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즌이 왔습니다. 이 시즌이 되면 가장 많이 듣는, 그리고 하는 질문이 있죠. "올해 제일 재미있게 한 게임이 뭔가요?"
사실 매년 여기에 대한 답을 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잘 만들어진, 그것도 제 취향인 게임이 매년 몇 개는 나왔었고, 그 중 하나를 고르기란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올해는 확실한 '하나'가 있습니다.
‘아스트로 봇’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느껴지는 듀얼센스의 촉감에 놀랐고, 플레이하는 내내 새로운 테마에 놀랐으며, 플레이하는 내내 플랫포머로서, 그리고 게임 자체로서의 완성도에 다시 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놀라웠던 건, ‘게임 그 자체로서의 온전한 재미’였습니다.
복잡한 조작, 과하게 어려운 난이도, 매 스테이지 똑같은 시스템, 이런 모든 것들을 아스트로 봇에서는 느껴볼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게임을 게임으로서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참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었죠.
팀 아소비의 니콜라스 두셋 스튜디오 헤드&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이런 게임 자체로서의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스트로 봇이 마치 ‘장난감’ 처럼 유저들에게 다가가길 바랐죠. 지난 두 번의 인터뷰를 통해 그러한 철학이 정말 진심이라는 것 역시 느껴졌고요.
이번 지스타 2024에서 다시 만난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는 다시 한 번 그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게임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료한 뒤에도,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반복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게임이 ‘장난감’이 되는 순간이라고요. 마치 어린 시절, 같은 일을 재미있기에 계속 반복하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에서 단순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감각은 게이머가 아닌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스트로 봇을 통해 많은 유저들이 그런 단순하지만 행복한 감각을 경험하며 게임을 즐겼죠.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는 이러한 아스트로 봇의 특징이 유저들에게도,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 데 기여한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
“조작감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어요. 캐릭터가 움직이자마자 느껴지는 조작감은 참 중요하지만, 맞추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디테일한 부분들을 통해 유저들이 게임에서 작은 즐거움들을 느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조작감 외에도 유머, 음악, 밝고 신선한 분위기, 이런 가볍고도 작은 요소들이 아스트로 봇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유저들에 그에게 보낸 피드백 중에는 이런 ‘장난감’과 같은 요소에 대한 것도 실제로 있었습니다. 특히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고, 매번 반응이 오는 것이 인상 깊었다는 내용이 많았죠.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는 이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습니다. 게임의 목표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활동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요소를 적용하면 유저들의 게임 경험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축구 경기장에서 공을 차서 골을 넣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지만, 공을 가지고 그저 재미있게 놀 수도 있잖아요. 게임을 장난감처럼 접근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에요. 그리고 이는 우리가 앞으로도 유지할 철학이기도 합니다.”
아스트로 봇의 특징적인 부분들은 더 있습니다. 플랫포머라는 클래식한 장르임에도 뭔가 새롭게 느껴진다는 점이죠. 그리고 메인 스테이지의 경우 과하게 어려운 맵 디자인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클래식한 플랫포머 장르에 새로운 요소들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과 완성도 두 가지를 모두 잡아냈죠.
“플랫폼 게임은 점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점프할 때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착지할 때의 리듬과 템포가 중요해요. 그 리듬이 잘 맞으면 기분이 정말 좋죠. 그리고 점프를 통해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 그게 바로 플랫폼 게임의 스릴과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팀 아소비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점프할 필요 없이 평탄한 길이 이어지면 그 구간을 ‘걷기 시뮬레이터’같다는 말을 나눴다고 합니다. 그런 구간은 뭔가 재미도 덜 했고요.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는 플랫포머가 재미있으려면, 점프에서 오는 리듬과 멜로디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점프하기도 하죠. 이건 아이들이 큰 이유 없이 계속해서 뛰어다니는 걸 보는 것과 비슷해요. 어쩌면 인간은 새가 되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아스트로 봇이 재미있는 건 이런 플랫포머로서의 높은 완성도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아주 특별하고, 또 독특한 강화 요소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테이지는 ‘스펀지’ 스테이지죠. 물을 머금어서 커졌다가, 다시 물을 뱉어내면 줄어드는 방식인데,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듀얼 센스의 촉감이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요.
아스트로가 아주 귀여운 쥐의 모습으로 변하는 스테이지 역시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간이죠. 순식간에 작아졌다가, 다시 커졌다가, 다이나믹한 즐거움이 가득하거든요.
하지만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가 가장 좋아하는 건 초반부의 공사 현장 스테이지를 비롯해 템포가 빠른 스테이지입니다. 이는 그가 언급한 플랫포머의 재미와도 연결됩니다. 점프의 흐름이 잘 맞아떨어지기에 플랫포머의 핵심적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제 팀 아소비는 다음 스텝을 위해 다시 프로토타입 단계로 돌아가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예정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 일찍 결정되면 생각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다양한 시도를 한 뒤,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하게 되면 그 요소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게임의 색을 만들어나갈 겁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우리는 우리에게도 놀라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유저들은 팀 아소비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할 겁니다. 그들이 온전한 하나의 타이틀, 그것도 너무나 대단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는 팀 아소비만의 가치, 마법적이면서도 혁신적이고 즐거운 것들을 만드는 그 가치를 지키며 계속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유저들 역시 팀 아소비가 뭔가 더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놀라움을 주길 바라고 있죠.
“정말 중요한 것은 저희가 전달할 감정을 통해 사람들이 비디오 게임에서 감동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요.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삶에서 기억에 남는 게임을 만드는 거죠. 이런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플랫포머가 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장르일 수도 있어요. 아스트로가 잘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것만을 반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팀 아소비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요.”
인터뷰 전,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는 지스타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이 종료된 뒤에는 아스트로 봇을 즐겁게 플레이한 많은 유저들이 줄을 서서 그와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 한국 유저들에게 니콜라스 두셋 디렉터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한국에 다시 올 수 있게 되어 정말 너무나 기쁘고, 아스트로와 PS5에 대한 한국 유저분들의 열정을 보면서 겸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한국에 오면 항상 고향인 프랑스와 연결된 느낌이 듭니다. 일본에 살고 있지만, 저는 프랑스 출신이거든요. 신기하게도 한국에서는 고향 문화와 조금 더 직접적인 연결이 느껴져요. 그래서 정말 편안한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