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드림’, 반복적인데, 반복적이지 않다

한국 인디의 균형잡힌 로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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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건 반드시 깨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리 깊은 꿈을 꾸었다 해도, 깨어난 뒤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뭔가 아스라히 부스러기처럼 남는 기억 정도만 있을 뿐이다.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이러한 꿈의 특징이라는 게 가만히 보다 보면, 로그라이트라는 게임의 장르와도 참 잘 어울린다는 아주 게이머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 번의 플레이가 끝나고 나면, 그렇게 열심히 기를 쓰고 만들어둔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아주 조금 남아 있는 꿈의 기억처럼, 새로운 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은 무엇인가는 남아 있다.

셰이프 오브 드림즈는 꿈과 현실, 그리고 그 가운데 세상인 여울을 배경으로 한 로그라이트 게임이다. 한국 인디 개발사인 리자드 스무디가 아주 몰입도 높은 꿈의 세계를 정말 잘, 아름답고 흥미롭게 그려냈다.



게임명: 셰이프 오브 드림즈
장르명: 로그라이트
출시일: 2025.09.11.
리뷰판: 리뷰 빌드
개발사: 리자드 스무디
서비스: 네오위즈
플랫폼: PC
플레이: PC


반복이지만 반복적이지 않다매 판 달라지는 맵, 매 판 달라지는 이벤트




로그라이트인 만큼, 게임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반복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분명 반복적이지만 반복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 번 시작하면 몇 시간 정도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죽고 또 죽고, 또 죽으면 결국 처음으로, 또 처음으로,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생각보다 피로도나 지루함은 크지 않다. 반복이 당연시되는 로그라이트 게임의 특성상, 매 판을 지루하지 않게 반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이다.

셰이프 오브 드림즈의 반복이 지루하지 않은 건, 반복적인 플레이 가운데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꿈이라는 게 매번 똑같지 않듯, 셰이프 오브 드림즈의 세계 역시 매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 무섭게 쫓아오는 추적자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게임의 기본적 흐름을 알 필요가 있다. 셰이프 오브 드림즈의 경우 목표는 정해져 있다. 매 층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아주 간단한 길찾기랄까. 하지만 그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다.

일단,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여러 갈래다. 그리고 우리는 턴당 오직 하나의 스테이지만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뒤에는 매 턴마다 바짝 쫓아오는 추적자들도 있다. 이들에게 잠식당한 스테이지는 아주 강력한 적들로 가득 차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피해가는 게 좋다.




이게 다가 아니다. 추적자를 피해 최단거리로 이동하는 걸 막기 위해서, 각 스테이지마다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기술을 강화하거나, 상인을 만나 새로운 기술이나 아티팩트를 구매할 수도 있고, 돈을 내고 체력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이벤트들이 마냥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이벤트는 우리에게 선택을 하게 만든다. 강한 디버프를 얻는 대신 큰 보상을 얻거나, 여러 기술을 초기화하는 대신 하나의 기술만 강하게 만들고, 기술이 파괴되는 걸 감안하고 강화를 하는 등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선택지들이 다수 발생한다.



▲ 이름처럼 '파멸'만이 남아버렸다

이 수많은 이벤트와 선택들은 매 판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이끄는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 안정적으로 게임을 이끌어 나갈지, 아니면 도박을 할 것인지, 이 모든 게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뒤를 쫓는 추적자들과 갈래갈래 나뉘어진 길로 인해, 이 선택은 좀 더 확실하고 급박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이벤트들은 바로 직전의 스테이지까지 이동해야 확인할 수 있기에, 미리 길을 결정할 수도 없다. 제발 내가 고른 이 방향에서 좋은 이벤트들이 많이 발생하길 기도하며, 그야말로 운을 바라면서 걸어나간달까. 덕분에 길이 아주 완벽하게 두 갈래로 나뉠 경우, 한참을 고민하는 괴로움, 아니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다.



▲ 추적자를 피해 어떤 길로 갈지 고민하는 재미가 있다


기술과 그 기술의 강화에서 오는 갈래길특징이 살아있는 ‘기억’과 ‘정수’



▲ 수많은 기억과 정수

게임의 반복을 흥미롭게 하는 건 갈래길과 이벤트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기술들과 그 기술을 강화하는 아티팩트 역시 무작위로 등장한다. 게임 플레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의 무작위성은 게임의 반복을 절대 반복적이지 않게 만들어 준다.

‘기억’으로 불리는 기술과 ‘정수’로 불리는 강화 아티팩트들은 각각 다양한 능력을 지닌다. 기억과 정수마다 피해 속성이 다르고, 영향을 받는 공격력과 주문력 계수도 다르다. 등급도 나뉘어 있고, 어떤 것은 근거리에게, 어떤 것은 원거리에게, 또 어떤 것은 딜러에게, 어떤 것은 힐러에게 유리하기도 하다.

사용할 수 있는 액티브형 기억은 총 4개다. 기억들은 스테이지 클리어 중 드랍되거나, 중간중간 마주치는 상인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충전해서 강한 데미지를 터트리거나, 특정 위치에 강력한 스킬을 시전하거나, 반대로 빠른 데미지를 입히거나 이동식 스킬, 근거리 스킬 등 아주 다양한 발동형 기술들이 존재한다.



▲ 캐릭터 고유 기억도 다른 기억으로 변경할 수 있다

기억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게 하나 있다. 보통의 게임과 다르게, 셰이프 오브 드림즈에서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보유하는 고유 액티브 기억도 플레이어의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다. 일단 고유 기억을 들고 시작한 뒤, 더 유용한 기억을 얻게 되면 아주 쿨하게 변경하면 그만이다.

덕분에 아주 운이 좋은 판에서는 마지막 보스의 방에 네 개의 기억을 모두 매우 높은 등급으로 보유한 채 당당하게 진입할 때도 있었다. 고유 기억은 없지만 뭐 상관없다. 훨씬 강력한 기억들로 무장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 추가 효과를 지니는 정수들

그리고 하나 더, 각 기억은 최대 세 개의 정수를 부착할 수 있다. 직접 사용하는 스킬 개념인 기억과 다르게 정수는 기억을 강화하는 조금 더 보조적인 효과를 가진다.

그렇다고 모든 정수가 단순히 기억의 공격력이나 스탯 등을 강화하는 건 아니다. 정수 자체도 아주 다양한 효과들을 지닌다. 기억 발동 시 추가적인 공격이 이루어진다거나, 아예 속성을 바꾸거나, 특정 속성에 맞춰 새로운 효과가 생성되는 등 특별한 기능들을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같은 기억이라도 정수에 따라 그 강력함이나 공격 방식 등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단일 데미지를 입히던 기억을 광역 공격으로 바꿀 수도 있고, 같은 속성과 연계해서 추가 데미지를 입히거나 디버프를 거는 것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다. 치유 기능이 있는 정수들을 혼합해 강력한 회복 기술을 하나 만들어낼 수도 있다.



▲ 기억과 정수를 조합해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매우 다양한 기억과 정수의 조합이 바로 셰이프 오브 드림즈의 가장 특별하고 특징적인 점이다. 반복을 반복으로 느껴지지 않게 한다랄까. 분명 같은 캐릭터로, 같은 고유 기억을 장착하고 시작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 경험을 할 수 있다.

하나 아쉬운 건, 대부분의 정수는 어떻게든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비해 기억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기억의 종류가 꽤 많은 편인데, 이게 그냥 랜덤으로 획득할 수 있다 보니 첫 번째 층에서 쓸 만한 기억을 얻지 못해 그대로 리타이어되는 경우가 꽤 자주 발생했다.





아름다운 배경 그래픽, 그럼에도 뛰어난 시인성적당한 이펙트, 그리고 적당한 화려함





셰이프 오브 드림즈는 쿼터뷰 핵앤슬래시 게임이다. 거기다 멀티플레이도 지원한다. 크지 않은 스테이지 맵에서 많은 적이 등장하고, 4개나 되는 스킬을 최대 3명이 계속해서 쏟아부어야 하며, 그 와중에 적의 공격은 열심히 요리조리 피해야 한다.

즉,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결국 시인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셰이프 오브 드림즈의 시인성은, 꽤 괜찮은 편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보스전의 경우, 아군의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적의 공격을 확인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인성이 좋다. 보스들의 특수 공격 역시 눈으로 충분히 체크할 수 있다. 물론 피하는 건 반사 신경과 손가락의 문제이니 논외다.

일반 몬스터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주 적당한 스킬 이펙트와 아주 잘 보이는 붉은 바닥 표시 덕에 광역 공격 혹은 돌진하는 적이 많고, 상대적으로 맵이 좁은 편임에도 적의 공격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보이지도 않는 뭔가에 피격당해 사망하는, 그런 화가 나고 답답한 일이 매우 적다.

이건 언급한 적절한 스킬 이펙트와 바닥 표시 등의 이유도 있지만, 명도가 낮은 배경 덕분이기도 하다. 배경이 생각보다 뭐랄까 반짝거리는 느낌임에도 적당하게 어둡고, 적당하게 반짝이기에 눈이 피로하지 않고 전투 상황도 잘 보인다.



▲ 아름다운 별자리 배경과 그에 맞는 공격 특징을 지닌 보스

셰이프 오브 드림즈를 플레이하며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름다운 배경이다. 아주 적당한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아주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각 스테이지마다 특별한 테마에 맞춰 배경을 살려냈는데, 숲, 용암, 별자리, 여기에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배경까지 여러 테마가 존재한다.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와 보스 역시 외형과 공격 등이 해당 테마에 맞춰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별자리 테마의 경우, 가장자리 없이 전체가 거대한 우주처럼 구성되어 있어 플레이하는 내내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아름답다. 아무래도 꿈의 세계인 만큼, 가장 꿈에 어울리고 특별한 테마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테마들은 시작 층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랜덤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배경의 변화 역시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변화’와 합쳐져 게임의 반복성을 상쇄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등장 테마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기에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매번 새롭다는 느낌을 주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배경 측면에서 조금씩 변화가 있다는 건 충분히 긍정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내는 성장 시스템같은 캐릭터임에도, 매 판 다른 플레이 경험




셰이프 오브 드림즈의 로그라이트 시스템, 즉 성장 시스템은 꽤 본격적이다. 한 가지 성장이 아니라 몇 가지 성장 시스템을 섞어뒀다. 중심이 되는 건 캐릭터별 레벨, 그리고 특성 트리다.

게임에는 탱커, 힐러, 원거리 딜러, 마법사, 근거리 딜러 등 다양한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이 캐릭터들은 특정 조건을 달성할 때마다 하나씩 열리는데, 캐릭터별로 가진 특징이 확실하기 때문에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캐릭터를 찾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오픈한 각 캐릭터를 플레이하면, 게임 진행도에 따라 숙련도, 즉 경험치가 쌓인다. 이를 기반으로 캐릭터 레벨업을 할 수 있는데, 레벨에 따라 캐릭터 전용 특성, 그리고 특성을 착용할 수 있는 트리가 열린다. 모든 캐릭터들의 숙련도 레벨 합에 따라 공용 특성들도 오픈된다.



▲ 다양하게 꾸려갈 수 있는 특성 트리

특성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별가루라는 특별 재화가 필요하다. 별가루는 매 판 게임을 플레이하면 얻을 수 있는 재화로, 보스 몬스터나 정예 몬스터, 특별한 맵 등지에서만 획득할 수 있다. 게임 로비에서 확인 가능한 일일 퀘스트 보상으로도 주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부족한 별가루를 활용해 공용 특성을 찍을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 드는 특정 캐릭터를 강화시킬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특성 초기화가 없기에 아주 신중하게 별가루를 사용해야 한다.



▲ 캐릭터의 특징을 변화시키는 패시브, 정체성 기억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캐릭터별로 가지고 있는 고유 스킬, 즉 고유 기억과 관련된 부분이다. 캐릭터마다 고유 기억을 추가적으로 하나씩 더 가지고 있는데, 이 기억들에 따라 같은 캐릭터임에도 플레이 방식이 꽤 달라지는 편이다.

이는 액티브 스킬뿐 아니라 패시브 스킬까지 두 가지 선택지를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액티브 스킬의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게임 내 기억으로 교체할 수 있지만, 패시브 스킬은 유일하게 교체가 불가능하다. 덕분에 패시브 스킬은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이 될 수 있고, 이에 맞는 기억과 정수를 찾는 재미도 게임 내에서 느낄 수 있다.

캐릭터마다 스테이지에 진입해서 얻는 기억마다 플레이가 달라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같은 캐릭터를 또 다른 느낌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셰이프 오브 드림즈는 확실히 잘 만들어진, 균형 잡힌 인디 게임이다. 로그라이트에 시원시원함을 줄 수 있는 핵앤슬래시를 적절하게 배합했고, 특징이 살아 있는 캐릭터들과 특성, 다양한 기억과 정수를 활용해 매 판 다른 플레이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픽 역시 플레이하면서 감탄을 일으킬 만큼 아름답고, 조작도 부드럽다. 컨트롤러 지원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여기에 너무 과한 이펙트 없이도 스킬의 비주얼적 특징이 잘 드러나고, 게임의 전체적인 시인성 역시 매우 뛰어나다.

아쉬운 건, 리뷰 빌드를 미리 플레이하다 보니 최대 3명이 함께할 수 있는 멀티 모드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솔로 모드 역시 플레이의 재미, 그리고 조작의 재미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다만 여럿이서 플레이할 경우, 좀 더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낸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매 판 다르게 적용되는 스테이지
  • 다양한 조합으로 만드는 자신만의 빌드
  • 아름다운 배경과 특징이 살아있는 보스
  • 개수에 비해 활용성이 떨어지는 일부 기억

리뷰 플랫폼: PC (리뷰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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