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일행은 학회 내부의 구조와 설비를 파악하기 위해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니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를 따라 여러 방이 늘어서 있었고, 일행은 문을 하나씩 열어보며 내부를 살폈다.
그 순간,
"이봐! 그렇게 함부로 열어보고 다니면 안 돼!"
뒤쪽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일행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노란 두건을 쓴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카슨 학회장님이 신입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너희가 신입인가 보네."
남자가 다가와 묻자, 슈가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입 연금술사인 슈가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친구들인 올리비아와 론도예요."
"안녕하세요."
올리비아와 론도도 뒤이어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반갑다. 난 베딘이라고 해. 이곳에서 마력석을 만드는 일을 맡고 있지."
"그나저나 너희들,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는 건 알겠지만, 함부로 방을 열어보면 위험할 수도 있어. 조심하도록 해."
"죄송합니다…"
일행이 주눅 든 목소리로 사과하자, 베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손짓하며 말했다.
"이리 와. 내가 몇 가지 알려줄게."
베딘을 따라간 일행은 서재 겸 휴게실로 보이는 방에 도착했다.
"여기가 서재 겸 휴게실이야. 그리고 맞은편 방이 너희가 쓸 임시 연구실이지. 거기서 필요한 실험을 하면 된단다."
"감사합니다!"
슈가가 밝게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베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등을 돌렸다.
"그럼 난 이만 마력석 작업하러 가봐야겠다. 나중에 또 보자고."
그가 떠나려 하자, 올리비아가 그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혹시 마력석 만드는 걸 구경해도 될까요?"
베딘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딱히 상관은 없는데… 보통 이런 일엔 관심이 없던데, 신기하네. 뭐, 좋아 따라와. 보여줄게."
일행은 베딘을 따라 그의 작업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광석과 제련 도구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베딘은 작업대 위의 잡동사니를 정리하고, 상자에서 광석 몇 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며 설명을 시작했다.
"자, 마력석이라는 건 말 그대로 마법을 저장한 돌이야. 이걸 사용하면 일반인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돼."
그가 책상 위에 놓여진 광석들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겉보기에도 그가 꺼내든 광석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게 마력석의 기본 형태야. 다른 광석보다 훨씬 밝게 빛나지? 이건 이 안에 코어가 들어있기 때문이야. 이 코어들은 대부분 은과 리튬으로 만들어져."
베딘은 광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은은 마법을 등록하는 데 쓰이고, 리튬은 마력을 저장하는 데 쓰이지. 이 둘이 합쳐져 하나의 코어를 형성할 때, 이런 밝은 빛을 뿜는 거야. 그리고 모든 마력석의 중심에는 반드시 이러한 코어가 하나씩은 들어가야 하지."
일행은 베딘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으며 광석을 유심히 살폈다. 베딘은 그들의 반응을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만드는 걸 한 번 보여줄게… 어?"
그러나 작업을 시작하려던 그는 갑자기 허둥대며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라… 내가 발주를 안 했던가? 이런…"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베딘을 본 슈가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뭔가 잘못됐나요?"
베딘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아무래도 광석 발주를 깜빡했던 것 같네. 하필 사막의 불꽃이 부족하네, 이런…"
"사막의 불꽃이요? 그게 뭐예요?"
호기심이 생긴 올리비아가 물었다. 베딘은 그녀를 향해 차분히 설명했다.
"붉은 모래 난장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붉은색 보석이야. 사막의 열기를 머금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지. 어쨌든 오늘은 재료가 없어서 만드는 걸 보여주기는 힘들겠네."
그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자, 론도가 품에서 반짝이는 붉은 보석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혹시 말씀하신 보석이 이건가요?"
"어? 그거 맞아! 이야,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거야?"
베딘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론도는 머쓱한 듯 대답했다.
"어제 니할사막에서 주웠어요. 덕분에 몬스터한테 쫓기긴 했지만요…"
"뭐? 푸하하! 고생했겠는걸. 보통 이런 건 모험가 길드에 부탁해서 구하곤 하는데… 어쨌든 덕분에 마력석을 만들 수 있겠다."
베딘은 론도에게서 보석을 받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푸른 용액이 담긴 플라스크를 들고 보석을 조심스럽게 담갔다.
"이건 마력이 담긴 액체야. 이걸 보석의 열기로 가열하면 마력이 반응하기 시작해. 좀 있으면 용액이 반응을 보일 거야. 그때 이걸 리튬 안에 넣어서 코어를 완성하는 거지."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슈가가 묻자, 베딘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대략 1시간쯤 걸릴 거야. 가능하다면 은에 마법을 새기는 것도 보여주고 싶긴 한데, 그건 위험해서 지금은 어렵겠네."
베딘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자, 일행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덕분에 재밌는 구경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베딘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대신 노크는 하고."
일행은 베딘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작업실을 나섰다. 연구실로 돌아가기 위해 문을 열자, 문 앞에는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문 앞에는 한 명의 남성이 서 있었다, 남성은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로, 피곤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가는 눈으로 슈가를 바라보자, 그 시선에 슈가는 순간 당황해하며 멈춰 섰다.
그때, 베딘이 일행 사이를 가르며 앞으로 나섰다.
"하하, 안녕하세요, 유토 씨. 여기엔 무슨 일로…?"
베딘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남자에게 묻자, 남자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시끄러워서 연구에 집중을 할 수 없잖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좀 해주지?"
"아, 죄송합니다. 신입 친구들을 교육하느라 좀 시끄러웠나 보네요. 주의하겠습니다."
베딘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유토는 혀를 쯧 하고 차며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베딘은 그가 방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네. 저 사람 때문에 당황했지?"
베딘은 일행을 향해 위로하듯 말했다.
"요즘 연구가 잘 안 풀려서 예민해져서 그래, 원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 이해해줘. 알겠지?"
일행은 머뭇거리며 베딘의 말을 곱씹은 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나저나, 유토 씨 연구실이 너희 바로 옆 방이라… 한동안 고생 좀 하겠는걸."
베딘이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일행은 어색하게 웃으며 베딘의 작업실을 나와 자신들의 연구실 앞으로 갔다. 연구실 앞에 도착한 슈가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물끄러미 옆 방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론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슈가? 뭐라도 있어?"
슈가는 옆 방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방이 아까 그 사람… 유토 씨 연구실이랬지?"
"응? 어… 그렇지. 그런데 그건 왜?"
"한 번 들어가 볼래?"
"뭐?"
갑작스러운 제안에 론도가 당황하며 말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슈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까 일도 사과할 겸… 그리고 무엇보다 조사도 해야 하잖아. 안 될까..?"
슈가가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올리비아와 론도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조심해야 해."
올리비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 사람은 유토의 방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틈 사이로 유토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뭐야? 무슨 볼 일이야?"
그의 날카로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슈가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신입 연금술사인데, 아까의 일 때문에 사과드리려 왔어요."
유토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짜증스러운 기색은 여전했지만, 슈가의 태도에 조금 놀란 듯 보였다.
"사과…? 하, 그런 거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유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 그리고… 유토 씨의 연구에 대해 조금 여쭤봐도 될까요?"
슈가의 당돌한 말에 유토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내 연구를…?"
유토는 잠시 고민하더니 문을 더 열어주며 말했다.
"좋아. 대신 방 안에서 떠들거나, 함부로 손대지는 말라고"
"들어와."
일행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유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각종 서적, 용액이 담긴 플라스크, 그리고 실험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풍경에, 멍하니 문 앞에 서 있던 일행을 보고, 유토는 짧게 한 마디 던졌다.
"멀뚱멀뚱 뭐해? 저기 의자에 대충 앉아."
그는 방 한쪽 책상 근처의 의자들을 가리켰다.
"마실 건 커피면 되겠지?"
"아, 네!"
일행이 대답하자, 유토는 찬장 같은 곳에서 커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커피를 만들어 와 일행에게 나눠주고는, 그들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자신의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래서… 내 연구가 궁금하다고? 대체 왜?"
슈가는 차분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선배님들께서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궁금해서요. 안 될까요?"
유토는 그녀를 가늘게 뜨는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내 연구를 빼앗으려는 건 아니고?"
그의 질문에 슈가는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그저 선배님이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배우고 싶을 뿐이에요. 제발 부탁드려요!"
슈가의 간절한 말에 유토는 당황한 듯 잠시 침묵하더니, 크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좋아. 대신 내 연구를 알고있는 사람은 너희랑 학회장님 뿐이야. 그러니 만약 다른 사람 입에서 내 연구에 대한 소리가 들리면… 알지?"
"네! 알겠습니다!"
일행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토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마력석 하나를 들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연쇄 융합의 마법이 새겨진 마력석이다."
슈가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연쇄 융합이요? 그건 학회장님의…?"
유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학회장님의 허락을 받고 내가 다듬는 중이지."
그는 마력석을 손에 들고 천천히 돌려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연쇄 융합의 가장 큰 단점은 제어가 안 된다는 점이야. 마법이 한 번 발동되면 코어 에너지가 모두 소모될 때까지 융합을 시도하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일행의 반응을 살폈다. 슈가와 올리비아, 론도는 그의 말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극복하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유토는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첫 번째, 코어 에너지의 출력을 약하게 해서 실행 가능한 연금술의 양을 줄이는 것."
"두 번째, 코어 에너지가 모두 소모될 때까지 견딜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드는 것."
"첫 번째 방법은 안전하지만 기껏해야 연금술의 양이 한 두개 늘어날 뿐이지. 두 번째는 위험성은 크지만 그 만큼
리턴이 큰 방법이야."
유토는 설명을 마친 뒤 방 안쪽으로 걸어가, 천으로 덮여 있던 거대한 플라스크를 가져왔다. 플라스크는 겉보기에도 엄청난 크기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두 번째 방법을 위한 매개체다."
그가 천을 조심스럽게 벗겨내자, 플라스크 안에는 기괴한 모습의 세포 덩어리가 플라스크 안에서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기괴한 광경에 일행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뭐죠?"
슈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유토는 전혀 개의치 않고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암세포를 추출해서 연금술로 거대하게 재탄생시킨 거다."
그는 플라스크 속 세포 덩어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덧붙였다.
"너희들, 암세포의 특징이 뭔지 아나?"
유토의 질문에 일행은 고개를 젓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유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바로 무한히 분열한다는 점이지. 암세포는 일반 세포와 다르게 끊임없이 분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성을 연쇄 융합의 마력석과 결합해 그 힘을 상쇄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행은 여전히 충격에 휩싸인 채, 플라스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올리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나요? 만약 제어가 안 되면…"
유토는 그녀의 질문을 끊으며 단호히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연구를 계속하는 거다. 제어가 가능해진다면, 스승님의 연금술은 이 세계 최고의 걸작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눈빛은 강렬한 열정으로 빛났다. 마치 그의 연구가 성공할 경우, 그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을지 확신하는 듯했다.
"끊임없이 분열하는 세포에 연쇄 융합식을 결합한 생체 코어로 마력석을 만들고 코어 에너지를 안정화 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연금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거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과 집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일행은 그의 열정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방법의 위험성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떨칠 수 없었다. 론도가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슈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유토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유토 씨. 이 연구는 스승님께서 직접 의뢰하신 건가요? 아니면 유토 씨가 스스로…"
유토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학회장님의 허락을 받은 상태긴 하지만, 세부 연구는 내가 주도하고 있다. 스승님도 연쇄 융합의 위험성을 잘 알고 계시니까."
그의 말에는 한층 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일행은 잠시 침묵하며 유토의 말을 곱씹었다. 그의 연구가 성공할 경우 가져올 혁신과, 실패했을 때 닥칠 재앙의 가능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유토의 광기에 일행은 차마 더 머무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연구에 방해되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
슈가가 급히 인사를 건넸고, 올리비아와 론도도 뒤따라 고개를 숙였다.
유토는 그들을 힐끔 바라보며 무심히 대답했다.
"그래, 조심들 해."
일행은 서둘러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서로를 마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 진짜 무섭네…"
론도가 중얼거리자, 슈가와 올리비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후, 일행의 숙소
슈가와 올리비아, 론도는 유토와의 만남과 연구실에서의 상황을 테스와 아리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테스가 물었다.
"그러면 아직 과거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를 못한 거야?"
론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아직은 신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조금씩 접근해 볼게."
"흠.. 뭐,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니니까. 어쨌든 수고 많았어."
테스의 말을 들은 론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방구석에 쓰러져 있는 아리를 가리켰다.
"근데 쟤는 왜 저래?"
테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 아까까지 키니랑 놀아줬거든."
"놀아준 게 맞아? 저게?"
론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방구석에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아리는 힘없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들 체력은 무서워…"
슈가와 올리비아는 아리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위로했다. 피곤한 얼굴로 누워 있는 아리는 간신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오늘은 진전 없었어?"
올리비아가 아리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물었다.
"안 그래도 내일 A 씨를 한 번 찾아가 볼까 생각 중이야."
테스의 대답에 올리비아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 안드로이드 말이야… 믿을 수 있는 거 맞아? 말만 들으면 완전 회장님 편인 것 같던데."
테스 대신 대답한 건 아론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 수 없지. 그래도 말하는 거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안드로이드 보고 사람이라니…"
론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자, 아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사람이나 다름없지. 말을 잘하잖아."
그런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리가 힘겹게 한 마디를 던졌다.
"너희들… 내 어깨나 더 주물러… 그게 더 중요해…"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두가 피식 웃었다. 시시껄렁한 농담과 가벼운 대화로 긴장을 푼 일행은 곧 내일을 위해 각자 자리를 정리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