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멘탈케어 좀 하고 오겠습니다"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3개 |
"판교역 주변에 정신건강의학과가 최소 여덟 곳이다. 게임 및 IT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니, 수요가 존재하는 거다. 판교 게임 및 IT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가 시급하다"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지회장은 최근 판교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간담회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개발자의 정신건강 문제는 최근 네이버에서의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해 주목받게 됐다. 이에 스마일게이트, 넥슨 등 게임노조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당연하게도 IT 기업에 개발자 정신건강 문제는 중요하다. 회사 성장을 결정짓는 문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은 개발자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명상, 상담 등을 지원한다. 판교 내 게임 및 IT 기업에서 이러한 지원은 시작 단계로 알려졌다.

현재 판교 내 직장인, 게임 및 IT 개발자의 정신건강을 들여다본 연구는 찾기 힘들다. 정부 또는 지자체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 일차적으로 게임 개발자의 정신건강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판교 내 정신건강과 전문의를 찾았다.



▲ 김진환 판교삼성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진환 원장은 판교에 정신건강과가 많다는 건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결국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김진환 원장은 판교 내 개발자가 다른 지역, 산업보다 일반적인 능력 등이 높다고 봤다. 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증상은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이다. 개발자는 일단 출근해서 일은 해야 하니,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만큼 주변에 정신건강과가 들어선다. 다만, 의학적으로 개발자 특징이라 분류할 만큼 특이한 정신건강 사례는 아직 발견되진 않았다.

개발자 정신건강 문제 요인은 대인관계와 업무 스트레스로 나눌 수 있다. 김진환 원장은 게임 개발자 업무 스트레스에 주목했다. 그는 일반적인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보다, 게임 개발자의 업무가 과도하게 많다고 봤다.

예로 기간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오는 과로다. 출시일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노동 강도가 세진다. 개인에게는 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다른 개발자로 대체된다는 압박감도 스트레스 이유다. 동료 개발자와 비교했을 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압박감도 스트레스 요인이다.

일반 사무직 노동자와 게임 개발자 사이에 스트레스 차이가 있을까? 김진환 원장은 약간의 성향 차이가 있다고 봤다. 게임 개발자, 컴퓨터를 전공한 일반적인 프로그래머는 일반적으로 논리적, 이성적, 문제 해결형인 사람이 많다. 게임 개발자는 프로그램에 버그가 생기면, 문제를 수정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정작 '자기 마음은 잘 살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자는 감성적이거나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비해 자신의 감정, 태도를 파악하는 걸 어려워하거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개발자가 설문지를 통해 체크를 하면, 우울 수치가 엄청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개발자 본인은 '이게 우울한 건가?'라고 여긴다.

김진환 원장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개발자가 위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이성적으로 남과 자신을 냉철하게 비교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당연히 젊은 사람을 따라가기 힘든 시기가 올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우울감이 무엇인지 모르다 살다 처음으로 느낀다.

이때 개발자가 동료, 젊은 세대와 자신을 비교해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길 수 있다. 이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기에 정신건강에 더 안 좋을 수 있다.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실력이 없다고, 우습게 여긴다고 오해할 수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한마디에서도 '내가 요즘 못하니 애가 나를 무시하나?'라 생각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내려두는 게 필요하다.

게임 개발자 스스로 우울한 건지 모호할 때 점검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으로 '브레인 포그'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거처럼 멍한 느낌이 든다면, 스스로 우울한 건지 의심해볼 수 있다. 또는 평소보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느낌, 글이 안 읽히거나 입력이 잘 안 되는 상태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자더라도 밤에 몇 번씩 깰 때도 의심할만하다. 이 경우 김진환 원장은 곧바로 정신의학과를 찾기 부담스럽다면, 인터넷에 있는 설문지를 이용하길 권했다.

아무래도 게임 개발자가 개인 업무에서 가장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프로젝트가 드랍되는 경우다. 김진환 원장은 "게임사 내에서는 무수히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는데 빛을 보는 건 정말 소수, 나머지는 다 사장된다"며 "개발자 개인으로서는 자신이 오랫동안 공들인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쓸모없어지는 걸 보면, 정말로 마음이 부러질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런 프로젝트 드랍을 몇 차례 겪다 보면 의욕이 더 생기기 힘들어진다.

김진환 원장은 개발자에게 회사 밖에서 즐거움을 찾길 권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 말고 다른 일, 취미나 운동에서 자신이 발전하는 걸 느낀다면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회사에는 프로젝트 드랍 이후 개발자를 확실히 리프레쉬 시키길 제시했다. 개발자 개인으로서는 리프레쉬 휴가를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프로젝트가 드랍됐으니,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하는 분위기는 압박이다. 김진환 원장은 회사가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무조건 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길 바랐다.

게임사 대표, 임원부터 시작하는 정신건강 관리도 필요하다. 김진환 원장은 "아직 회사 대표가 정신과에 방문하는 걸 '권위가 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는 있다"며 "그러나 대표가 힘들면 회사 전체가 병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 대표나 임원이 먼저 병원에 방문해 어려운 것을 털어야 직원들도 편해진다"고 덧붙였다.

'정신과에 간다'가 좀 딱딱해 보인다면, '멘탈케어 좀 하고 올게!'라는 생각이 나을 수 있다. 김진환 원장은 "감기 정도일 때 빨리 와서 털어야지, 나중에 만신창이가 되어서 오면 회복하는 데 한참 더 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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