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독일 게임쇼 게임스컴에서 최초 일반 시연을 공개한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이 지스타 2024에서 대규모 시연존을 마련하고 참관객을 맞이했습니다.
펄어비스에 따르면, 지스타 2024에서 선보이는 시연 빌드는 지난 게임스컴 시연에서 몇 가지 변경 사항이 적용되었습니다. 새로운 콤보 기술이 늘어났으며, 당시 지적된 락온 시스템이 새롭게 추가됐습니다. 또한, 지난 주 처음 공개한 신규 보스, '헥세 마리'를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죠. 그 외에는 게임스컴 당시와 시연 구조는 거의 유사합니다. 본격적인 시연에 앞서 10여분 간 가이드 영상을 시청한 뒤, 나머지 시간은 직접 게임을 체험해보는 형식입니다.
10분 짜리 가이드 영상을 시청하고 나면, 펄어비스가 왜 시연에서 '전투'부분을 강조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보스별로 완전히 다른 전투 패턴, 주인공 클리프의 다채로운 전투 방식, 콤보 조작을 이용해 화려하게 적들을 물리치는 모습이야말로 게임이 추구하는 것이 붉은사막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시연 기회를 통해 서로 공략 방식이 다른 네 종의 보스를 상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게임스컴 취재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붉은사막'을 실제로 손에 쥐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영상으로만 봐 왔던 붉은사막의 모습들이, 실제로는 어떤 느낌을 줄 것인지 몹시 궁금했죠. 아마, 이번 지스타를 찾는 많은 참관객들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플레이해 본 '붉은 사막'. 시간 관계상 네 명 중 두 명의 보스밖에 상대해볼 수 없었지만, 게임이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 영상을 제외하면, 시연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은 작품 초반(으로 보이는),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회색갈기단의 모습입니다. 플레이어는 여기서, 주인공 클리프를 조작하며 가이드 영상에서 본 조작법을 써먹을 기회를 얻게 되죠.
솔직히 말하면, 직접 조작을 시험해 볼 기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적들은 사정없이 플레이어를 향해 공격을 퍼붓습니다. 10분짜리 영상으로도 '붉은사막'의 조작법은 익히기 어려운 편이고, 다른 콘솔 게임을 레퍼런스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컨트롤러로는 처음 겪어보는 조작 방법도 꽤 많은 편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예시가 바로 지난 게임스컴 빌드에서 새롭게 추가된 '락온 체계'입니다. 일대 다 전투가 빈번히 일어나도록 설계된 전투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펄어비스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락온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붉은사막'은 LB(가드) 버튼을 유지한 채, 캐릭터가 바라보는 대상을 락온하는 새로운 락온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락온은 다수의 적에게서 벗어나 한숨을 돌리는 과정에서는 꽤나 유용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투에서는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거기에는 조작이 복잡하다는 점도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붉은사막의 락온은 LB를 눌러 가드를 유지해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드를 유지할 경우 LB 버튼을 사용하는 다른 동작을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검에 빛을 반사에 상대방을 눈이 부시게(LB+RB 조작) 하는 조작을 가드 도중 사용하고 싶었지만, 의도와는 다른 동작을 하는 캐릭터를 마주하게 되는 거죠.
컨트롤러는 키보드에 비해 버튼의 갯수가 적습니다. 게임의 조작법이 다양하니, 서로 간섭하는 동작들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동작이 잘 되지 않을 때 플레이어의 마음 속에서는 의심의 싹이 꽃을 피웁니다. '내 컨트롤이 문제인가? 아니면 게임 문제인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 커맨드를 통해 콤보를 사용할 수 있는 '붉은사막'만의 전투 시스템은 분명 인상적입니다. 손에 익기만 한다면, 10분 짜리 가이드 영상에 나온 것처럼 멋진 콤보를 이용해 적을 물리치는 것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연에 한해서는 게임의 조작이 복잡하고, 그 조작 체계를 학습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은 있습니다. '붉은사막'의 전투가 핵심 요소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 클리프를 중심으로 드넓은 월드를 탐험하는 오픈월드 게임이라는 점이죠. 초반부터 차근차근 조작법을 익힌다면, 짧은 시연 기간에 경험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게임이 제공하는 액션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개인적으로도 '아, 다음번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겠는데?'하는 도전심이 생기기도 했고요.
게임의 조작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직접 경험한 두 개의 보스전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합니다. '사슴왕'은 대표적인 인간형 보스로, 1:1 전투가 주는 박진감 넘치는 느낌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보스전입니다. 검과 방패를 든 보스를 상대로 지금껏 익힌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슴왕과의 전투는 총 세 개의 페이즈로 구성돼 있으며, 체력바가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짧고 강렬한 컷신이 등장해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개인적으로 전투 시퀀스와 컷신의 연계는 상당히 부드럽게 느껴졌는데, '이것도 컷신인가?'하다가 얻어맞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붉은사막'이 전달하는 보스전의 느낌은 저마다 다른 공략 방식이 핵심입니다. 사슴왕의 경우에는 방패를 활용한 방어 자세가 특징으로, 보스의 방패가 반짝일 때 섣불리 공격했다간 멱살을 잡혀 저 멀리 내동댕이쳐질 수 있죠.
초반 부분, 그러니까 수 많은 적과 대치했던 상태보다는 사슴왕과의 전투가 훨씬 더 수월했습니다. 여러 명의 구타를 피해 저 멀리 도망갈 필요도 없었죠. 그래도 보스 자체의 경직도가 상당한 편이기 때문에, 조작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고전을 면하기 힘들었습니다.
두 번째 보스전은 지스타 2024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헥세 마리'와의 전투를 체험해 봤습니다. 헥세 마리는 검은사막 속 마르니의 실험터에서나 볼 법한 항아리 병사들을 수없이 소환해 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대 다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죠.
계속 소환되는 항아리 병사는 꽤나 압도적이었지만, 초반 전투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전장을 조금 넓게 써 보기로 했습니다. 달리기로 적들의 공격을 피해가며 거리를 벌리고, 폭발 화살이나 얼음 화살 같은 아이템을 차분하게 활용하니 길이 보였죠. 헥세 마리 자체는 체력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격투 게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조작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붉은 사막'은 오픈월드 게임입니다. 공간을 활용하며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고자 한다면, 조작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게임을 클리어할 기회가 얼마든지 주어집니다. 가이드 영상처럼 화려거나, 멋있지 않더라도 말이죠.
사실, 헥세 마리와의 보스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스전 자체보다 게임이 보여주는 비주얼적인 요소였습니다. 마리를 처치하고 나면 전장이었던 헥세 성터에 까마귀 떼가 돌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만들어지는데, 그 분위기가 썩 괜찮았습니다. 이건 사슴왕과 전투를 치르는 설산 영역도 마찬가지였죠.
시연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고 해서 헥세 성터를 조금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습니다. 실내에서는 벽에 기대기나, 계단참에 앉기 같은 디테일한 상호작용을 확인할 수도 있었고, 상자를 열거나 하는 모든 동작들이 묵직하면서도 부드럽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굳이 다른 게임과 비교하자면, 락스타의 완성도 높은 오픈월드 게임에서나 느낄 수 있던 감각과 그 결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붉은사막'의 전투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잘 알았고, 조작법이 조금 낯설긴 해도 많은 잠재력을 가졌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투만큼 중요하게 강조하는 심리스 오픈월드 요소를 확인할 기회가 조금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쉽네요.
종합하면, 지스타 2024를 통해 보여준 이번 시연은 '붉은사막'의 전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었습니다. 조작 체계가 좀 더 직관적으로 배치되었다거나, 조작을 익힐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사전에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은 있지만, 제한된 시간에서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선보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또 한편으로는, 오픈월드라는 장르를 십분 활용해 다채로운 전투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지도 느껴집니다. 출시 시점에 얼마나 많은 보스가 등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5종의 보스들만큼 독특한 전수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플레이어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일요일까지, 지스타 2024에서 '붉은사막' 시연을 접한 여러분이 어떤 경험을 가지고 부스를 떠날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누군가는 살벌한 일대 다 전투에 주눅이 들었을 수도, 반대로 도전 정신이 발현해 다시 시연대에 줄을 서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저도 그 뒤에 서있을 지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