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트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개발자들이 만든 전쟁 게임을 '게임 오브 워'로 정의하며, 이 게임들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다양한 목적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게임 개발의 주요 목적은 ▲치료 ▲예술적 표현 ▲모금 ▲정보 전달 ▲프로파간다 대응 ▲정신적 지지 ▲관심 촉구 ▲교육 ▲훈련 등 9가지에 이른다.
강연에서는 전쟁의 현실과 상징적 사건들을 담아낸 다양한 게임 사례가 소개됐다.
'에어바이락타르'(eBairaktar)는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출시 한 달 만에 정부 공식 포털에 추가될 만큼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코트 연구원은 "많은 이들이 느끼던 무력감과 분노를 해소하는 치료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반박하는 게임도 다수 제작됐다. '제로 로시스'(Zero Losses)는 전쟁 초기 사상자가 없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시신을 담은 비닐봉지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또한 러시아가 "새를 생물학 무기로 개발했다"고 주장한 것을 풍자한 '버즈 어택 2022'(Birds Attack 2022)도 있다.
전쟁 중 발생한 특정 사건들은 하나의 게임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트랙터로 러시아군 탱크를 견인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우크라이나 트랙터'류의 게임들이 다수 등장했다.

러시아군이 반복적으로 큰 피해를 본 체르노바이우카 지역의 이름을 딴 '체르노바이우카' 장르 게임들도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일론 머스크가 푸틴에게 결투를 신청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머스크 대 푸틴'(Musk vs. Putin), 우크라이나의 국화인 해바라기로 푸틴을 때리는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게임 등 다양한 작품이 소개됐다.


코트 연구원은 많은 게임이 개발 자원 부족, 개발자의 사망, 외부 압력 등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개발자가 게임을 유지, 보수할 자원이 없는 경우다. 특히 모바일 게임은 플랫폼의 정책이 바뀔 때마다 업데이트를 해야 하지만, 이를 지원하지 못하면 결국 서비스가 중단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게임 내용이 수정되면서 이전 버전이 사라지도 한다. 예컨대 '프리고진 카운터 큐브 3D'라는 게임은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모스크바 카운터 큐브 3D'로 이름과 내용이 변경됐다.
게임 속 등장인물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개발자가 직접 게임을 내리기도 한다. '머스크 대 푸틴' 게임은 개발자가 일론 머스크의 달라진 언행에 실망해 더는 그를 칭찬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생계를 위해 게임의 서사를 중립적으로 바꾸거나 다른 회사에 판매하는 경우다. 많은 개발자가 전쟁으로 직장을 잃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전쟁 상황에서 개발자가 전투 중 사망하거나, 전쟁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례도 발생한다.

러시아 게임 업계의 압력으로 개발자가 게임을 "묻어버리도록" 강요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특정 집단에 의한 조직적인 '스트라이크'(온라인상의 집단 공격 및 신고)로 게임이 차단되기도 한다.
다른 나라로 이주한 개발자가 심리적 소진(번아웃)을 겪거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게임 개발에 대한 동기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코트 연구원은 "이러한 게임들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서비스 종료가 아니라, 전쟁의 한 단면을 기록한 중요한 자료가 소실되는 것과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게임 오브 워'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코트 연구원의 발표를 계기로 폴란드 그단스크 대학교에서는 매년 '게임 오브 워' 콘퍼런스가 열리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역사 게임 개발 학사 학위 과정이 개설됐다. 또한 '유럽 역사 게임 연구 저널'(European Historical Game Studies Journal)은 우크라이나 전쟁 게임에 대한 특별호를 발간할 예정이다.
코트 연구원은 "이 게임들은 전쟁을 기록하고 진실을 알리며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코트 연구원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 "이제는 모두가 군사 대피소를 갖추고 있다"며 "우리가 주최하는 게임 콘퍼런스 역시 폭격이 발생하면 즉시 방공호로 이동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사를 이어간다"고 덧붙였다.
"전쟁 중 게임 회사가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코트 연구원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전쟁 중 이어지는 게임 서비스는 피난으로 마음이 지친 국민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며 "또한, 게임 산업이 유지되면 세금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이는 정부가 국민을 도울 자원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을 국가 내에서 계속 운영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