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그 많던 하드웨어 부스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기획기사 | 백승철 기자 |
정말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접해왔고, 또 그만큼 게임을 좋아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나보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도, 진심인 사람도 많겠지만 세상만사 자기중심적인데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내 시간을 할애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게임이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 지스타 2025 NC 부스에서 아이온2를 체험하고 있는 유저들

그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게임을 하는 데에 있어 정말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 원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게임하며 밥을 먹거나 전화를 하거나, 여러 개의 게임을 켜 놓으며 인게임적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등은 내 게임 취향에 맞지 않았고 여전히 그러하다.

게임이라는 본질에 있어 게임을 방해하는 것, 랙만큼 답답한 게 있을까. 게임하다 밥을 먹어야 하면 게임을 중단하고 식사를 끝낸 후 다시 게임에 복귀해야 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랙은 얼마나 싫은 존재일지. 어릴 때부터 게임을 플레이하는 최신 기기에 관심을 갖고, 제아무리 좋아하는 게임이라고 한들 현재의 최신 게임플레이 기기를 통한 경험 속에 간헐적으로 랙이 발생된다면 얼마 못가 게임을 그만두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나만 그러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이만큼 게임과 하드웨어는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묶음이다. 때문에 전세계 및 각종 행사에서 하드웨어 브랜드를 만나기 수월했고, PC를 포함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기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게임 행사만큼 축제도 없었다.

근데 요즘 하드웨어 참가사의 수가 정말 많이 줄었다. 긴가민가 했는데, 이번 지스타 2025에서 확실히 체감했다.



▲ 지스타 2025에서 그나마 하드웨어 팬 입장으로 반가울만한 부스였던 플레이샵 부스

예전에는 하드웨어 브랜드의 부스가 정말 많았다. 예전이라고 해봤자, 내가 지스타를 가기 시작한 2010년대 말 정도인데 그땐 글로벌 하드웨어 업체들도, 또 종종 끝내주는 신제품을 선보이고 싶어 하는 브랜드도 종종 보였다.

행사에 참가하는 게임사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게임사 부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곳만 즐겨도 1~2시간은 우습다. 거기에 밥도 먹어야지, 커피도 한잔해야지, 조금 쉬기도 해야지. 내가 희망하고 꼭 듣고 싶은 강의들이 금요일 오후에 몰빵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반면, 하드웨어 참가사는 이름만큼이나 직관적이다. 자사의 제품을 보고 체험하면 경품을 준다. 그리고 현장에서 파격적인 할인을 통한 제품 구매까지 진행할 수 있다. 신작 게임 시연에 비해 줄도 그리 안길고, 설령 줄이 길더라도 정말 빠르게 줄어든다. 물론 인플루언서 방문이 계획되어 있다거나 그래픽카드를 뿌린다거나 하면 사람이 몰리는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무릇 일반인이 전시회에서 즐기는 요소들이라고 하면 '신작 게임의 체험', '온라인 대비 파격적인 할인 혜택', '푸짐한 경품', '고가의 제품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드웨어 부스들은 부스 규모에 상관없이 첫 번째 내용을 제외하고 나머지 3대 요소만큼은 항상 충족해왔다.



▲ 지스타 2025 웹젠 부스의 경품. 웹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품들은 거진 다 하드웨어 관련 제품들이다

물론 오늘날, 현장에서 마음에 드는 고가의 제품을 바로 사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긴 하다. 휴대폰을 틀어 온라인과도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니까. 다만 경쟁은 게이머의 귀찮음과 진행하게 된다. 전시장에서 바빠 죽겠는데 누가 그 자리에서 가격을 비교해서 다 따지고 "음, 현장이 훌륭하네!"해서 구입하겠는가.

경품은 여전히 훌륭한 촉매제다. 게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PC나 노트북, 모니터부터 PC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인 CPU, 그래픽카드 등, 더 나아가 더 즐거운 게임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키보드나 마우스, 그리고 헤드셋까지. 각종 경품을 시원하게 뿌리는 하드웨어 참가사 특성상 진짜 현장의 맛을 살려주는 존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고가의 제품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여전히 훌륭한 콘텐츠지만, 이게 상황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드웨어 브랜드 특성상 시연 게임을 고르기가 정말 어렵다는 얘기다. 살짝만 얘기하면 전시회 특성상 이용 등급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고, 시연을 희망하는 리스트를 짜서 해당 게임을 서비스하는 게임사와의 업무 조율도 필요하다. 관람객들이 원하지만 그간 제공하기 너무 어려웠던 서비스라는 얘기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래서 하드웨어를 볼 수 없었냐고? 그건 아니다. 단박에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숨어있었다. 좀 더 게이머 개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형태로 말이다.



▲ NC 아이온2 게임 시연존 사양. 저기선 지뢰찾기를 해도 재밌을 것 같다

신작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대부분의 대형 부스에서는 호화로운 게이밍 셋업을 갖춘 시연존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PC 사양부터 주변기기까지 모두 기재해놓은 NC의 시연존은 한 자리당 족히 500만 원은 나올만한 견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대형 부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스타 2025 부스 안에는 예년보다 게임 시연 환경에 공을 들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어디 학교 컴퓨터실에서 가져온 사무용 키보드와 마우스, 모니터가 영 신경 쓰였는데. PC뿐만 아니라 모바일이나 태블릿, 더 나아가 평소 관심이 없었다면 생소할 수 있는 스팀덱 같은 UMPC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기대하고 있는 아이온2의 시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게이밍기어 할인 쿠폰을 주더라. "어... 혹시?"라고 주위를 둘러보니, 일반적으로 자사의 굿즈 위주로 걸려있던 경품들이 대부분 하드웨어 제품들이었다. 다시 한번 짚어보자. 파격적인 할인 혜택, 푸짐한 경품, 제품 체험.

그래, 하드웨어 브랜드는 사라진 게 아니라, 게임사 부스 속에 자연스레 녹여져있었다.



▲ 지스타 2025 대형 부스의 음향장비는 대부분 저 초록뱀의 제품이었다



▲ 모바일 게임 + 고사양 게이밍 헤드셋 = 훌륭한 게임 경험



▲ 일반인 기준 평소에 접하기 힘든 스팀덱으로 마음껏 게임 시연을 해볼 수도 있었다

하드웨어 팬으로서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어떻게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하드웨어 브랜드가 전시회에 참가하며, 아니 비단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전시 참가 업체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예산과 모객이다.

일단 전시를 참가하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로도 상당한 비용이 지출된다. 거기에 부스를 설계하는 것부터 관람객을 위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것까지. 하드웨어 브랜드 입장에서 이게 참 어려울 것이다. "고성능 환경에서 게임 틀어놓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앞서 언급했지만 어른들의 세계라 요약하자면, 게임사와의 조율이라는 거대한 진입장벽과 함께 추가 예산 지출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들로 인해, 전시장 내에 떡하니 위치할 수 있는 하드웨어 브랜드의 로고와 부스를 포기하며 각 게임사 부스들로 흩어지는 것으로 타협한듯하다. 피한 건 아니다. 그들은 더 다양한 관람객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위해 선택을 한 것이다. 오히려 브랜딩이라는 전략은 제약 요소가 많은 전시회가 아닌, 자체 팝업스토어 등의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단독 포커싱 될 수 있도록 소구하는 방향으로 잡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다.

대학 시절, 강의명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교양 수업에서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예전엔 신문, TV 그리고 지금은 스마트폰. 미디어나 정보의 입력이 개인화되면서 혼자만의 판단과 잣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다소 겁나는 얘기기도 했고 수평에 위치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뭔가 하드웨어 브랜드에서도 '관람객 개인의 게임 플레이 경험'에 더욱 집중을 한 것 같고, 전략 자체는 이게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지스타에서 예전만큼 하드웨어 부스를 보기 어려워져서 내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게임 전시회의 주인공은 관람객인 만큼, 게이머 입장에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요소들은 더욱 객관적이고 풍부해진 환경이니 지스타를 비롯한 게임 전시회에서 게임 시연존에 들어갈 기회가 된다면 그것들을 충분히, 자유롭게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 줄을 함께 선 불특정 누군가와 아군, 적군이 되어 게임 시연하는 5:5 매칭존도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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