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년 사절단 이벤트 이후로 예상되는 이벤트들....
2. 베니스의 개성상인 -
실제 역사로도 있었던 유승업씨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나가사끼로 끌려갔다가 전쟁고아로써 => 화란(네덜란드)인의 인해
노예로 끌려가나 후일 이탈리아의 신부(칼렛 디)의 구제로 인도의 고어로 데리고 간뒤
조선인 노예들에서 풀려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칼렛 디 신부를 계속 따라가기로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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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발췌문은 이탈리아 신부 칼렛 디의 기록을 100년 뒤에 발간한 책에서 나온 기록입니다.
「코레아(Corea)라는 나라는 9도(道)로 나뉘어져 있다고 말한다. 조선(Ciosien)이라는 이름은 수도로서
국왕이 거주하는도시의 명칭이며 경기(Quenqui) · 강원(Conguan) · 황해(Hongliay) · 전라(Cioala) ·함경(hienfion)
· 충청(Tioncion) · 평안(Pianchin)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나라의 가장 가까운해안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녀노소가 노예로 잡혀 왔다. 그들 가운데는 보기에도 딱하리만큼 가련한 어린이도 있었다.그들은 모두
구별없이 헐한 값으로 매매되고 있었다. 나도 12스쿠디(scudi)를 주고 5명을 샀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준 다음 그들은 데리고 고아(Goa)까지 가서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을
나와 함께 플로렌스로 데리고 왔다. 그는 이제 로마에서 살며
안토니오 ·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註4]
」
- 1700 년대 플로렌스 출판 役 - 칼렛디의 13년의 세계일주
유승업 (이하 안토니오 코레아)의 이동경로를 확인해보면
대략 경기 지방으로 추정되며 [개성] -> 왜인의 약탈로 인해 [부산] ->
왜인이 데려다가 [나가사키]의 노예시장 -> [말라카] (기항) ->
인도의 [고어](여기서 자원하는 4명을 풀어줌) -> 마다가스카 -> 피렌체 -> 로마 -> 베니스
이 순서가 되는거죠, 뭐 이후로는
그 이후의 안토니오 코레아는 시칠리아 섬에서 살게되며
그의 후손들은 꼬레아라는 성씨를 가지고 살아가고
실제로 그의 후손들은 다 동양의 정취를 풍기는 미인,남 들이 대다수라고 하네요

위의 그림은 그당시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
폴 루벤스가 그린 고려인이었구요
이 그림이 나중에 발견되어서
1983년 당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인 32만4000파운드(약 6억6000만원)
에의 미술품으로 팔리게 되었다지요
아무튼 그 이후 성화에도
조선인의 그림을 그린 성화가 나타나구요
이 그림은
루벤스의 성프란시스 사비에르의 기적 이라는 그림에서 나오는 그림입니다.
보시기에도
조선인들이 자주썼던 상투에 유건을 두른 모습이 역력하고
당시 소매가 굉장히 길었던 비단 철닉를 입은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네요
뭐랄까 이방인들의 그림 가운데서 루벤스가 그를 인상깊에 주목했던것 만큼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을 찾는 .... 음.... 모험 퀘스트가 나오면 좋겠군요 ㅋ
아무튼
그가 유럽으로 끌려가기까지의 과정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가 예전 기리스탄(크리스찬)
으로써 놀림을 받은 기록이나
신부를 대동했던 이야기는 유명한데요.
아랫글은 일본의 어떤 서문의 발췌한것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일본 측 주장(主將)의 한 사람인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는 당시로는 드물게
천주교 신자로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 종군신부로 마드리드 태생의
세스페데스(Gregori de Cespedes) 신부를
대동하였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 신부가 만난 한국인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끌려갈 운명에 처한 조선인 포로들이었고 신부는 이들을
상대로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유키나카의 정적(政敵)이었던 가또 기요마사(加藤淸正)은
일본으로 압송한
한국인 포로들을 노예시장에 마구 내다 팔았다.」]
아무튼
역사란 과거를 비추는 거울 이라는 말이
참 무섭게 와닿습니다.
가끔은 유럽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꿩대신 닭이라고..
타조대신 병아리라도..
유럽대신 대온을 즐겨보자구요~
그럼 전 이만 봉쥬르였습니다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