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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SeA DogS - Chapter. 0-02

견우성
댓글: 4 개
조회: 612
추천: 1
2007-08-01 11:39:50

SeA DogS : The Great Age of Exploration
Season 0 :  Huntingdon Side
시즌 0 : 로버트 헌팅던 편




séa dòg
① 〖동물〗 바다표범의 일종; 〖어류〗 돔발상어.
② 노련한 선원[선장]; (옛날의) 해적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해적도 무법자도 아니었다. 해적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무법자들이 바다로 나왔을 때, 그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사략선원 - 국가의 경제적, 군사적 이득을 목적으로 국가로부터 적선의 나포를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민간인, 이른바 ‘반(半) 무법자’들이었다.
  ‘반 무법자’라는 말이 그들에게 더욱 잘 어울리는 이유가 있었다면, 선장인 헌팅던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원들이 사략대원이 되기 이전에 해적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비록 현재는 해적이 아닌 사략대원일지라도, 함대의 수입은 선원들의 공로에 비례해 공정히 분배하고 중요한 사안은 다수결로 정하는 등, 항해 중의 공동체 운영 방식은 해적들이 으레 하는 방식의 규율을 대부분 따랐다. 

  “선장! 오늘 수입도 짭짤한데, 한 잔만 하는 거 어때?”
 
  “야 그거 좋다!” 
  “나도 찬성!” 

  그들의 본거지, 영국의 포츠머스(Portsmouth) 항을 향해 배의 방향을 돌린 지 몇 시간째. 본인들 말마따나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웃고 떠들던 와중, 넉살 좋은 선원 하나가 술이 고프다고 보채자 여기저기서 휘파람과 환호성이 터졌다. 본디 애주가이나 항해 중에는 술을 잘 하지 않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헌팅던은 양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들에게 반문을 던졌다.
 

  “아직 백주대낮인데? 정말 한 잔만 할 자신 있나?”
 
  “그럼! 사나이 대 사나이로 맹세하지!” 
  “맹세를 어길 시엔?” 
  “음……. 코라도 베어 줄까?” 

  맹세를 어기면 스스로 코를 베어 주겠다는 그 넉살 좋은 선원의 말에, 헌팅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오늘만 믿어 보지! 술 한 통만 꺼내다가 일인당 한 잔씩만 돌리자구!”


  갑판 위는 다시금 환호성과 휘파람으로 가득 찼다. 카락을 나포하고 그 안의 보물들을 레이븐 호로 옮겨 싣기 시작했을 때의 환호성도, 지금 이 술이 고픈 바다 사나이들의 환희에 찬 환호성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부리나케 선실로 내려간 누군가가 동료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술통 하나를 갑판 위로 가지고 올라왔다. 오랜만에 술 냄새를 맡아 한껏 들뜬 남자들이 한 방울이라도 더 받기 위해 식료품 담당 선원과 옥신각신 실랑이하던 것도 잠시, 이내 모든 선원들이 한 손에 술이 가득 찬 술잔을 쥐게 되었다. 

  술잔을 입에 가져가기 전, 누군가가 목청 좋게 외쳤다. 

  “우리 선장 로빈과 레이븐 호를 위해 건배!”
 
  “건배!”


  약속이나 한 듯, 잠시도 우물쭈물하지 않고 선원들 모두가 푸른 하늘을 향해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자신을 ‘로빈’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하는 부하들의 그러한 행동에 괜스레 멋쩍어진 헌팅던도 조금 뒤늦게 “레이븐을 위해.”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술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예상치 못한 발언은 이 다음부터였다.


  “로빈! 이참에 노래도 한 곡 어때?”


  헌팅던이 혼자서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누군가 들었던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술이 있겠다, 다 같이 건배도 했겠다,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저희들끼리 웃고 떠드는 뱃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 

  “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자, 자, 다수결이야 다수결. 모두가 원하는데 선장님께서 희생 한 번 해 주셔야지!”


  선원들의 휘파람 소리와 환호성과 함께, 몇몇 힘 좋은 사내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술잔을 쥐지 않은 왼손을 저으며 사양하는 헌팅던을 갑판 한가운데로 가볍게 떠밀었다. 제대로 된 반항을 해 볼 새도 없이 사내들의 한가운데에 둘러싸인 헌팅던은 짐짓 못 이기는 척 거짓 한숨을 푹 쉬며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언제나처럼 웃으며 물었다.


  “하도 오래 전에 들었던 녀석이라 기억이 잘 날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참고 끝까지 들을 자신 있나?” 
  “아무렴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만 있는 것보다야 괴로울까!” 

  누군가의 발언에 터져 나온 선원들의 폭소가 잦아들자, 한 번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헌팅던은 기억을 더듬어, 자신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에 선율을 불어넣었다.



  “Lythe and listin, gentilmen,
보라 그리고 들으라,
That be of frebore blode;
자유로운 혈통을 지닌 신사들이여.
I shall you tel of a gode yeman,
내가 한 선한 요먼의 이야기를 들려주리니,

His name was Robyn Hode.
그의 이름은 로빈 후드라.


Robyn was a prude outlaw
로빈은 당당한 무법자였으니,
Whyles he walked on grounde:
그가 살아 땅을 밟는 동안
So curteyse an outlawe as he was one
그와 같은 정중한 무법자는
Was nevere non founde
찾아볼 수 없었노라.”


  그것은 먼 옛날,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음유시인들이 불렀을 법한 서사가곡 발라드 - 그 중에서도 영국의 전설적인 의적 로빈 후드에 관한 곡이었다. 끝까지 들을 자신이 있겠느냐는 헌팅던의 물음은 괜한 것이었는지, 그의 노래는 듣기 거북하기는커녕 오히려 듣는 사람을 휘어잡아 끌어당기는 그 무엇을 갖고 있었다. 

  어느 새 모든 선원들은 조용히 갑판 위에 둘러앉아 그가 부르는 로빈 후드의 발라드에 귀를 기울였다. 먼 옛날의 기억 속에 남은 가상의 악보를 훑어 발라드를 읊조리는 헌팅던도 노래에 몰입하여, 그대로 천천히, 선원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로빈 후드의 전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

  그는 어렸을 적부터 로빈 후드 전설에 관심이 많았다. 아니, 어렸을 때엔 단순히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동경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다름 아닌 ‘로버트’인 탓인지도 몰랐다. 딱딱한 느낌이 나는 그 이름을, 주변 사람들은 ‘로빈’이라는 애칭으로 바꾸어 부르곤 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어렸을 적, 그 마을에 머물렀던 자타공인 ‘이 시대 마지막 음유시인’의 영향이었는지도 몰랐다. 시대에 너무나 뒤떨어진 그 음유시인은, 자신이 아는 모든 로빈 후드의 발라드를 어린 로버트에게 전수해 주고는 훌쩍 떠나 버렸다. 봉건제는 몰락하고 기사들 또한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 그것이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러나 철이 들고 현실은 로빈 후드의 녹림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로빈 후드는 더 이상 그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현실 속의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없었다. 무한한 자유와 평화, 태평함의 상징인 녹림과 그 자유와 태평을 만끽하는 녹림의 무법자들, 로빈 후드와 그의 유쾌한 일당들은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것이었을 뿐,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달콤한 환상에 불과했다.
 
  세상을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과 이상 중 양자택일의 선택이 불가피했다. 그리고 그 삭막한 세상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자를 택해야 함이 분명했다. 하지만 청년 헌팅던은 좀처럼 이상을 버릴 수 없었다. 그가 살아나가야 하는 것은 분명 현실이었지만, 어렸을 때 그에게 꿈과 동경을 안겨 주었던 이상 또한 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한참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결국 기회가 다가오자 주저 없이 해적선에 훌쩍 몸을 싣는 것으로 자신의 결정을 세상에 알렸다. 그것은 이상이 아닌 현실을 위한 선택이었노라고 그는 스스로 늘 확신했다. 그러나 해적이 됨으로써 그가 비로소 완전한 자유인 - 바다의 무법자가 되었음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옛날 전설 속에서, 로빈 후드가 녹림의 무법자가 되어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손에 넣었듯…….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자신은 이상이 아닌 현실을 선택했다는 자기암시의 효과였던지, 언젠가부터 그는 로빈 후드를 더 이상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해적선의 원래 선장이 사망하자, 남은 선원들은 저희들 나름의 규칙을 통해 그를 해적선의 새로운 선장으로 추대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지켜봐 왔던 동료들은, 바다에 나오기 전에는 헌팅던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타고난 통솔력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곧 그들의 결정이 옳았음은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그들이 몸담은 해적단이, 헌팅던이 선장이 된 이후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대담하고 막강해졌음이 그 증거였다. 교역 항로가 헌팅던이 이끄는 해적단의 활동 범위 안에 드는 상선들에게는 갈가마귀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헌팅던 해적단의 검은 돛이 곧 파산의 상징이자 대명사가 되었고, 그 어떤 해군 군함도 약탈을 마치고 유유히 사라져 가는 그 날렵한 갤리온선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내 헌팅던과 그가 이끄는 레이븐 호의 해적들의 악명은 신대륙과 영국,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퍼졌다. 그러나 온갖 과장된 유언비어와 헛소문들로 장식된 그의 이야기 중에서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훈훈할 만한 대목이 없지 않았으니, 바로 그가 자신의 조국인 영국의 상선은 단 한 번도 약탈한 적이 없다는 사실과, 부하 선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는 선장은 해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린이나 부녀자가 탄 배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그것이었다. 

  헌팅던과 그의 해적단의 주된 노략질은 스페인의 상선으로부터 금은을 비롯한 보물을 약탈하는 것으로, 그들이 약탈한 보물은 본국인 영국에서 높은 값을 받고 팔려나갔다. 비록 본인들은 그 점을 심각하게 의식해 본 적이 없는 듯 했지만, 이는 수요는 엄청나나 국내 공급은 굉장히 적은 신대륙의 보물을 영국의 시중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방식이 비록 불법적인 방법이었을지라도 이는 영국의 재정과 경제에 도움을 주는 행위임이 틀림없었고, 영국 민중들은 그러한 역할을 해 주는 헌팅던을 알게 모르게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영국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전설적인 의적 로빈 후드에 빗대어, 그에게 별명 하나를 선사했다. ‘네이비블루의 로빈 후드(Robin Hood of Navy Blue)’ - 녹림의 무법자가 아닌, 창해(蒼海)의 무법자 로빈 후드.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때 로빈 후드를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기를 택했던 헌팅던은 어느 새 로빈 후드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
 


    “로버트 헌팅던?”

  그 낯선 목소리에, 술집 구석 테이블에서 선원들 몇 명과 함께 술을 홀짝이던 헌팅던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동료들도 고개를 들고 선장의 이름을 부른 자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정도 연륜이 있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남자의 눈이 헌팅던의 것과 마주쳤다. 수수한 느낌의 검은 천 재질의 품이 넓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귀티는 숨길 길이 없었다.
 
  그를 본 순간, 헌팅던은 남자가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몸가짐에 약간의 불손함을 섞어 반문했다. 사회로부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추방시킨 무법자이기에, 신분이나 지위 따위에 기가 눌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소만?”
 

  그러면서도 헌팅던의 눈은 상황파악을 위해 주변을 날카롭게 훑었다. 귀티 나는 남자가 대동한 다른 사람은 없는 듯했고, 술집의 다른 손님들은 이쪽으로는 아무도 눈길을 주고 있지 않았다.
 
  헌팅던과 마찬가지로 잠시 고개를 돌려 술집의 이쪽저쪽을 살피던 남자는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속삭였다. 

  “여긴 보는 눈이 좀 많군.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따라오게.”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위 관료나 부유한 상인처럼 보이는 귀족이 해적에게 용무를 청하다니. 의아함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서로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던 헌팅던과 선원들이 잠시 뒤 자리에서 함께 일어서자, 남자는 덧붙였다.
 

  “부하들은 두고, 자네 혼자.”
 

  선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남자의 눈을 지켜보던 헌팅던은 곧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작게 저어 보였다.
 

  “별 일이야 있겠나. 다녀올 테니 예서 기다리고들 있어. 그렇다고 술 퍼마시고 고주망태 되어 있진 말고…….”
 

  웃음을 지으며 동료들에게 몇 마디를 해 주고, 헌팅던은 먼저 술집 밖을 향해 몇 걸음 나서다 손짓하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대체 무슨 용건으로 저같이 귀한 신분의 남자가 자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청하는지 의아해하면서.
 

  남자는 길을 가는 동안 뒤에 누군가 따라오는지를 자꾸 어깨 너머로 불안스럽게 확인하곤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던 남자가 마침내 어떤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굳게 닫힌 그 집 현관문을 두드리더니, 그에 화답하듯 빠끔히 열린 문틈 사이로 “노팅엄 서기관일세.” 라 속삭였다. 문 뒤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그제야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따라오게.”
 

  스스로를 노팅엄 서기관이라 부른 남자는 헌팅던을 실내의 응접실로 이끌었다. 응접실에는 그 말고도 검은 옷을 입은 귀족들 - 고위 관료들 몇이 더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시오, 최고 서기관.” 

  관료들끼리 서로 왕실의 예법대로 인사를 나누는 것을, 헌팅던은 얼굴에 아무런 감상도 띄우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 이 자가……?”
 
  “예. 로버트 헌팅던이 맞습니다.”

  최고 서기관의 소개를 받고 뒤늦게 헌팅던을 발견한 관료의 얼굴색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이내 그는 허허 웃으며 헌팅던에게로 다가갔다.
 

  “그래,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네이비블루의 로빈 후드, 로버트 헌팅던이로군! 내 그 이름은 익히 들었지. 만나서 반갑네. 자, 자리에 앉게나.”
 

  헌팅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까딱한 후 그가 가리킨 탁자의 의자에 구겨져 앉았다. 그가 가진 관료들과 귀족들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그로 하여금 일부러 무례해 보이도록 행동하게 만들고 있었다.
 
  옅은 청회색 눈으로 그를 둘러싼 관료들을 둘러보던 그는, 그들이 아무런 말이 없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귀하신 분들께서 이 천한 해적에게는 어인 용건이신지?”
 

  비꼬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은 그 발언에, 서기관이 뚜벅뚜벅 그가 앉은 탁자로 다가갔다.
 

  “해적 일을 하면서 위험했던 때나,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헌팅던은 시익 웃으며 뼈마디가 굵은 손을 들어 입고 있는 흰 셔츠의 칼라를 벌렸다. 셔츠 목깃에 가려 보이지 않던 목덜미와 거기에 자리해 있는 커다란 흉터가 드러났다. 헌팅던은 서기관을 보란 듯이 올려다보았다.
 

  “위험하거나 힘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인생이지요.”
 

  잠시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이던 서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담, 도와주는 아군이 있다면……. 그 경우엔 어떻겠나?”
 
  “아무렴 지금보다야 덜 위험하겠지. 그런데 그 아군이라 함은, 정확히 무업니까?” 

  묻고는 있었지만, 헌팅던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영국에서 자네와 자네의 함선을 보호해 주고, 자네의 약탈 행위를 합법화해 주겠네.”
 

  역시. 놀라는 표정을 지어 주는 대신, 그는 거뭇하게 수염이 돋아 까칠한 턱에 오른손을 얹으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이 시점에서 그가 로빈 후드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해 셔우드 숲이라는 녹림에서 무법자가 되어, 비록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나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유쾌하게 세상을 살아갔던 로빈 후드. 그러나 로빈 후드 전설의 후반에, 그는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리처드 왕을 만나 무법자라는 딱지를 떼고 민간인이 되어 예전과 같은 안락한 삶을 살게 된다. 자유와 안락, 주어진 두 개의 가치 중 안락을 선택하고 기꺼이 자유를 버린 것이다. 
  녹림, 무법자, 자유, 그리고 무법자로서의 로빈 후드를 동경해 왔던 어린 로버트는 그러한 로빈 후드의 행동에 얼마나 상심했던가.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네이비블루의 로빈 후드’라 부르는 민중들의 시선을 의식한 일이 없었다. 로빈 후드가 자유가 아닌 안락을 선택했을 때 자신이 실망했던 것처럼, 자신이 해적으로서의 자유를 버리고 정부의 구속에 묶여 안락을 추구한다면 그를 지켜보던 민중들이 실망하리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상심하게 만들었던 로빈 후드의 행동을 떠올리곤, 그 모습을 이제 무법자와 민간인의 선택의 기로에 선 자신의 현재 모습과 겹쳐 보았을 뿐이었다. 

  “아,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보호해 주겠다는 말은 아닐세. 자네의 경우 이것은 이미 잘 지키고 있지만, 영국 소속의 선박을 공격해서는 안 되네. 앞으로는 스페인, 스페인의 선박만을 약탈하도록 하고, 수입의 3할을 정부에 상납해 주는 조건일세.”
 

  그가 무법자에서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된 로빈 후드를 떠올리고 있는 동안에도, 서기관은 그의 생각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말을 잇고 있었다. 거저 보호해준다 해도 거절할 판에 조건을 붙이는 모습이 헌팅던의 눈에는 그저 딱하게 보일 뿐이었다.
 

  “서기관 나리. 제가 그 조건에 동의하리라 보십니까?”
 

  한쪽 눈을 감고, 무례함을 살짝 드러내며 조롱하듯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서기관의 대답이 아니었다.



………………………………………………………………………………………

하드에 저장해 두었던 2편 올립니다^^;
완성한 것은 4편까지이고, 방학이 되고 나서 자유의 쾌재를 부르며 신나게 5편을 써내려가고 있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신나게 쓰고 싶어도 솜씨가 부족해서 많이 막히고 지체되곤 합니다만orz)

본문에서 언급되는 로빈 후드.. 글 속에서는 주인공인 헌팅던이 어렸을 적에 로빈 후드를 동경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잔상을 지우지 못했다는 설정입니다만, 사실 이 설정은 제 영향이 상당히 컸습니다T_T;
넵 이 나이 먹도록 로빈후드를 동경하고 있는 겨누성입니다(...)

예전에는 로빈후드를 그저 어린이들이 읽도록 만든 동화라고만 여겼었지요.
근데 DK Classics라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 부모님께서 영어공부 하라고 사 주신 영국판 로빈후드 오디오북을 보고선 로빈후드한테 제대로 꽂혀 버렸습니다..ㅠㅠ
그 때와 지금의 로빈 후드를 보는 시선에 조금이나마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단순히 로빈이 멋있어서 동경했던 거였고, 지금은 500년을 넘게 전해져 온 이 로빈 후드의 전설과 그에 얽힌 역사, 그에 반영된 민중들의 소망과 염원, 그리고 파면 팔수록 끝없이 솟아나오는 낭만(일명 '로망')을 동경한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로빈은 지금도 제 마음 속의 영웅입니다ㅠㅠ

아동용이 아닌 일반인용 로빈 후드 원문을 읽으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르곤 한답니다ㅠㅠ

음, 이번 편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읽어 주신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Lv2 견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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