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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에서는 불가항력, 완전한 합의, 서면에 의한 계약 변경 조항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불가항력 조항

불가항력 조항(Force Majeure)이란 지진이나 전쟁처럼 외부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경우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을 담은 계약 조항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외국 사업자와 체결하는 국제 계약에서 불가항력 조항을 주로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국내 계약서에도 불가항력 조항을 삽입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영미법 체계에서는 계약의 책임을 매우 엄격하게 묻기 때문에, 약정된 채무가 이행되지 않았다면 채무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지를 불문하고 채무불이행 책임을 묻는 것이 원칙이며, 채무자의 면책이 아주 예외적인 범위에서만 인정됩니다.
따라서, 불가항력 조항을 삽입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 책임을 면하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들은 아래와 같이 불가항력 사유를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열거하여 외부 사정에 기인한 채무불이행 책임에서 벗어날 현실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본 계약의 각 당사자는 합리적인 통제 범위를 벗어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채무불이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원인에는 천재지변, 전쟁, 테러, 폭동, 통상 금지, 국가기관의 행위, 화재, 홍수, 사고, 전염병, 파업 등이 포함되나 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면, 영향을 받은 당사자는 즉시 상대방에게 통지해야 하며, 해당 사태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반면에 대한민국 민법에서는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 없이 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민법 제390조),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채무자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다만 금전채무 불이행의 경우에는 민법 제397조 제2항에 따라 채무자가 과실이 없다는 항변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민법이 적용되는 국내 계약의 경우 채무자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다면 어차피 채무불이행 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하므로, 불가항력 조항은 국제 계약에만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법원에서 채무불이행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불가항력 사유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00년 발생 빈도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책정된 계획홍수위를 훨씬 초과하여 600년 또는 1,000년 빈도에 해당하는 강우량에 의한 하천의 범람은 극히 이례적인 자연력에 의한 것으로 보아 불가항력을 인정하고(대법원 2001다48057 판결), 북한의 갑작스러운 무연탄 수출 금지 조치는 당사자의 지배 영역 밖에서 발생한 예측 불가능하고 회피 불가능한 사유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의정부지방법원 2010가합4018 판결).
그러나, IMF 사태로 인한 자재 수급의 차질 등은 불가항력적인 사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대법원 2001다1386 판결), 50년 빈도 정도의 집중호우는 통상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 사업자가 대비할 수 있었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아 불가항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대법원 99다53247 판결).
이처럼 법원이 불가항력을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법원에서 불가항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가 불명확한 외부 사정을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삽입함으로써 채무불이행 책임을 면제받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예를 들어, 코로나 및 이에 준하는 전염병을 불가항력 사유에 기재).
대부분의 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은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고, 상대방 당사자는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합니다. 금전 채무를 부담하는 당사자의 경우에는 어차피 민법에 따라 과실이 없다는 항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항력 조항은 재화나 용역을 제공해야 하는 쪽에서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에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만약 본인이 계약에서 재화나 용역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는 당사자라면, 불가항력 조항을 삽입하고 현재 상태에서 예측 가능한 모든 불가항력 상황을 명기하는 방안을 전략적으로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완전 합의 조항

완전 합의(Entire Agreement) 조항은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 당사자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의 전부이며, 이전에 구두 또는 서면으로 이루어진 모든 합의는 무효가 된다는 것을 명시하는 조항입니다.
대부분의 중요한 계약은 한 번에 체결되는 것이 아니라 긴 준비 단계를 거칩니다. 여러 차례 메일이 오가고, 미팅이 이루어지고, 계약서를 수정하는 작업이 반복됩니다.
계약 자유의 원칙상 계약이 반드시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계약이 정식으로 체결되기 전에 일부 사항에 대해 메일로 청약과 승낙이 이루어지거나, 회의에서 구두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이것 또한 당연히 계약의 체결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일이나 구두로 합의된 사항이 계약서의 내용과 배치되거나, 사전에 메일이나 구두로 합의된 사항이 실수로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방이 계약서에 기재된 것과 다른 내용의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주장한다든지, 계약서에 기재되지 않은 사항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예방하려면 계약에 관여한 사람들이 종래 주고받은 모든 메일과 미팅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확인하면서 상대방이 이를 별개의 계약으로 주장하지는 않을지 하나하나 검토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계약서에 아래와 같이 완전 합의 조항을 삽입하여 최종 계약서가 유일하고 완전한 합의라는 사실을 명시한다면, 협상 과정에서 오갔던 메일이나 구두 합의 등이 별도의 계약으로 주장될 여지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계약 이전에 양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서면 혹은 구두 계약은 모두 본 계약으로 대체된다.”
3. 서면에 의한 계약 변경 조항

위에서 설명한 완전 합의 조항은 계약 체결 이전에 합의된 사항을 무효화하고, 오로지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만 효력을 갖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메일이나 구두로 계약의 내용이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약 내용의 변경은 당사자의 서면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라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형식에 제한을 두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조항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다면, 상대방이 아무리 계약 내용이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면 합의서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계약 내용이 변경되었다는 상대방의 주장을 손쉽게 배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 내용 정리
- 민법에 따를 경우, 채무자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는 경우 채무불이행 책임을 부담하지 않지만, 법원에서는 불가항력 사유를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불가항력 조항을 삽입할 필요가 있다.
- 완전 합의 조항을 삽입하면 양 당사자가 합의하는 사항이 계약서에 포함된 내용으로 한정되므로, 계약의 내용이 명료해지고, 검토하기도 쉬워진다.
- 계약 내용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서면 합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을 삽입하면, 계약 내용의 변경 여부와 관련하여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