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사막 '아침의 나라', 박수받을 만하다

기획기사 | 이두현 기자 | 댓글: 246개 |



펄어비스 '검은사막'에 아침의 나라 콘텐츠가 도입된단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과연 어울릴까?'였다. 당연하게도 조선 시대에 살지 않았으니 떠오르는 이미지는 드라마 '허준', '불멸의 이순신', '정도전' 속 장면들 정도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게임 경험에 있어서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나 '갓 오브 워' 시리즈처럼 서양 역사나 신화가 더 익숙했다.

펄어비스가 '검은사막'에 아침의 나라를 열었다. 앞서 펄어비스가 소개했듯이 아침의 나라는 우리 역사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그동안 게임 속 고전적 요소로는 중세 유럽이 많이 사용되곤 했다. 이전까지 '검은사막'도 캐릭터 외형이나 갑옷, 게임 속 배경이나 건물 등은 중세 유럽에 가까웠다. 종종 동양적인 콘텐츠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졌다.

이번에 펄어비스는 조선을 통으로 옮겨왔다. 만일 기존 세계관과 어울리지 않으면, 단순히 시도했다는 점에 의의를 둘 뿐이다. 그리고 다른 게임사가 우리 문화를 접목하려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남을 것이다. 예로 "펄어비스가 해봤는데 안 어울리더라"라거나 "유치할 거 같았는데, 정말 유치하더라"라고.

걱정은 기우였다. 펄어비스는 단순히 조선을 구현한 게 아닌, '조선의 미(美)'를 검은사막에 잘 녹여내는 식으로 접근했다. 단순히 조선을 옮겨놓는 정도였다면 검은사막과 조선은 서로 겉돌았을 것이다. 펄어비스가 조선의 미는 무엇이었을까 고민한 흔적이 돋보였다. 조선의 미가 무엇일지는 추상적이다. 펄어비스가 아침의 나라에 조선의 미를 고민하고 내놓은 답을 담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아침의 나라'

조선을 콘셉트로 하는 게임은 흔치 않다. 김재희 검은사막 총괄 PD도 아침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은 낯선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아침의 나라는 새로운 판타지 무대가 된다. 서양식 판타지와는 다른 맛이다.

펄어비스는 아침의 나라 배경 구현을 위해 거금도, 담양 대나무 숲, 해동 용궁사, 군포 철쭉동산 등 실제 한국의 지형을 모티브로 삼았다. 아침의 나라 퀘스트는 한국의 신화나 민담, 설화 등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도깨비나 구미호, 손각시, 흥부놀부, 별주부전, 바보 온달 등 한국 판타지 속 존재들과 전래동화 이야기가 아침의 나라에 등장한다.



▲ 처음 마주했을 때 집 주변 장안문이 떠오른 '범바위 관문'



▲ 경상도 해안가 어디에 있을 것만 같은 '범바위골'






▲ 철쭉과 단풍나무숲, 대나무숲은 우리나라 유명 관광지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 시대에 살지 않았어도 아침의 나라 속 주요 건축물, 길, 배경 등은 비교적 익숙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서울 경복궁이나 수원 화성행궁은 지금도 일부 남아있거나 복원되어 직접 가볼 수 있다. 유적지로만 인식됐던 공간이 실제 게임 플레이 무대로 바뀌어 반갑게 다가온다.

우리의 동네, 또는 관광지에서 접하던 공간도 아침의 나라에 구현됐다. 게임 속 '십리대숲'은 담양 대나무숲의 울창하고 청아한 색감으로 채워져 있다. 이처럼 단풍나무숲이나 매화나무숲, 철쭉동산 등도 아침의 나라에 구현됐다. 게임적 허용으로 시기상 해당 공간이 가장 멋스러울 때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로 대나무숲은 여름, 단풍나무숲은 가을이 느껴진다.



▲ 행사를 벌이는 저잣거리 광대들, 색감이 익숙하다



▲ 뒷짐 지고 호통을 치고, 엎드려 애원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 어쩐지 바람을 담아 쌓았을 거 같은 돌탑



▲ 복장과 행동으로 신분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 자이언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침의 나라 아이들

자이언트는 아침의 나라 아이들에게 신기한 존재다. 펄어비스는 자이언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아이 NPC를 통해 아침의 나라 세계관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아침의 나라 속 양반은 폭포를 구경하거나 공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인이나 상민 등은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팔거나 주막에서 밥을 먹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들의 신분 차이는 복장과 행동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세심하게 재현된 아침의 나라는 유저가 조선이란 시대를 체험하게끔 한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로 조선을 접할 때보다 더 직접적인 경험이다. 생각해보면 조선을 '둘러본다'라는 경험은 일찍이 하지 못했다. 유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상반된 두 개의 감정을 아침의 나라에서 경험할 수 있다.



▲ 듬직하게 생긴 황구 진돗개라던가



▲ 굳이 구현한 뒷간까지 디테일이 돋보였다

아침의 나라가 배경이나 건물, 인물만 조선답게 구현했다면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펄어비스는 우리 구전이나 속담을 게임 속 퀘스트로 재구성했다. 우리 도덕산 설화는 아침의 나라 손각시전이 되었고, 제주 진국태는 구미호전으로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아침의 나라에서 우리 설화를 바탕으로 한 죽엽군전, 창귀전, 무당령전, 금돼지왕전, 산군전 등을 접할 수 있다.

퀘스트에 있어 펄어비스는 의뢰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했다. 유저는 자신이 선택한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경험하게 된다.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펄어비스는 유저에게 동화책이나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들이 모여 아침의 나라 서사가 된다.

아울러 펄어비스가 반복적인 몰이사냥을 버리고 보스와의 전투에 집중한 것도 눈에 띈다. 아침의 나라에선 사냥터가 없다. 전투는 '검은 사당'에서 이뤄진다. 여러 검은 사당에서 각각 우두머리를 만날 수 있다. 유저는 우두머리를 별도의 의뢰를 해결한 뒤에 처음 만난다. 이후 검은 사당에서 난도가 올라간 우두머리를 공략해야 한다.


디테일로 완성된 '아침의 나라'




김재희 PD는 아침의 나라를 두고 "한국의 모험가분들께도 새롭다면, 해외 모험가분들께는 그야말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판타지에 어울리는 새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기대했다. 말을 짚어보면 전 세계 유저가 아침의 나라를 하게 된다. 그리고 아침의 나라에 부족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곧 펄어비스가 우리 문화를 부족하게 표현한 게 된다. 이 부담을 안고 펄어비스는 아침의 나라를 만들었다.

결국에는 디테일이다. 펄어비스는 아침의 나라 개발을 위해 15개 이상의 명소를 직접 방문해 촬영하고 분석했다. 협업한 지자체만 해도 경주시, 고성군, 단양군, 부여군, 산청군, 서산시, 순천시, 안산시, 익산시, 진주시, 합천군 총 11곳에 달한다. 현장 조사 데이터를 치열하게 고민해 게임에 넣은 흔적이 엿보였다. 그렇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산성은 아침의 나라에 남포관문, 전라남도 구례군 사성암은 벽계서원이 됐다.

잘 구현했다. 게임으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험을 한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조선을 새로운 '아침의 나라'로 구현한 펄어비스는 박수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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