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스컴 국가관은 외교다

올해 게임스컴에는 67개국 1600여 개 기업이 참가했다. 전시면적 23만 3000㎡로 쾰른메세를 거의 다 채웠고, 참가 규모는 역대 최대다. 이 숫자를 채우는 것은 물론 기업이다. 각 회사가 자기 게임을 전 세계 이용자와 바이어 앞에 내놓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경쟁한다. 그런데 이 민간의 각축장 위에는 또 하나의 층이 있다. B2B 국가관이다.



국가관 사진들은 모두 같은 시간에 촬영했다 ©INVEN

국가관을 꾸린 나라들이 하는 말은 똑같다. "우리 게임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표현과 연출은 제각각이지만 메시지는 하나로 수렴한다. 여기까지는 지원 사업으로 읽힌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게임은 여가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풀리지 않은 나라는 게임산업 진흥을 국가 의제로 올리기 어렵다. 즐거움을 찾는 일, 놀이의 산업화는 그다음 순서다. 어떤 나라가 국제 무대에 나와 "우리 게임에 투자하라"고 말하는 것은, 자국이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국가관은 산업 홍보관인 동시에 국가의 발전 단계와 여유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국가관은 외교다.

외교는 교류이지만 경쟁이기도 하다. 국가관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은 협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바이어의 시간을 나눠 갖는 구조다. 한 나라의 부스 앞이 붐빈다는 것은 옆 나라 부스가 그만큼 조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가관은 외교의 형식을 빌린다. 프랑스가 그렇다. 비즈니스프랑스가 운영하는 프랑스관에서는 에티엔 쉬르 프랑스 총영사가 참석하는 리셉션 조찬이 열렸다. B2B 전시장 부스에 외교관이 나와 손님을 맞는 구조다.



프랑스 국가관 ©INVEN

프랑스관이 게임만 내보내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엔진과 미들웨어, 사운드, 로컬라이제이션, 교육까지 게임을 둘러싼 서비스와 인프라 전반이 '파비용 프랑스'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여 나온다. 게임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나라를 파는 방식이다. 여기에 지역별 수출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 비용의 최대 절반까지 지원하는 재정 설계가 붙는다.

올해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국가관은 브라질이다. 브라질게임개발자협회는 수출·투자진흥기관 아펙스브라질과 함께 78개 스튜디오·기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이끌고 왔다. 여기에 브라질관광청과 중소기업지원기관 세브라에, 상파울루 시·주 단위 창업지원기관까지 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브라질이 게임을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말해준다. 게임을 국가 이미지 자산으로 본다는 뜻이다. 배경에는 제도 정비가 있다. 브라질은 제도를 정비해 개발·유통·상업적 이용을 규율하고 투자 유치와 세제 유인을 함께 넣었다. 국가관은 그 정책의 전시장이다.

현장에서 브라질 부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관의 성과가 결국 사람 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오프닝 나이트 라이브(ONL)에서 영상 하나의 성패가 객석의 환호성으로 읽힌다면, 국가관의 성패는 부스 앞에 몇 명이 서 있느냐로 읽힌다. B2B 전시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곳의 모객 대상이 일반 관람객이 아니라 퍼블리셔와 투자사, 플랫폼 담당자, 해외 매체일 뿐이다.



브라질 국가관 ©INVEN

사람이 모이는 국가관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든 모은다. 리셉션을 열고 가벼운 술을 내놓고 다과를 돌린다. 상담 테이블 사이를 걷던 바이어의 발길을 붙잡을 장치를 만든다. 사람이 모이는 만큼 그 안에 들어간 기업의 노출이 올라간다. 노출이 곧 지원의 효과다.

B2B 공동관의 성과는 상담 건수와 상담액으로 측정하니 부스 앞 인파는 목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은 국가관을 부스 임대 대행 사업으로 축소할 때의 이야기다. 국가관이 추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는 매칭 목록에 없던 사람이 우연히 발을 멈추는 순간에 있고, 그것이 브라질과 프랑스가 설계한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올해 한국관은 대문자 E들 사이에 낀 소문자 i 같았다.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라 아쉽다는 말이다. 일단 조용했다. 부스는 정돈돼 있었고 상담은 진행됐다. 다만 그 앞을 지나는 사람의 걸음을 붙잡는 장치는 눈에 띄지 않았다. 단순히 자리를 마련해준 것과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의 차이다.

물론 모객의 차이를 부스 조건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예산이 곧 부스 면적이고, 면적은 동선상의 노출과 직결된다. 홀 안에서 어디에 배정되느냐, 주 통로에 면해 있느냐에 따라 지나가는 사람의 수부터 달라진다. 국가관 운영기관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변수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면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부스 면적을 정하는 것은 예산이고, 예산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이 사업을 어느 순위에 놓느냐다.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협상이고, 협상은 몇 년치 참가 이력과 대표단 규모가 만든다. 브라질이 78곳을 데려온 것도, 프랑스가 게임 인접 산업까지 한 이름으로 묶은 것도 한 해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조건이 결과를 만든 것이 아니라, 관심이 조건을 만들었다. 게임 대 게임으로 붙는다면 한국관 출품작이 브라질 출품작에 밀릴 이유가 없다. 브라질 게임 시장은 연 26억 달러 안팎으로 세계 10위권이고, 한국 게임산업의 연간 수출 규모는 그보다 크다. 산업의 체급이 앞서는 쪽이 국가관에서는 뒤에 서 있다.



한국관 ©INVEN

국가관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느냐의 차이다. 경쟁의 무대로 보는 나라와 지원의 창구로 보는 나라는 같은 홀에서 다른 일을 한다.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글로벌에 집중하겠다며 새로 관심을 두는 시장으로 브라질을 꼽았다. 한국 게임사가 남미를 다음 시장으로 보는 동안, 그 시장의 정부는 쾰른에서 78곳을 데리고 왔다. 어느 쪽이 상대의 관심을 자국 산업의 자산으로 바꾸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필요한 것은 예산 증액 요구가 아니라 정의의 재설정이다. 국가관을 중소기업 해외전시 지원 사업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외교 사업으로 옮겨 놓으면 설계가 달라진다.

올해 국회가 처음으로 게임스컴 현장을 찾았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김성회 의원,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참관단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들이 쾰른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우리 게임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다. 확인해야 할 것은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놓고 겨루고 있었는지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