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게임명: 아크 레이더스 (ARC RAIDERS)
- 개발사 : 엠바크 스튜디오
- 배급사 : 넥슨
- 플랫폼 : PC(Steam/Epic Games), PS5, Xbox
- 키워드 : #카세트 퓨처리즘 #생존 #탈출
- 장르 : 익스트랙션 슈터
출시 후 2주만에 4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넥슨 역대 최대 글로벌 런칭 기록을 달성한 '아크 레이더스'. 그 성과에 전 세계 게이머 커뮤니티는 그간 '진입 장벽이 높다'는 꼬리표가 붙어있었던 익스트랙션 장르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스팀 동시 접속자 48만 명, 전 플랫폼 합산 70만 명이라는 수치는 '아크 레이더스'가 단순한 흥행을 넘어, 2020년대 슈팅 게임 트렌드의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 1. 10년 주기로 달라지는 슈팅 트렌드, '익스트랙션'으로 수렴하다
그간 슈팅 장르의 흐름을 살펴보면, 약 10년 주기로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어 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캐치할 수 있다. 2000년대는 소위 정통 FPS의 시대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택티컬 슈터의 문법을 정리했고, 콜 오브 듀티와 배틀필드가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밀리터리 슈터를 대중화했다. 2007년 출시된 콜 오브 듀티의 첫 번째 '모던 워페어'는 킬스트릭, 무기 별 레벨링, 커스텀 로드아웃 등 현대 온라인 FPS의 표준을 확립하며 시대를 새롭게 정의했다.
2010년대는 히어로 슈터, 나아가 배틀로얄의 시대라고 정리할 수 있다. 2016년 출시된 '오버워치'는 고유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슈터를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고, 이듬해 출시된 '배틀그라운드(PUBG)'나 '포트나이트'가 동시에 폭발적인 흥행을 하며 배틀로얄 장르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같은 시기 등장한 리부트 '둠'이나 타이탄폴2 같은 게임들은 '하이퍼 FPS'라는 이름으로 과거 유행한 빠른 페이스 슈터의 부활을 꿈꿨다. (그 핵심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Apex 레전드'가 탄생하기도 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 슈팅 게임 시장은 다양한 서브 장르가 난립하는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발로란트'가 히어로 슈터와 택티컬 슈터를 융합하며 자신만의 입지를 다져나갔던 한 편, 그 기세가 줄지 않을 것만 같던 배틀로얄 장르는 성숙기에 접어들며 성장 동력을 잃어갔다. 너무나도 많은 게임이 시장에 등장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게이머들은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뉴주(Newzoo)가 발표한 2024년 보고서가 이를 증명한다. 2021년 최고치를 기록했던 PvP 슈터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2024년 중순까지 약 40% 감소했다. '하늘에서 떨어져, 좁아지는 자기장 안에서 혼자 살아남을 때까지 싸운다'는 규칙은 어느덧 10년 가까이 반복됐다. 다시금 슈팅 장르를 지배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익스트랙션 슈터(탈출 슈터)'는 바로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 '들어가서 파밍하고, 살아서 나오기'라는 직관적인 루프를 중심으로 설계된 장르는 그간 슈팅 시장을 지배해 온 장르들과는 확연히 다른 긴장감을, 또 경험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전장에 진입해 각종 아이템을 수집하고, 정해진 탈출 지점을 통해 빠져나가야만 획득한 아이템을 보존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사망할 경우, 모든 장비를 영구적으로 잃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모두를 상대로 살아남는' 배틀로얄과 차이가 단순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게임플레이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반드시 모두를 제거할 필요가 없었고, 얼마나 욕심을 부릴지도 플레이어가 결정하면 됐다. 강력한 AI적은 위협적이며, 따라서 다른 플레이어는 '적'이자 '잠재적 협력자'가 되기도 한다. 매 판 리셋되는 배틀로얄과 달리, 실제로 '무언가'를 가지고 나온다는 쾌감이 배가된다.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이 장르의 원조이자 표준은 단연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Escape From Tarkov)'다. 2016년 클로즈 알파를 시작으로, 8년 간의 베타테스트 끝에 최근 출시된 타르코프는 극도로 사실적인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으로 '타르코프-라이크'라는 용어 자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타르코프는 익스트랙션 슈터를 정의했지만, 동시에 장르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벽 그 자체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역사상 가장 비우호적인 게임"이라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이 게임을 하려면 총기별 탄종과 탄도학을 가르치는 야간 대학을 다녀야 할 판"이라고도 말했다. 미니맵도, 퀘스트 마커도, 심지어 튜토리얼도 없는 이 게임을 '즐기기'위해서는 수백 가지 부품과 탄약, 복잡한 지도를 달달 외워야 했다. 오랜 시간 끝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며 게임에 들어간 순간,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알 수 없는 총알이 당신의 머리를 뚫고 지나간다.

🕹 2. 실패 속에 떠오른, 차세대 패러다임이 되기 위한 도전 과제
많은 AAA 개발사는 어떻게 이토록 잔인하리만치 어려운 게임이, 슈팅 장르의 다음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을까. 혹자는 2019년 말 발생한 타르코프의 '트위치 현상'을 그 계기로 꼽고는 한다. 평소 1만 명대 내외의 시청자 수를 보이던 타르코프가 트위치 드랍스 이벤트 기간 도중 약 20~27만 명의 동시 시청자를 기록한 것. 2020년 1월에는 56만 명의 시청자로 피크를 찍으며 당시 가장 흥행하던 '포트나이트'를 찍어누르는 모습을 보였다.
개발사인 배틀스테이트 게임즈의 재무 성과 또한 AAA 퍼블리셔들의 눈을 돌리기에 적절했다. 2021년 회계년도에 기록된 1,200억 원의 매출은 소규모 스튜디오로선 경이로운 성과였다. 새로운 게임 메커니즘, 보는 재미, 재무적 성과 모두 어떤 식으로든 증명한 '타르코프'에 대해, 게임 시장은 어느 순간 이런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익스트랙션은 돈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대형 퍼블리셔들은 즉각 반응했다. EA는 '배틀필드 2042'에 '해저드 존(Hazard Zone)'을,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에 'DMZ' 모드를 추가했다. 그러나, 이들에 의해 진행된 '익스트랙션' 실험은 기대했던 황금빛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해저드 존'은 출시 불과 7일만에 DICE가 내부 통계 추적을 중단했다. 너무 플레이어가 적었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EA는 공식적으로 지원 종료를 선언했다. 콜 오브 듀티: DMZ의 운명도 비슷했다. 초기에는 호평을 받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2023년 12월 지원 종료가 발표됐다.

대형 퍼블리셔들이 비틀거리는 사이, 익스트랙션 장르의 수혜를 받은 것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개발사들이었다. '헌트: 쇼다운', '그레이 존 워페어', '델타포스'에 이르기까지. AAA타이틀이 아닌 중소 규모 개발사들에 의해 '익스트랙션' 장르는 그 폭이 점차 넓어졌다.
여러 큰 실패와 작고 소중한 성공들이 공존하던 2024년 중반, 이 즈음부터 익스트랙션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중화'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타르코프는 장르를 증명했지만, 하드코어 유저에 갇혀 있다. AAA 게임들의 '실험'은 기존 고객층에게조차 외면당했다. 이 장르가 '배틀로얄'처럼 슈팅 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하드코어한 본질을 유지하되 진입장벽을 낮추는' 모순을 해결해야 했다.
2025년 하반기, 익스트랙션 장르는 동시다발적 흥행으로 본격적인 '붐'을 맞이했다. 10월 16일 출시된 '이스케이프 프롬 덕코프'는 탑다운 시점의 싱글플레이 PvE 익스트랙션으로, 스트레스를 덜어낸 접근 방식이 주효하며 3주만에 300만 장을 팔았다. 텐센트 산하 모어펀 스튜디오의 '아레나 브레이크아웃: 인피니트'는 무료 플레이 모델, 편의성을 개선한 대안을 제시하며 국내 이용자들 사이에 '대륙의 타르코프'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의 공통점도 다르지 않다. 한 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긴장은 그대로지만, 좀 더 접근이 쉽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아크 레이더스'가 있다.

🐓 3. 진입 장벽 파괴자, '아크 레이더스'의 설계 철학
아크 레이더스는 '익스트랙션' 장르를 차세대 슈팅 장르의 패러다임으로 발전시키려는 업계의 움직임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다. 당초 PvE 게임으로 발표했던 원작의 기획을 갈아엎는 결정을 내렸던 배경에는, '익스트랙션'이 가진 여러 매력 요소 또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많은 작품과 같은 결말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무언가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엠바크 스튜디오는 체계적인 진입 장벽 완화를 통해, 익스트랙션을 게임의 핵심으로 만들되, 대중이 접근 가능한 설계로 재구성했다.
가장 직접적인 진입 장벽 완화 장치는 무료 로드아웃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타르코프의 스캐브(Scav) 시스템이 20분의 쿨타임을 가졌다면, 아크 레이더스의 무료 로드아웃은 그런 부담조차 없다. 초심자는 상실의 공포 없이 게임을 반복 학습 할 수 있고, 일부 숙련자는 '맨몸 생존 챌린지'에서 오는 긴장감을 즐긴다.

익스트랙션이 플레이어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는 지점은 '죽어서 모든 것을 잃을 경우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는, 일종의 허무함과도 관련되어 있다. 아크 레이더스는 이 지점 또한 완화하기 위해 귀엽고 듬직한 친구 '꼬꼬'를 투입했다. 레이드 성공 여부와 관계 없이 기본 재료를 수급할 수 있기 때문에, 연속으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기본 장비 하나둘 쯤은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언제가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타르코프를 비롯한 대다수 익스트랙션 게임은 창고가 가득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격차를 줄이기(또는 없애기) 위해 주기별로 모든 플레이어의 진행 상황을 초기화하는 시즌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하드코어 이용자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지만, 캐주얼 게이머에게는 게임을 접을 아주 좋은 이유가 되어준다. '아크 레이더스'는 이 또한 플레이어가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자발적 초기화 시스템을 고안했다. 독점 치장품, 보너스 스킬 포인트와 같은 보상을 위해 진행도를 초기화할 수도 있고, 지금 가진 것들이 더 소중하다면 초기화 없이 게임을 계속 즐길 수도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아크 레이더스'는 당초 PvE 전용 협동 게임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내부 테스트 결과 "지속 가능한 게임플레이 루프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드러났다. 그리고 PvPvE로 대변되는, '익스트랙션' 장르의 문법이야말로 부족한 단점을 보완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크 레이더스의 E(Environment/환경)는 그저 단순한 게임의 배경이나, PvP에 그저 적대 NPC를 몇 개 흩뿌려두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게임의 핵심 축이다. 적으로 등장하는 아크(ARC)들은 지구를 초토화시킨 장본인이라는 설정만큼이나 강력하고, 끈질기다.
아크 로봇들은 머신러닝 기반의 절차적 애니메이션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물리 시뮬레이터에서 수년 간 훈련된 AI들은 다리를 맞으면 균형을 잡으려 비틀거리고, 동일한 위치에서 반복적으로 공격할 경우 플레이어의 패턴을 학습해 대응한다. 특정 조건에서 발동하는 스크립트가 아니기에, 매 플레이마다 아크의 전술적 행동/대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지구를 침략한 아크를 모두 물리치고, 평화로운 인류의 터전을 되찾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시시각각 자신을 위협하는 아크, 그리고 다를 레이더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인류 최후의 보루인 스페란자에 무사히 돌아가 간신히 하루를 사는 레이더의 이야기다.

그 때문일지, 아크 레이더스의 PvP는 여타 '익스트랙션' 게임처럼 '보이면 쏘는' 환경은 아니다(스쿼드는 그런 환경이 맞는 것 같다). 근접 음성으로 다른 플레이어와 소통할 수 있고, 이제는 밈이 되어버린 돈슛(Don't Shoot) 이모트로 평화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거대한 아크 앞에서 일시적으로 협력을 하거나, 또는 서로를 무시하고 각자 갈 길을 가기도 한다.
매 판 다른 움직임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AI, 본심을 알 수 없는 레이더들이 만들어내는 구조는 지속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낸다. 위기에 처한 레이더를 돕는 레이더가 있는 한 편, 뒤통수를 치는 비열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런 비열한 이들을 향해 불벼락을 내리는 봄바디어도 있다.
이런 드라마틱한 순간들은 유튜브와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으로 공유되고, 바이럴 콘텐츠로 재생산된다. 북미 서버에서는 특정 스트리머와 같은 복장을 하고 '팩션'을 만들기도 하고, 탈출 엘리베이터 앞에서 컨시어지 역할을 하며 레이더를 지켜주는 등 게임의 규칙과 관계 없는 '롤 플레잉'을 즐기기도 한다. 엠바크 스튜디오는 이를 공식적으로 장려하며, 'I am Leaper'와 같은 하이라이트 비디오를 제작해 공개하기도 했다.
🙋 4. 대중화의 공식은 '포용' 이었다
전 플랫폼 최고 동시 접속자 70만 명, 출시 2주차 판매량 400만 장 이상, 메타크리틱 점수 88점(Xbox 기준). 아크 레이더스의 성과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장르 전체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출시 1개월이 지난 후에도 40만 명대 동접자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플레이어 베이스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출시 직후 최고치 대비 87% 수준의 유지율은 라이브 서비스 게임으로서 매우 인상적인 수치다. 스트리밍 측면에서도 출시 첫 주 총 시청 시간 3,560만 시간(Stream Charts 기준)으로 2025 출시 게임 중 1위를 차지했다. 메타크리틱 점수에서 살펴볼 수 있듯 글로벌 매체의 평가도 압도적이다. 2016년 '오버워치'가 기록한 91점 이후, 거의 10년 만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멀티플레이 전용 슈터라는 수식어까지 거머쥐게 됐다.
아크 레이더스의 성공이 단순히 '잘 팔린 게임'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앞서 언급한 '익스트랙션' 장르를 두고 펼쳐진 숱한 도전과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슈터 프랜차이즈, '콜 오브 듀티'조차 지원 종료를 결정했을 정도로 '익스트랙션의 대중화'는 모순적이고, 또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2025년 10월 이후, 덕코프와 아크 레이더스의 연이은 성공, 원조 타르코프의 정식 출시가 맞물리며 비로소 '전성기'에 진입했다.
아크 레이더스가 증명한 것은 명확하다. 익스트랙션 장르의 핵심 재미인 '리스크와 리워드'의 긴장감은 유지하는 한 편, 진입 장벽을 체계적으로 낮추면 대중화가 가능하다는 것. 무료 로드아웃으로 '잃을 것 없는 학습 기회'를 주고, 실패해도 '꼬꼬'가 재료를 가져오는 안전망을 구축하고, 자발적 초기화로 캐주얼과 하드코어 모두를 포용했다. 다양한 상호작용이 허용된 PvPvE 위에는, 때로는 살벌하며 때로는 웃음을 주는 머신러닝 AI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2000년대 정통 FPS, 2010년대 배틀로얄을 거쳐, 2020년대 슈팅 게임의 새로운 지평은 '익스트랙션' 장르로 열리고 있다. 그리고 그 문을 가장 넓게 연 것은, 하드코어의 벽을 '포용'으로 허문 아크 레이더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