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임은 '반복'이야, 압솔룸-볼x핏-덕코프

기획기사 | 강승진 기자 | 댓글: 6개 |
좋은 게임 추천해 주는 것도 나름의 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그게 또 쉽지 않습니다. 풀프라이스 게임이 90달러니 100달러니 하는 시대에, '꼭 사세요'라고 말하는 게 더 무게감 있어진 시대니까요. 여기에 아무래도 게임이라는 게 개인의 취향이 담길 수 밖에 없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게임을 추천하고, 분석하는 것도 9천2만2억년 만인 것 같습니다. 그런만큼 이 세 게임이 나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고, 또 그만한 이유도 분명히 보이고 있거든요. 바로 '압솔룸', '볼x핏(Ball x Pit)', 그리고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입니다.



▲ 여러 대작, 인디 기대작 속에서 판매량과 매출 모두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세 게임

사실 묶어놓은 게임만 보면 '뭐 잘나가고 저렴한 인디 게임 적당히 묶어놓았다' 정도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벨트스트롤 비뎀업, 알카노이드류 블록깨기, 탑다운 슈터 등 장르도 저마다 제각각이니까요. 하지만 저마다 다른 이 장르가 되려 이들을 묶어 설명할 핵심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간의 로그라이크(트)라는 장르의 해석을 확장시켜놓았고, 그걸 완성된 재미로 가다듬었기 때문입니다.


로그, 라이크와 라이트, 그리고 그냥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크라는 말부터 짚고 넘어가보죠. 이 표현은 어느덧 오늘날 게임에 너무나 대중적으로 파고든 게임 개념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로그'와 같은 게임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건 장르의 인기만큼이나 이제 너무나 유명해졌고요.

사실 1980년 선보인 '로그' 자체가 워낙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게임이고, '넷핵'이나 '던전 크롤', '이상한 던전'처럼 그 모습을 자신의 게임 스타일 안에서 최대한 구현하려는 게임들도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로그-라이크(Rogue-like), 로그 '같은' 게임인 거죠.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오늘날 로그라이크는 '로그'와 비슷한 모습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 근본이 있고 그걸 따라한 게임들이 로그라이크였지만, 이제는 그 수가 적어진 것도 사실

그보다는 게임 '로그'의 핵심이 된 요소만을 품고 있습니다. ▲ 알고리즘을 이용해 자동으로 데이터를 생성하는 기술인 절차적 생성을 통해 '랜덤'으로 주어지는 오브젝트나 맵 ▲ 영구적 죽음(퍼마데스)에 따라 죽음으로 모든걸 잃는 시스템. '로그'의 이 두 개념을 적당히 바꾸고 희석하며 재해석해 출시되고 있습니다. 죽음을 통한 플레이어의 성장을 넘어, 죽음 이후에도 남아있는 성장을 다루기 시작했죠. 전에는 죽으면 정말 끝이었는데, 이제는 뭐 진화니, 유전자니 하면서 정말 죽어도 강해집니다.

이러한 게임들의 등장에 이렇게 옅어진 '로그'의 특징을 가진 게임을 로그라이'트'라고 표현하고 분리하는 움직임도 오래 이어졌습니다. 특히 수많은 게임이 로그라이크를 표방하면서 이에 대한 구분론도 나왔습니다. 로그라이크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는 '베를린 해석'이라고 아예 로그라이'크'만의 특징을 따로 구분하는 움직임도 있었죠.

하지만 반대로 대중 미디어나 일반 팬들은 되려 혼용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로그라이크와 로그라이트를 구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옅어진 건, 엄격하게 구분해 '로그라이크'라고 불릴 만한 게임이 줄어들고, 수많은 인디 개발사들이 로그라이트 게임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형 게임사들도 자신들의 게임에 로그라이트 요소를 더한 신 모드를 내놓고, 로그라이크로 홍보하기도 하고요.


액션에서 맛이 사는 로그라이크(라고 믿었다


로그라이크(이제는 따로 구분하지 않겠습니다) 게임이 대중적으로 스며든 건 플랫포머 '스펠렁키'를 필두로 등장한 게임들부터일 겁니다. 이게 '로그 레거시', '데드 셀' 등으로 진화하면서 로그라이크 게임이라고 하면 플랫포머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작이 됐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작의 번제'를 중심으로 '엔터 더 건전' 등 건플레이, 탑다운 슈터 장르에도 로그라이크 붐이 불었고, '하데스'는 아이소메트릭 뷰(쿼터뷰) 로그라이크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또 오토 슈터 붐을 이끈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와 뒤이은 뱀서라이크 게임도 로그라이크 특징을 살려낸 게임이고요.



▲ 맵, 오브젝트의 랜덤인 절차적 생성으로 로그라이크 특징을 살리기도 하고

잘 보면 설명한 게임들 모두 액션에 치중한 인디 게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게 단순히 우연이나 유행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좀더 따지고 들면 장르의 특성이 이 게임 특징과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죠.

로그라이트로 개량된 오늘날의 로그라이크의 핵심은 '영구적 강화(메타 프로그레션)'입니다. 죽어도, 다음 플레이에 이어지는 강화죠. 자주 죽고, 거기서 얻은 걸로 또 성장하는 식입니다. 이게 플레이어를 헷갈리게 합니다. 죽으면서 배우는 숙련과 죽는 과정에서 얻은 아이템으로 인한 성장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소위 '내가 점점 잘해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오죠. 그리고 이 착각이 플레이 만족감과 재미라는 긍정적인 영역으로 확장되고요.

그러기에 한 번 플레이하는 '런'이 길어서는 안됩니다. 자주 죽고, 또 살아서 금세 다시 도전해야 하죠. 이런 특징 자체가 속도감 있는 플레이와 피드백을 요구하는 액션에 적합하고요.



▲ 영구적 강화가 성장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게임 플레이 흐름의 변화도 이유로 꼽힙니다. 스트리밍 친화적인 오늘날 게임 세대에게 로그라이크는 영상 콘텐츠에 최적화된 내용을 뽑아낼 수 있는 형태입니다. 무한반복이라는 구조도 이런 특징과 이어지고요. 여기에 직접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성향 역시 짧은 세션 플레이에 만족감을 느끼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게 글로벌 인기를 끄는 배틀로얄 장르의 인기 원인 중 하나니까요.

인디 개발자들에게도 로그라이크의 특징은 더 적은 개발 비용으로 높은 콘텐츠 수명을 유지시켜줍니다. 플레이 중의 랜덤성은 무기 하나, 장비 하나에 또 다른 조합을 만들어내니 말이죠.

이른바 시대의 흐름, 개발 효율성 모두 로그라이크를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장르가 아니라 메커니즘이야


이쯤에서 빠진 게임 이야기를 하나 해보죠. 바로 로그라이크 흥행 대중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인 '슬레이 더 스파이어'입니다. 이건 덱빌딩 게임입니다. 즉각적인 플레이어의 입력 피드백으로 재미를 주는 게임도 아니고, 전략적인 플레이로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게임이죠. 덱빌딩 게임은 카드 조합에 대한 오랜 고민, 또 그걸 활용하는 유불리가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덱빌딩을 로그라이크에 적합하게 풀어낸 플레이는 덱빌딩도 로그라이크에 적합한 게임이라는 걸 증명해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TCG, 덱빌딩 게임이 로그라이크 요소를 도입하고 있고요.

이에 대해 로그라이크 역시 개발자들의 관습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즉, 이미 누군가 해놓은, 소위 말해 성공한 게임의 뒤를 따르는 게임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그런데 오늘날의 게임들은 어느 특정 장르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로그라이크는 특정 장르적 특징보다는 게임 메커니즘과 해석에 관한 부분이라 그 활용도가 더 높고요. 누군가 새로운 장르에 로그라이크를 활용해 성공하는 것만 보여준다면, 또랫포머, 또빌딩이 아니라 정말 색다른 로그라이크가 탄생할 기반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압솔룸', '볼x핏',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입니다.



▲ 벨트스크롤 자체의 재미도 인정 받고 있는 압솔룸

이들은 각기 서로 다른 장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전에는 시도가 비교적 적었던 로그라이크의 특징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절차적 생성(맵보다는 오브젝트에 대한), 그리고 영구적 강화를 각기 다른 장르에 살려냈다는 데 의의가 있죠.


그럼에도 기본기가 충실해야


새로운 장르에 시도하는 로그라이크의 특징. 사실 그게 중요한 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진짜 핵심은 게임 그 자체에서 나옵니다. 로그라이크의 특징이 게임 플레이를 더 매력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드는 메커니즘적인 마지막 조미료라면, 그걸 뺀 게임 플레이 자체로도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게임들이거든요.

리자드큐브의 베어 너클4 개발에 참여한 닷에뮤, 가드 크러시가 만든 '압솔룸'은 직관적인 조작을 통한 타격감, 매끄러운 애니메이션과 그래픽으로 멀티플레이까지 가능한 벨트스크롤 비뎀업 액션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부 평론가는 오히려 로그라이크의 특징을 살려 전통적인 비뎀업 액션 수작을 쪼개서 플레이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죠. 또 정통 판타지 세계관의 분위기는 과거 명작의 느낌을 기다린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고요.

'볼x핏'은 알카노이드식 블록 깨기를 특징으로 합니다. 하지만 쏜 볼을 반드시 받아내야 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약간의 시간 손해 후 놓친 볼을 회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덕분에 블록 깨기 자체의 몰입감은 살리면서,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처럼 오토 슈터 루터를 횡스크롤로 돌린 듯한 플레이 감각까지 가지게 됐습니다.



▲ 볼x핏은 블록 깨기의 개념 자체를 오토 슈터 흐름으로 풀어냈다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는 이름처럼 타르코프를 떠올리게 하지만, 어디까지나 PvE만을 그리는 게임입니다. PvPvE에서 오는 긴장감을 희석시키고 캐주얼하게 만들어냈다는 뜻이죠. 여기에 탑다운 뷰에서 주는 시각적 안정감, 보다 여유로워진 슈터 플레이도 게임을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만들고요. 여기에 근래 흥행 게임의 핵심인 유머도 잘 담겼습니다. 하지만 건플레이 자체가 탄탄하게 만들어져 준수한 슈팅 감각을 즐길 수 있고, 익스트랙션 장르 자체의 재미도 잘 구현했습니다.

기본적인 체급이 되는 게임. 그게 기존에는 로그라이크와 엮이는 경우가 적었던 장르이기에 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의 완성도를 바탕으로, 그걸 반복 플레이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물론 반복의 재미, 그게 이런 다른 장르에서도 먹혀든다는 걸 충분히 증명한 만큼, 아마 또 다른 벨트스크롤 로그라이크, 블록깨기 로그라이크가 나오게 될 겁니다.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그랬고 '발라트로'가 새로운 장르를 열었던 것처럼요. 하지만 반대로 로그라이크가 몇몇 특정 장르 안에서 구현되는 특징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해와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들이 2만 원 내외입니다. 100달러를 향해가는 게임 풀프라이스에 뭐 하나 감히 추천하기 부담스러운 시대에, 자신있게 해보라고 권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기도 하고요.



▲ 반복 요소가 강한 익스트랙션 장르에서 PvP를 빼며 로그라이크 특징이 더 짙어진 덕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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