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칼은 막 도착하여 프레드릭의 저택을 찾았다.
“여어, 칼. 오랜만이다. 누나가 쓰러졌다며?”
“그렇게 됐어. 아버지가 운송을 부탁했다고 하던데. 그게 뭐야?”
“오자마자 일 타령이냐?”
프레드릭이 장난스레 말했지만 칼의 표정은 심각했다. 런던의 누나 때문이리라.
“나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야. 내 생각엔 우리 누나 얼마 못갈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빨리 가봐야 해. 오래 머물 수 없어.”
“알았다. 이게 그 목록이다. 너희 아버지가 날 인도까지 끌고 가셔서 부탁했던 거니까. 잘 모셔가라고.”
프레드릭은 장부 하나를 내밀었다. 칼은 그 장부를 받아 펼쳤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해 갔고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뭐야. 사파이어, 후추, 인도 쪽, 편사, 생사…여기서 귀한 물건은 죄다 이 장부 안에 다 있잖아.”
“너희 아버지 선견지명에 감사해라. 미리 내 배들로 물건들을 실어서 이곳으로 먼저 보내셨거든. 만약 이 조치가 없었다면 이 물건들은 해적들이 가져갔겠지.”
“그렇구나.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운송비는 주셨어?”
“주시기야 하셨지만 운송비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주시더군. 인도편사나 후추가 얼마 안할 줄 알았더니 여기 와보니 원가의 10배가 넘더라고. 그것만 받은게 아냐. 보석도 꽤 된다고. 그래서 이거 다 받기는 그러니까 네가 조금 환수해가라. 나도 부담스럽다.”
프레드릭은 금고에서 돈 자루 몇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칼은 그 자루들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네가 가져. 어차피 이 물건들 런던까지 내가 다 못 가져가. 내 카락으로는 어림도 없어. 런던까지의 운송비로 치고 그냥 받아.”
“무슨 소리! 난 너 같은 꼬마 녀석의 돈 받아먹을 만큼 쪼들리며 살고 있진 않단 말씀!”
“바다 여단 군자금도 없으면서 생색은.”
칼은 프레드릭의 정곡을 찔렀다. 여담이지만 칼의 아버님이 그 많은 인도 특산물을 운송비로 준 것은 그들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윽. 무서운 놈. 그래도 런던까지 서비스로 해줄 테니 돈 도로 가져가.”
“됐으니 받아 두셔요, 형님. 난 옷이나 사러간다.”
“옷?”
“누나줄 선물.”
“그래, 출항은 언제할거냐?”
프레드릭이 묻자 칼(Carl or Karl)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며 칼(knife)같이 대답했다.
“내일.”
“그래, 준비해두마. 너도 준비 해둬.”
칼은 저택을 나와 근처의 의류점을 찾았다. 점원이 그를 맞았고 칼은 누나에게 줄 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만 아플 뿐이었다.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페티코트를 찾는데, 옷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칼은 직물상인이었다. 직물이나 섬유의 종류나 질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페티코트를 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했던 것은 당연했다.
“선물하시게요? 어떤 옷감을 원하시는데요?”
“제가 찾을 수 있어요. 제가 이래보여도 직물상인이니까요. 아, 이건 모직이군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모직으로 만들었고 네덜란드의 편사처럼 수를 놓았죠. 옷 사이즈는 괜찮으시겠어요?”
“이거면 맞을 것 같네요. 여기 대금이요.”
“예, 감사합니다. 살펴가세요.”
칼은 의류점을 나와 항구에 정박해있는 자신의 카락에 올랐다. 그리고 선원 하나를 불렀다.
“제임스.”
“예, 도련님.”
“내일 아침에서 정오 사이에 출항할거야. 선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준비를 서두르라 일러줘.”
“예, 알겠습니다. 한데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몰라서 물어? 누나가 위독하다니까.”
제임스는 그때 깨달았다. 이 어린 선장이 일주일전 자신에게 사람을 보내라고 명령한 것이 떠올라서였다. 할 말을 마친 어린 선장은 항구에서 프레드릭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를 걷던 중 누나가 자신에게 주었던 목걸이에 금이 가있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누나가 죽기라도 하겠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속으로는 엄청 불안해하고 있었다. 왜 사람을 날수 없느냐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칼은 프레드릭과 함께 암스테르담을 나섰다. 선원들 사이에선 불만도 많았다. 얼마 쉬지도 못하고 바로 바다에 나가야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어린 선장은 선실에 있어서 그런지 더 했다. 그때 제임스가 나서서 해결했다.
“너희들의 우상인 카렌 아가씨께서 병에 걸리셔 오늘내일 하시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입 좀 닥치란 말이다!”
“에? 갑판장님! 사실입니까?”
젊은 선원 하나가 정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묻자 제임스는 가차 없이 그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너희들, 선장님이 저렇게 서두르는 것 지금까지 본적 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지금 당주(堂主)께서 돌아가시고 이제 하나뿐인 누나마저도 죽기 일보직전인데 너희 같으면 서두르지 않겠느냐?”
“당연히 서두르겠지요.”
“알면 됐다. 누구도 불만 갖지 말라. 이번에 예정보다 일찍 도착할 경우 선장이 주점을 통째로 빌려주겠다고 하셨으니 불만 갖지 말고 일들 해라!”
칼은 이런 말 한 적이 없었다. 제임스는 상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선장실로 들어갔다.
“도련님, 죄송합니다만…….”
제임스는 자신이 했던 말을 전부 말했다. 그러나 칼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뭐 그런 것 가지고. 지금 프레드릭의 선단에는 엄청난 양의 인도와 아프리카의 명산품이 적재돼있어. 저거 다 처분하면 엄청날 것 같은데 선원들에게 조금 할애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겠지. 원만하게 해결 했다면 좋은 거지. 하지만 당장은 못 해줄 것 같은데.”
“일단 도련님께서는 런던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응, 알았어.”
“여어, 뭐가 그리 심각해?”
선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프레드릭이었다.
“아니. 선원들 불만을 잠재우고 의논 중이지.”
“그런 거냐? 바람을 보건데 2일이면 런던 가겠다. 너무 심각해 하지 말라고.”
“해적만 안 만난다면야.”
“잉글랜드 해군은 놀고 있겠냐?”
칼은 말없이 일어나 선실을 나섰다. 갑판으로 나갔으나 선원들의 불평불만은 사라진지 오래. 오히려 힘들이 흐르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선장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노를 저으라 하면 노라도 젓겠습니다!”
“선장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모두들…….”
어린 선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선원들 전체가 하던 일 놓고 모두 선장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일어나. 내가 불편하다고. 약속했지? 런던에 돌아가면 주점을 전세 내줄테니 먹고 마셔라. 그때까지만 참아줘.”
“예! 선장님!”
모든 선원은 잽싸게 흩어져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칼은 그날 남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흠...3부관까지 가능하니까...
누구로 할까...
소설상에서도 누구로 할까 아직도 고민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