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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메이플[스토리] 20

Pyapat
조회: 754
2025-01-13 22:31:49
아리, 슈가, 올리비아는 간신히 늪지대를 빠져나와 비화원으로 달려갔다.
곧 그들이 도착하고, 그들을 기다리던 아론, 론도, 테스는 일행이 무사히 돌아온것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는 반대로 아리가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다급하게 외쳤다.

“빨, 빨리… 비화원으로…!”

아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헛구역질까지 하면서도 어떻게든 비화원으로 가려 했다.
파티원들이 그녀를 말렸지만, 아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보다 못한 테스가 그녀를 붙잡아 진정시키려 했다.

“왜 이러는 건데? 일단 진정하고 좀 쉬어!”

하지만 아리는 여전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비화원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돼! 장로가 내가 거기 있었다는 걸 눈치챘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비화원에 우리가 아는 정보를 넘겨줘야 해!”

“뭐라고? 너네들 설마 정체를 들킨거야?”
론도가 묻자, 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래시뱅에다가 내 목소리까지 들었으니… 아마 들켰을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 장로가 돌아오기 전에 어서 스승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아리의 설명에 아론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좋아, 그럼 내가 론도랑 함께 아리를 따라 비화원에 갈게, 테스, 슈가, 올리비아는 여기서 쉬면서 장로가 보이면 무전을 보내줘.”

다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곧, 아리·아론·론도는 서둘러 비화원을 향해 출발했다.

비화원의 담장을 몰래 넘어선 세 사람은 곧장 아리의 스승, ‘듀드’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 비화원 내부는 고요했지만, 아리는 한시라도 빨리 듀드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불빛은커녕 인기척조차 없어,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 고요한 분위기에 아리의 머릿속엔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다.

‘벌써 늦었으면 어떡하지…?’

스며드는 불안감을 애써 떨치며, 세 사람은 계속해서 걸어갔고 곧, 듀드의 방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 안에는 모든 불이 꺼져 있었고, 차가운 공기만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야,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왜 이렇게 조용하지?”
론도가 떨리는 목소리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아리가 그를 제지하며 낮게 말했다.

“쉿, 조용히 하고 빨리 들어와.”

그녀가 손짓으로 재촉하자, 론도와 아론은 마지못해 방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끼이익—

그들이 들어온 문이 쾅 닫히면서, 그나마 방 안을 비춰주던 달빛도 차단되었다.
갑작스런 암흑에 당황해 허둥대는 사이,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론도와 아론을 제압하곤 그들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으악! 뭐, 뭐야!”

론도가 몸부림치자, 의문의 인물은 그의 목 근처에 날카로운 금속을 갖져다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다. 우린 인내심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거든.”

론도는 이를 악물고 발버둥치다, 목에 닿은 금속의 섬뜩함에 움직임을 멈췄다.
괴한은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너희는 여기엔 왜 온 거지? 목적이 뭐냐?”

방 안에 적막이 내리깔린 사이, 아리가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과거 선대 다크로드와 트리스탄을 죽인 자”

"....!"

론도와 아론은 비록 시야가 가려져 있지만, 자신들을 제압하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아리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 범인의 정체를 알려드리러 왔어요, 스승님.”

아리가 그들의 정체를 안다는 듯 말하자, 곧 그들은 파티원들의 구속을 풀어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방금 한 말,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거다.”
익숙한 홍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리는 여유로운 어조로 응수했다.

“진과 트리스탄의 일지, 그리고… 범인이 사실상 자백한 기록도 있어요.”

두 사람은 잠시 생각하듯 침묵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더니 곧, 방 안의 불을 켰다.

찰칵—

어둠이 사라지며, 등불이 방안을 밝히자 마침내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오랜만이네요, 두 분. 잘 지내셨나요?”

아리는 웃으며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했고, 듀드 또한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너도 별 탈 없었느냐.”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듀드 옆에 서 있던 홍아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아까 얘긴 뭐지? 과거 그 사건의 범인은 진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

아리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그동안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짜 부적으로 인해 발록의 봉인이 흔들렸고, 그 결과 발록에게 빙의된 설희가 성과 트리스탄을 살해하게 되었으며,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진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건을 덮었다는 것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려주었다. 잠시 후, 아리가 이야기를 마치자, 홍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럼 진짜 범인은 누구라는거냐? 진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선대 다크로드를 죽였단 거지?”

그의 질문에 아리는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범인은 장로였어요. 그리고… 그는 블랙윙의 첩자이기도 해요.”

“뭐? 지금 우리 보고 그걸 믿으라고? 비화원의 장로가 선대 다크로드를 죽인 진범이라고?”
홍아가 흥분한 듯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그동안 조사한 자료엔 장로님이랑 연관된 건 전혀 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걸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홍아에게, 아리는 조용히 둘을 쳐다보며 반문했다.

“정말로 그 자료가 전부 진실이라고 믿으시는 거예요?”

“뭐…?”

아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듀드와 홍아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스승님과 홍아 아저씨는 언제나 비화원에만 머물렀잖아요. 설희 언니의 안전이 달려 있으니까, 자리를 오래 비우면 위험할 테니 말이에요.”

“조사한 자료라고 해봤자, 결국 장로 측 부하들이 가져온 게 대부분이죠. 두 분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이 비화원이 설희 언니를 위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리의 말에 듀드와 홍아는 침읍하며 그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설희 언니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화원이 필요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이곳에서 언니곁만 지키고 있던거 아니에요?”

아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은연중에 외면해왔던 진실을 차근차근 마주하게 하는 그녀의 말에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듀드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고, 홍아는 자신의 삿갓을 눌러쓰며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던 아리가 침묵을 깨며 말을 이어나갔다.

"진실을 외면한다고 사라지는건 아니죠, 우리가 외면해왔던 작은 눈덩이가 어느새 커다란 눈사태가 되어버린 지금,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선택은 두 분의 몫이에요, 저는 설희 언니의 방에 접근할 수는 없으니까"
자신의 말을 마친 아리는 품에서 다크로드와 트리스탄의 일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듀드는 말 없이 그녀가 건넨 책들을 받아들었다.

곧, 건물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아리와 론도,아론은 서둘러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듀드와 홍아는 그저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리 또한 그들에게 별다른 인사는 건네지 않은채 방을 나섰다.

세 사람은 곧장 비화원의 담장을 넘어 나머지 파티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비화원 인근 공사장으로 향했다.

"저 아저씨들이 진실을 전해줄까?"
론도가 찜찜하다는듯 아리에게 묻자,

"걱정마, 분명 전해줄거야."
그들을 떠올리던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듀드와 홍아는 이른 시각부터 설희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듀드는 품 안에 든 다크로드와 트리스탄의 일지를 매만지며 작게 심호흡을 하고, 이윽고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설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설희… 님…?”

인사를 건네던 듀드와 홍아는, 방 안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함께 있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설희 옆에는 비화원의 장로, 발드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무슨 급한 일이길래 이곳에 온 건가?”
발드는 그들을 향해 물었다.

홍아는 어딘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별 일 아닙니다. 설희 아가씨께 전해 드릴 물건이 있었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군요.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홍아가 듀드와 함께 방을 나서려 하자, 발드가 손짓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 마침 자네들에게도 전할 소식이 있는데, 잘 됐군.”

“예? 소식이라니… 무슨…?”
홍아가 불안한 느낌에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그 순간, 발드는 품에서 책 한 권과 낡은 부적을 꺼내더니 이내, 설희에게 보여주었다.

발드가 꺼내든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던 듀드와 홍아는 곧, 그 물건의 정체를 깨달았다는 듯 경악하였다.

“장로님, 그건…!”
듀드가 놀라 급히 다가가려 하자, 발드가 그를 손짓으로 막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쉿. 이건 설희님에게 주는 선물이네.”

그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설희를 바라봤다.

“자, 설희님. 이게 무엇인지 짐작 가십니까?”

설희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글쎄요. 이게 뭔가요…?”

발드는 히죽거리며 부적을 흔들었다.

“이건 그 날 당신들이 저주받은 신전으로 향할 때 사용했던 부적입니다. 이래도 모르시겠습니까?”

그 말에 설희의 눈동자가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부적을 가리키며 묻는 그녀의 목소리엔 불안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 그걸 어떻게… 당신이…?”

발드는 비꼬듯 답했다.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부적으로 인해 당신이 선대 다크로드와 트리스탄을 죽였다는 사실이죠.”

“네? 그게 무슨…”

“설마 빙의되었을 때의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으신 건가요?”

발드의 냉소 어린 질문에, 설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던 발드가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친히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려드리죠, 한 번 진실을 마주해보시죠. 설희님"

발드가 주술을 읊기 시작하자, 설희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 잊고 있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린 그녀는 머리를 움켜쥐고 신음을 흘렸다.

“으윽… 그… 그만! 제발…!”

“이런, 도망치시면 곤란하죠. 그건 당신이 저지른 과오일 뿐이니까요. 끌끌…”

그 처참한 광경을 보다 못한 홍아와 듀드가 발드를 막으려 다가가자, 발드는 그들을 비웃으며 손짓과 함께 명했다.

“제압해라.”

그의 명령에, 순식간에 방 곳곳에 매복해 있던 비화원 블레이더들이 나타나 홍아와 듀드를 바닥에 짓누르며 포박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런 기습에 저항할 틈 없이 제압당해버렸고, 그런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발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 게다. 그렇지 않으면 자네들의 소중한 아가씨가 험한 꼴을 보게 될테니 말이다, 끌끌…”

“도대체 이런짓을 벌인 이유가 뭡니까?!”
듀드가 분노에 찬 눈으로 외치자, 발드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든것은 이 세상을 검게 물들이기 위해서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메이플 월드는 검은 천국으로 물들게 되겠지"

그는 괴로워하는 설희를 곁눈질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홍아와 듀드는 무력하게 제압당한 채 그 끔찍한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끌끌, 자네들이 얌전히 죽어준다면, 이 년의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지. 나도 아직까진 이 년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발드가 비화원 블레이더들에게 손짓하자, 그들은 곧 품에서 칼을 꺼내 홍아와 듀드의 목에 갖다 댔고, 두 사람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절망 속에 눈을 감았다.

그때,

쾅—!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한 블레이더가 다급한 목소리로 들어왔다.

“크, 큰일입니다! 장로님!”

발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소란이냐? 바깥을 지키라했거늘 여기엔 무슨 일이지?”

블레이더는 홍아와 듀드를 지나 발드에게 다가가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스, 습격입니다 장로님! 지금 비화원의 정문에 정체모를 것들이 나타나서..!"

"습격이라니? 도대체 누가 여기를 습격했다는거냐?"

"그, 그게.."

블레이더는 머뭇거리며 장로의 눈치를 보듯 쭈뼛거렸다. 
그 모습에 장로가 답답하다는 듯 그에게 다가가 물으려하자, 곧 블레이더가 자세를 낮추고 주먹을 쥐고는 장로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

“나다, 이 새끼야.”

그 말과 동시에, 블레이더가 발드를 향해 푸른빛의 섬광을 내뿜으며 주먹을 내리꽂았다.

퍽—!

예상치 못한 공격에, 장로는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고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다른 블레이더들의 시선이 침입자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제압이 허술해진 틈을 타, 홍아와 듀드가 몸을 뒤틀어 구속을 풀고는 곧장 블레이더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순식간에 난전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소란을 틈타 남자는 정신을 잃은 설희를 챙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설희를 업어맨 남자는 방 밖으로 달려나가며 홍아와 듀드에게 외쳤다.

“도망쳐요!”

남자의 말에 홍아와 듀드는 서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고, 설희와 남자를 엄호하며 함께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방 밖으로 나온 의문의 남자는, 이미 밖에서 블레이더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아리 일행에게 소리쳤다.

“야! 전부 챙겼으니까 이제 도망쳐!”

그 목소리에 아리 일행도 재빨리 그들에게 합류한 뒤, 비화원을 빠져나와 커닝시티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곧, 비틀거리며 설희의 방에서 걸어나온 발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블레이더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잡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와!”

명령이 떨어지자, 비화원 내부에 남아 있던 블레이더들은 아리 일행을 뒤쫓기 위해 일제히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발드는 여전히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듯 씩씩거리면서,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접니다. 지금 당장 커닝시티로 병력을 보내주시지요.”

발드의 말에 곧 무전기 너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그게 무슨 소립니까? 분명 병력을 약속했잖습니까?”

상대의 응답에 발드는 더욱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당신들 설마, 날 버릴 생각은 아니겠죠? 제가 가진 정보가 저들에게 넘어가면, 당신들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무전기 너머에서 누군가가 짧은 대답을 건넨 듯 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죠.”

통화를 마친 발드는, 무전기 너머에 있을 누군가를 향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날 무시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해주겠다.”

그렇게 말하며, 발드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커닝시티 방향을 노려보았다.




"젠장.. 이거 포위당했는데?"
커닝시티까지는 아직 거리가 남았음에도, 아리 일행은 이미 수십 명의 비화원 블레이더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을 살피며 론도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홍아가 결심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듀드가 녀석들의 시선을 끌 테니, 그 사이에 설희님을 모시고 커닝시티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다 두 분이 죽을지도 몰라요!”
아리가 다급하게 만류했지만, 홍아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단호하게 다시 말했다.

“이게 최선이란 걸 모르는 거냐! 지금 너희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지? 방해하지 말고 어서 설희님을 데리고 도망쳐!”

아리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듀드가 다정한 목소리로 곁에서 거들었다.

“걱정 말고 어서 가거라. 뒤는 우리가 맡을 테니.”

“하, 하지만…”

“야, 꼬맹이.”
그때, 홍아가 특유의 능청스런 어조를 되찾으며 아리를 불렀다.

“아저씨가 늘 말했잖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비화원 전부도 상대할 수 있다고. 아저씨 못 믿겠냐?”
홍아는 그런 아리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따스하게 덧붙였다.

“우리만 믿고 빨리 도망쳐. 그래야 우리도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며, 홍아는 뒤돌아서 적들을 바라보았다.

“싫어요.”

“뭐? 그게 무슨..”
갑작스런 아리의 발언에 홍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싫다고요!”

홍아와 듀드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완강한 태도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젠 두 번 다시 도망치기 싫어요. 설령 같이 죽더라도 함께 싸울 거예요!”

“야, 이… 지금까지 뭘 들은…”
홍아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자, 이 모습을 지켜보던 론도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요! 싸우든 도망치든 빨리 결정해 주실래요?! 우리 오래 못 버틴다구요!”

파티원들은 슈가를 보호하며 달려드는 블레이더들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고 있었지만, 방어막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모두 지쳐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 광경에 홍아와 듀드는 곧바로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뛰어들었고, 아리 또한 그 뒤를 따랐다.

“에이씨! 꼬맹이가 뭐 이리 고집이 센 거야! 야, 듀드! 제자 관리 안 해?!”
홍아가 투덜거리듯 외치자, 아리가 맞받아쳤다.

“아저씨 보고 배운 건데 왜 스승님한테 따지는데요!”

“뭐야?! 이 꼬맹이가 누구한테 큰소리야!”

장난스러운 투닥거림을 하며 여유롭다는듯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그들이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파티원 모두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고, 뚫고 도망칠 틈도 없었다.
결국 아리와 홍아, 듀드마저 힘이 빠지는지,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후우… 허억… 야, 꼬맹아. 이런 칙칙한 아저씨랑 같이 죽으니 좋냐?”
잔뜩 몰려드는 블레이더들을 바라보며 홍아가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가는 데는 순서 없어요, 아저씨.”
아리도 헉헉거리며 대답하자,

“저게 열 몇 살 먹은 애가 할 소린가… 진짜…”
홍아가 투덜거리듯 말하며 눈 앞을 바라보았다.

"진짜 더럽게 많네, 그 장로는 뭘 할려고 이렇게까지 병력을 모은건지.."

눈 앞에는 여전히 수 많은 블레이더들이 그들을 감싸오고 있었고, 홍아와 듀드, 그리고 아리는 결연한 표정으로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쾅-!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블레이더들의 뒷 쪽으로 커다란 폭음이 들려오더니 곧, 블레이더들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아리와 듀드, 홍아 그리고 그녀의 파티원들 모두가 소리가 들려오는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퍼지 에어리어"

낯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하늘에 수많은 부적이 솟구치더니, 넓게 펼쳐진 부적에서 실처럼 생긴 오라가 뿜어져 나와 블레이더들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수의 블레이더가 제압당하고, 그 사이로 두 명의 인물이 유유히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만지씨! 그리고 다크로드님!”
아리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외치자, 그들도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진… 어떻게 여길…”
홍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묻자, 진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미안하군.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 좀 늦었군. 이제 우리가 도와줄 테니, 어서 도망치게나.”

그들이 진과 만지의 엄호를 받으며 빠져나가려 하자,

“누구 마음대로 빠져나간다는 거지?”
낯익은 노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드가 쓰러진 블레이더들 사이를 헤치며 분노한 눈빛으로 일행을 노려보며 다가왔다.

“고작 그 정도로 우릴 막을 수 있다고 믿나, 발드?”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진이 비웃듯 묻자, 발드는 코웃음을 치며 손짓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수십 기의 안드로이드 부대가 내려와 그들을 에워쌌다.
그 광경에 아리와 파티원들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쩔 테지? 네 놈들이 이걸 뚫고 지나갈 수 있겠느냐?”

“물론이다.”

자신의 말에 진이 의외의 답을 하자, 발드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아함이 들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진은 여유롭게 이어 말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고작 그 정도로 막을 생각이었다니….”

그 말과 함께, 주변에서 수많은 모험가들이 나타나 안드로이드 부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발드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리자, 진이 아리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

“우리 후배님의 조언 덕에 준비해뒀지. 시간이 없어서 수가 많진 않지만, 너희를 잡기엔 충분해.”

“자, 순순히 투항하면 목숨만은 보전할 수 있다.”

진의 발언에 발드는 이를 악물고 안드로이드 부대에게 명령했다.

“크윽! 이렇게 된 이상 한 놈이라도 더 죽여주지! 당장 쓸어버려!”

하지만 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안드로이드들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당황한 발드가 다시 고함을 치려는 순간, 안드로이드 한 기가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삐빅. 적 분석 중. 중급 모험가 5명, 상급 23명, 최상급 4명…]

[승리 확률 3%… 구출 확률 0%…]

[목표 수정 개시.]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안드로이드는 돌연, 총구를 발드에게 겨누었다. 그 모습에 발드가 경악하며 외쳤다.

“뭐, 뭐 하는 짓이냐! 설마 나를 배신하겠다는 거냐? 감히 내가 누군줄 알고-!”

[기밀유지. 제거한다]

타타탕—!

안드로이드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탄환들이 발드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발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자신의 몸에 총알이 꽂히는 광경을 지켜보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 처참한 광경에, 주변 모험가들은 숨죽인 채 발드가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발드의 숨이 완전히 끊긴 것을 확인하자, 안드로이드 부대는 곧 허공으로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뭐, 뭐야… 정말로 죽여 버린 건가?”
론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테스가 고개를 숙이며 읊조렸다.

“끔찍하군. 보안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제거한다는건가…”

파티원들은 발드가 쓰러진 곳을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그때,

“으윽…”

설희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몸을 일으켰다.그런 그녀에게 홍아와 듀드가 달려가 부축해주었다.

“설희님, 괜찮으세요?”

“으응… 난 괜찮아요. 그런데… 여긴…?”

설희는 서서히 주위를 둘러보다, 앞에 있던 진과 만지와 눈이 마주쳤다.

“진…? 그리고 만지 씨까지… 당신들이 왜 여기에…?”

조용히 설희를 바라보던 진은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과거의 일을 마무리하러 왔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진의 말을 듣던 설희는 곧, 아까의 일이 기억난 듯 고개를 떨구며 힘겹게 진의 이름을 불렀다.

“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온몸을 떨고 있는 그녀를 보던 진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진의 사과에, 설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진은 자세를 낮춰 설희와 눈높이를 맞추고,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너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그 긴 시간을 어둠속에 홀로 남겨둔 나의 업보다. 정말 미안하구나.”
진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설희 또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저 때문에…”

그녀가 울먹이면서 자책하자, 진과 만지는 조용히 그녀를 감싸 안았다.
설희는 그들의 품에서 계속 흐느끼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슬픔과 죄책감을 토해냈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짓던 아리의 곁으로 슈가가 다가왔다.

“아리, 괜찮겠어? 저기 가서 함께하지 않아도 돼?”
슈가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아리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로? 너도 아직 사과받지 못했잖아. 그런데도 괜찮은 거야?”
슈가의 말에, 아리는 잠시 눈을 감고 메르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애라면 분명 웃으면서 넘어갔을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아리의 말을 들은 슈가도 이내 미소를 짓더니, 눈물과 사과로 뒤엉킨 세 사람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용서하고 구원하는 사람이라... 그래, 분명 그럴 거야.”

그녀의 시선 속에서, 세 사람은 서로의 슬픔과 죄책감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삼켜 온 울분, 그리고 이제 더는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가 이들의 마음속을 채우며,
새로운 희망이 조용히 공간을 맴돌았다.

그들을 지켜보던 아리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메르시의 따스한 미소가 아련히 떠올랐고,
그 작은 희망이 저들의 가슴에도 닿기를 바랐다.

어느새 떠오른 아침해가 모두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었다. 마치 어딘가 희망의 향기가 배어드는 듯,
서로가 서로에게 베푼 사과와 용서가 모든 것을 조금씩 바꾸어 놓으리라—
그리고 얽힌 실타래는 풀려 저 먼 미래로 나아가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아리는 살며시 따스한 햇살을 바라보았다.

Lv42 Pyap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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