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빠 시절 호러 게임의 맛, '시그널리스'

리뷰 | 김규만 기자 | 댓글: 5개 |

신선한 세계관에 담아낸 익숙한 장르의 문법



독일의 인디 게임 개발사, 로즈 엔진(Rose-engine)의 서바이벌 호러 게임 '시그널리스'가 약 4년 간의 개발 끝에 정식 출시를 알렸습니다. 지난 6월 스팀 넥스트 페스트 등의 기회를 통해 데모 버전이 많은 게이머에게 알려진 뒤, 서바이벌 호러 장르 팬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인지도를 쌓아올린 작품입니다.

정식으로 출시된 '시그널리스'는 스팀 상점 기준 20,5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PS와 Xbox 같은 콘솔은 물론 닌텐도 스위치에서도 플레이 가능합니다. 또한, Xbox 게임패스에 입점해 있기에 게임패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구매 없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네다섯 시간 분량의 적당한 플레이타임 속에는 몰입감 있는 신선한 세계관과, 기존 장르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이 담겨 있었습니다.



게임명: 시그널리스(Signalis)
장르명: 서바이벌 호러
출시일: 2022.10.27
리뷰판: 1.0
개발사: Rose Engine
서비스: Humble Games, PLAYISM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Steam)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무겁고 습한 분위기 속, 호기심 부르는 SF 세계관

과거 공개된 약 20-30분 분량의 데모에서는 레플리카(특수한 목적으로 생산된 복제인간)인 주인공 '엘스터(LSTR-512)'가 난파된 우주선에서 깨어나, 자신의 파트너를 찾아 우주선 곳곳을 탐색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본작에서는 우주선 내부의 동선이 생략되어, 데모 구간 이후부터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그간 게임을 기다려 온 이용자들을 위한 배려로 보여집니다.

사실, 시그널리스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정립한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은 과거 데모 버전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개발사 로즈 엔진은 이러한 장르적 문법을 바탕으로, 게이머가 충분히 몰입 가능한 세계관과 레벨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게임에는 주인공 엘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레플리카들 외에도, 일반적인 인간을 지칭하는 '게슈탈트'나 국가의 위반하는 사상/행위를 감시하는 '프로테크토르' 등 상당히 생소한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세계관의 윤곽은 게임 플레이 도중 입수하는 텍스트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시작부터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 튜토리얼부터 등장하는 책 '황색 옷의 왕', 코스믹 호러적 전개를 암시합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데모를 플레이할 때만 하더라도 '시그널리스'가 여느 SF 장르와 마찬가지로 복제인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클리셰를 내포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점차 세계가 드러날수록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점입니다. 특수한 목적을 띄고 강화된 신체를 가진 레플리카들이 오히려 각광받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인간(게슈탈트)들은 광산의 노동자로 보내져 열악한 조건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여러모로 음침한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게임은 주인공 엘스터가 자신의 파트너인 게슈탈트를 찾아 도착한 시설을 탐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해당 시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상태였고, 인간으로부터 시작한 이 전염병이 강화된 신체를 가진 레플리카에게도 증상을 발현시키며 문제는 걷잡을 수 없어졌습니다. 주인공은 바이러스로 인해 변형된 레플리카들을 상대하며, 시설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어두운 SF 세계관에 더해, 마치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구형 기계들로 이뤄진 퍼즐은 취향이 맞는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같은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게임 진행 중간중간 등장하는 1인칭 형태의 스토리 전개는 세계관 속 배경을 더욱 심도 있게 확인할 수 있게 하며, 길지 않은 플레이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편입니다.



▲ 시작 누르면 두둥! 하는 것도 '바이오하자드'와 판박이


서바이벌 호러의 왕도를 따르는 게임 디자인

게임플레이 관점에서 '시그널리스'는 앞서 언급한 대로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큼 강하게, 또 확실하게 기존 서바이벌 호러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주인공 엘스터의 눈을 강조한 메인 메뉴 화면부터, 클래식 '바이오하자드'시리즈에 대한 오마쥬처럼 다가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서바이벌 호러의 문접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은, 곧 이 게임이 한정된 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여러 가지 잠긴 문을 퍼즐을 통해 풀며 진행해 나가는 도중, 점진적으로 지름길이 열리며 동선을 단축하는 구조로 되어있음을 뜻합니다. 게다가 일부 방에는 세이브포인트와 함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상자가 놓여 있으며, 이 곳에서는 적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불문율(?)까지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 클래식 호러 팬에게는 맵마저 익숙합니다

비주얼 또한 클래식 서바이벌 호러를 계승하고자 하는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전체적인 비주얼은 마치 PS1시절 어드벤쳐 게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꽤나 디테일한 도트 그래픽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게임의 매력이죠. 의미를 알기 힘든 한자와 영어가 공존하는 UI 디자인과 전체적으로 화면이 튀는 듯한 연출은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과 어우러져 불편함 없이 몰입이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여러 기능적인 측면에서조차, 과거 서바이벌 호러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요소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주인공이 최대로 소지할 수 있는 물건의 갯수는 6개를 넘을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새로운 아이템을 입수하게 되면 무조건 세이브 지점까지 달리는 것이 일상인 수준입니다. 거기에 특정 아이템을 이리 저리 조사해 키 아이템을 입수하거나, 아이템을 서로 조합해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해 열쇠로 사용하는 등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스템은 거의 다 적용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세이브 포인트

한 번 쓰러뜨린 적들이 다시 일어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다 액션에 치중하기 이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이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데, 행여 상대하게 된다면 아까운 총알을 그만큼 소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적을 상대하지 않고 지나치며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강요되는데, 이 또한 과거 서바이벌 호러 장르에서 주류로 떠오른 플레이 스타일이기도 하죠.

위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이처럼 '시그널리스'는 자칫 아무런 발전 없이 과거의 문법을 그대로 활용한 인디 호러 게임이 될 수 있었지만, 독특한 세계관과 스토리 전개를 통해 차별화를 꾀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새로움이 덜하지만, 고전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에게는 그 익숙한 맛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 전투의 손맛도 예스러움을 간직했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불편함마저 충실히 계승해 버린 '예스러움'



▲ 한국어도 깔끔하게 들어가 있는 점은 인상깊었지만

물론,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 고전 서바이벌 호러의 시스템이 단점 하나 없이 완벽한 구조인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해당 시스템의 선구자 격인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프랜차이즈의 쇄신을 위해 여러 차례 혁신을 꾀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고전 호러 서바이벌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게이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현 세대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사항을 모두 갖추지 않은 '시그널리스'는 호불호가 크게 나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동 저장도 없고, 인벤토리는 여섯 칸밖에 되지 않아 매번 상자를 찾아가야 하고, 퍼즐은 또 어찌나 친절하지 않은지. 이 모든 것들은 개발사가 '클래식 호러 게임의 문법을 현 세대에서 재현한다'는 의도에 고개를 끄덕이는 입장에서나 용인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은 게이머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구조입니다.

따라서, 클래식 서바이벌 호러 게임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게이머라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게이머라면 불호의 영역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시그널리스'의 세계관을 탐허해보고자 한다면, 과거에도 이미 수차례 검증된 시스템인 만큼 재미는 보장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퍼즐까지도 너무 옛 것을 추구한 건 아닐지?






클래식한 호러 게임 콘셉트를 유지한 채 완성해 낸 개발사의 관점에서 '시그널리스'는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인디 게임입니다. 비록 과거와 다른 신선한 시스템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만큼 클래식한 맛을 살려내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와 코즈믹 호러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스토리 전개는, 취향은 조금 타겠지만 매력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본편의 플레이타임이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각종 텍스트를 통해 세계관을 더욱 이해하거나, 몇가지 분기로 나뉘는 멀티 엔딩을 모두 보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2만원 대의 가격대를 생각하면 상당히 몰입감 넘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게임이기에, 서바이벌 호러를 좋아하는 게임패스 구독자라면 한 번쯤 플레이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 완벽히 계승한 클래식 서바이벌 호러
  • 몰입감 넘치는 세계관과 조화로운 UI
  • 디테일하게 살려낸 그 시절 그래픽
  • 그대로 가져와 버린 불편한 요소들
  • 여러 번 봐야 이해하는 복잡한 전개
  • 다소 불친절함이 느껴지는 그 시절 퍼즐들

리뷰 플랫폼: PC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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