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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고] 『제국의 위안부』 읽기 3 식민지의 동원체제로서 위안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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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1 23:21:29

[기고] 『제국의 위안부』 읽기 3 
식민지의 동원체제로서 위안부 문제

정승원(인문학자/비평공간 클리나멘 연구원) bakhtin@hanmail.net

[편집자 주] 지난 2월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

 저서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해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

을 받아들여 이 책의 34군데를 삭제해야만 판매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박 교수 등의 

접근·취재를 막아달라'는 신청은 기각했다.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원했던 박유하 교수의 바람은 

금지도서가 됐다. <뉴스민>은 『제국의 위안부』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한다.  이에 인문학자 정승원의 글을 열 차례 연재한다. 정승원의 견해와 입장이 다른 글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010-8585-3648, newsmin@newsmin.co.kr)



위안부(더 정확히 말해, 조선인 위안부)문제에 있어서, 핵심적인 논란/논쟁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강제연행’ 여부
2) 위안소 혹은 위안소제도의 성격 
3) 위안부의 정체성, 즉 ‘위안부란 무엇인가’

각각의 논쟁 지점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질문거리/논쟁 지점들을 파생시킵니다. 
1) 강제연행은 있었는가? 그렇다면 어떤 성격의 강제연행인가? 협의의 강제연행인가? 광의의 

강제연행인가? 노예사냥식의 강제연행이 아니라면, 모집(징모)에 일본정부와 일본군이 관여했는가? 

관여했다면, 그 관여의 정도는 어떠했는가? 모집(징모)의 주체는 누구인가? 
2) 위안소란 어떤 곳이었는가? 위안소 운영의 주체는 누구인가? 위안소는 어떻게 운영되었는가? 

그곳에서 위안부는 어떻게 생활했는가? 위안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3)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가? 위안부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성노예(sex slave)로 규정할 수 있는가? 

조선인 위안부와 다른 지역 위안부의 차이는?

각 논쟁지점들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위안부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포인트입니다. 동시에, 이것들은

 국가적 차원의 배상과 보상 등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필수적인 

전제요건입이다. 동시에, 이 논쟁지점들을 제대로 파악해야, 위안부 담론들을 둘러싼 논쟁 구도와 

지형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안들에 대해 위안부 문제 관련 학자들은 여러 가지 담론들과 의견들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들 사이에 일종의 합의(consensus)된 학설, 즉 정설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위안부 담론의 정설이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국의 위안부』를 

기존의 위안부 담론, 즉 정설에 대한 ‘나쁜 의미의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오해입니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은 학자들도 꽤 있습니다. 한 진영에서 생산하여 유포시킨 위안부 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정설을 진영을 뛰어넘어 여러 학문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에서 합의되고 공인된 학설로

 우리가 정의한다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식적인 위안부 담론은 하나의 학설/견해에 

불과합니다. 아직까지 학문적으로 검증이 덜 끝난 학설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안소’의 풍경을 한번 살펴볼까요? 기존의 위안부 연구에서는 군 위안소의 억압적인 

모습을 많이 언급합니다. 이런 모습은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에 상세하게 

기술과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술과 설명에서 누락된 위안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안병직 번역과 해제, 이숲, 2013년)에는 싱가포르의 위안소에 있던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인과 결혼을 하기도 하고,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임신한 위안부가 출산하고, 영화를 보러 외출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자료는 위안소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깨는 충격적인 자료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국의 위안부』 제1부 제2장 

‘위안소에서-풍화되는 기억들’에서 박교수가 기술하고 있는 위안소의 긍정적인 모습이 예외적인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 학문과 반대된다는 나쁜 의미에서) ‘문학적이다’,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다’라고 비판을 받은 곳입니다. 하지만 위의 자료를 보고 나서, 

위안소의 풍경이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위안소’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상세하게 논의하겠습니다.)  

이렇듯 ‘조선인 위안부’를 둘러싼 모습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난 20년 이상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위안부의 입체적이고 다양한 상(모습)을 각 진영에서 한 면만 강조하여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 측 간의 담론과 인식은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서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여기서의 양 측은 한국과 일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인식에 

있어서 대립되는 두 가지 시선을 가리킵니다.) 이 쪽은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하고 있는데, 저 쪽은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는 식의 태도가 한국 쪽에서 팽배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문제는 

‘올바른 역사인식’/‘왜곡된 역사인식’의 이분법의 차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식민지 

지배 하의 ‘조선인 위안부’의 양상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처럼 단순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를 쓴 것은 이런 복잡한 양상과 전체적인 상을 

제대로 전달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양상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전달하려다 보면, 

대립적인 인식과 담론이 팽배해있는 담론적 지형,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 

상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복잡한 양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조선인 위안부’ 문제가 본질적으로 식민지라는, 

분열적 증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체제 하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식민지

 체제 하에서 식민지 종주국이 피식민지인들을 전쟁에 동원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통의 

한국인들은 ‘위안부’라는 단어를 들으면,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해서 끌고 간 흑인들의 

모습을 연상할 겁니다. 그리고, 폭력적인 일본 군인들이 착한 조선 여성들을 트럭에 태워서 전장으로 

끌고 가 성노예로 마구 강간한 장면도 오버랩될 것입니다.(김일출 할머니가 직접 그리신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면, 이런 이미지는 더욱 증폭됩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같은 강제수용소의 인종학살을 

연상시키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이나 식민지 체제를 생각할 때면, 전쟁이나 식민지 체제가 만든 폭력적인 모습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 제국 하의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조선인 위안부’의 양상은 그런 것들과 사뭇 다릅니다.

 그것은 전쟁에서 승전국이 패전국의 점령지에 벌인 반인륜적인 범죄(강간, 살인)와 양상이 다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은 점령지에서 이런 범죄들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연히 가를 수 있는 이런 전쟁 범죄와 다른 성격의 것입니다. 그것은 

식민지 지배 체제 하에서 1등 국가(식민지 종주국인 일본)가 2등 국가(식민지 피지배국인 한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구조적인 범죄입니다(물론, 위안부 문제가 이런 성격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체제 하에서 몇 십 년동안 살아가고 있던 2등 국민 조선인은 일본과 전쟁을

 벌이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국민들과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인식과 행동은 전쟁 당사자 국가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선악구도와 다른 양상을 초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나 ‘해방 이후’의 관점이나 시각이 아니라, 당시의 관점이나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조선인 위안부’ 문제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 다면성, 입체성이

 보입니다.

정승원(인문학자/비평공간 클리나멘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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