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디아블로4, 게임 못하는 개발자만이 문제였을까

기획기사 | 강승진 기자 | 댓글: 296개 |
두 명의 개발자가 나와 게임도 플레이하고, 개발자만이 알 수 있는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상.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마케팅 영상이고, 사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깜짝 놀랄 개발 비화가 나왔다면 몇 문단 적어 단신 거리로 뽑아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만한 깜냥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디아블로4의 두 개발진이 나온 영상은 개발자 토크쇼에 배경 정도로 깔릴 게임 플레이로 서구권 커뮤니티의 불판을 제대로 구워삶았다. 논란의 주제는 이렇다.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개발자들이 만드는 게임.


특별할 것 없어야 할 영상에서 개발자들이 보여준 내용은 정말 특별했다. 문제라면 그 특별함이 게임을 해보기나 했나 싶을 정도의 한숨 나오는 게임 플레이에 있다는 점이다.

플레이에 사용된 캐릭터는 각각 야만용사와 도적. 둘 다 기본적인 스킬 포인트를 모두 얻고 캠페인 엔딩 이후 악몽 던전, 세계 단계3에 돌입할 수 있는 50레벨이었다. 그런데 플레이한 세계 단계는 기본인 1, 여기에 야만용사는 현재 게임 메카닉 상 필수적으로 채용되어야 하는 함성 스킬 하나 착용하지 않았고 공격은 기본 스킬인 달려들기만을 사용했다. 제발 분노 소모 스킬 좀 써달라는 간절한 기도는 무심히 바람으로만 남았고 가득 찬 분노 창을 뒤로 한 채 미숙한 컨트롤로 죽기까지 했다.

여기에 좋은 평가를 보지 못한 저주받은 신단 이벤트를 직접 만들었다며 환상적인 이벤트라는 자찬까지 섞었다. 개발자의 미숙한 게임 플레이와 그 지식이 작금의 디아블로4에 쏟아지는 아쉬움의 진짜 이유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영상의 댓글 기능은 막혔고 좋아요와 싫어요는 1.2천과 5.8만으로 98% 정도가 이번 영상에 불만을 드러냈다.




서구권 커뮤니티는 한창 불타올랐고 비판이 쏟아지는 게임들에 대한 범인 색출에 나섰다. 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자기 게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가. 그리고 이건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여러 논쟁이 오간, 업계 오랜 의문이 피어오르는 계기를 만들었다.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고, 즐겨야 하는가'라는 의문 말이다.


개발자는 분명 게임을 해야만 했다
게임 개발자와 게이머를 동일시하는 시각의 출발점은 오늘날에도 그 명성이(몇몇은 오명이 됐지만) 밝게 빛나는 초창기 개발자들의 열정에서 찾을 수 있다.

시에라 온라인의 로버타 윌리엄스는 뒤늦게 프로그래머 일에 뛰어든 가정주부였다. 그러던 그는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유행하던 텍스트 어드벤처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그걸 직접 만들고 싶다는 애정만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야기는 자신이 쓰고 프로그래머였던 남편 켄은 그걸 게임으로 옮길 수 있도록 게임 관련 프로그래밍을 배우도록 설득했다. 그들 손에서 만들어진 킹스 퀘스트는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를 넘어 그래픽 어드벤처를 대중화시킨 타이틀로 불리고 로버타는 그래픽 어드벤처의 여왕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로드 브리티쉬 리처드 개리엇은 오늘날에는 '우주 먹튀'로 더 유명하지만, 수많은 문화와 종교적 이념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그의 게임 울티마 시리즈가 게임사에 미친 영향력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다. 리처드 개리엇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인 오스틴 텍사스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0대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왔고 울티마 시리즈를 계속 만들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

학벌이 곧 능력쯤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가 아니어도 명문대를 떠나 게임 개발에 뛰어든 개리엇의 열정은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충분했다.

물론 아타리로 대변되는 비디오게임의 부흥기부터 시장이 붕괴하는 1980년대 중반에도 돈을 보고 저열한 품질의 게임을 찍어내는, 게이머가 아닌 사업가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무너지고 열정을 가진 개발자 겸 게이머들이 새로운 비전을 들고 시장에 진입해 성공하며 게이머가 곧 개발자라는 문장을 참으로 만들어왔다.



▲ 울티마로 게임사에 큰 획을 긋고 추후 국내 이미지도 그어버리는 리처드 개리엇(이미지: Ars Technica)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는 현실적인 상황이 숨어있다. 개발자들의 열정은 분명했지만, 열정만큼이나 지금과는 다른 개발 환경이 개발자들을 게이머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게임 개발에 투입된 인원 자체가 적었기에 테스트와 출시 버전의 품질 관리까지도 오롯이 몇 안 되는 개발자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리처드 개리엇과 단둘이서 울티마를 개발하며 전설을 쓰기 시작한 켄 아놀드는 리차드 개리엇과 함께 프로그래밍, 그래픽까지 전부 도맡았다. 울티마3부터는 아예 게임 음악까지 담당했다. 게임의 문제점을 찾고, 수정하고, 재미를 테스트하는 작업 역시 이들의 몫이었다. 물론 게임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러 온 친구들이나 외부 개발자들에게 테스트를 맡기기도 했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어 그걸 다시 플레이하고 수정하는 수고로움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 너도나도 이쪽저쪽 업무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으니 게임을 플레이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 분석력은 개발자 모두에게 필요했다.

게임 개발자는 게이머였다. 여기에 성공한 시장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사업적인 마인드냐, 게임 제작에 대한 열정이 우선이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게임 개발자는 '게이머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임 개발자가 게임을 할 필요는 없다
분명 개발자가 게이머여야 했던 시기는 존재했지만 의외로 이 시기는 길지 않았다. 게임 개발에서 기술자와 디자이너의 분업화가 그 바탕에 있다.

시장을 주도하던 비디오 게임기인 아타리 기반 게임은 아케이드 성향이 강했다. 스토리라고 할 것도 없었고 간단한 배경 설정에 개발도 단기간에 이루어졌다. 거의 모든 게임이 5명 미만,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게임디자인까지 한두 명이 모두 맡아서 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런데 비디오 게임의 다음 세대가 닌텐도 패미컴으로 넘어간 시기에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1986년 일본에서 출시되고 이듬해 북미 시장까지 진출하며 일본 RPG 시대를 연 드래곤 퀘스트는 북미 버전 번역과 프로그래밍 등을 포함해 23명의 개발 인력이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개발자들 역시 많았다.

스토리, 착실한 게임 디자인이 적용된 RPG만이 인력 증가를 경험한 건 아니다. 아케이드 성향이 짙어 적은 인력으로 개발이 이루어졌던 액션 게임들도 1980년대 중후반을 넘기며 열댓 명, 혹은 그 이상의 개발자가 참여하는 게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파이널 판타지의 크레딧을 보면 그 변화를 체감하기 쉬울 법하다. 스퀘어의 마지막 게임이 될 수도 있었던 파이널 판타지1는 사카구치 히노로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타이틀이지만,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개발자는 그를 포함해 5명, 실제 제작도 7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1990년 패미컴으로는 마지막 시리즈 타이틀이었던 파이널 판타지3는 순수 개발자 크래딧만 18명이 이름을 올렸다. 높은 그래픽 성능과 특수 칩셋 활용이 가능해진 슈퍼 패미콤 시절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4의 개발에는 48명이 개발에 참여했다.

3D 그래픽이 도입되고 글로벌 시장 진출, 외부 스튜디오와의 협업 등이 일상화되며 게임에 투입되는 개발자는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실제로 PS1 시절 큰 혁신으로 꼽힌 파이널 판타지7은 355명, 상세 크레딧이 공개된 파이널 판타지15는 무려 2,300명이 Special Thanks를 제외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게임 개발의 인원 증가는 단순히 숫자가 늘었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아트 정도로 구분되었던 직무는 훨씬 세분화됐다. 당연히 세밀한 업무에 요구되는 전문성이 높아져 이것저것 다하는 겸직도 사라졌다.

특히 프로그래밍이나 조형 등 순수 기술자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개발 부분, 또 성우 연기나 사운드를 녹음하는 직책 등 비게임 분야에서 쓰이던 기술자 영역 등 수많은 직무가 게임 개발 안에 포함됐다.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고, 잘 알면 의견 주고받는 절차 한둘은 줄일 수 있겠지만, 직접적인 직무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지는 않는다. 기술 영역에서 게임 플레이는 필수가 아니라는 의미다. 게임을 확인하고 테스트 하는 직무 역시 따로 구분된다.

여기서 이미 '모든 개발자 = 게이머'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게 된다.

개발자가 자기 게임의 게이머가 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게임 개발의 공산화에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 한 명의 인부가 나사를 조이고, 맡은 부품만을 설치하는 컨베이어 업무처럼 게임 개발도 세분화된 직무 안에서 제 일을 맡는다. 희망대로 업무를 맡기도 하지만, 능력에 따라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하며 자신이 맡은 일이 원하는 게임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단순히 취미가 일이 됐을 때의 감정 차이 정도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평소에 FPS를 즐기지만, 실제로 투입되는 프로젝트는 자동 전투를 핵심으로 하는 모바일 RPG일 수 있다. 개발자가 자기 작품의 게이머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 존재하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기술자의 이야기다. 반대로 게임의 창의성, 메커니즘,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게임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 그걸 담당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고 오늘날 업계에서 디자이너에게 게임 플레이와 이해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모든 이들이 게임을 플레이할 필요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개발자 한 명이 게임 전체를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팀 단위에서 게임을 이해하는 이와 그걸 착실하게 옮길 수 있는 기술자, 그리고 그 사이의 명확한 의사 전달이 더 효율적인 시대가 됐다.

실제로 둠으로 FPS 역사를 새로 쓴 id 소프트웨어의 공동 창업자 존 카맥이 과거 가마수트라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존 카맥은 인터뷰에서 모든 게임 개발자가 열정적인 게이머가 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당장 전설적인 게이머이자 개발자인 자신도 어린 아들과 게임을 플레이하는 정도가 전부라고 할 정도였다. 게임 개발자가 게이머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당시 존 카맥은 자신을 게이머보다는 프로그래머로서 게임 개발 프로세스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여전히 간단한 게임 디자인은 할 수 있지만, 상황에 맞게 게임 디자인 결정에 관여하기보다는 기술력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모든 개발자가 게이머이기보다는 팀의 올바른 균형의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게임 개발자가 게이머가 아니어야 할 때도 있다
존 카맥이 말한 팀의 균형은 단순히 개발자가 게이머냐, 게이머가 아니냐를 넘어선 발언이었다. 정확히는 이날 함께 인터뷰에 참여한 미디어 몰큘 창업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게임 플레이 자체를 즐기지 않거나 경험이 없는 이들과의 개발 균형을 말했다. 정확히는 게임 안 하는 개발자의 필요를 언급한 대목이다.

게임 안 하는 개발자의 필요성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걸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회사도 있는데 그게 바로 닌텐도다.

닌텐도의 미래를 책임지는 직책인 펠로우로 꾸준히 활동하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게임 디자이너 채용 철학으로 게이머가 아닌 인재 발탁을 꼽았다. 잘못 적은 게 아니다. 기술자가 아니라 디자이너 채용에서의 철학 말이다.




앞서 줄줄 설명했듯 기술자 달리 디자이너의 역할과 임무는 오늘날 게임 플레이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된 영역이다. 하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는 '항상 게임 팬이 아닌 디자이너를 찾는다'고 이야기했다. 이유도 닌텐도답다면 닌텐도다운데 게임이 아닌 색다른 관심사, 색다른 기술이 지금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러한 인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 이제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 전반을 이끄는 프로듀서가 된 아오누마 에이지다. 목수인 할아버지와 삼촌을 보고 자란 아오누마는 일찌감치 목제 공예품 제작에 재능이 있었고 가라쿠리 같은 로봇 장난감도 만들 줄 알았다.

도쿄 예술 대학에 입학한 그는 동문인 애니메이터 요이치 코타베의 추천을 받아 미야모토 시게루의 면접을 보고 닌텐도에 입사했는데 당시에도 대학에서 그린 작업물을 보여주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입사보다 더 유명한 일화는 아오누마가 비디오 게임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닌텐도에 들어가고 나서야 게임 좀 해봐야겠다 싶어 여자 친구에게 게임을 소개받고 드래곤 퀘스트를 처음 플레이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공예품을 직접 만들 정도로 창작에 능했던 그의 재능은 그래픽보다 게임 디자인 영역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젤다의 전설이 3D 시대에 접어들며 그 재능을 꽃피웠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말한 새로운 무언가의 창조가 입사 전까지 게임 지식이 없던 아오누마 에이지를 통해 증명된 셈이다.




그렇다고 이게 순전히 게임에 관심이 없는 개발자의 요행쯤은 아니다. 정확하게 짚자면 아오누마의 자유로운 창작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게임 개발과 이해 역량이 팀에 넘쳤다는 점이다. 아오누마 에이지 역시 뒤늦게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디렉터직을 하나둘 맡아나가기도 했지만, 첫 닌텐도 메인 타이틀 디렉터로 올라선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개발은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거장의 프로듀싱이 뒤에 있었다. 여기에 오사와 토루, 야마다 요이치 같은 긴 경력의 개발자, 일찌감치 게임 디자인에 두각을 드러낸 코이즈미 요시아키 등이 함께 게임 디렉터로 나섰기에 그 창의력이 빛을 발했다.

이와타 사토루 사후 개발 총괄 책임자인 타카하시 신야는 이런 미야모토 시게루의 기조를 함께 따르며 게임 디자이너를 더 젊은 세대, 비디오 게임 경험이 없을 수도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

이것이 존 카맥이 말한 팀의 균형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산해내는 개발자가 있고 게임 플레이를 통해 게임 구조에 대해 이해한 팀원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래도 누군가는 게임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하나 간과한 부분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게임 개발의 창의성 논리는 대개 게임의 출시 자체를 목표로 두고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기성 게임, 그러니까 전통적인 싱글 플레이 게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임 개발에서 품질 보증, 테스터를 통한 게임 플레이는 곧 게임의 완성, 마무리를 위한 과정이었다. 개발 이후의 역할은 정식 출시 후 버그를 잡거나 오류 등을 잡아내는 사후 관리 정도였다.

하지만 스팀으로 대표되는 PC 배급이나 콘솔의 디지털 스토어 등 게임 유통에서 온라인 비중이 커졌다. 게임 역시 반복 플레이를 유도하는 게임이 늘어났다. 게임은 그냥 출시만 하는 시대를 넘어 관리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포트나이트 같은, 씨 오브 씨브즈 등 구독형이든, 인앱 결제를 포함한 F2P든, 구매를 필요로 하는 게임이든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완성된 한 번의 이야기 제공보다는 게이머들을 장기적으로 붙잡아두는 데 목적을 둔다. 대신 꾸준한 참여를 유지할 수 있는 업데이트, 밸런스 수정이 필수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유저들끼리 대결하고 함께 플레이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만이 업데이트의 필요성을 가지는 건 아니다. 콘텐츠를 반복하는 데 핵심 재미를 둔 시뮬레이션, 로그라이트 장르의 대두는 굳이 멀티플레이를 포함하지 않은 싱글플레이 게임이더라도 꾸준한 변화와 개선, 추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반복 플레이 기반 게임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발자가 아닌 게이머들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소비한다는 점이다. 해외 AAA 개발사는 비정규직까지 많게는 수백 명 이상의 테스터를 두고 게임을 관리하지만, 테스터의 수가 얼마가 됐든 그 이상의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게임 플레이의 절대적인 숫자와 양을 앞설 순 없다.

플레이어가 쏟은 시간은 곧 게임의 경험이다. 엔딩 한 번 보면 끝나는 과거의 게임이야 절대 무적의 캐릭터를 만들고 치트 코드를 써가며 잘못된 점만 꼬집어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게임은 플레이어가 시간을 들여 얻은 정보와 경험에서 나온 피드백을 올바르게 수용할 이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게임을 플레이해야만 나온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겪는 서로 다른 플레이 상황, 여러 단계의 플레이어 구분, 또 어떤 부분을 받아들일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수용의 정도 구분 역시 개발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러한 수준의 게임 플레이를 모든 개발자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비스 단계까지 참여한 개발자 모두가 라이브 서비스 단계에서도 투입되지도 않는다. 게임의 출시까지 틀을 만든 기술자, 디자이너가 완성 이후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한다. 게임의 실패는 팀의 와해를 이끌고 반대로 기대 이상의 성과로 새로운 인력이 급하게 수혈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서구권 개발사가 게임의 서비스 단계에서 게임 디자인을 이끌 라이브 서비스 디자이너, 디렉터를 별도로 두기도 하고 제품 관리를 맡는 프로덕트 매니저를 라이브 서비스만 따로 담당하는 인력을 구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모두가 게임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게임을 해야만 하는 시대다.


모든 개발자가 게이머일 필요는 없는데 그걸 지금 강조할 필요가 있는가
논란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앞선 설명대로 업계 상황을 이해해본다면 디아블로4 영상에 출연한 던전 디자이너인 디니 맥머리가 굳이 게임을 잘할 필요도 없고, 게이머가 아니어도 된다. 실제로 그가 영상에서 말했듯 던전 개발 그룹이 팀원들이 좋아하는 게임도 다르고, 실력도 다르다면 하드코어 게이머만이 아니라 폭넓은 층의 게이머가 즐길 수 있는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해당 개발자가 직접 작업물이라고 밝힌 저주받은 신단 이벤트를 포함해 던전 디자인 자체가 팬들에게 아쉬움을 더 크게 사고 있는 만큼 결과물 자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신 디니가 게임의 출시 단계까지만 맡고 현재는 손을 뗐다면 검토 단계에서 던전 디자인에 대한 유저들의 비판을 예측했어야 했고, 또 사후라도 현재 디자인 작업을 담당하는 라이브 서비스 디자이너, 디렉터가 이를 다잡으면 된다. 반대로 그가 현재까지도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면 게임에 대한 이해가 있거나 경험 많은 개발자와의 팀의 균형이 어긋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명확하다. 도대체 왜 이 영상을 만들었고, 이 타이밍에 개발자의 답답한 게임 플레이 영상을 내놓았느냐는 점이다.




엔드 콘텐츠부터 여러 게임 디자인에서 문제점이 튀어나오는 상황에 게임 못하는 개발자의 플레이가 다양한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보고 있다는 식의 여론 전환 효과가 있다고 감히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유저 평판이 좋다고 해도 별다른 이유 없이 게임 실력이 떨어지는 영상을 선보일 이유도 없다. 오히려 게임에 대한 능숙한 플레이가 게임에 대한 이해와 상통하는 만큼 훌륭한 게임 플레이가 유저들의 호응을 얻으리라 기대하는 게 더 적합하다.

파이널 판타지16 프리 런치 축하 쇼케이스에서 게임의 시스템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컴뱃 시스템 디렉터 스즈키 료타가 30 레벨의 캐릭터로 15레벨이나 높은 보스를 잡아낸 장면이 팬들의 환호를 불러온 것을 떠올려보자.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의 닌텐도 다이렉트에서 아오누마 에이지가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제대로 짚어내며 보여준 게임 플레이의 예도 있다.

게임 플레이에 자신이 없다면 이번 일로 다시 주목받은 데이비드 브레빅의 영상이 좋은 방향이었을지도 모른다. 블리자드 노스의 전신인 콘도르의 설립자인 그는 디아블로, 디아블로2를 개발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가 Ars Technica와 진행한 인터뷰 영상에는 그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게임 역사에 큰 물결을 일으킨 게임 디아블로의 게임 디자인과 개발진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고 개발진의 깊이 역시 함께 전했다.


거대한 상업 문화 콘텐츠가 된 게임의 성패는 단순히 잘 만든 게임이 전부가 아니다. 마케팅, 비즈니스, 여론을 살피고 관리는 것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어쩌면 한숨 나오는 게임 플레이보다 게이머들의 반응이 어떻든 오늘 할 홍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영상을 만들고, 그것이 아무런 여과 없이 게시되어 팬들의 분통을 터트리는 게 만드는 진짜 원인 아닐까?

누구보다 게임 팬들의 마음을 대변했던 블리자드가 그리워지는 건 비단 혼자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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