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고 당당한 B급 괴작(怪作)의 매력 '렛잇다이 인페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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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B급'을 '어딘가 부족하거나 떨어지는' 혹은 '대중적이지 않은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또 누군가는 '유행에 따르지 않는' 혹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것'이라 말한다. 요즘에는 그런 걸 '키치하다(Kitsch)'라고 표현한다더라. '렛잇다이 인페르노'를 해보면 B급의 감성이 가득하다. 그걸 촌스럽다 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키치했다.

게임을 켜는 순간부터 이 작품은 뻔뻔하고 당당하게 보여준다. 자신들이 따르는 문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80년대 브라운관 TV의 자글거리는 노이즈로 전개되는 스토리텔링, 캐릭터가 사망하면 등뼈가 적출되어 기지로 배송되는 기괴한 연출,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우스꽝스러운 몬스터 디자인, '이런 걸 들고 싸우라고?'라고 생각하게 되는 요상한 무기들. 미형의 캐릭터와 간지로 점철된 요즘 게임에서는 느끼지 못할 감성이다. 그 감성 안에서 진행되는 전투와 생환으로 느끼는 쾌감이 '렛잇다이 인페르노'의 정수이다.




게임명: 렛잇다이 인페르노
장르명: 로그 라이트 서바이벌
출시일: 2025.12.04
리뷰판: 얼리억세스
개발사: SUPERTRICK GAMES, Inc.
서비스: GungHo Online Entertainment, Inc.
플랫폼: PC, PS
플레이: PC



죽어도 괜찮다(LET IT DIE)고 말하지만... 살아서 돌아가는 게 미션인데요?




게임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로그라이트(Roguelite)의 문법'을 따른다.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하면 자연스럽게 재화가 쌓이고, 그 재화를 사용해 캐릭터의 기본 체급을 올릴 수 있다. 결국, 게임은 반복될수록 자연스럽게 쉬워지면서 엔딩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렛잇다이 인페르노'는 일반적인 로그라이트 장르에서 약간의 변주를 줬다. 게임 안의 캐릭터가 죽을 때까지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라 각 스테이지마다 미션을 주고, 미션을 달성하면 기지로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 살아서 돌아왔을 때는 죽었을 때보다 더 많은 보상이 따른다. 손에 들고 있던 무기도, 파밍한 아이템도 모두 자기 것이 된다. 플레이어는 그 보상을 나중에 쓸지, 바로 쓸지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 요상한 괴물들이 판치는 지옥 속에서 생환하는 게 이 게임의 목표다



▲ 죽었을 때는 등뼈만 살아남아 기지로 송환된다

각 스테이지에는 달성해야하는 미션이 있고, 시간 제한도 있다. 거기에 몬스터와의 전투도 쉽지 않아서 미션을 달성해서 살아 돌아가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파밍이 잘 되었을 때는 장비를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커져서 미션 달성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커진다. 그런 부정적인 느낌들이 역설적으로 게임의 몰입도를 키운다. 다른 로그라이트 게임들이 '죽음'을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여긴다면, 이 게임에서의 죽음은 뼈아픈 상실이다. 힘들게 파밍한 무기와 아이템을 잃는다는 공포가 역설적으로 게임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다.

죽고 싶지 않아서 생기는 몰입도는 후반 스테이지로 갈수록 더욱 커지게 된다. 초반부에는 기괴한 몬스터들과 싸우는 PVE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일정 레벨 이상 성장하여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면 다른 플레이어와 PVP를 해야 한다.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다시 몰입도를 부르고, 아슬아슬하게 '이스케이프 포드'를 통해 기지로 생환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더욱 커진다. 죽음이 가볍지 않아서 살아 돌아가는 게 더욱 값지다.



▲ 마음은 가볍게, 몸은 무겁게 생환할 때가 가장 기쁘다



락온 기능 왜 없어요? 일부러 없앴어요 단순한 로직에서 오는 물고 물리는 심리전




이 게임의 핵심은 전투다. 맵을 다니면서 파밍을 하든, 생환을 위해 '이스케이프 포드'를 타든, 더 깊은 심연의 지옥으로 들어가든, 플레이어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전투를 해야 한다. 전투는 한 가지 큰 규칙으로 진행된다. 상대가 몬스터이든 플레이어든 상관없다.

전투의 공방은 '가위바위보'처럼 심리전으로 완성된다. 먼저 전투는 어느 쪽이든 공격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상대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① 굴러서 회피하거나 ② 막을 수 있다. ① 굴러서 회피하면 양 쪽의 대치는 리셋, 양 측은 다시 거리를 재면서 누가 공격할지 정해야 한다. ② 막았을 경우에는, 체력이 조금 달지만 상대에게 카운터 공격을 날릴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 공격을 계속 기다려서 카운터 공격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럴 수 없다. 상대가 막고만 있을 때는 ③ 가드 브레이크 공격이라는 특수 기술을 날릴 수 있다. 이 기술은 상대의 가드를 무시하고 데미지를 주는 게 가능하다. 단, 가드 브레이크 공격은 속도가 느려서 먼저 발동하더라도 오히려 일반 공격에 역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 막고만 있으면 가드 브레이크 공격에 당하게 된다

일반 공격을 이기는 '가드와 카운터', 이를 다시 뚫는 '가드 브레이크', 그리고 그 느린 틈을 파고드는 '일반 공격'. 이 물고 물리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심리전은 일반 몬스터를 상대할 때, 인간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사람을 상대할 때 상관없이 항상 진행된다. 각 상대마다 난이도의 차이가 날 뿐 기본은 그렇다.

이 전투 시스템의 깊이를 더해주는 게 '락온(Lock-on) 시스템의 삭제'이다. 현대 3D 액션 게임에서 당연시되는 편의 기능인 락온을 배제한 것은 개발진이 의도한 부분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락온이 있었다면 이 게임의 전투는 훨씬 쉬웠을 거다. 하지만 락온이 없기에, 플레이어는 적이 내 사정거리에 있는지 직접 눈으로 가늠해서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을 회피해서 굴렀을 때는 다시 거리를 처음부터 조절해야 한다. 그 사정거리를 파악하고 빠르게 영점을 잡아가는 능력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한다. 의도된 불편함이 실력의 척도가 되는 거다.



▲ 적은 체력에 전투를 서두르다가 역으로 당했다



저주받은 그림을 들고 싸우라고? 폭죽 총이 좋다고?전투의 깊이를 더해주는 다양한 무기들



▲ 다양한 무기는 전투의 깊이를 더한다

'렛잇다이 인페르노'에서 무기는 단순히 B급 감성을 채워주는 용도로만 쓰인 게 아니다. 이 요상하면서도 다양한 무기들이 단순한 전투 시스템에 깊이를 더해준다. 무기는 일반적인 무기부터 '엥?' 소리가 나는 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인 야구 방망이, 일본도 같은 평범한 무기도 있고, 불꽃을 쏘아대는 폭죽총, 회전하는 날로 적을 갈아버리는 프로펠러, 심지어는 저주받은 그림을 들고 반격 자세를 취하는 무기까지 등장한다.

각 무기는 공격 속도, 리치(사정거리), 타격 판정이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무기는 공격의 딜레이가 길지만 한 방이 강력하고, 어떤 무기는 짧고 빠르게 연타로 공격하는 게 가능하다. 무기들은 대체로 약점이 한 가지씩 있다. 크고 강력하고 매우 길지만 느리거나, 매우 길고 빠르지만 범위가 좁거나, 매우 짧고 빠르지만 세지 않는 식이다. 각 무기들은 특징에 따라 선제공격에 유리하거나, 막고 반격에 유리하거나, 카운터 공격에 유리하는 등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심지어는 '맨손'이라는 무기도 특수 기술이나 카운터 공격이 매우 뛰어났다.



▲ 먼 거리에서 선제공격에 좋은 로켓 무기 '암즈'



▲ 검의 짧은 사거리 밖에서 공격하는 '프로펠러 엣지'

사실 '무기만 특이했지, 전투 시스템 같은 부분은 그냥 평이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렛잇다이 인페르노'는 한 발 더 나아가 양 손에 각각의 무기를 들었다. 마치 가위바위보를 양손으로 하는 것처럼. 거기에 무기마다 특수 기술이 다르고, 양손을 쓰는 가드 브레이크 같은 특수 기술은 무기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이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무기를 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가진 무기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상대가 든 무기와의 상성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거기에 무기의 조합이나 특수기술 등을 다 파악한 뒤에 비로소 상대와의 진정한 심리전이 시작된다. 이 과정이 '렛잇다이 인페르노'가 선사하는 전투의 묘미이자, B급 외관 속에 감춰진 하드코어 액션의 진수다.

이 전투를 완성해 주는 또 하나의 장치는 정교한 히트박스이다. 전투 중 시각적으로 닿았다고 느껴지면 어김없이 타격음이 울리고, 빗나갔다고 생각되면 정확히 허공을 가른다. 대작 게임들 중에도 히트박스 판정에 물음표가 생기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렛잇다이 인페르노'에서는 다양한 무기를 쓰면서도 그런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렛잇다이 시리즈가 10년 동안 쌓아둔 노하우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이 디테일한 마감새가 락온 없는 하드코어 액션과 다양한 무기를 통한 심리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 렛잇다이 인페르노에 등장하는 8가지 무기. 이외에 더 많고 기괴한 무기들이 숨겨져 있다.



아쉬운 레벨 디자인, 티가 나버린 맺음새B급 감성만으로 덮을 수 없는 단점




'렛잇다이 인페르노'는 가지고 있는 장점으로 게임을 하게 만들지만, 게임을 하던 중에도 몰입이 깨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먼저, 이 게임 '튜토리얼'만으로는 미션의 생환까지 완벽하게 알기가 어렵다. 특히 '웅크리기' 기능에 있는 SP 레이더가 생존에 핵심 기술인데, 이게 '이스케이프 포드' 위치까지 알려준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초반 몇 판 동안에는 계속 생환을 하지 못해 헤매야 했다.

직관적이지 않는 부분도 여러가지 있다. 플레이어가 먹을 수 있는 '얌얌이'들 중에서 크랩버거 같은 경우는 잡아서 먹는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다른 나비라든지, 두더지 같은 것들은 먹을 수 있는 아이템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이런 세세한 것들은 게임 내 '도움말(Help)'에 설명이 매우 잘 되어 있다. 전투 조작부터 상태 이상, 시스템의 미세한 규칙까지 거의 백과사전 수준이다. 문제는 그걸 읽고 게임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다. 정보는 있지만 전달되지 않아 생기는 답답함이 초반 이탈을 부르는 가장 큰 요인이 될 듯하다.

캐릭터의 움직임, 특히 '점프' 기능의 효용성도 아쉽다. 게임을 하면서 점프를 할 일이 없다. 점프 자체가 낮을 뿐더러, 낮은 장애물을 넘을 수도 없고, 점프를 활용한 공격도 불가능하다. 그저 낮은 턱을 넘거나 지형을 이동하는 용도로만 제한된 점프는 '점프에 여러 기능을 추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도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3단계 정도 랭크에 다다르면, 등장하는 몬스터의 체급이 지나치게 높아진다. 마치 '게임의 진행이 너무 빠르지 않도록, 일부러 스펙을 쌓는 허들을 만들어 둔 건가?'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부분들이 정식 출시 이후에는 어떻게 변할지가 궁금하다.




'렛잇다이 인페르노'는 분명 완벽한 A급 게임은 아니다. 불친절한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가혹하게 느껴진다. 요즘 게임 트렌드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서, "이게 우리 방식이야"라면서 자신들만의 맛으로 플레이어를 유도한다. 누군가에겐 이게 입맛에 맞지 않아 학을 뗄 것이고, 누군가는 그 독특한 맛에 매료되어 밤을 새울 것이다.

확실한 건, '렛잇다이 인페르노'는 자신만의 매력을 확실하게 정립했다는 거다. '생환'에 대한 집착과 그 과정에서 오는 쫄깃한 긴장감, 그리고 매력적인 전투 시스템이 이 게임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획일화된 AAA 게임 문법에 지쳤다면, 그리고 내 손으로 거리를 재고 적을 부수는 원초적인 손맛을 원한다면, 기꺼이 이 지옥행 열차에 탑승해 보길 권한다. 단, "죽어도 괜찮다"는 개발자의 말은 믿지 마라. 당신은 그 누구보다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발버둥 치다 보면 어느새 지옥의 밑바닥에서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렛잇다이 인페르노'가 선사하는 B급 감성이다.
  • 기괴하고 키치한 B급 세계관의 매력
  • 물고 물리는 전투의 묘미, 그리고 무기들
  • 잃는 것의 공포, 생환의 짜릿함이 공존한다
  • 중반 급격한 난이도 상승으로 오는 피로감
  • 마감이 아쉬운 일부 기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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