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⑦] 게임, 정신 질환이 되기까지 얼마나 남았는가?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3개 |
올해 인벤은 격변하는 글로벌 시장의 흐름 속에서 게임사들이 준비하고 있는 신작과 함께 게이머들과 업계인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7가지 핵심 키워드를 선정했다. 2026년, 게임 산업은 기술적 진보를 넘어 ‘총체적 경험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해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 함께 짚어보자.

이게 참 어려운 문제다. 지구를 향해 고속으로 달려오는 소행성을 나만 관측한 느낌이라 해야 할까? 몇 번이고 이 주제를 꺼냈음에도, 사실 대중은 별 관심이 없다.

대중이야 그냥 넘어간다 해도, 게임 업계의 구성원들마저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크든 작든 게임 산업에는 굉장한 여파를 줄 주제가 초읽기를 시작했음에도 말이다. 요 몇 년 간 끊임없이 강조했음에도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좀 답답하다. 이미 대응을 시작했어야 할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말이다.

'게임 이용 장애(게이밍 디스오더: 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얘기다.




아주 간혹, 인터넷에 이와 관련한 스틸컷이나 기사 등이 떠돈다. 아마 많은 분들도 봤을 거다. "하루에 네 시간씩 2년을 하면 2천시간 넘는다. 이건 뭔가 개입을 해야 한다"라는 주장이나, 게임 중독 때문에 중대 범죄가 일어났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뉴스들, 작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나동현 씨가 패널로 참석했던 100분 토론의 장면들.

이런 이슈들조차 그냥 순간의 소비로 끝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라는 감상에서 끝난다는 뜻이다.

단언컨대,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분의 게이밍 생활부터, 게임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수도 있는 중대한 논의가 최근 몇 년 간 계속 이어졌다. 한 쪽은 꾸준히 이를 한국 질병 분류 기호(KCD)에 포함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한 쪽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큰 관심이 없는 이유는, 아마 마음으로 와 닿는 것이 없기 때문일 거다. 질병으로 분류되든 말든, 게임 출시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못 하게 되는 것도 아니며, 게임으로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라 생각할 테니까.



▲ 2019년 진행되었던 100분 토론. 어마어마한 명언들이 나왔다

그러니, 한번 가정을 해 보자. 실제로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 분류 기호에 포함되어 질병 코드를 부여 받았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 지에 대해 말이다.


IF) 게임이 악(惡)이 되는 평행 세계


삼십대 초반, 미혼, 벌이가 많지는 않지만 적당히 저축은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김 씨. 취미가 뭐냐 물어보면 몇 년 전까지는 '게임'이라 답했겠지만, 이제 조금 더 그럴싸한 것들을 말한다. 등산, 독서, 캠핑과 같은 것 들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은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밝힐 수 없는 취미가 되어 버렸다. 인식이 그렇다. 그렇다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도 아니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폐해가 공론화되더니, 건강증진부담금과 게임 소비세가 부과되면서 가격이 껑충 뛰어 버렸다. 국산 게임 뿐만 아니라 해외 게임들도 세금이 워낙 세게 붙다 보니 서비스 자체가 줄었고, 그 마저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길거리엔 '게임 중독 예방 센터'라는 이름의, 뭔지 모를 기관이 다수 만들어졌다. 주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간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들의 게임 플레이를 금지 사항으로 지정했음에도 여전히 어떻게든 하는 녀석들이 있구나 싶다. 회사에서는 '게임 중독 치료 커리큘럼'이 생겼다. 사이버 보안이나 직장 내 성범죄 예방처럼 의무는 아니나, 원할 경우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게임 이용 장애'라는 이름이 국내에서도 질병으로 분류된다는 뉴스 한 줄.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변화는 길거리 정신의학과 병원의 진료 과목이 하나 정도 더 추가되는 정도였지만, 몇 년쯤 온갖 정책 논의가 오가고 나자 이런 세상이 되어 버렸다.

PC방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전보다 훨씬 강화된 영업 허가 심사와 규제안 때문에 정말 몇 곳만 남았으며, 그마저도 굉장히 비싸졌다. 아케이드 오락실은 PC방과 통합되어 '게임 공간'에 합쳐졌고, 그 게임 공간의 입구에는 중독치료기관 안내 포스터와 예방 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게임 개발사들은 노선을 바꿨다. '게임을 만든다'라는 것 만으로도 별도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서비스하는 건 그보다 더한 영역이기에 아예 글로벌을 겨냥하고, 국내 서비스는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디 게임'은 집에서 몰래 만드는 밀주와 비슷한 취급까지 내려가 사실상 사라졌으며, 게임쇼는 그냥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게임에 중독된 한 범죄자가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고 강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 지스타도 이제 옛 일이 되어버렸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들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 말도 안되는 가정들이 현실이 될 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시작점 앞에 우리가 놓여 있다. 모든 말도 안 되는 일은 결국 어떠한 이벤트를 시작으로 나비 효과처럼 번져나간다. 최영이 이성계의 사불가론에 반박했을 때, 로마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지휘권 반납을 요구했을 때, 나라가 뒤집어질 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모든 '큰 일'에는 다 시작이 있으며,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순간에 서 있는 셈이다.


지금, 게임 이용 장애 등재는 어디에 와 있는가?


'게임 이용 장애'를 둘러싼 사가(Saga)는 2013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 미국 정신의학회가 발표한 'DSM-5'는 '인터넷 게임 이용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를 '섹션3'로 분류했다. 섹션3의 경우 정식 질병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단, 보험, 치료의 기준이 될 수는 없으나 연구가 필요한 항목을 일컫는다. 당시 정신의학회는 인터넷 게임 이용 장애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섹션3에 배치했다.



▲ DSM-5 내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문단

그리고, WHO(세계보건기구)의 급발진이 벌어졌다. 2019년 발표된 'ICD-11' 개정안에서, WHO는 '게임 이용 장애'를 덜컥 정식 질병으로 등재하고 '6C51'이라는 코드까지 부여했다. 이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대중은 '게임 이용 장애'라는 개념을 인식했다. 그리고, 이에 반응하듯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쏟아지며 국내에서 이를 KCD에 적용할 것인지를 놓고 기나긴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이 논의의 중심에 선 스피커들은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가 있다.

먼저 정신의학계는 이미 임상 현장에서 치료가 필요한 사례를 많이 목격했음을 주장한다. 이들은 이미 게임 이용 장애로 문제가 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으며, 이를 오인 없이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분류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모호한 상태로 두는 것이 증상에 대한 오해나 낙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몇몇 정신의학자들이 감정적으로 과잉된 주장을 펼쳐 '망언'을 내뱉는다던가, 다소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반대로 심리학계는 이들이 본 '임상 사례', 즉 게임 이용 장애로 빚어졌다고 판단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정말 게임 때문인가부터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게임에 과몰입하고, 게임을 탐닉하게 되는 원인이 게임 그 자체에 있다기보단, 개인과 환경 요인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며, 원인을 게임으로 단정짓기엔 근거와 연구가 부족하다 주장한다. 게임이 원인이 아닌, 다른 문제의 결과로 일어나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

사실 이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주장과 반박이 일어나고 있다. 정신의학계 모두가 저런 주장을 내뱉는 것도 아니며, 심리학자 중에서도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이 있다. 그냥 현 시점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룹을 큰 틀로만 정리하면 이 정도로 요약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도 이 주장에 힘을 주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이 논의는 잠시 멈춰 있다. 최근 몇 년 간 수많은 공청회와 정책 회의, 토론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고, 어느 한 쪽도 명확하게 상대방을 누를 만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 가을에 현 대통령이 간담회 자리에서 '게임은 중독 물질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언급하면서 일단은 멈춰졌다.

하지만, 이는 종식이 아닌 유보일 뿐이다. 정권의 권위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으며, 시한이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이 더 급한 시기다. 등재를 반대하는 이들은 지금을 골든 타임으로 여기고 있다. 언제가 되었든 다시 시작될 논의에서 주장을 펼치려면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고, 지금이 곧 이 근거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할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때가 되었을 때 입을 열 수 있도록,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참 여러 번 기사로 다뤘다. DSM-5부터 시작해 ICD-11, 게임 이용 장애 등재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에 대한 기사, 그리고 공청회와 간담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뉴스들. 인벤에서도 여러 번 다뤘지만, 사실 찾아보면 더 많이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어떤 분기점 앞에 서 있는지 모르는 이가 너무나 많다. 게임 좀 하는 내 친구들도,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해 아냐 물어보면 처음엔 "게임 중독?"이라고 고개를 갸웃한 후, "몇 년 전에 들어 봤는데 그게 아직도 뭐가 있냐?"라는 역질문으로 마무리한다.



▲ 세월이 지나며 살짝 잊혀진 감이 있다

이해는 한다. 게임 뉴스라기엔 주제부터가 너무 지루하게만 보이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등재를 결정하는 논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게이머도, 게임사도 없는 곳에서 정신의학계, 심리학, 법학, 행정학, 그리고 보건학 등이 중심이 되어서 말이다.

게이머가, 혹은 게임 업계가 주축이 되어 집단을 결성하고 의견을 내는 상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냥,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건에서, 사실 게임사나 게이머가 할 수 있는 무언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해 당사자인 게임사들이 직접 나서기도 애매하고, 학계의 석학들이 논증을 거듭하는 자리에 일개 개인 게이머가 목소리를 내기도 조금 이상해 보일 거다. 협회 정도면 충분히 목소리를 내거나 할 수 있고, 실제로 WHO에 반대 성명과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큰 관심이 없으니까.

어쩌면 연구에 참여할 수는 있겠다. 정신의학계든 심리학계든, 대부분의 연구는 게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을 통해 진행되고, 검증된다. 하루에 몇 시간씩 얼마나 게임을 하는지, 삶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게임을 플레이하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 등 양측의 주장 근거가 되는 모든 것들이 결국 게이머의 답을 통해 만들어진다.



▲ 콘진원의 발표 자료, 이런 연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정부 부처에서 게임과 관련해 어떤 정책을 발표하거나, 어떤 행사를 한다는 뉴스가 올라올 때마다 늘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

"저들이 게임에 대해 뭘 안다고 저러는가?"

맞는 말이지만,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그들의 논의가 곧 현실이 된다. 최근 폐지되었지만 오랜 시간 게이머들을 억눌렀던 '셧다운제'도, 한 때 날림으로 지정되어 논란이 되었던 등급 분류도, 그 밖에 게임을 둘러싼 수많은 정책들과 담론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일단 알고는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생활과 산업의 미래가 바뀔 수 있는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와 있는지 말이다.

나중에,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상황 파악조차 못 하고 논의가 마무리되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아야 하는 일이 없도록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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