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먼 옛날, 전쟁의 세상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장군이 한 사람 있었다. 백성들은 그를 흑장군이라 불렀다.
검은 갑옷을 입고, 검은 투구를 쓰고, 검은 칼을 차고, 검은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바람이 일었으며, 심지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조차도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그가
더욱 신성해 보였다. 그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성의 주인이었는데, 성의 이름도 흑성이었다.」
ㅡ <한무제의 비단길, 길 위의 역사와 인간들>, 21쪽
1908년, 중국의 한 탐험대가 고비 사막 속에 파묻혀 그 역사도 함께 묻혀있던 폐허가 된 흑성을 발견한다. 몽골 군대가 흑수성의 강줄기를 돌려 놓기 위해 둑을 쌓을 쌓았던 모래 자루들을 발견하고 또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성벽 위에 돌성을 쌓아 놓은 것도 발견한다. 1227년 대하 왕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흑성의 존재와 흑장군의 전설이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흑장군 전설은 이렇다. 흑성은 '대하국'이라는 동양 부족국가의 최전방에 있는 요새 도시였고, 그 성의 주인이 바로 흑장군이다. 단 한번도 패배란 것은 모르고 살아온 정말 무시무시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동쪽에서는 천하무적 칭기스칸이 그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칭기스칸의 군대는 사막의 도시인 점에 착안해 공격을 시작했다. 성의 물길을 차단하고 둑을 쌓았다. 사막 도시에서 물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패배를 예감한 흑장군은 전우들을 적의 손에 죽게 할 수 없다며 홀로 선봉에 나섰고 이틀 후 흑성은 불길에 휩쌓였다. 그렇게 흑성은 전설 속으로 묻히게 된다.
흑장군의 전설 속에서 흥미로웠던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실은 칭기스칸이 전쟁 중에 말에서 떨어져 전사(戰死)한 것이 아닌, 바로 독을 묻힌 흑장군의 칼에 등을 베인 상처가 치료도 하지 않고 무리한 정복 전쟁을 계속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면서 죽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하가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칭기스칸이 전사했다.
또 다른 하나는 흑장군이 죽고 흑성이 함락한 뒤 그 성 안에서 아무 것도 발견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흑장군이 죽으면서 온갖 금은보화들을 어딘가에 숨겨놓고 그것을 찾을 수 없게 주문을 걸어놓았다는 것이다. 흑성의 존재 자체도 모래에 뒤덮여 있다 최근에서야 그 존재가 들어난 것을 보면 더욱 그 전설이 믿음이 간다. 게다가 그토록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던 친구들까지 눈물을 삼키고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거둔 흑장군인데, 그 억울함과 원통함, 아니 분노가 얼마나 컸겠는가.
물길이 끊겨 하루, 한 시간 이렇게 목숨이 빠르게 조여올 때 성안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많은 군중들, 마지막 남은 물로 차를 끓여 왔다며 자신의 부하가 차를 주었을 때 흑장군이 느꼈을 마음의 무거움과 분통함, 패배를 실감하고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며 자신의 갑옷을 닦고 칼을 재정비 했을 성벽 위의 군인들, 그리고 성 밖에서 흑수성이 조금씩 조금씩 말라가고 있음을 지켜보며 때를 기다렸던 잔인한 몽골제국의 칼날을 그 누가 감당이나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