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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교양부스터] 3 - 대항해 시대의 개막 (1/2)

시애틀커피
댓글: 13 개
조회: 885
추천: 2
2006-01-12 02:29:56


< 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1~1506)
대항해시대의 개막을 알린 인물. 초기 신대륙 발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네 번에 걸친 그의 항해는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 개발,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했죠. >

< 아래: 복원된 산타마리아 호의 출항 모습
콜럼버스 함대의 기함이었던 산타마리아호. 보시다시피 100톤급 카락입니다.
기중기로 들어올려 2만 톤짜리 화물선의 짐칸에 적재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배였죠.
이 배와 함께 50톤급 '핀타'호(캐러밸로 추정됩니다), 40톤급 '니냐'호(복원된 사진을
찾아보시면.. 아무리 살펴봐도 삼부크!!! 입니다. 어떻게 *_*??)가 신대륙을 향한
고된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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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하리스는 1884년 그를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과감한 천재이며 기존 지식의
울타리를 허물어 버릴 수 있는 원대한 이상을 지니고 있던 인물'이라고 칭했으며,
레오폴트 폰 랑케는 '시대를 뛰어넘는 대단한 발상으로 엄청난 발견을 해낸 수수께끼
같은 위대한 자'라며 극찬했습니다.

그는 누구인가? 마데이라에서 출생했나? 포르투칼 사람인가, 스페인 사람인가?
코르시카? 스위스? 또는 유대인인가? 그의 모국어가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고, 8개의 민족과 이탈리아의 17개 도시가 이 인물의 출생지라는
영예를 차지하기위해 수백 년 동안 다투어 왔습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 그의 출생지가
제노바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습니다만. (아버지가 제노바의 망루지기이자,
말년에는 주점주인-ㅅ-....을 했다고 하는군요.)

사진이 먼저 올라간 관계로 쉽게-ㅅ- 짐작하셨겠지만 그는 달걀 바로세우기 일화로
유명한 (혹은 국내 브랜드 1492miles로 패션계에까지 영향을 떨치고 계신..재미없군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그리고 이번 3화는 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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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를 두 배로 넓힌 남자 ]

콜럼버스는 열네 살 무렵부터 바다의 현실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소규모의 함대나 해상 세력의 용병 노릇을 하며 원양 무역을 하러 다니거나
약탈 활동에 동원되는 등의 일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쌓아갔고,
견디기 힘든 세월을 보내며 위기와 고통, 굴욕을 참는 방법을 배우고
굶주림과 갈증, 체념을 배웠습니다. 아울러 외국인이 당하는 심리적 고통
이라든가 폭풍우가 칠 때의 공포, 소심증, 비겁함을 극복하는 방법도 터득했죠.
이러한 와중에 리스본에서 지도를 그리며 생계를 꾸리고 있던 동생 바르톨로메오를
통해 대서양 서쪽에 있는 '아시아 대륙쯤으로 생각되는 (에러였죠-ㅅ-)' 미지의 나라를
가슴에 품게 되었고, 언젠가 그 곳을 발견하겠노라는 의지를 키워나가게 됩니다.
실제도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확신까지는 안했지만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 대륙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포르투칼의 아름다운 아가씨 펠리파 모네스 데 페레스트렐로를
수도원의 미사에서 알게 되었고, 눈맞은 그들은 당연히..
(과정은 과감히 생략!) 부부가 됩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사망하고 없었는데요, 포르투에 살림을 차린 이 뱃사람 사위에게
장모는 낡은 고리짝에서 죽은 남편이 간직했던 빛바랜 항해일지 뭉치를 넘겨주게 됩니다.
당시 스물여덟이던 콜럼버스는 이 항해일지를 탐독했고, 손수 지도를 만들어보는 한편
선원과 선장, 항법사 등과 며칠 밤이고 함께 지내며 항해일지 뭉치의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대서양 너머의 바다 멀리 떨어진 세계, 아시아의 땅과 새로운 대양'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곧 그는 페트루스 알아쿠스의 '세계의 이미지(Imago Mundi 이뭐꼬 문디..)'를 검토하며
서쪽 바다를 비교적 조그만 것으로 다루었습니다.
서쪽 대양이 크지 않아 극복할 수 있다면, 곧 인도를 거쳐 아시아에 이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지요.
즉, 서쪽으로 계속 가면 동쪽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망상!
(당시에는 '대양의 끝'이 있어 바다로 한없이 나아가다보면 절벽같은 곳에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기독교적 판형 세계관이 거의 진리와 다름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1316년 이미 페트루스 아바노가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반대쪽이 있다고 믿는다는 이유로... 화형당했습니다.)
피렌체의 이름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파올로 토스카넬리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마지막으로 '확신'을 얻게된 그는 오래간 품어온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포르투칼 왕 요한 2세를 설득하기로 작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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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과 시련 ]

아쉽게도.
누구도 감히 시도해보지 않았던 모험을 해보고자 했던 그의 설득 계획은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포르투칼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활발하게
탐험 항해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를 돌아 동쪽으로 항해하면 인도에
이르는 항로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그런 때에
미지의 대양으로 나간다는 것이 왕에게는 그리 탐탁치 않게 보였습니다.
국가는 전망 좋고 실천 가능한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 법. 모든 국가적 자원을
아프리카 탐사에 동원하는 것이 당연했죠. 이 정신나간 사업에 국고를 지원
한다는 것은 엄한 짓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도 콜럼버스는 자기의 대담한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몹시 열정적이었습니다. 마치 예언자 같았고, 세계에 대한 계시를 들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대양 항해가 성공할 경우 세습적인 대제독의 지위를 달라고
요청했고, 귀족 신분으로 격상시켜 줄 것과 새로 발견한 지역에서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10%를 자기 몫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견하게 될
지역과의 무역 사업에서 8분의 1에 이르는 지분을 갖고자 했고, 획득하게 될 지역
에서 왕에 버금가는 부왕의 신분을 요구하는 한편 그 나라에 필요한 관리를
자기가 임명하는 권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누가 들어도 왕이 'KIN' 했을 법한 요구를.
어떻게 그리 자신만만하게 내걸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탁견과 지식을 눈뜨고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죠!

훗날 알려졌지만 나름대로 자극을 받은 포르투칼 왕은 오르티스 주교의 권유로
콜럼버스 모르게 범선 한 척을 콜럼버스가 명시한 항로를 따라 조용히 서쪽으로
항해하고 돌아오도록 파견했다고 합니다. 범선은 카보베르데 섬에서 폭풍우가 치는
대양으로 며칠 동안 항해하다가 선수를 돌려 돌아왔죠. 선원들은 며칠동안 단조롭게
넘실대는 파도에 질려 잔뜩 겁을 먹었고, 리스본으로 돌아와 콜럼버스의 생각은
어설프고도 얼빠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콜럼버스는 몰래 포르투칼을 떠났습니다. 왕에게 속았다고 생각했죠. 혹은
왕이 자기보다 선수를 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던 아내도 이미 사망하여, 그를 포르투칼에 붙잡아 둘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내가 남겨준 세 살자리 아들 디에고를 데리고
맨손으로 스페인 남부로 떠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단의 수도원 문앞에서
데리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목을 축일 음식을 좀 달라고 구걸하는 초라한 남자를
발견하는 것으로.
스페인은 역사상 가장 큰 명성과 영토를 가져다 준 남자를 맞이합니다.

이후 추기경 페드로 곤잘레스 데 멘도사의 도움을 받아 왕 부부를 알현하게 된
그는 정열적으로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현명한 국왕 부부는
콜럼버스의 말을 듣고서는 당시 알려진 가장 뛰어난 학자들을 소집합니다.
바로 달걀 바로세우기 일화의 무대가 된 성스테판 수도원의 커다란 홀에서,
당시 쟁쟁한 학자와 고위 성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지의 세계를 팔러나선
이 세기의 도박꾼은 장대한 연설을 시작하게 됩니다.

불행히 자문회의는 연기를 거듭하며 결론 없이 질질 끌다가 드문드문
몇 차례 모임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해산되고 말죠-ㅅ-;
더욱이 이슬람 세력의 최종 보루인 그라나다 공략 - 그라나도 에스파다!! - 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라 국왕 부부는 항상 거처를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콜럼버스 역시 여러 해 그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는 여러 주일,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알현해 주기를 간청하며 대기실에서 기다렸죠. 이따금 희망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실망으로 바뀌곤 했습니다.

그는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허풍쟁이, 사기꾼, 협잡꾼' 등등 어린 아이들까지
뒤를 쫓으며 돌을 던지고 놀리곤 했죠. 그가 지나가면 온 거리가 비웃음으로
가득했다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려 7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의 의지는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에게 새롭고 참된 선물을 가져다 준 위대한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대양까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위험한
세계까지 나가 혼자서 골고다 언덕을 오를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죠.
온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는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끈질김과 용기,
또한 그의 신체적 완강함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왕과 포르투칼 왕이 이제 어디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볼까? 생각을
바꾸려던 찰나. 이슬람 교도들이 스페인에 무릎을 꿇었고, 막 프랑스로
떠나려던 콜럼버스를 산타 페의 요새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서양 역사상
가장 유능하고 영민했던 여성 지배자인 이사벨라 여왕이었습니다.
1492년 4월 17일, 드디어 국왕 부부와 계약이 체결된 것이죠.

지팡그(일본)도 발견하고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케세이(중국)의 대 칸도
만나보라는 계약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왕이 보내는 서한을 휴대했죠.
대서양을 건너 아시아에 이르는 것이 그의 임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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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정리에만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는데.. 방대한 내용이 되는군요.

내일쯤 올라갈 3화 대항해 시대의 개막 (2/2)에는
- 콜럼버스의 항해
- 어째서 대항온의 카리브 지역은 디폴트로 스페인이 초강세인가??
가 이어집니다 : )

대략 스크롤의 압박이지만 뼈가 되고 살이되는 지식이니
교양랭업!!을 위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Lv3 시애틀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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