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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왕과 왕비

아이콘 이순심
댓글: 9 개
조회: 1440
추천: 4
2007-10-13 10:49:28


제 그림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유명한 파라오 투탕카멘과 그의 왕비 안케세나멘입니다. 원래 왕의 능에 매장되어있는 옥좌 등받이에 있는 부조를 모사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투탕카멘과 안케세나멘에 대한 역사를 좀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 당시 이집트의 왕위계승법은 공주와 혼인한 자가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투탕카멘은 아케나텐 왕의 양자인데 그의 친부는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진 않습니다. 다만 아케나텐 왕의 셋째 딸인 안케세나멘과 혼인함으로써 왕위에 오른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아케나텐왕이 승하할 무렵 맏공주 메리타텐은 열다섯 살을 넘지 못했는데, 이미 혼인을 한 몸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이 스멩카레이거든요. 따라서 스멩카레가 아케나텐이 승하한 뒤 잠시동안 왕으로써 이집트를 다스렸는데, 얼마되지 않아 그 역시 승하하였습니다. 둘째 딸인 메키타텐은 아케나텐 생전에 혼인도 못하고 죽었고, 남은 셋째 딸이 바로 안케세나멘입니다.
그런데 투탕카멘과 안케세나멘의 혼인의 배후에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최고신관이자 시종장관이자 재상인 아이입니다. 아이는 파라오가 될 야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우선 어린 왕을 모시고 자신이 섭정으로 실질적인 국사를 총괄하려 했던 것이죠. 투탕카멘 치세 때 이집트 국교의 교리인 아텐신앙을 다시 아몬신앙으로 되돌린 것도 아이였습니다(따라서 아케나텐때는 투탕카멘의 이름이 '투탕카텐'이었고 안케세나멘의 이름은 '안케센파텐'이었습니다).

어찌하였든 간에 왕의 능에 매장되어있는 부장품 중에는 왕과 왕비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모사한 왕이 국사를 돌보러 가기 전에 왕비가 그의 목걸이 장식에 향유를 발라주는 모습 뿐만이 아니라 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모습도 있고, 황금으로 만든 작은 사당에 묘사된 왕과 왕비의 모습들 중에는 왕이 새끼 사자를 거느리고 활로 들오리 사냥을 하는 동안 와비가 그의 발치께에 웅크리고 앉아 한 손으로는 화살 한 대를 왕에게 건네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살찐 오리를 가리키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왕비가 왕에게 제주와 꽃과 목걸이 장식을 바치는 장면도 있고, 그의 목 주위에 펜던트를 매주는 장면도 있습니다.
또다른 새사냥 원정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왕과 왕비가 단 둘이서 함께 카누를 타고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왕비는 왕에게 애정 어린 태도로 그의 한쪽 팔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조에서는 왕이 왕비의 손에 향유를 부어주는 모습도 있습니다(그 중에서도 옥좌에 새겨진 부조가 가장 사실적이라서 따라그리기가 편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모사했습니다).
이것으로 봐서는 그들 부부관계의 금실은 좋았으리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남편이 사망하였을 때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수레국화 화환을 헌화한 것도 왕비였습니다. 그의 황금마스크 이마에 그 화환을 얹어놨는데, 하워드 카터는 그의 저서에서 그 화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편안하게 누운 젊은 왕의 이마에는 상.하이집트의 상징물들인 코브라와 대머리수리를 상감양식으로 정교하고도 화려하게 빚어놓았다.
그러나 그 상징물들 주위를 감싸고 있는 작은 화환들이야말로 그것에서 묻어나는 인간적인 순수함 때문에 가장 감동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우리는 그것을 미망인이 된 소녀 왕비가 두 왕국의 젊은 대표자인 남편에게 마지막 잘별 표시로 바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하나같이 황금빛을 발하는 그 화려하고 찬연한 모든 것 가운데서도 아직까지 본래의 색조를 일부 간직하고 있는 그 몇 송이의 시든 꽃들만큼 아름다운 것은 다시 없었다. 그 꽃들은 33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사실은 어제와 오늘 아침만큼이나 짤은 시간이었다는 점을 말해줬다. 사실 자연의 그 작은 흔적은 고대 문명과 우리의 현대 문명을 동질의 것으로 만들어줬다.'

대온 고고학 퀘 중 하나인 '영원의 수레국화'에서도 안케세나멘이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에 얹어준 사실이 잘 드러나있죠. '영원히 영원히 계절이 지나는 일이 없이...'라고 고대 이집트어로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 역시 젊은 왕비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하지만 역사라는 것이 이처럼 매우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사만큼 냉혹한 것도 없죠.

그 당시의 왕위계승법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매우 정치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레오파트라 7세 뿐만이 아니라, 안케세나멘 왕비 역시 그랬습니다.

그녀는 투탕카멘이 승하하자 친척관계에 있는 히타이트 왕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제 남편은 사망했습니다. 한데 듣자니 폐하께 장성한 아드님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아드님 중의 한 분을 보내주시면 제가 그 분을 남편으로 삼겠습니다. 그러면 그 분은 이집트의 왕이 되실 겁니다.'

그러나 히타이트 왕은 그 편지가 함정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고, 그렇게 되자 안케세나멘은 당시의 실권자이자 차기의 파라오로 유력한 아이와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다음 파라오로써 4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습니다.

p.s 로마자표기법때문에 투탕카멘을 '투탕카문'으로 썼어야 했는데, 어차피 로마자표기법이나 기존의 표기법이나 외국어를 그렇게 정확하게 표기할 없으니...그냥 제 편한대로 '투탕카멘'이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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