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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전] [소설]TerA [EP 1-2. 티아라니아의 아이들]

아이콘 Noire1119
댓글: 4 개
조회: 901
추천: 21
2016-04-24 14:39:59

 

 

 

 

TerA

~ The exiled realm of Arborea ~

 

글 : noire1119

그림 : 987654

 

[ EP 1. 티아라니아의 아이들 ]

 

 

 

 

#2

 

‘하이엘프’는 원래 요정족에서 갈라져 나온 종족이었다.

그들의 형제인 ‘윈드엘프’가 자연의 섭리와 정령들과의 조화를 중시했다면

하이엘프는 돌을 깎고 쇠를 녹이는 것에 집중했다.

개량과 개발을 통한 기술의 진보는 신이 그들에게 내려준 선물을

보다 강하게, 편리하게 변화시켰다.

 

형제들과 불화를 겪은 이후, 하이엘프들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바다를 건넜다.

서쪽 대륙 ‘샤라’의 중부에 도달한 그들은 거대한 분지지역을 발견했고 그곳에 도시를 세웠다.

고대 거인들의 신성제국으로부터 흡수한 문명을 이용해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발전된 모습을 갖춘 계획도시.

그것이 ‘알레만시아’.

 

알레만시아가 가진 기술력은 말 그대로 ‘혁신’ 그 자체였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교육‧연구기관이라 불리는 ‘미스테리움’은

전 종족을 아우르는 ‘발키온 연합’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연합 내에서도 극비 사항인 티아라니아의 존재를 알고 연구소를 설립하여 섬에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사실상 미스테리움이 티아란 나무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밝혀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었다.

 

단, 연구소의 인원은 10명 안팎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그들의 동선과 행적은

정기적으로 연합 사령부에 보고해야하는 등 제약이 많았다.

연구원들이 사용하는 물자의 수송과 인원보충은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배편을 통해 제공되었다.

비행선이나 페가수스를 이용한 방법은 기록을 숨기기가 꽤나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배를 통해 티아라니아로 들어오는 물자는 연구원들의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생필품이나 외지에서 들여온 식재료, 약재, 담배, 공구 등

섬 주민들이 필요로 하거나 갖고 싶어 하는 잡화도 꽤 많이 들어왔다.

그것들은 주로 잡화상인 에일리가 취급하는 물건이었는데

그녀는 가끔 물건을 떼러 배를 타고 대륙으로 나갔다오기도 했다.

덕분에 에일리는 상품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취급하는 이야기꾼으로도 통했다.

 

워낙에 수완이 좋은 장사꾼이다 보니 연구원들도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연합군 쪽에 의뢰하는 것보다 에일리에게 의뢰하는 것이 더 빨랐다.

‘새라 화이트리버’도 같은 이유에서 서류 작업에 쓸 새로운 고급 깃펜이나 최신 모델의 화장품을 부탁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그런 사치품이 아니었다.

한 달 전 에일리가 가져온, 수취인도 발신인도 표시되어있지 않은 편지 한 통이 그녀를 항구로 이끌었다.

 

짐을 내리기 위해 도우러 나온 마을 사람들과 연합의 군인들이

밧줄을 이용해 배를 고정시키는 것을 바라보면서 새라는 복잡한 심경을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수수께끼의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 정기 보급선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때 한창 물자를 내리는 인부들 사이에서 낡은 두건을 걸친 사람이 나타났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배에서 펄쩍 뛰어내린 이방인은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새라를 발견하고는 엷게 미소 지었다.

 

「너 정말…….」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하던 새라는 이방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수 년 전 죽은 줄만 알았던 여동생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 나도 다시 만나서 반가워.」

 

「……진짜 살아 있었구나.」

 

「뭐, 반 정도지만. 그래도 제대로 숨도 쉬고 밥도 잘 먹으니까 살아있다고 봐도 되겠지?」

 

「농담할 기분 아니야. 편지에 쓴 내용, 사실이야?」

 

「내가 뭐라고 썼었는지 확실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사실일거야. 설마 죽었다 살아나는 마당에 거짓말을 쓰진 않았겠지.」

 

「빅토리아 화이트리버!」

 

왠지 진지하지 못한 빅토리아의 태도에 새라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윽박질렀다.

동생을 잃었을 때 누구보다도 슬퍼한 것은 새라였다.

빅토리아가 가족을 잃고 자신의 집에 입양된 후로

그녀들은 진짜 친자매가 된 것처럼 지냈던 것이다.

수년 전 연합군으로부터 빅토리아의 전사통지서를 받았을 때

새라는 마치 자신의 삶의 반쪽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시신조차 찾을 수 없어 빈 관으로 장례식을 치렀을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달 전에 사실은 살아있었다는 편지 한 통이 날아온 것이다.

그것도 본인으로부터.

 

새라는 편지를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지만

둘만 아는 추억이 적혀있는 편지를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정말 빅토리아가 살아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

그 동안 어째서 가족들에게 찾아오지 않고 연락 한번 없었는지.

 

그러다보니 문득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녀를 잃은 사람들은 슬픔에 빠져서 한 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정작 본인은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했다.

 

편지를 받고 빅토리아가 섬으로 오기까지 한 달.

그 동안에도 새라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낸 것은 쌓였던 설움과 정신적인 피로가 폭발한 탓이었다.

덕분에 항구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의 주목이 순간 그녀들에게 모였다.

그것을 눈치 챈 새라는 순간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시선을 돌리자 빅토리아도 어깨를 살짝 문지르며 딴청을 피웠다.

 

「따라와.」

 

아무래도 이야기를 이어가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새라는 빅토리아를 데리고 마을로 가는 언덕을 올랐다.

빅토리아는 그저 멋쩍어 하며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침묵을 유지하며 계속 길을 따라 걸었다.

경사가 심하게 기울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뒷동산을 오르는 느낌은 들었다.

빅토리아는 잠시 뒤를 돌아 항구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만 하게 작아진 배 위로 여전히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녀는 어릴 때 흙바닥에서 작은 개미들이 짐을 옮기는 광경을 떠올렸다.

 

한참을 오르던 그들은 덤불과 나무로 조금 가려져 있는 길목에 멈춰 섰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을만한 길목에서 새라가 멈추자 빅토리아도 따라서 멈춘 것이었다.

빅토리아를 향해 돌아선 새라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많이 화난거야?」

 

「…….」

 

「그렇다면 정말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이런 식으로 몸을 숨기지 않으면,」

 

「두건을 벗어.」

 

새라는 빅토리아의 말을 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을 보여줘.」

 

빅토리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의 바뀐 모습을 의붓언니가 거부할까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상기된 새라의 얼굴을 보고는 천천히 두건을 벗었다.

 

하이엘프다운 전형적인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짧게 자른 금발은 왼쪽만 땋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두 눈동자는 왼쪽은 녹색, 오른쪽은 청색이었다.

녹색 눈동자는 동공과 홍채의 테두리가 약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고

청색 눈동자는 생기를 잃은 것처럼 약간 탁한 색을 띄었다.

 

아직 두건이 가리고 있는 목 언저리에는 핏줄처럼 보이는 선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 피부 아래의 핏줄은 푸른색으로 보이는데 반해,

빅토리아의 목에 나 있는 선은 녹색이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나무의 잔뿌리처럼 퍼진 것이 아니라 기계에 붙어있는 회로처럼 직각을 뻗어있는 모습도 달랐다.

 

옷으로 가려져 있어 다른 부위는 확인 할 수 없었지만

새라는 그 모습만 봐도 빅토리아가 편지에 쓴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목을 쓰다듬는 그녀를 보고 새라의 숨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일이 그렇게 됐어.」

 

「세상에…….」

 

「조금 징그러워 보이지? 그래도 진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웬만하면 모르더라고.」

 

빅토리아의 담담한 대꾸에 새라는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빅토리아는 그녀가 구역질을 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상처받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예상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선택에 받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별안간 새라에게 끌어 안겼을 때 빅토리아는 그동안의 걱정까지 사라지는듯했다.

그녀는 목소리에서 약간 소금기가 묻어나오는 새라를 살짝 토닥였다.

 

「그러게 군인은 할 게 못된다고 했잖아 멍청아. 사람 말 안 듣더니 꼴이 이게 뭐야?」

 

「미안해. 걱정시켜서.」

 

「그 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알기나 해? 너 진짜 가만 안 놔둘 줄 알아. 우선 어머니,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서…….」

 

말은 험하게 해도 새라는 동생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비록 망가진 신체를 여기저기 기워 넣은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과거 그녀가 알고 있었던 빅토리아의 얼굴과 목소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이 훨씬 컸다.

그러나 빅토리아는 돌연 굳은 표정으로 새라를 품에서 떼어냈다.

 

「그러지 마.」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알려드려야지! 그 분들이 널 잃고 얼마나 실의에 빠져 계셨었는데!」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그래. 지금은……잠자코 있어줘. 언젠가 내가 직접 찾아 뵐 테니까.」

 

「찾아뵙진 못해도, 적어도 살아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릴 수 있잖아. 혹시 네 몸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런 게 아니야. 혹시라도 내가 살아있다는 게 알려져서 행동에 제약이 오면 굉장히 곤란하니까.」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설명이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는데 그 사람을 구속할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두어 걸음 물러나서 빅토리아를 다그쳤다.

그녀가 모르는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다.

 

「너 무슨 짓 했어.」

 

「아, 그 무서운 표정 오랜만이네. 내가 연합군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이후로 처음인가?」

 

「장난하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

 

「딱히 아무 짓 안했어.」

 

「거짓말 하지 마! 뭔가 저지르지 않은 이상, 살아있다는 사실까지 비밀로 붙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어? 행동에 제약이 오면 왜 곤란한 건데? 네가 듣기에도 이상하잖아!」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믿어줘. 네가 걱정하는 게 뭐든 절대 그런 게 아니야. 단지 정말로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 난 그 날 죽었다가 살아난 이후로 계속 뭔가를 조사해왔고 이제 거의 꼬리를 잡았어. 이 기회를 놓치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지 몰라. 이해해줘.」

 

「설명도 하나도 안 해주고 이해해달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럴수록 더 의심만 가잖아. 그리고 신분까지 감추고 조사할만한 ‘무언가’라니, 더 의심스러워!」

 

「미안해. 굉장히 이기적인 부탁이라는 거 알아. 나도 정말 두 분을 뵙고 싶어.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한 것만큼. 그렇다 해도 너까지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 순 없어. 부모님은 더더욱 그렇고.」

 

「결국은 위험한 일인 게 맞잖아…….」

 

답답해진 새라는 옷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자매의 재회가 무색해질 만큼 빅토리아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너무나도 야속한 나머지 빅토리아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느라 입을 굳게 다물고 먼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새라를

빅토리아는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사실대로 전부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빅토리아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존재 자체가 극비인 티아라니아에 들어오기 위해

미스테리움 연구원인 새라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이 이상의 도움도,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존재, 자신의 발자취가 발각되는 날에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가까이 지냈다고 의심되는 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빅토리아에게는 주변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잃지 않으리라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녀는 새라에게 다가가 한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완벽하게 이해받을 순 없더라도 그녀의 진심이나마 전하고 싶었다.

그것이 새라에게 위안이 되길 바랐다.

 

「새라.」

 

「이것 놔. 듣기 싫어.」

 

「새라, 나는 군인이 되고 나서 크고 작은 전투를 수 없이 겪었어. 동고동락을 같이한 동료들은 대부분이 믿음직스럽고 강인했지만……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 사이가 좋았건 나빴건 상관없이, 모두 소중한 이들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에게 있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버팀목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 한 명 한명 사라질 때마다 나도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것 같았거든.」

 

새라는 대꾸 없이 빅토리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뾰족한 귀가 조금씩 씰룩 거리는 것으로 보아 무시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것을 확인한 빅토리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소중한 것을 잃을 때마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돼. 그래서 너무 견디기가 힘들고 무서웠어. 그렇게 하나씩 잃어가다가 자신도 사라져 버릴까봐.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경험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너를 잃으면 우리도 똑같은 슬픔을 느낀다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거야. 우린 가족이잖아……. 조금 더 나를 믿어줄 순 없어?」

 

「믿어.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그래서 더 지키고 싶어. 만약에 너나, 부모님에게 위험한 일이 닥쳐오면, 그래서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가 크게 다치거나……. 잃는 일이 생긴다면……. 새라.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싶어. 단 하루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적이 없어. 그분들의 온기, 목소리, 향기……. 모든 것이 그리워…….」

 

「…….」

 

「살아있었는데도 연락 한번 없이 제멋대로 굴고 진실을 숨겨서, 슬픔을 견디게 만든 것 진심으로 미안해. 그래도……나도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라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새라. 너는.」

 

새라는 빅토리아의 차분한 설명에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그녀가 느끼는 그리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들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일방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새라는 우선 시간을 두고 빅토리아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잡았다.

빅토리아의 얼굴에 묻어나오는 결연함으로 봐서는,

지금은 무슨 짓을 해도 말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위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페가수스도 설치되어있지 않은 고립된 섬.

오늘 보급선이 왔으니 다음 보급선이 올 때까지 최소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알아낼 거라고 새라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척 새끼손가락을 빅토리아에게 내밀었다.

 

「……언젠가는 꼭 말해줘야 해. 약속해.」

 

「이번 일만 잘 풀어내면 그렇게 할게.」

 

빅토리아는 새라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일시적으로 갈등이 끝난 듯 보이자 두 자매는 서로에게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제야 재회의 기쁨을 나눌 시간이 온 것 같았다.

 

「어린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이게 뭐니?」

 

「그러게. 새끼손가락은 너무 식상하지 않아? 계약서라도 내밀지 그랬어.」

 

「그거 좋다. 숙소에 도착하면 서류 가져올 테니까 서명이나 제대로 해. 자, 가자. 여기는 왠지 해가 빨리 저물거든. 배도 고프니까 남은 이야기는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진 분위기는 긴장감을 말끔히 씻어 내렸다.

새라와 빅토리아 사이에 풀어야 할 것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이 순간, 두 사람은 허기를 달래면서 추억을 나눌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바다 저편으로 석양이 깔렸다.

성스러운 마법진에 휩싸여 세계를 비추는 천체(天體)는

달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초저녁에 맞춰 섬 가운데에서 그 자태를 뽐내는 티아란 나무도 주홍빛으로 물드는 중이었다.

아름다움의 형태는 셀 수 없지만 어떤 광경이던 한결같이 사람의 감성을 뒤흔들어 놓는다는 것은 같았다.

감동(感動)이라는 단어는 분명 그런 뜻이리라.

 

그러나 감동은 또한 너무나 연약해서

아주 작은 파문만 일어나도 금방 그 열기를 잃어버렸다.

큰 뿌리 해안에 깔려 있던 두 자매의 감동도 그랬다.

그저 한 번의 비명소리일 뿐이었지만

평화로운 마음의 바닥에 숨어있던 경계심을 일깨우기에는 충분했다.

 

‘저 소리 들었어?’라고, 새라의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것보다도 빠르게, 빅토리아는 등산로 너머로 달려 나갔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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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하다보니 조금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분량도 좀 짧은데, 저녁때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Lv41 Noire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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