를 마련한 것이 핵심이었다.

MMORPG에서 성장을 위한 신규 서버 추가는 연례행사 같은 일이긴 하다. 특히 '리니지라이크'는 각 서버마다 고착화된 서열과 구도를 바꾸기 위해 신규 서버 추가나 서버 이전을 줄곧 사용해온 유형이다. 그럼에도 블소2 레이드 업데이트에 눈길이 간 이유는, 미약하게나마 '변화'를 준비하는 낌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블소2는 2년 전부터 '희생의 무덤'부터 시작해 '바다뱀 보급기지' 등 전작 블레이드&소울의 추억을 담은 던전을 선보였다. 전작과는 업데이트 순서가 좀 바뀌긴 했지만 '나선의 미궁'과 '핏빛 상어항'까지, 소위 블소의 전성기하면 떠오르는 던전들은 1차적으로 구비가 된 상태다. 그리고 그 던전들은 외양만 그럴싸하게 갖춰두고 자동전투로 클리어할 정도로 허술하게 만든 곳들이 아니었다.

물론 블소2는 합격기나 저항기도 없고 스킬 시스템도 블소 특유의 느낌과 사뭇 달라져서 전작 대비 액션에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긴 하다. 그렇지만 블소2 파티 던전에서는 패링과 긴급회피 등 블소2의 시스템에 맞춰 재구성한 패턴들로 던전을 공략하는 재미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시도들이 엿보였다. 혼자서 보스의 패턴을 공략하면서 여러 성장 재화를 얻는 '시련의 던전'은 한 차례 개편하고, 여기에 무신의 탑이 떠오르는 '무원의 탑'까지 추가하면서 컨트롤의 재미를 살린 콘텐츠의 비중을 한층 더 높여왔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블소2의 근본적인 한계를 완전히 고치진 못했다. 우선 앞서 언급한 콘텐츠 다수가 결국 '블소'의 추억에 의존하고 있다. 넘버링을 붙인 후속작이 전작의 요소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기본 짜임새가 상당히 달라진 상태에서 그 추억을 이식한 터라 거부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캐릭터 성장 과정과 스펙업 방법 대부분이 블소2 출시 당시 유저들이 충격받았던 그 방식이 기반이라 찍먹조차도 쉽지 않았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블소2에서는 작년부터 초반 지역인 수월평원도 리뉴얼하면서 스토리도 다듬었다. 그저 심부름꾼 혹은 적으로만 역할군이 구분됐던 NPC들에 더 세분화된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의 입을 빌려서 블소2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빠른 육성에 방해될 수 있어 최대한 배제했던 인게임 컷신도 좀 더 넣으면서 이야기를 풀고자 하는 노력을 보였다. 블소가 원체 스토리도 호평 받던 작품이니 그에 비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다. 리뉴얼을 하긴 했어도 출시 때 나왔던 이야기의 큰 틀 자체가 바뀐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러티브의 변화로 작중 인물들의 대립 구도와 앞으로 주인공 일행이 해야 할 '과제'에 대해선 이전 대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여기에 파티 던전 입장 레벨이나 아이템 개편 및 관련 이벤트도 진행, 다른 리니지라이크와 차별화된 재미를 어필하고자 해왔던 것이 블소2의 그간의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 멀어진 유저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부족했다. 어느 정도 퀘스트를 진행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파티 던전에는 입장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 스펙업을 위해 가게 되는 월드 보스나 주요 사냥 던전은 '통제'라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더군다나 월드 보스는 처치한 시간을 알아야만 리스폰 시간을 알 수 있는 게 이 장르의 전통이라 카운팅 방법을 아는 고인물들이 아니고서는 아예 노리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 전에 BM의 심리적 장벽도 있었다.

그 장벽을 허물고 그간 준비한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한 걸음이 레이드 업데이트였다. PVP를 막고, 필드 보스 출현 시간을 직접 시간표로 알려주면서 이권 독점을 위한 '통제'의 구도를 깨뜨렸다. 여기에 그간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게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수단인 신규 유저 점핑을 3월에 이어서 이번에도 진행, 스펙 업 부담감을 낮췄다. 그리고 블소2의 핵심 콘텐츠인 무원의 탑, 월드 보스 레이드, 시련 던전, 파티 던전 등을 클리어하고 다양한 보상을 얻는 패스로 어떤 콘텐츠를 플레이해야 할지 설계할 수 있게끔 했다.







블소2가 센세이션 그 자체였던 '블소'의 후속작으로 나왔던 만큼, 출시 초 유저들이 느꼈던 실망감과 배신감은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액션과 디자인을 모바일-PC 크로스플랫폼에서 다시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결국 나온 것은 전혀 다른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블소2 트레일러가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아트 스타일은 전작과 상당히 달랐지만, 그래도 '액션'을 강조하고자 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블소 프론티어 그리고 트릭스터M의 전철을 밟은 게 보였으니, 신뢰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신은 이후 엔씨소프트의 행보가 겹쳐지면서 더 커졌다. 급기야 여러 유저 커뮤니티에서는 엔씨소프트를 공적으로 여길 만큼 반감이 심해졌다.

이를 깨기 위해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 번째로는 컨콜에서 소개된 것처럼 다양한 장르의 신작 출시고, 두 번째는 특정 시점 이후로 잃어버렸던 '그때 그 시절의 재미'를 살리는 방향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엔씨소프트가 PC 게임에서 '클래식 서버'로 이미 자주 해왔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모바일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가 블소2 레이드 그리고 그 이후에 리니지M의 에피소드 제로 업데이트인 셈이다.






▲ 레이드 업데이트 전부터 스토리에도 힘을 싣는 연출과 보스전 패턴까지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물론 블소2는 첫 단추가 잘 끼워지지 않았으니, '그때 그 시절'의 범주를 더 이전으로 잡아야 하긴 하다. 블소2의 '클래식'은 앞서 말한 그 망국과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전인 블소 때의 그 재미를, 블소2의 틀로 재구성하면서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 '블소2 레이드' 업데이트에서 목표하는 방향일 것이다. 그러기 위한 준비는 때로는 엇나갈 때도 있고 역행할 때도 있었지만, 3년에 걸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전작과 동일한 수준의 재미까지는 아니더라도, 3년 전 출시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그 시절의 재미에 비교적 가까워지고자 하는 것이 눈에 띈다. 그 준비한 것들을 좀 더 접근성 좋게 풀고자 이전에 잘 시도하지 않은 방법까지 나름대로 과감하게 동원한 것도 고무적이다. 중국 출시를 위해 준비한 것도 있겠지만, 블소2 출시 무렵만 해도 판호가 잘 안 나왔으니 그게 모든 이유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 직후인 13일, 엔씨소프트는 블소 기반의 신작 '프로젝트 BSS'의 정식 명칭을 '호연'으로 확정하고 하반기 출시를 예고했다. 블소2에서 그간 쌓아온 빌드업에 촉매제를 더한 업데이트에 이어 블소 IP를 바탕으로 한 신작을 정식으로 보여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지만, 블소가 엔씨소프트의 혁신을 보여줬던 작품인 만큼, 이 IP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로 그간 변하기 위해 준비해온 것들을 조금씩 풀어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기반부터 기대와 어긋난 나머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변해온 과정과, 그간 엔씨소프트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을 준비하는 과정을 나란히 보여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 블소2 레이드 업데이트 직후 타이틀명이 확정 발표된 블소 IP 신작 '호연'

한때 독보적인 퀄리티를 보였던 엔씨소프트,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작품이 블소인 만큼 이 IP 기반 작품들의 일련의 과정들이 썩 눈에 차진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엔씨소프트의 현 상황도 썩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10년마다 큰 위기를 겪고 그때마다 반전을 보여줬다는 엔씨소프트의 사이클이 과연 이번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증권가에서조차도 의문을 표할 정도다. 이런 난관을 돌파할 대작들의 출시는 내년으로 예정된 만큼, 아직 '변화'라는 말을 입에 담기에는 시기상조이기도 하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말조차도 꺼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그 변화를 물밑에서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 블소2 업데이트를 통해서 그 실낱 같은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신뢰를 이야기하기엔 한참 부족하겠지만, 티끌만한 것이라도 조금씩 증명해온 것이 아예 손을 놨던 것보다 낫지 않을까. 업을 털고 내년의 대도약을 위한 기틀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부진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일지 6월부터 차츰 시작하는 엔씨소프트의 변화의 행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