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미정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눈을 감기만 하면 화장실 세면대 위에 놓였던 두 줄이 떠올랐다.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미정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잘못 나온 걸 수도 있어.’
밤새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임신테스트기는 틀릴 수도 있다.
호르몬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은 쉰여섯이었다.
폐경 전후에는 몸에 여러 변화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미정은 계속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오전, 미정은 여인숙 입구에 작은 종이를 붙였다.
‘잠시 외출합니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멀리 떨어진 산부인과로 향했다.
병원 앞에 도착했을 때 미정은 한참을 들어가지 못했다.
유리문 너머로 대기실이 보였다.
젊은 부부.
배가 제법 나온 임산부.
남편과 함께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는 여자.
미정은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저기 들어가서 뭐라고 해야 하지.’
쉰여섯 살.
임신테스트기 두 줄.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는 스물세 살 대학생.
그 사실을 하나의 문장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현실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문을 열었다.
접수대 직원이 물었다.
“어떤 진료 때문에 오셨어요?”
미정은 목소리를 낮췄다.
“임신 확인이요.”
말을 하고 나니 가슴이 철렁했다.
직원은 특별한 표정 변화 없이 접수를 도와줬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은 미정은 계속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현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은 가도 돼요?]
미정은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뒤 이름이 불렸다.
“김미정 님.”
미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자 의사가 차분하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마지막 생리 시기.
평소 주기.
최근 증상.
임신테스트기 결과.
미정은 하나씩 대답했다.
“마지막 생리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원래 요즘 들쭉날쭉해서….”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령대 때문에 폐경 전후 변화일 수도 있고, 테스트기 결과를 보면 임신 가능성도 확인해야 합니다. 우선 혈액검사와 초음파를 같이 보죠.”
미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임신 가능성.’
아직 확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의사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 갑자기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검사는 차례로 진행됐다.
그리고 다시 기다림.
미정에게는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한참 뒤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다가 미정에게 말했다.
“혈액검사에서 임신 호르몬 수치가 확인됐어요.”
미정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의사가 말을 이어갔다.
“초기 임신으로 보입니다.”
그 순간 미정의 귀에서는 주변 소리가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임신… 맞아요?”
자신도 모르게 다시 물었다.
의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재 검사 결과로는 임신으로 판단됩니다.”
미정은 멍하니 의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젯밤 테스트기의 두 줄을 봤을 때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딘가 아직 ‘혹시’라는 여지가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
병원.
혈액검사.
초음파.
그리고 의사의 입에서 나온 한 문장.
임신입니다.
그 네 글자가 모든 걸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미정은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바라봤다.
손끝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제가… 쉰여섯인데요.”
의사는 차분하게 말했다.
“자연임신이 흔한 연령은 아니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연령대의 임신은 일반적인 임신보다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앞으로 정밀한 확인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미정은 그 설명을 듣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반복됐다.
‘진짜구나.’
정말 자신의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현우였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미정은 눈을 감았다.
스물셋.
그 숫자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현우가 알면 뭐라고 할까.’
웃을까.
겁먹을까.
도망갈까.
아니면 책임지겠다고 할까.
어느 쪽도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진료가 끝난 뒤 미정은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
손에는 검사 결과와 안내지가 들려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강했다.
미정은 잠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평범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택시가 지나가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고.
젊은 커플이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자신에게만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무려 나이차이는 33살이였다.
미정은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아랫배 위에 올렸다.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정말 있다는 것을.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현우였다.
이번에는 전화였다.
미정은 화면을 바라봤다.
받아야 하나.
말해야 하나.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전화가 끊겼다.
몇 초 뒤 메시지가 왔다.
[무슨 일 있어요?]
미정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답장을 썼다.
[오늘 저녁에 와.]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도 손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뒤 현우의 답장이 왔다.
[네. 바로 갈게요.]
미정은 휴대전화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말해야 해.’
피할 수 없었다.
숨길 수도 없었다.
현우는 자신보다 서른세 살 어린 남자였다.
처음에는 잠깐의 일탈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끝날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생겨버렸다.
미정은 다시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너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니….”
그 말이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현우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미정도 알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여인숙 유리문 밖에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현우였다.
평소처럼 가방을 메고 있었다.
미정은 카운터에 앉은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현우가 문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