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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교양부스터] 3 - 대항해 시대의 개막(2/2)

시애틀커피
댓글: 11 개
조회: 901
추천: 6
2006-01-13 23:39:42


< 위: 카리브 해와 아메리카 지도. 제작 연도 불명.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가장 맘에 드는 지도라서 ^^ >

< 아래: 캘리컷의 바스코 다 가마 제독. 19세기말에 그려진 유채화.
포르투칼 분들은 이벤트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매끈한 그 분.. (초상화랑 상당히 다르죠-ㅅ-)
포르투칼의 항해가로, 서유럽에서 희망봉을 거쳐 아시아로 가는 해로를 개척함으로써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포르투칼이 강대국이 되는 데 큰 공헌을 한 분이죠.
재미있게도 이 항로의 발견이 콜럼버스의 3차 아메리카 항해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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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의 2부를 시작하기 전에.
콜럼버스와 이후 싸가지없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발자취를 더듬고자 하는
모험가 분들을 위한 관련 지리학 퀘스트와 지도 정리.
(아레스섭 지리학의 살아있는 전설 누누고메즈님의 정보를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런던, 리스본, 세비야)
- 서해역의 치안
- 산호 바다
- 숲과 물의 나라
- 카리브에의 벌판
- 카리브 최대의 섬

(산토도밍고)
- 토지 개발의 기대
- 북미 연안의 조사
- 큰 강이라는 이름의 강

그리고 런던 서고 지리학 장서에서 뽑을 수 있는 (6랭부터) 2장의 다 쓰여지지 않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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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의 항해 ]

틴토 강의 왼쪽 강변에 있는 작은 도시 팔로스는 콜럼버스가 왕명을 받들어
범선 세 척(1부에서 언급한 산타 마리아, 핀토, 니냐호.)을 마련한 곳으로
세계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현재는 더이상 항구로 이용되지 않고 있는
이 도시에서 콜럼버스와 동생 핀존은 1492년 8월 역사적인 출항을 준비합니다.
팔로스의 조르쥬 교회는 출항 직전에 콜럼버스가 무릎을 꿇고 항해를 도와달라며
간절히 기도드린 예배당의 기적의 성모상을 모셨던 곳으로, 훗날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관광코스가 됩니다-ㅅ-;

방수도 되지 않는 삐걱거리는 배들은 언제라도 난파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습니다.(핀타호는 항해 사흘만에 키를 못 쓰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 척의 범선을 타고 항해했던 88명의 선원들이 겪은 고초와 두려움은
오늘날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겠죠.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대양의 끝에 가면 나락으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구요. 70일 동안의 항해 중 선원들이 35일째가
되어서야 반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콜롬버스가 상당한
양의 맹약의 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죠.-ㅅ-) 항해는 동풍을 받아
순조로웠고, 대부분의 항해 기간 중 바람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육지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고향으로 귀환하지도 못할 것이라며 걱정하기 시작했겠죠.
그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서쪽으로만 키의 방향을 잡도록 한 콜럼버스의 천재성과 확신만이
그러한 의구심과 근심, 공포를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최초로 불빛을 보았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불빛은 육지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 그가 이 불빛을 본 것은
1492년 10월 12일 밤 열 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두 시.
핀타호의 선원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가 외쳤습니다.



"육지가 보인다!!!!!!"



이 소규모의 선단은 콜럼버스가 '산 살바도르'라고 이름붙인 신세계의
자그마한 섬에 도착했습니다. 토착민들은 이 섬을 '구아나하니'라고
불렀는데 현재는 월팅스 섬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섬은
쿠바와 플로리다 반도를 에워싼 바하마 군도에 속해있습니다.

수정처럼 맑은 바다 가운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섬이 푸른 정원처럼
떠올랐습니다. 숲 속에서 토착민들이 온통 벗은 몸으로 놀라 바닷가 여기저기서
뛰어 나왔죠. 콜럼버스는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며 하느님에게 눈물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구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신세계 사람들의 최초의 만남. 토착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으나 이내 이 낯선 사람들이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나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극진히 존경하는 태도로 접근했습니다. 땅을 뒹굴
며 종교적인 황홀감에 빠져들기까지 했죠.

하아.
토착민이 생각했던 것처럼 유럽 사람들이 천사이거나 백색의 신, 아니면 그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지닌 존재였다면 인류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테지요....

콜럼버스는 도착민을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시아에 이르러 인도에 못 미쳐 있는 섬에 도착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이러한 착오가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을 통틀어 인디언으로 부르는 계기가 되었
습니다. (오늘날은 인디언이 아시아와 아메리카 두 대륙에 걸쳐 살던 인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는 인디언 처녀에게 유럽의 옷을 입히고,
짖지 않는 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생물학.. 맞춰보세요!)
유럽 사람으로는 최초로 아메리카산 과일을 먹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멕시코 소주 데낄라는.. 글쎄요-ㅅ- 심심하게 음주를 즐기는 그들에게 레몬즙을
넣고 손에 소금을 묻혀 핥아먹는 기발한 방식을 최초로 전해준 이도 바로 그라는...
농담입니다.)

세계사적인 첫 만남에서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가져다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갖가지 주화, 유리알(made in 암스테르담..-ㅅ-?), 장난감 종 등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종소리는 그 맑은 소리로 인디언들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답례로 잘 훈련된 앵무새, 면화 뭉치, 대부분 코에 장식하는 조그만
황금 장신구, 종려나무의 일종인 유카로 만든 카사바라는 케이크 등을 주었습니다.

월팅스 섬 이외에 콜럼버스의 첫 항해의 발견물로는 쿠바와 아이티 섬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이티 섬은 아메리카 땅에 유럽 사람이 최초로 주거지를 마련했던 곳이죠.
배 세 척 중 가장 큰 산타 마리아호가 섬에 좌초해 항해를 포기하고 그 목재를 뜯어
'라 나비다드'라는 요새을 이 곳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원 44명을 남도록
하여 이 곳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콜럼버스는 쿠바를 지팡그(일본) 섬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곳에 대도시가 있고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왕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죠.
콜럼버스는 이 섬이 자기가 본 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사가 참 묘한 것이죠. 이 섬은 약 400년 후에 콜럼버스의 의지와 거의
동급의 참된 의지를 보여준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배출합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혹은 '체 게바라'라고 불린.

상상력도 풍부했지만 대단한 현실주의자였던 콜럼버스는 공기에서 오리엔트 향신료의
향기 냄새를 맡았습니다. 강을 따라 한 시간 올라가면 황금과 보물이 그득한 '쿠바나칸'
이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죠. 한편 핀타 호의 선장 마르틴 알론소 핀손은 쿠바나칸이
마르코 폴로가 받들었던 몽고 지배자 쿠빌라이 칸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 선단을 이탈, 독자적으로 행동합니다. 황금에 눈이 멀었던 것이죠.

이제 콜럼버스는 유일하게 남은 조그만 니냐호의 돛을 올리고 스페인으로 위험한 귀환
길에 나서게 됩니다. 이 귀환길에서 그 유명한 아조레스의 폭풍우를 만나 침몰할 위기에
처하지만, 현명하게 버텨냅니다. 밤나무로 만든 이 목선이 그런 풍랑을 견디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콜럼버스와 핀손 두 사람 모두 상대방 배가 틀림없이 침몰했으리라
생각했지만.. 기적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두 배 모두 같은 날 팔로스 항에 입항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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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의 귀환, 비극의 시작 ]

콜럼버스는 누구도 받아 보지 못한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배반한 핀손은
슬그머니 배에서 내려 자기 집에 숨어버렸구요. 여왕 부부가 있던 바르셀로나로
가는 행렬에는 데리고 온 인디언이 온몸에 색칠을 하고 갖가지 색깔의 앵무새들을
데리고 걸어갔습니다. 유럽에서는 본 일이 없는 동물들이 박제되어 운반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식물들도 있었죠. 면화와 진귀한 무기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왕립 기병대가 이 행렬을 수행했고, 국민들은 미지의 세계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그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박수 갈채로 맞이했습니다.

여왕 부부와 황태자 후안을 알현하는 콜럼버스의 얼굴은 마침내 일을 해냈다는
안도감과 신에 대한 감사의 감정으로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여왕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최고의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나 차리는 격식이었죠.
콜럼버스는 무릎을 꿇었고, 여왕 부부의 손에 차례로 키스했습니다.
여왕 부부가 자기들 옆 의자에 앉으라고 권할 정도였으니, 그처럼 영예로운 일은
유래없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입에서 대탐험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졌고,
모든 이야기를 마칠 무렵 그의 눈은 기쁨과 고마움으로 눈물이 그득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새로운 세계를 바쳤고,
모두가 '주님을 찬송합니다 (Te Deum laudamus)'를 노래했습니다.

곧바로 발견한 땅을 확보하고 넓히기 위한 새로운 원정대가 편성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대단히 화려했죠. 카디스에서 대형 범선 3척과 소형 범선 14척이 함께 항해에
나섰습니다. 항해 인원만 1,500명에 이르는 한편 선교사도 12명 동행했습니다.
조그만 배들은 노아의 방주를 방불케 했습니다. 송아지, 염소, 양, 돼지가 배안에 그득
했죠. 바로 신세계에서 엄청나게 증식할 가축들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가금류를 비롯해
오렌지, 레몬, 멜론 씨앗도 함께 가져갔습니다.

아이티의 라 나비다드 요새에 남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는 제독의 신분
으로 콜럼버스가 나비다드에 도착했을 때, 요새는 불에 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죽음 같은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죠. 콜럼버스는 인디언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자 남겨진 사람들에게 황금을 요구하지 말것이며, 혹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땅속 깊이 파묻어 둘 것을 권고했던 일을 상기했습니다.

곧, 요새의 모래 속에서 황금이 아닌 스페인 사람 12명의 끔찍한 주검이 발견되었습니다.

콜럼버스는 근처에 있던 인디언에게 사정을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머뭇거리며 겁에 질려 끔찍한 지난날의 사건에 대해 말해주었죠.
콜럼버스가 떠나고 나자 남아있던 선원들은 황금에 대한 욕심으로 사로잡혀
사방팔방으로 보화를 찾아 짚히는대로 인디언들의 가옥을 수색하는 한편,
인디언들의 부인과 딸을 꼬여내 마음대로 욕보였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하늘에서 온 백인들의 진면목을 알고는 너무나 실망했지요.
분명 콜럼버스가 떠나기 전 절대 요새 밖으로 나가지 말고 군사 훈련을
열심히 하면서 밤낮으로 보초를 세우라고 엄명을 내린 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결국 남은 선원들은 우호적인 구아카나가리 부족을 떠나 황금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곳을 찾아 더 멀리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 중에서 마냐나라는 지역은 카리베 카오나보가 지배하던 곳으로, 스페인
선원들이 관할 지역에 들어오자 곧바로 붙잡아 처형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라 나비다드 요새에 대한 공격을 은밀하게 준비했죠. 밤중에 마냐나의 전사들이
오래전부터 보초를 세우지 않았던 스페인 사람들을 기습했고, 요새에 불을 지르
고 붙잡는 대로 모두 목숨을 빼았았습니다. 신세계 최초의 식민지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거죠. 모든 상황을 파악한 콜럼버스는 이 요새를 버리고 아이티의 다른 곳에
최초의 기독교 도시 이사벨라를 세웠습니다.

그 뒤 서인도 제도와 자메이카, 푸에르토 리코를 더 발견한 뒤 과로로 중병을
앓다가 일전의 유혈극을 기억하고 인디언에 대한 가혹행위를 철저하게 방지하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선, (실제로 콜럼버스는 인디언에 대한 선교활동 외 국부에
관계된 탐험 활동에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동생 바르톨로메오를 대리자로 남겨둔 채 세비야로 돌아오게
됩니다.

2년 뒤 세번째 항해가 있었고, 이번에는 함께한 신세계 정착민 중에서 콜럼버스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스페인으로 도망쳐 나와 현지 사정을 왜곡해 왕실에 고해
바쳤습니다. 그 때문에 이사벨라 여왕은 프란치스코 보바딜라에게 새로 전권을
주어 파견하게 되죠. 그에게 콜럼버스에 대한 온갖 혐의를 조사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한편 안정을 가져오고 질서를 바로 잡으라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아이티의 비극, 즉 스페인 정복자들의 최초 만행이라고 알려진
사건이 시작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명을 벗고 콜럼버스의 명예는 회복되었으나, 그가 떠나있는
동안 보바딜라는 인디언들을 몹시 탄압하여 유혈 참극을 벌였고, 이 결과로 콜럼
버스가 처음 도착했을 때 살고 있던 5개의 대부족 세력이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죠.
보바딜라는 인디언들을 고문하고 교수형이나 화형에 처하는 등 잔혹하게 다루었
습니다. 이후 후임 오반도가 이 해악을 말끔히 치유하라는 임무를 받고 교체되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고. 이후 금광 산업 등 스페인이 신세계에서
벌인 모든 사업에 어쩔 수 없는 무력 감독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졌
습니다.

그러는 동안 포르투칼의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하고, 뒤이어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이 그 항로를 따라
항해하여 파랗게 빛나는 엄청난 양 보석 - 바로 사파이어죠!! - 을 가지고 귀환합니다.
서양 세계가 들끓었습니다. '칼리쿠트의 보물'에 대한 소문이 온 유럽에 퍼져나갔죠.
힌두스탄 광산에서 나온 다이아몬드와 값진 보석을 비롯해 진주, 황금, 은, 호박,
도자기와 상아, 그리고 사파이어와 루비가 갑자기 유럽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카브랄은 비단, 고급 목재, 향료와 향신료 등 인도를 상대로 무한한 교역 가능성을
열어 놓았죠. 라이벌 포르투칼의 재력이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이 같은 부를 가져다 주는 인도를 자기가 개척한 서쪽 항로를 통해 도달하지 못하면,
그동안 콜럼버스의 온갖 노력은 물거품이 될 참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스페인에
영광을 안겨 줄 항로를 찾기 위해 마지막 4차 항해에 나서게 됩니다. 아이티에서
폭풍우를 만나게 되지만, 노련한 항해 경험으로 이 폭풍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같은 때 본국 소환령을 받고 귀국하려던 보바딜라는 이 폭풍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나쁜놈 천벌받은 거죠-ㅅ-) 그는 막대한 양의 황금을 배에 싣고 있었는데, 스페인으로
가져가는 황금 중 그렇게 많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보바딜라는 이 황금과 함께 대서양의
물결 속에 잠겨버렸고, 아직도 이 황금은 바닷속에 묻혀 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의
모델이 되었던 모씨를 비롯해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황금을 찾기 위해 매진했었죠.
그러니 인식 만랭이 되시면 한번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1502년 1월 17일, 그는 베라구아 해안에 이르게 됩니다. 인디언들은 우호적이었고
매장량이 풍부한 금광이 있는 지역이었죠. 콜럼버스는 동방의 대상과 항해자들이
솔로몬 왕에게 많은 황금을 가져다 준 금광을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고, 근처의
조그만 항구에 기항해 '벨렌(베들레헴)'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1503년 3월까지
정련소 몇 채가 세워지고 이사벨라 여왕에게 이 기쁜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벨렌은 현재 파나마 운하 카리브 해의 출입구가 있는 도시 콜론에서 북쪽으로
80km 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콜럼버스는 벨렌에서 멀지 않은 푸에르토 벨로에
범선 한 척을 또 떨구고 쿠바로 향했죠. 그는 두 개의 아메리카 대륙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다른 탐험가들보다 앞서 두 개의 대양을 연결하는 지점을
이렇게 발견했습니다. 바로 곁에 태평양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음은
물론이구요. 80km만 더 걸었더라면 스페인의 발보아보다 10년 먼저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태평양을 보았을텐데, 아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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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의 잠 ]


긴 여정이 끝나고 1504년 9월 12일, 콜럼버스는 아이티와 작별합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죠.
기독교를 전파하고, 원주민들을 유럽 문명에 익숙토록 해 새로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보바딜라의 만행 등을 거치며 신세계의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사벨라 여왕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신세계 탐험에 대한
모든 명령 권한이 남편 페르디난드 국왕으로 옮겨갔고, 이 개나리보다 아름다운 소년
(스페인 역사상 가장 싸가지없는 군주로 손꼽히죠..) 덕분에 왕실로부터의 재정적인 지원
은 거의 끊기다시피하여 부하들에게 자신의 모든 돈을 털어 나누어 주고 나서는
몹시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그는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흉흉한 꿈속에서는 섬과 싸우는 사람들,
인디언, 괴롭힘 당하는 처녀들, 욕심에 눈먼 스페인 사람들이 나타났고 폭풍우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칠대로 지친 콜럼버스가 잠잘 수 있는 곳이라고는 값싼 합숙소가 고작이었
죠. 그런 데서도 값을 치를 돈 한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함께 항해했던 선원
들을 돌보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래서 병석에서 일어나 왕실로 가 여왕이
몇해 전 스스로 약속한 것 중 일부라도 지켜달라고 호소하고자 아들 디에고를 왕궁으로
보냈습니다.

"선원들은 가난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4년 전 집을 떠나 무서운 일을 견디어내고
헤아릴 수 없이 값진 일을 해낸 사람들입니다. 폐하께서 하느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편지는 이사벨라 여왕이 임종한 뒤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항상 그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던 이탈리아의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베스푸치는 콜럼버스가 세 번쨰 아메리카 항해를 준비할 때 열심히
도와주고 콜럼버스의 마지막 항해에 동행했던 인물로, 새로운 발견의 가치와 전망에 대해
사실대로 보고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이었습니다.('아메리카'라는 명칭은 1507년에
독일의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제안한 것으로, 세계사
에서 최대의 지리적 발견을 이끌어낸 인물은 콜럼버스인데도 신대륙 명칭의 영광은
끝없이 펼쳐지는 육지에 대한 발견/측량 보고서를 제출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 돌아갔죠.
안타깝게도 콜럼버스 자신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것을 전혀 몰랐답니다. 다만 자신이
한 일은 지구가 둥글고 대서양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시아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었죠.)

베스푸치의 친구를 위한 끊임없는 편지와 청원, 온갖 노력을 페르디난드 국왕은 냉담하게
대했습니다. 결국 5월에 콜럼버스는 궁전으로 가기 위해 동생과 함께 세고비아로 길을 나
서게 됩니다만. 불굴의 용기를 가졌던 이 항해자에게 되돌아 온 것은 절망과 배신이었습니다.
병과 나이에서 오는 고통보다 심리적인 고통이 더욱 그를 괴롭혔죠.



1506년 5월 20일.
서양에서 가장 위대한 이 항해가는 "주님,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바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습니다. 그리스도 승천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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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

최근 600년 사이에 있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영웅적인 행동을 들라면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 존 글렌의 우주 비행과 콜럼버스의 대서양 정복
세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린드버그의 비행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용기의 소산이지만 기술의 승리라 할 수 있고.
비상한 용기와 자제력이 필요했던 글렌의 우주 비행은 뛰어난 팀워크와 현대적인
과학 지식이 함께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미국의 우주 비행이나 러시아의 우주 비행 모두
조화를 이룬 협동의 결과라 볼 수 있죠.

그러나.
콜럼버스는 바다에 나가게 될 떄까지 그의 계획에 회의적인 사람들과 여러 해 동안
싸워야 했습니다. 즉, 뒤떨어진 의식구조라는 엄청난 시대적인 난관을 극복해야했죠.
그의 행동은 강인한 정신력의 소산이었습니다.
바다에서도 그가 믿고 의지한 것이라고는.
단지 그의 가슴과 하느님 뿐이었죠.

따라서 저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업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화를 준비해봤는데....



정말 이제 다 끝난 겁니까 ㅠㅠ?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의 주제는 베네치아, 아름다움을 찬양하다! 정도가 될 것 같군요^^

Lv3 시애틀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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