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지막 방중(訪中) 후 9년, 부스걸 대신 개발자가 보인다

칼럼 | 정재훈 기자 |



거의 10년 만에, 상하이에 다시 발을 디뎠다. 중국 게임 산업이 성장하면서 중국에 방문할 일이 적지 않았건만, 어쩌다 보니 다른 기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웠고 어느덧 최종 중국 출장 경험이 9년차에 도달한 이상한 커리어(?)의 기자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10년 전, 내 눈에 보였던 중국 게임 시장은 이제 막 알 껍질을 깨고 나와 부리에 닿는 건 뭐든 되는 대로 주워 먹는 새끼 새와 같았다. '도탑전기'로 대표되던 '10년 전의 중국게임'이 그랬다. 저작권 개념은 희박했고, 게임 만듦새는 조잡했다. 날갯짓은커녕, 아직 눈조차 제대로 뜨이지 않은 어린 새. 근데 덩치는 코끼리 만한.

이후, 중국 시장이 급성장을 거듭했다는 건 모를 수가 없다. 일 년에 수차례 중국을 방문하는 팀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해 주었고, 국내에서 만난 중국 업체의 지사 직원과도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냥 객관적인 사건들도 봤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변화의 과정을 '소식'으로 접했을 뿐, 내가 직접 몸소 겪진 않았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중국 게임 산업의 10년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는 기자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오랜 공백 끝에 도착한 상하이의 모습은, 내 기억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카이라인은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여전히 영어가 잘 통하진 않았으며 국제 도시라는 타이틀의 그림자 속에는 여전히 우리가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중국인들이 존재했다. 고작 9년 새에 도시가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중국 개발자'들은 확실히 무언가 달라졌다. 아니, 젊어졌다고 해야 할까? 마치 '다음 세대'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호텔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한 기회에 합석하게 된 20대 중반의 젊은 개발자는 현 시점의 글로벌 미디어와 밈, 유행에 무척 민감했다. OTT에 유행하는 드라마는 전부 다 보았고, 유행하는 게임들도 웬만해서는 다 플레이 해 봤으며, 굉장히 객관적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사용했기에 의사 소통에서의 문제도 없었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 여러 개발자 친구들이 있어 외지 사정에도 도통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리그오브레전드가 비교적 나이든 게이머들의 게임으로 통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 업체 관계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단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만이 아닌, 세계에서 먹히려면 무엇이 필요할 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고, 그 과정에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생각의 구조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 대화의 본질만 끄집어 내 보면, 한 달 전 방문한 LA에서 만난 서양 개발사의 개발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9년 전,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 개발자들을 생각해 봤다. 화수분처럼 치솟는 내수 시장조차 감당이 안 되어 온갖 잡다한 돈 벌 거리들을 궁리하던 사람들. 9년이 지난 지금, 상하이의 겉모습은 고층 빌딩 몇 개가 DLC처럼 추가된 모양새지만, 그 속을 채우는 사람들은 '차이니즈'에서 명백한 '호모 글로벌리스'가 되어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9년 전의 중국의 게임은 이렇다 할 대단함이 없었다. 차이나조이는 게임보다 부스걸이 더 잘 보였고, IP의 2차 활용이 한창 유행하던 때이다 보니, 중국만의 무언가를 느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게임은 어떠한가? 글로벌 게임 시장에 줄세우기를 한 '원신'부터 작년 큰 활약을 한 '검은 신화: 오공', 그리고 곧 출시될 '명말'과 '연운', '팬텀 블레이드 제로'까지, 너무나 중국스러운, 중국인만이 낼 수 있는 바이브의 AAA급 게임들을 쏟아내고 있다.



▲ 2016년, 차이나조이의 일면

누군가에겐 아무 일 없던 하루가, 또 누군가에겐 너무나 길고 알찼던 하루일 수 있다. 상하이의 10년은 분명, 다른 곳의 10년보다 더 치밀한 밀도를 이뤘을 거다. 겉으론 크게 드러나지 않고, 택시를 타자 마자 담배부터 주는 '따거'들의 호탕함은 그대로였지만, '게임을 만드는 이들'은 아예 인종마저 바뀌었다 느꼈을 정도로 달라졌다.

닿는 대로 입 안에 넣고 보던 새끼 새는 개발자들의 세대 교체를 겪으며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그리고 먹어야 하는지 배운 듯 했다.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의 중국은 또 어떠할까? 새끼 때도 코끼리만큼 거대했던 새가 비상을 시작할 때면 얼마나 큰 바람이 불 것인가.

9년 전의 상하이. 게임을 보러 왔었지만, '부스걸'만 보다 돌아갔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하이. 이제 젊고 국제화된 '개발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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