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소설/카툰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소설] 해적열전 5편: 바람둥이해적 칼리코 잭

네라
댓글: 10 개
조회: 1727
추천: 2
2008-01-30 07:18:50



"당신이 거기에 있게된건 정말 안된일이지만, 남자답게 싸웠다면 개처럼 목매달릴 일도 없었을거야"
-안네 보니 1720, 자메이카 감옥에서


멀리 구름너머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비춘다.
서너평 남짓한 이 공간에 스며드는 빛은 달그림자뿐. 그마저도 창살에 가려 드문드문 비출 뿐이다.
이곳에는 색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미건조한 회색과 바닥없는 어둠뿐이다.
방이 어둡고 차고 습하다. 습한 안개가 이슬이 되어 돌벽을 타고 떨어져 고인다.

"통.... 통... 통..."

방의 가운데 놓인 책상 너머 건너편에는 손님이 와 있다.
영국 해병제복을 입은 간수가 작은 상 한가운데 놓인 촛불에 불을 붙이고 방에서 나갔다.
손님은 큰 배의 선장의 것같은 모자와 젊잖은 프랑스식 신사복을 입고있다.
카리브 버커니어 선장들은 모두 이런 식상한 취향일 것이다.
웃기는 프랑스 촌놈 같으니.
간수가 나가자 나는 내 일을 시작했다.

"그래, 시작하지 이름은..."

내가 천천히 입을 열자 그가 말을 끊는다.

"뭐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이 자의 뻔뻔한 태도에 약간 당황하여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의 행색과는 다르게 그의 말투는 약간 웰시인듯한 영국식이다.
사실 나도 이 자의 이름과 출신에 대해서는 관심없다.
이 간소한 형식의 심문은 사실 취조와는 거리가 멀다.
해적이 체포되었을때의 심문과 재판은 형식적인 것일 뿐이고 사실상 중요한것은 집행일 뿐이다. 하긴 누구에게는 안그런가.
심문을 통해 알아내는것은 피고의 교수대에 올 사람이 성공회 신부일지 카톨릭 신부일지 뿐이다. 목사는 없다.
물론 여왕폐하를 섬기는 성공회의 경우 형량이 감면될 수도 있겠지만.
예로 신교의 경우 교수형, 카톨릭일경우 교수형이지만 성공회의 경우에는 교수형인 정도랄까.
해적들에게는 과분하게도 이것은 제국의 빈민에 대한 여왕폐하의 정책과도 동일한 것이다.
위대하신 여왕폐하와 그녀를 위시하는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님등에게 바칠 돈이 있다면 이 형법의 법칙을 벗어날수 있겠지만.
이 위풍당당한 손님도 얼마안가 언젠가 개줄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겠지.
이런 저런 생각이 겹쳐 대답을 망설일때 손님이 말을 이었다.

"1718년 자메이카섬 킹스턴 어선습격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나?"

뻔뻔스럽다. 손님은 그의 동류가, 아니면 그 자신이 저질렀을법한 범죄를 자랑이라도 하듯 나에게 묻고 있다.
평소같으면 이런 류의 인간은 무시하겠지만 그의 당당함에 약간 흥미를 느껴 나는 그를 상대해주기로 했다.

"1718 킹스턴이라... 킹스턴 근해의 어선 선원들을 목매달고 약탈한 사건을 말하는건가? 악랄한 짓거리였지."

"그래 개줄처럼 끌어다 매달았지. 낄낄낄... 높으신 분들이 좀 바빠서 대안을 마련하는동안에 말야. 큭큭..."

오늘 손님은 여느때처럼 이런식으로 흉악한 손님이다.
개줄, 개줄하니 생각난다.
우리 인간은 개와 다를 바 없다.
적어도 왕후장상, 여왕폐하와 그녀를 위시하는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님들과 동떨어져 인간답게 사는 우리들은 개와 같다.
런던의 노동자들은 법률이나 형식, 종교와 같은 개줄에 묶여 끌려다닌다.
군인들은 그와같은 개줄에 매여 개줄이 풀린 들개들을 사냥하고 심문하고 때로는 잡아먹는다.
말을 안듣거나 말을 너무 잘듣거나 맛이 있어보이거나 맛이 너무 없어보이거나 멋이 있거나 멋이 너무 없거나 하는 개들은 땅으로 끌려와 개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는다.
위대하신 여왕폐하와 그녀를 위시하는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님들은 적당히 없고 적당히 멍청하고 적당히 못생긴 개들을 좋아하신다.
그와 같이 생각을 하니 언젠가 개줄끝에 매달릴 나는 언젠가 개줄끝에 매달릴 나의 이 손님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개줄끝에 매달리기까지의 시간의 차이가 나의 이 손님과 나의 차이이다.
그와 달리 개줄끝에 매달리기 전까지 나는 나의 시간을 부귀삼아 그 시간의 가치를 모르는 이 손님과 같은 빈천에게 마음껏 유세를 부릴것이다.

"흠!"

나는 한껏 큰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괜한 소리를 들었다. 괜한 소리를 하고 괜한 소리를 들었다.
이 작자의 행세와 말하는 꼴로 보아하니 뒤로 빼돌려도 나올것도 없으리라.
교수대에서, 아니, 개줄끝에서 장례기도를 누가 할지만 남았다.

"성직자는 어쩌겠나?"

나는 무거운 입을 떼었다.
아무리 사악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는순간 회개할 권리는 있는것이 우리 크리스챤들의 이론 아닌가.
그러나 이 손님의 입은 그것마저 부정한다.

"종교! 신따위를 신경쓴다면 해적이 되지도 않았겠지! 십계명 모를정도로 무지함에 축복받은 해적도 있을까? 큭큭큭"

"후우..."

한숨을 쉬며 눈을 돌려 잠시 멍하니 창살 너머를 보았다.
누구에게나 회개할 권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지옥으로 떨어질 권리도 있다.
아직 창살 너머로 새벾의 초승달이 비춘다.

"끼이익... 철컹"

둔탁한 쇳소리에 흠칫 놀라며 눈을 돌렸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나의 손님은 감방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가면서 입구의 철문도 잠궈버린 모양이다. 큰일이다.
철문의 창살 사이로 복도에 의자에 기대어 졸고 앉아있는 간수가 보인다.

"간수, 이보게 간수! 여기 좀 보라고! 어이!"


--------------------------------------------------------------------------------


손님은 감방의 문을 나서며 품속에서 시거를 꺼내들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귀족처럼 화려하게 칼리코 재단옷을 입은 남자가 감방에 갇혀 뭐라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손님은 복도에 걸린 촛불을 촛대째로 빼들어 입의 시거를 가져다 대고 쯥-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을 붙였다.
철문소리에 정신을 차린 간수가 감방에 갇힌 남자를 무시한채 손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떻습니까, 바넷 대령님...?"

손님 역시 창살 뒷편의 남자를 무시하며 답했다.

"뭐, 1718년의 사건에 대한 죄를 시인한듯 하니 그쪽으로 대충 조서 꾸며서 빨리 집행부로 보내버리게."

"네 알겠습니다, 즉시 처리하도록 하지요."

간수는 두리번거리며 좌우 철문의 잠금쇠를 확인하더니 유등을 집어들고 출구로 향했고 그 뒤로 간수가 바넷대령이라 부르는 손님이 따랐다.
철문 안쪽의 칼리코는 철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며 시끄럽게 주의를 끌더니, 바넷대령이 감옥 복도를 벗어날 즈음 해서 또다른 감방 철문으로부터 들려온 여자의 욕설에 수그러들었다.





잭 랙험(John Rackham), 칼리코 잭 (12.21.1682~11.17.1720)

런던 출신의 해적선장.
칼리코라는 별명은 그가 입던 화려한 칼리코(인도산 면화직물) 옷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슬르푸급 선박 킹스턴호를 타고 카리브의 소규모 선박이나 어선을 습격하는등의 소규모 해적이였던 듯 하다.
그는 자신의 수탈이나 전리품보다도 함께 했던 이례적인 여해적들, 안네 보니와 메리 리드,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 둘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다.)
1718년에 찰스 베인선장의 배에 있던 그는 찰스 베인이 프랑스 군함과의 전투를 기피해서 일어난 반란에서 선원들에게 새로운 선장으로 뽑힌다.
(찰스 베인은 이때 작은 배에 표류되도록 버려지지만 나중에 다시 복귀한다. 그에 대해서도 나중에 별도로...)
잭은 그후 자메이카 인근에서 소규모 해적질을 일삼다가 1719년 총독 우드스 로저스가 내린 대사면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같은 해 그는 안네 보니와 만나고 생계를 위해 다시 해적질을 시작하게 된다.
1720년 그와 그의 선원들은 바넷 대령의 슬르푸들의 야습에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선원중 두명의 여해적들과 한명의 선원은 용맹하게 싸웠으나 나머지는 도망치다 포획되었다.
그래서 수감중에는 동료 여해적인 아네 보니에게 "남자답게 싸웠다면 개처럼(교수대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을것이다"라고 독설을 들었다고.
두명의 여해적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 11월 17일 1720년 자메이카에서 재판받고 교수형을 받았다.
집행후 잭 랙험의 시체는 작은 철창속에 넣어져 포트로얄 외곽의 섬에 매달렸다.



참고자료

http://www.thepiratesrealm.com/Jack%20Rackham.html

http://en.wikipedia.org/wiki/Calico_Jack

http://en.wikipedia.org/wiki/Mary_Read

http://en.wikipedia.org/wiki/Anne_Bonny



해적열전 지난편보기

1편: 기습의 달인- 검은바트


2편: 무책임 선장 벤자민 호니골드


3편: 어리버리해적 에드워드 잉글랜드


4편: 카리브의 마왕, 검은수염 에드워드 티치

Lv0 네라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