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찬 칼럼 #8] 계약서의 제목과 목적, 그리고 정의

기획기사 | 인벤팀 기자 |


● ✨이병찬 변호사 소개✨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온 변호사입니다. 손은 굳고 눈도 흐려졌지만, 오늘도 normal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게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E-mail : gerrardgogo@gmail.com

관련 기사
- 계약의 이해와 실무, 종합 '이병찬 칼럼' 모아보기

지금까지 총 7회에 걸쳐 계약서를 작성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숙지해야 할 핵심 개념과 본 계약 체결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NDA, 텀시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드디어 계약서 조항 하나하나를 뜯어보아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리 말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계약이 있습니다. 매매 계약, 임대차 계약, 도급 계약, 근로 계약, 서비스 이용 계약, 혼인 계약(혹시 혼인도 계약이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등. 각각의 계약은 자기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약의 종류에 따라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도 다릅니다.

설사 같은 종류의 계약이라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계약의 내용은 모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주택 임대차 계약이라도 어떤 집 주인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고, 어떤 집 주인은 피아노를 들여놓지 못하게 하며, 어떤 집 주인은 함부로 못을 박지 못하게 할 수 있지요.

이처럼 계약의 종류는 다양하고, 같은 종류의 계약이라도 개별적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본 칼럼에서 계약의 구체적인 상황을 모두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원칙을 정확히 알아두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원칙을 중심으로 계약의 각 조항에 대하여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제목 - 계약의 내용은 제목에 구속되지 않는다




▲ 제목을 짓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계약서 상단에는 “근로 계약서”, “임대차 계약서”, “매매계약서”와 같이 ‘제목’을 기재하는데, 제가 계약서와 관련하여 가장 흔하게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계약서 제목을 어떻게 기재해야 하나요?”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가끔 생기는데, 만약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면 제목을 어떻게 기재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돈을 빌려주고 친구는 갚기로 합의했으니 “합의서”가 좋을까요? 아니면, 돈을 빌려 쓰는 걸 차용이라고 하니 “차용증”이 좋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갚기로 한 사람이 약정한 것이니 “약정서”라고 하면 좋을까요?




이 경우 계약서의 가장 적절한 제목은 “금전 소비대차 계약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소비대차란 “당사자 일방이 금전 기타 대체물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그와 같은 종류, 품질 및 수량으로 반환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을 말합니다(민법 제598조).

우리가 친구한테 5만 원을 지폐로 빌린 경우, 반드시 친구한테 받았던 5만 원권으로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동일한 가치의 화폐로 갚으면 됩니다(다른 5만 원권으로 갚을 수도 있고, 1만 원권 5장으로 갚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돈을 빌려주는 계약의 정확한 법적 명칭은 “금전 소비대차 계약”입니다. 소비대차와는 달리 빌린 물건 자체를 반환해야 하는 경우는 임대차(대가를 지불하는 경우)나 사용대차(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돈을 빌려주는 계약서의 가장 적절한 제목이 “금전 소비대차 계약서”라는 사실이 아니라, 해당 계약서의 제목을 “합의서”나 “차용증”, “약정서”로 적는다고 하더라도 계약의 해석이나 효력에 특별한 차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제목을 정확히 적으면 더 좋겠지만, 계약의 내용은 제목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많은 분이 계약서 제목이 적절한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이유는 제목이 계약의 내용이나 효력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계약의 내용이나 효력이 제목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을 일은 없으니, 제목을 짓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2. 목적 - 계약 당사자의 대표적인 의무를 기재





목적 조항에서는 계약의 체결 목적을 포괄적으로 기재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계약의 목적이란 무엇일까요. 부동산 매매 계약의 경우 매도인의 목적은 돈을 받는 것이고 매수인의 목적은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입니다. 근로 계약의 경우는 어떨까요. 사용자의 목적은 근로를 제공받는 것이고, 근로자의 목적은 임금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대충 감이 오시나요?

결국 목적을 기재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계약 당사자의 대표적인 의무를 기재하는 것입니다. 계약이란 결국 각 당사자에게 권리·의무를 발생시키기 위한 행위니까요.

연습 문제를 몇 개 풀어볼까요. 만약 ‘게임 광고 계약’이라면, “본 계약은 A 회사가 B 회사의 게임을 광고하고, B 회사는 A 회사에게 광고비를 지급함에 있어, 양 당사자의 권리·의무를 명확히 규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기재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퍼블리싱 계약’이라면, “본 계약은 A 회사가 B 회사의 X 게임을 퍼블리싱하고, B 회사는 그 대가로 A 회사에게 수익을 분배함에 있어, 양 당사자의 권리·의무를 명확히 규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기재하면 될 것입니다.

어차피 각 당사자의 구체적인 의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기재할 것이기 때문에, 목적 조항에서 채무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열거할 필요는 없으며, 가장 대표적인 의무만 기재하면 족합니다.

또한, 제목과 마찬가지로 목적 조항도 실질적으로 계약의 효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이걸 작성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3. 정의 - 분쟁 발생 가능성을 차단





정의 조항은 계약서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핵심 용어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향후 분쟁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A 회사는 신규 게임을 개발하다가 돈줄이 말라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A 회사의 대표이사는 자신이 예전에 근무했던 대형 게임사 B 회사의 투자 담당자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B 회사는 A 회사가 게임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3억 원을 투자하는 대신, 향후 게임이 출시되면 ‘순수익’의 20%를 분배받기로 했습니다.

위 투자 계약에서 ‘순수익’은 이익 분배의 기준이 되는 금액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순수익은 일반적으로 전체 매출에서 관련된 경비를 모두 제외한 금액을 의미합니다.

순이익을 분배해야 하는 시점이 되자 A 회사의 대표이사는 A 회사에서 게임 운영을 전담하는 직원들의 인건비를 비용에 포함시켜 순수익을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B 회사는 플랫폼 수수료나 광고비 등 제3자에게 지급한 금액이 아니라 A 회사의 직원 인건비까지 비용으로 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정의 조항에서 “순이익”을 정의하면서, 전체 매출에서 순수익을 산정하기 위하여 비용으로 공제하는 항목을 모두 열거해 두는 것입니다. 만약 정의 조항에서 비용에 포함되는 항목을 미리 정해둔다면, 양 당사자가 순이익의 산출 방법을 다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정의 조항에서는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개념들을 선정하여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핵심 내용 정리


- 계약서의 제목은 정확하면 좋지만, 대세에 지장 없으니 너무 에너지를 소모하지는 말자.
- 계약의 목적에서는 양 당사자의 대표적인 채무를 기재하면 족하다.
-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개념은 정의 조항에 구체적으로 기재해서 해석의 여지를 없애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