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업계 3번째 노조 '엑스엘 리부트'가 설립된 이유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15개 |
14일 오전 9시 30분, 판교 네오위즈 사옥 앞에서 엑스엘게임즈 노동조합 '엑스엘 리부트'가 설립을 알렸다. 엑스엘 리부트는 카카오노동조합 '크루유니언' 산하 분회로 있다. 리부트 진창현 분회장은 출근하는 엑스엘게임즈 직원들에게 가입원서를 건네며 활동을 시작했다. 넥슨노조, 스마일게이트노조, 카카오노조, 네이버노조가 함께 했다.

엑스엘게임즈는 '아키에이지', '달빛조각사'를 개발한 대표 개발사로, 지난 2월 11일 카카오게임즈에 인수됐다. 직원 수는 400명 이상이다.

현장에서 만난 진창현 지회장은 먼저 "노사가 함께 성장하는 엑스엘게임즈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리부트는 ▲포괄임금제 폐지, ▲프로젝트 폐지에 따른 고용 불안 해결 ▲유연근무제, 출퇴근 시스템 도입 등 노동자의 주요 권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 진창현 분회장

먼저 간략히 소개해달라.

= 엑스엘게임즈 진창현이다. 게임개발 경력은 14년이 됐다. 그동안 6개의 회사를 다녔고, 3번의 권고사직과 1번의 부당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노조의 필요성은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면서 노동자의 권리와 근로기준법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면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게임회사에도 노조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립 용기를 낸 건 넥슨노조가 생기는 걸 보면서다. 계속 엑스엘게임즈에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 우리가 용기를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실행했다.


지금의 엑스엘게임즈에 노조가 필요한 이유는 뭐였나?

= 과거 엑스엘게임즈에 노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키에이지' 개발팀에 있었을 적 불미스러운 일로 현재 스튜디오로 오면서다. 전환배치 과정에서 여러가지 불합리한 일들이 있었다. 나쁜 일을 겪다 보니 '노조가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생각만 했었다.

엑스엘게임즈가 카카오게임즈로 인수되면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3개가 드랍됐다. 그때 회사에선 희망퇴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희망퇴직 위로금은 한 달 치 월급뿐이었다.

그런데 희망퇴직 권고 3일 후 갑자기 회사에서 스튜디오를 유지하겠다고 다시 공지했다. 경영자 말 한마디에 노동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이상했다. 일련의 과정들이 투명성 없이 일방적 결정으로 진행되고, 전 스튜디오 직원을 모아놓고서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발표되는 등 배려가 없었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 노조설립을 결심했다.

더군다나 10년 넘게 근무한 사람에게 희망퇴직 위로금이 월급 한 달 치라는 건... 일반적인 회사는 오래 근무한 사람일수록 근속연수에 맞게 대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오랜 시간 엑스엘게임즈와 같이 성장한 사람들에게 대우나 존중이 너무 없었다는 게 노조설립을 결심한 이유이다.


선언서에서 '나쁜 관행'이 유지됐다고 했다. 무엇인가?

= 사실상의 포괄임금제다. 엑스엘게임즈에는 출퇴근을 기록하는 근태 시스템이 없다. 표면적으로는 업무를 자율적으로 한다는 좋은 취지다. 그러나 출퇴근이 기록되지 않으니 직원이 얼마나 더 추가근무를 했는지 확인이 안 된다. 야근하는 직원이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법적인 보호장치가 없는 셈이다. 사내 노사협의회에서 1년 넘게 요청했는데, 회사에서 근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다.


카카오게임즈에 인수된 이후 생긴 문제도 있나?

= 중소기업으로써 엑스엘게임즈 직원들이 누린 국가 혜택이 사라졌다. 경영진은 카카오게임즈로부터 금전적인 혜택을 입었지만, 대부분의 직원은 그렇지 못하다. 엑스엘게임즈 자체가 대기업 계열사가 되다보니 주식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대부분 직원들의 국가 혜택이 없어졌다.

합병 직후 회사 측에선 처음에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앞으로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 드랍이 연달아 일어났고 희망퇴직을 권고했다. 새로운 프로젝트 하나가 갑작스레 생겼지만, 고용불안과 불신만 쌓여갔다.




유명무실한 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데.

= 엑스엘게임즈 취업규칙 55조에는 '직원의 정년은 만 65세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퇴직에 대한 선택을 늘 강요 받아왔다. 실질적으로 경영진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했다. 아무 의미없는 취업규칙이 회사 내규가 됐다. 정규직이더라도 프로젝트에 계약된 계약직처럼, 프로젝트가 없어지면 같이 짤리는 게 너무 빈번했다.

노조설립을 준비하면서 느낀 게, 게임업계 근무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10년은 걸릴 거 같았다. 많은 개발자가 노조 필요성을 못 느끼고, 여기가 아니면 다른 데 가지-라는 생각이 있다. 프로젝트가 드랍되면 나가는 게 당연했다. 이러한 인식을 노조를 통해 바꿔나가고 싶다.



▲ 넥슨노조, 스마일게이트노조, 카카오노조, 네이버노조가 함께했다

노조설립 과정이 궁금하다.

= 6월 12일부터 준비했다. 프로젝트 드랍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해 카카오노조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이후 다른 게임노조와 연락하며 일을 진행했다.

사전예약 형태로 조합원을 모았다. 충분히 모았다고 생각해 오늘(14일) 발표했다.


노조설립 이후 과제는 무엇인가?

= 출퇴근 시스템 도입이다. 표면적으론 자유로운 근무 환경이지만, 실제론 출근과 퇴근이 없는 근무 환경이다. 직원들 출퇴근을 모르니 일한 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일부 직원은 회사가 돈을 아끼려고 일부러 제도를 유지하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사실상의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정당한 노동 대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엑스엘게임즈에 출퇴근 시스템을 도입해 노동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다음으론 엑스엘게임즈가 대기업으로 편입되며 사라진 국가 혜택을 회사가 보상해주길 바란다. 경영진은 주식으로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을 벌지만, 직원들은 아니다. 오히려 마이너스(-)다. 중소기업 자격 상실로 사라진 소득세 감면 혜택 등을 회사가 보상해야 한다.

난 스톡옵션에 관한 욕심은 없다. 엑스엘게임즈에서의 경력도 스톡옵션을 욕심낼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다만, 나 말고 엑스엘게임즈를 위해 오래 근무한 직원들은 대우해줘야 한다.

카카오게임즈 합병 당시 경영진은 3자배정을 통해 카카오게임즈 주식을 받았다. 그러나 엑스엘게임즈 주식을 갖고 있던 직원들은 카카오게임즈가 시장가에 맞춰 매입했을 뿐이다. 3자배정으로 받은 카카오게임즈 주식은 상장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보장받는다. 스톡옵션에 관해 정도의 차이는 임직원이 다르겠지만, 방식은 같아야하지 않을까?

고용안정도 중요하다. 엑스엘게임즈는 조직장 의사에 따라 연봉협상이 결정된다. 인사평가제도가 있지만, 우수한 평가를 받았더라도 조직장에게 찍히면 연봉인상이 안 된다. 그런 부조리가 많다. 투명한 인사제도로 개선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연봉협상을 바란다.

특정 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직장 내 괴롭힘, 면담 압박, 퇴직 강요 들을 없애고싶다. 조직장이 어느 직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면담으로 퇴직압박을 한다. "a파트장이 너를 마음에 안 들어하니 같이 일 못하겠다고 하더라. 네가 나가야 한다. 회사에 이야기를 해서 한달치 월급을 보상하고 실업급여를 줄테니 나가라"는 식이다. 이건 내가 직접 들었다.


끝으로, 회사 대표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나?

= "송재경 대표님, 야근의 보상은 좋은 게임이 아닙니다. 최관호 대표님, 권고사직과 희망퇴직은 엄연히 다릅니다. 둘을 같게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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