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기] 로그라이크 덱빌딩도 전열을 가다듬고 퍄퍄퍄, '프로스트 바운드'

게임소개 | 윤서호,윤홍만 기자 |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히트 이후부터 인디 게임계에서 '로그라이크 덱빌딩'은 단골 메뉴로 자리잡았다. 규모가 작아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리소스 부족 문제를 무작위성으로 커버할 수 있고,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을 바탕으로 최후의 순간에 카타르시스를 터뜨리는 맛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확실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여러 인디 개발자들이 도전해왔지만, 비슷비슷한 작품 사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긴 어려웠다. 그렇기에 후발주자들은 각자의 개성을 어떻게든 입혀서 그 혹독한 잣대에서 합격점을 받고자 아둥바둥하는 중이다.

이처럼 수도 없이 피고 지는 로그라이크 덱빌딩 중, 중국의 인디 개발팀 라이라 스튜디오에서 제작 중인 '프로스트 바운드'가 차이나조이 2025 현장에서 눈에 띄었다. 세계관 설정 자체는 흔했다. 유저는 변경의 영주가 되어서 31일 동안 물밀듯이 밀려오는 겨울의 군세를 막아내야 하고, 이 과정을 로그라이크 덱빌딩으로 보여준 것이 '프로스트 바운드'의 설정이다.

그런 대략적인 설정보다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들이 구현해낸 전장과 필드가 인상적이었다. 소위 고전 전투를 두고서 '라인 배틀'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는 정해진 라인에 맞춰서 대열을 전개하고, 그 대열이 차츰차츰 무너지면 결국 패하는 그 옛날 전투의 구도를 일컬은 말이다. 당장에 근대만 하더라도, 소총병이 나란히 대열을 유지한 채 총격을 주고받는 장면이 떠오를 거다. 어느 누가 쓰러져도, 그 뒤에 있는 누군가가 바로 충원해서 대열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던가. 그 대열이 무너지는 순간, 패색은 겉잡을 수 없이 짙어지는 것이 근대까지의 전투의 양상이었다.

'프로스트 바운드'는 그런 라인 배틀의 묘미를 TCG식 필드에 변칙적으로 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통상 TCG라고 하면 6시와 12시 방향의 대치 구도가 일반적이지만, 이 게임은 3시와 9시 구도 즉 종이 아닌 횡으로 펼쳐두고는 더 넓어진 구간에 세로 라인을 여러 곳에 배치해두면서 라인 배틀의 구도를 설계했다.



▲ 좌측 아군 사령탑이 뚫리면 해당 전투는 패배로 끝난다. 반대로 유저는 몰려오는 적들을 전멸시켜야만 승리한다

TCG에 라인배틀이라는 구도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으니, TCG 중에서 가장 캐주얼한 편에 속하는 '하스스톤'을 예로 들어보자. 하스스톤은 소위 '명치'라 불리는 영웅이 뒤에 있고, 그 앞에는 하수인이 배치될 수 있는 필드가 한 줄 있다. 그 필드 라인이 '프로스트 바운드'에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줄이다. 그리고 그 줄을 확보해야 앞에 있는 줄로 진격할 수 있다. 즉 하스스톤에서는 하수인들이 명치를 때리려면 바로 맞은편의 하수인을 치우면 됐지만, '프로스트 바운드'는 그 명치 앞 라인까지 어찌저찌 전진해야만 그게 가능했다. 적은 그 명치를 치기 위해 전진하는 만큼, 이를 최대한 막아내면서 적의 군세를 전멸시키는 것이 '프로스트 바운드'의 게임 방식이었다.

으레 로그라이크 덱빌딩의 처음이 그렇듯, 첫날의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본 병사 카드를 깔아서 적의 진격을 잠시 막고, 스킬 카드를 쓰거나 혹은 궁수를 후열에 배치해서 진격해오는 적을 저지하면 쉽게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점 시일이 지날수록 적의 공세는 더욱 강력해졌고, 그에 맞춰서 상점에서 유용한 카드를 구매하거나 그때그때 매번 다르게 나오는 주사위의 운, 혹은 이벤트의 종류에 일부 의존해서 덱을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통상 로그라이크 덱빌딩은 지정된 분기점에 따라서 적을 피하거나 마주할 수 있지만, '프로스트 바운드'는 조금 달랐다. 하루에 최대 3의 행동력 소비가 가능하고, 행동력이 0이 되는 순간에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이 다음날로 턴을 넘겨야 한다. 그리고 전투 이후에 일정을 카운트하는 화면도 동일하게 라인으로 구현이 되어 있어서, 적 최초 출현 후 최대 이틀까지는 전투를 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3열로 구성된 성 앞의 라인을 돌파하기까지 이틀이 걸리고, 성문 직전에서 이를 어찌저찌 처리하면 무방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성앞에 들이닥친 적을 처리하지 못하면 그대로 함락, 게임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즉 그 과정까지 오기 전에 미리 고전해서 몰아내느냐, 혹은 온 힘을 집중한 최후의 항전 한 번으로 몰아내느냐도 시원하게 몰아내느냐는 유저의 선택에 따라 달린 셈이다.



▲ 여타 로그라이크 덱빌딩처럼 전투 후에 무작위 분기점이 등장



▲ 각 상황에 맞는 선택지를 고르거나



▲ 전투에서 얻은 자금으로 카드를 보강하는 익숙한 구조다



▲ 다만 행동력이 0이 되면 전투도 없이 턴을 넘길 수밖에 없고



▲ 그 적이 최전선 라인까지 뚫고 성으로 진입하면 게임오버, 행동력 배분을 잘 해서 적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이러한 구도는 첫 일주일 정도만 이어졌다. 병사와 방패병, 궁수, 창병, 감독관 등 기본 카드와 각종 스킬 카드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 적들이 다소 느슨하게 배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꿀 같은 첫 주말을 맞은 뒤에 접하게 되는 전투 주간은 상당히 낯설었다. 처음부터 한 번에 저지할 수 없는 강적이 등장하고, 그 진격을 최대한 늦추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악전고투가 기다렸기 때문이다.

이미 첫 주말 시점부터 각종 특수 효과로 무장한 엘리트 카드가 여러 장 주어졌던 만큼, 이 부분은 충분히 예견되긴 했다. 그 중 하나인 '아우렐리아'는 턴 종료 후에는 핸드로 돌아가면서 공격력이 올라가고, 그 턴 안에 하수인 카드를 낼 때마다 앞 라인에 있는 적에게 현재 공격력 만큼의 피해를 주는 카드였다. 또다른 엘리트 카드 '헬렌'은 스킬 혹은 원거리 공격으로 적을 타격할 때마다 해당 적에게 자신의 공격력만큼 추가타를 먹이는 형태였다. 즉 토큰과 스킬, 원거리 공격으로 추가타를 연계해 필드를 정리할 수 있는 키카드들이 들어온 셈이었다.



▲ "이 사과를 네 머리 위에 올려놔"와는 좀 다르긴 해도, 체력 높은 덱을 상대로 힘든 건 비슷할지도?



▲ 첫 주가 끝나고 2주차부터 적들의 물량공세가 쭉 이어지니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프로스트 바운드'는 사정이 달랐다. 라인이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이었고, 그 여러 줄에 거쳐서 몰아치는 적을 한꺼번에 처리하기에는 퍄퍄법사식 트리와 위니흑마식 단검곡예사 운영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퍄퍄법사와 위니흑마 단검곡예사는 적이 매 턴마다 필드를 꽉꽉 채우는 적이나, 거인급 이상의 체급을 초반부터 내놓는 걸 상정한 덱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주말이 끝나자마자 적이 갑자기 체력이 100 이상 되는 하수인들을 줄줄이 소환하기 시작했다. 공격력이라도 약하면 모를까, 어지간한 잡졸은 한 번에 죽을 만큼 강력한 소환수 앞에서 전장은 급히 뚫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대한 라인을 버티면서 후열을 지키는 운영이 필요했다. 무작위 적을 기지 최후방에서 타격 가능한 투석기, 적을 처치할 때마다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특정 사수로 후열을 배치한 뒤, 아우렐리아와 창병을 최전방에 배치하면서 최대한 적의 전진을 막았다. 엘리트 카드들은 처음부터 강한 카드가 아니라서 허무하게 퇴장했지만, 특정 조건에 맞춰서 최대한 적에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 틈에는 코스트 카드로 펌핑한 뒤, 점령당한 라인 바로 뒤에 최대한 하수인을 깔면서 전진을 늦추는 플레이로 시간을 버는 카드를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 빛을 발했다.

물론 로그라이크 덱빌딩 보스전이 으레 그렇듯, 중간중간 꽤나 높은 스펙의 하수인들이 등장했다. 그 하수인의 변수를 예상하지 못해서 브로큰애로우를 요청할 선까지 전열이 뚫렸지만, '프로스트 바운드'는 그런 상황까지 고려해서 역전의 수단을 마련했다. 승전을 쭉 이어온 군세는 그 승리에 취해서 진을 길게 치게 되고, 그 틈을 노려서 허리를 끊어버리는 것이 대항군의 오랜 전술이지 않던가. 그 구도가 '프로스트 바운드'에서도 절묘하게 이어졌다. 적이 신나게 본진 바로 앞까지 진격하는 순간, 적진 어딘가에 빈 라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 궁수와 투척기 배치해둔 최후방까지 뚫리다니 비상 초비상



▲ 어찌저찌 버티는 동안, 적의 후방이 비어있는 것을 포착



▲ 궁수만으로 후방 기습이라니 뭔가 좀 아귀가 안 맞지만, 적이 다행히 돌격 앞으로만 알아서 묘수가 되어버렸다



▲ 물론 적도 원거리 공격으로 대처할 수도 있으니, 필드의 카드는 확인해서 수를 둘 필요가 있다

물밀듯이 밀고 들어온 겨울의 군세에 항복하기 직전, 적 후방의 빈 전열을 본 순간부터 희망의 불씨는 타올랐다. 예로부터 모든 군대는 전방과 후방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포위 공격에 약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앞에 보이는 건 어찌저찌 대처가 되어도, 후방 공격은 대처가 늦어져서 정신을 차리기 전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방에 유격궁수와 헬렌을 배치한 뒤, 스킬 카드와 조합해 체력이 빠진 적을 차례차례 요격한 순간부터 승산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적들은 체스의 폰처럼 전진밖에 못하기 때문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카드를 제거하면 적의 후방을 기습한 아군 카드를 타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 시점에는 사령탑 코앞까지 다가온 적을 막아내기에 급급해서 전열 카드들을 적의 뒤에 텅 빈 라인에 배치할 생각을 못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적의 원군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포위작전을 펼치는 작전을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엘리트 카드나 각종 연계가 완벽히 구현된 건 아니라서 빌드가 다소 제한됐지만, 그 상황에서도 '프로스트 바운드'는 로그라이크 덱빌딩 특유의 머리싸움과 설계의 맛을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실제로 영상 막바지의 전투는 닥터 스트레인지마저도 가망이 없다고 할 것 같았는데, 막판에 허점을 겨우 캐치해서 짜릿한 역전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프로스트 바운드'는 이번 차이나조이뿐만 아니라 BIC에도 참가하는 만큼, 로그라이크 덱빌딩을 좋아하는 국내 유저라면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되는 BIC 2025에서 직접 체험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 함락 직전에 유격 작전과 초반부터 꾸역꾸역 먹여둔 버프에 힘입어 역전승을 거두는 쾌감, BIC에서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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