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떠나요' DLC는 동남아 휴양지에서 영감을 받은 신규 지역 '차하야'를 배경으로, 본섬과 리조트 섬을 오가며 수영, 선박 운행, 농사, 보석 세공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김형준 PD는 "궁극적인 목표는 유저들이 우리가 제공한 도구를 가지고 스스로 재미를 창조하는 '창발적 플레이'가 가득한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라며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첫 DLC '섬으로 떠나요' | 솔직하게 밝힌, DLC의 이유

'인조이'의 첫 번째 DLC가 나왔습니다. 동남아 휴양지 콘셉트의 '차하야'를 첫 무대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형준 PD =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저희가 DLC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려는 목적이 컸어요. 얼리 액세스를 출시하고 직접 서비스를 해보니까, 이 라이프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이전에 제가 만들었던 다른 어떤 장르보다 복잡도가 정말 수백, 수천 배는 높은 것 같더라고요. 왜 '심즈' 말고는 이런 게임이 잘 안 나오는지 뼈저리게 체감했죠.
상호작용 데이터만 해도 최소 2~3천 개에서 5천 개쯤 되는데, 이 중에서 하나를 고치면 전혀 다른 쪽에서 연쇄적으로 고장이 나요. 본편 하나만으로도 이런데, DLC가 추가되면 문제가 훨씬 더 커져요. QA를 할 때마다 DLC를 적용했다가, 껐다가를 반복하면서 모든 연결 관계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거든요.
만약 버그가 발생했을 때, 이게 본편의 문제인지, DLC 1의 문제인지, 아니면 DLC 2의 문제인지 원인을 찾는 것부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져요. 이번에 직접 테스트를 해보면서 "아, 이건 섣불리 하면 안 되겠다", "큰일 나겠다" 싶은 공포감마저 느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DLC를 추가하기보다는 본편에 콘텐츠를 충분히 쌓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그래도 그 점이 의문이었거든요. 본편에 콘텐츠를 추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DLC로 분리한 이유에 대해 유저들도 궁금해했으니까요.
김형준 PD = 네, 바로 그 DLC 시스템 자체를 저희가 잘 만들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직접 해보니, 당분간은 하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웃음)
DLC 콘텐츠를 만들 때 기존 도시도 함께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했어요. '섬으로 떠나요' DLC는 동남아시아 휴양지에서 영감을 받은 신규 지역 '차하야(Cahaya)'를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이용자는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본섬과 리조트 섬, 두 개의 섬을 오가며 생활하게 되는데요. 일부러 섬을 두 개로 나눈 이유는 그 사이의 바다를 하나의 핵심 콘텐츠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배를 타고 오가면서 수영이나 스노클링 같은 다양한 해양 활동을 자연스럽게 즐기도록 유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농사, 채굴, 보석 세공, 낚시 같은 새로운 활동과 오토바이, 전동 킥보드, 보트 등 새로운 이동 수단도 추가됐고요. 이런 신규 콘텐츠들은 차하야뿐만 아니라 기존 도시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 적용됩니다. 이용자 간 상호작용을 강화하기 위한 랜덤 모임, 속마음 말풍선, 협력 행동 같은 기능도 선보입니다.
4개월의 얼리 액세스 | 시장의 확신과 뼈저린 교훈

지난 3월 얼리 액세스를 시작으로 4개월가량이 흘렀습니다. 직접 서비스를 해오신 소감과 함께 PD의 중간 평가가 궁금합니다.
김형준 PD = 일단 게임을 내보니까 시장이 이 장르를 정말로 원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동시에, 왜 다른 개발사들이 '심즈' 외에 이 장르를 만들지 않는지도 뼈저리게 깨달았죠. 정말, 정말 만들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얼리 액세스로 출시한 게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모든 과정을 잘 해결해서 나중에 멋진 게임으로 완성되면 그때는 무척 뿌듯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은, 한국 게임 업계가 특정 장르에 '편식'을 해왔다 보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 개발자들이 거의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함께 일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대화가 안 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적도 정말 많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팀원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습니다. 저희는 아직 정상적인 게임이 되기까지 먼 길이 남았다고 생각해요. 이제 겨우 한 발을 뗀 기분입니다.
지금 팀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이 정도의 복잡성을 다루려면 상당한 인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김형준 PD = 저희가 처음에는 50여 명의 소규모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100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사람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의 복잡성은 여전히 버겁게 느껴집니다.
현재 시장의 기대감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지표가 있을까요?
김형준 PD = 위시리스트 수치가 비공식이긴 하지만, 현재 수백 만 정도 됩니다. 출시 이후에도 계속 늘고 있어서 저희도 좀 충격적이었어요. 시장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었죠. 이 장르의 팬들은 '심즈'라는 존재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요. 그것 말고도 또 재미있는 숫자가 있습니다. 저희가 추측하는데, 비공식적인 경로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분들의 숫자도 엄청나더라고요. 그만큼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는 방증이겠죠.
초기에 공개하셨던 로드맵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수영이나 여러 콘텐츠가 계획대로 추가된 것 같아서요.
김형준 PD = 로드맵에 있던 것들을 만들기는 했지만, 막상 게임을 출시하고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니 "지금 우리 팀이 이걸 할 때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더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기존 로드맵은 과감히 접어두고, 앞으로는 유저들과 직접 소통하며 받은 내용을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이미 인플루언서분들이나 유저분들이 피드백 그룹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의견을 주고 계시고, 그 채널을 통해 직접 듣고 고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실제로 잠잘 때 시간을 빨리 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며칠 만에 30배속 기능을 추가했고, 한 일본 유저분이 메일로 간절히 부탁하셔서 다 같이 밥 먹는 기능을 구현했습니다. 요리한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기능도 최근에 반영됐고요.
최근에는 중국 유저분들과 소통하다가 중국식 포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의견을 주셔서 그것도 며칠 만에 바로 추가했는데, 정말 폭발적으로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유저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게임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개발 | 그 끝나지 않는 고충

그동안 여러 게임, 특히 MMORPG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인조이'를 개발하면서 이전에 없던 어려움을 겪는 게 있을까요?
김형준 PD = 이 장르는 "유저가 어색하다고 느끼면 그게 곧 버그"가 돼요. 개발자가 정한 룰 안에서 플레이하는 일반적인 게임과 달리, 유저의 직관적인 경험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거죠. 게임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버그를 잡아도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기분입니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것 같았어요.
도시 공간을 채워달라는 유저분들의 요구가 가장 많았는데, 이것도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인조이'는 부지 하나에 약 1,500개의 애셋이 들어가는, 기술적으로 말이 안 되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거든요. 이 때문에 모든 건물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어려웠는데, 최근에 오히려 과거의 기술을 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가장 지옥 같았던 작업은 '도시 간 이동' 기능이었어요. 단순히 맵을 옮기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모든 상태, 관계, 임신 여부, 학교 문제 등 복잡한 게임 상태 전체를 그대로 들고 이동해야 했거든요. 이동 전 상태를 저장하고, 돌아올 때 다시 복구하는 과정에서 수백 개의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만들면서 "이걸 왜 만들었을까, 나중에 할 걸" 후회를 반복했습니다. 이 장르가 왜 잘 안 나오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죠.
감정 시스템도 매우 복잡해 보입니다. 기존 게임보다 UI가 하나 더 많던데요.
김형준 PD = 네, 질 수 없어서 하나 더 넣었습니다.(웃음) 감정 하나만 제대로 구현하는 것도 정말 끝이 없는 작업이었어요. 예를 들어, 어떤 행동에 대한 캐릭터의 반응을 만들 때, 그 캐릭터의 시야 방향까지 고려해야 해요. 옆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한 행동에는 반응하지 않아야 자연스럽죠. 또, 캐릭터의 현재 심리 상태에 따라 외부 자극을 무시하는 '하울링' 처리도 들어갔어요. 가령 교통사고를 당해 충격에 빠진 상태라면, 다른 사람의 고백을 받아줄 여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예외 처리를 수없이 하다 보니 정말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수영 기능 구현도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김형준 PD = 수영 자체는 생각보다 쉽게 구현됐어요. 진짜 지옥은 예외 처리였죠. 캐릭터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상태로 수영을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기를 안고 물에 들어가는 경우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검색해보니 부모들이 아기를 안고 수영을 하더라고요. 자연스러워 보여서 그냥 그대로 뒀습니다. 이처럼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느냐에 따라 모든 움직임 처리가 몇 배로 복잡해지는 식입니다.
'인조이'의 핵심 중 하나가 AI 도입이잖아요. 얼리 액세스 기간 동안 AI 기능들이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평가하시나요?
김형준 PD = 네, 유저분들이 AI 관련 기능들을 굉장히 좋아해 주셨어요. 특히 2D 이미지를 3D 사물로 만들어주는 '3D 프린터'나 모션 생성 기능은 이용률이 월등히 높습니다. 그냥 툭 하고 넣었는데 유저분들이 너무 좋아해 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인조이'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AI를 꼽으셨습니다. 어떤 확신을 가지고 AI를 도입하셨나요?
김형준 PD = AI 기술 자체가 워낙 좋아서, 도구를 활용해 비교적 수월하게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인조이'의 AI는 정말 자연스러운 만남처럼, 이 장르에 넣으면 딱 맞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AI를 어렵게 넣은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장르에 넣으면 딱 맞겠다" 싶어서 적용했었죠. 그런데, 넣었더니 정말 잘 맞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AI 기술의 발전과 '인조이'와 같은 시뮬레이션이 맞물려서, 이 장르가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통과 모딩 | 그리고 '인조이'의 미래

심즈 개발자들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김형준 PD = 네, 저희 회사에 방문해서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서로 개발 과정의 어려움이나 기술적인 질문들을 주고받았어요. 사실, 저는 이 장르가 그렇게 경쟁이 없다고 생각해요. '발로란트' 같은 경쟁 게임은 조금만 쉬면 실력이 떨어지고 젊은 친구들을 따라가기 벅차지만, 이 장르는 그런 스트레스가 전혀 없잖아요. '인조이'를 한다고 해서 '심즈'를 안 하는 것이 아니며, 각기 다른 맛을 가진 여러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쟁보다는 파이를 함께 키워나가는 것에 가깝다고 봅니다.
유독 모딩이나 유저 소통에 진심이신 것 같은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형준 PD = 개인적인 동기 중 하나는 저희 아들이 이 장르의 게임과 모딩(Modding)을 매우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이번 방학 때도 저보다 더 열심히 모드를 만들더라고요. 아들과 함께 모딩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의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모딩 툴을 공개하셨죠. 유저 커뮤니티의 반응은 어떤가요?
김형준 PD = 정말 대단합니다. 저희 개발팀이 한 달 걸려 만들 기능을 유저분들은 며칠 만에 만들어 내시더라고요. 현재는 게임의 편의성을 개선하는 모드(이른바 '양도넛')들이 가장 많이 다운로드되고 있어요. 아직은 시작 단계라 편의 기능이 부족한데, 감정을 없애버리거나 집으로 순간 이동하는 기능들이 주를 이룹니다.
앞으로의 모딩 지원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김형준 PD = 오는 12월에 스크립트 모딩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원래는 언리얼 엔진의 블루프린트를 지원하려고 했는데, 유저분들의 압도적인 요청에 따라 '루아(Lua)'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어요. 유저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즐겁습니다.
기존 개발 방식과 다른 부분이 많아서 어려울 것도 같은데, 어떻게 모두 해내시는 걸까요?
김형준 PD = 저는 한국 개발자들이 가진 능력이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농기구 '호미'와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그 가치를 잘 모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매우 유용하고 대단한 도구로 평가받는 것처럼요. 우리 개발자들의 역량 또한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을 때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거 '배틀그라운드' 개발 당시, 총을 제대로 쏴본 경험이 없어 총기 모션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일화가 있어요. 북유럽에서 온 동료 개발자들이 총을 드는 자세가 이상하다고 지적해주고 나서야 문제를 알게 되었죠. 그 친구들은 휴가가서 사격 연습하는 사진을 보내주는데, 저희는 총을 본 적도 없으니까요.
여기에 가면 지식, 저기에 가면 상식인 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게 좀 무섭기는 하지만, 이런 경험과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자꾸 새로운 것에 뛰어들다 보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멋진 게임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그거에요. "그냥 해봤더니 되더라"고요.
'인조이'의 최종 완성형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형준 PD = 아직 시작 단계라 완성을 말하기는 부끄럽네요. 저희끼리는 '몬스터 조이'에서 '매드 조이'를 거쳐, 이제 진짜 '인조이'가 되자는 농담을 하거든요. 궁극적인 목표는 저희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도구를 가지고 유저들이 스스로 창발적인 플레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놀이터'를 제공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품 하나하나를 정말 잘 만들어야겠죠. 심즈가 오랜 시간 모드와 업데이트를 통해 깊이 있는 콘텐츠를 쌓아온 것처럼, 저희도 그 모습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