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매년 이렇게 부산을 가고, 며칠씩 취재를 한다고 돌아다녀도, 이제는 지스타가 무슨 행사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스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뭘 보여주고 싶은 걸까? 마땅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한 시간에 그런 의문만 커진다.

지스타의 갈팡질팡한 운영은 매년 도마 위에 올랐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더 부실한 이벤트가 될 게 뻔해 보였다. 매년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국내외 게임사 참여는 올해 크게 줄었고, 빈 공간에 참여가 가능해진 회사들이 뒤늦게 지스타 참가를 알렸다. 그만큼 신작 발표나 체험 등 내실 있는 이벤트를 준비할 여력이 부족했을 터. 결국 대형 게임사, 기대작 몇몇에 의존하는 행사 분위기는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엔씨, 크래프톤, 웹젠, 넷마블 등 대형 게임사들의 참여로 기대작 플레이라는 행사의 한 축은 겨우 챙겼다지만, 적절한 분배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형 부스를 제1전시장에 몰아놓은 탓에 신작 플레이를 위한 대기는 올해도 지나치게 길었다. 대기줄 문제는 여느 게임 행사가 똑같지만, 절대적인 기대작 숫자가 부족한 만큼,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원이 특정 부스에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대로 제2전시장은 인디 체험이나 해외 게임사들이 채웠다.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끈 회사들이 부스를 차렸지만, 정작 제1전시장에만 팬들이 몰리며 첫날에는 한산하기까지 한 분위기였다. 한 관계자는 한국을 찾아 휑한 부스를 지키는 모 부스의 글로벌 매니저를 보고 '저 사람이 여기서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닌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브 컬쳐 인기 확산으로 지스타는 2022년 제2전시장을 열며 야심차게 확장했지만, 정작 이후에는 AGF 등에 밀려 서브 컬쳐 게임 입점이 지지부진했다. 결국 제2전시장은 국내 대형 부스가 빠진, 집중도가 떨어지는 전시장이 되는 모양새다.
물론 글로벌 게임사가 전시장마다 다른 컨셉을 가지고 행사를 운영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2개의 전시장만을 운영하면서 인기 부스를 한 곳에 몰아넣다보니 관만의 콘셉트가 살아나기보다는 쏠림 현상만 가중되고 있다. 또, 국제 게임쇼가 여러 관이 오밀조밀 연결되어 있어, 관을 옮기며 다양한 모습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스타의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은 거리도 멀고, 그 사이에는 마땅한 이벤트보다는 제대로 탈의 시설이나 휴게 시설이 부족해 복장 준비를 하는 코스플레이어의 모습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지스타가 이런 모습으로 펼쳐질 거라는 건 앞선 국제 게임쇼들을 통해 일찌감치 예견됐다.
올해 글로벌 게임쇼에서는 유독 한국 게임사의 참여가 많았다. 원래라면 글로벌 신작 체험이 가득했을 취재였지만, 줄줄이 참여하는 국내 게임사의 취재 요청에 한국 부스를 찾아다니는 것만 해도 바빴다. 게임스컴이 그랬고, 게임 쇼와는 거리가 있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도 그랬다. 특히 비교적 가까운 일본에서 열린 도쿄 게임쇼는 국내 개발사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지스타 도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글로벌 축제에 국내 게임사들의 참여가 느는 건 분명 긍정적이다. 국내 게임의 글로벌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게임사들이 굳이 지스타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실제로 도쿄 게임쇼에 참여한 많은 국내외 게임사 중 상당수가 지스타를 따로 찾지 않았다. 어차피 해외 게임쇼를 위해 시연 빌드를 만들었으니, 이것으로 지스타'도' 찾았던 과거와는 퍽 다른 모습이다.
분명한 건 기업들이 국제 게임쇼를 통해 글로벌 팬들을 만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서를 뽑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도쿄 게임쇼의 1부스 가격은 38만5천엔, 360만 원 정도다. 지스타의 독립부스는 부스당 170만 원이다. 10년 전 95만 원과 비교하면 약 80% 증가한 가격이다. 조립부스도 280만 원으로 65% 가량 올랐다. 이제는 당연하게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게임사 입장에서, 이 정도 가격 차이라면 국제 게임쇼를 찾는 게 낫다 판단할 수준인 셈이다.
여기에 굳이 부산을 찾지 않아도 팬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자체적인 게임 행사를 열면 오롯이 자사 게임을 보기 위해 몰린 팬들에만 집중하면 된다. 보다 접근성이 높은 서울, 경기권 행사 역시 지스타 참가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지스타가 매년 하향세를 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상승도, 하락도, 지스타의 자체적인 노력보다는 대형 게임사의 참가와 기대작 면면에 의존했다. 그리고 그게 눈에 띄게 부족한 올해 지스타는 텅 빈 야외 부스처럼 어느 때보다 부실한 행사로 게임 팬의 기대에 걸맞지 않은 이벤트를 보여줬다.
반대로 마땅한 기대작이 없어도 내실을 채운 행사가 많다. 당장 매년 필라델피아, 보스턴, 시애틀, 호주 맬버른 등 곳곳에서 열리는 PAX는 게임 시연 외에도 보드 게임, 랜파티, 아케이드 등 다양한 참여형 행사로 참여 자체를 즐기는 이벤트로 성장했다. 여기에 나름의 방향성을 보여준 플레이엑스포, AGF 등의 성장 역시 눈에 띈다.
이제 지스타는 국내외 게임사가 참가할 마땅한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부산만의 로컬 행사가 아니라, 전국에서 팬들이 찾아올 게임쇼를 만들어야 한다. 허울 좋은 글로벌이 아니라, 당장 한국에서 찾고 싶은 행사가 되어야 한다. 참가사 면면에 따라 휘청거리는 기둥 없는 행사가 되어선 안된다.
그렇지 않다면 지스타는 결국 해외 게임쇼에 밀려, 담당자들이 잘 닦아놓은 강연행사 G-CON 정도만이 기억되는 지역 행사에 그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