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불을 질렀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고 모두 불에 타 죽었다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고사성어 중 하나인 두문불출(杜門不出)과 과거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불렸던 한식(寒食)이다.
두문불출이란 문을 닫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조선의 건국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졌을 때 고려의 충신 73 여명은 조선에 합류하지 않고 모두 (현재의 개성에 있는) 두문동에 들어가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이들을 회유하려 하였으나 이들이 한결같이 거절, 결국 태조 이성계는 마을 전체를 불태워 이들을 나오게 하려 했으나 이들은 모두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이다.
이 73 명중 황희 단 한명만 밖으로 나와 조선에 합류,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고 (73 명이 회의를 거쳐 한명을 밖으로 내보기기로 결정, 황희가 지목되었다고 한다) 불에 타 죽은 72 명을 두문동 72 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두문불출이라는 고사성어와 두문동 72 현은 관계가 없고 두문이라는 것 때문에 서로 혼동하여 유래가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말도 있다)
 [ 용의 눈물에서 태조 이성계 역을 맡은 고 김무생씨 ] ※ 어릿광대님의 블로그에 있는 사진을 인용하였습니다. (http://blog.naver.com/sujin0412/30002408468)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바로 한식의 유래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제환공, 초장왕, 오의 합려, 월의 구천과 함께 춘추오패중 한명으로 불리는 진문공은 갖은 고생끝에 왕위에 올라 논공행상을 했을 때, 자신을 오래 섬기던 충신중 한명인 개자추(介子推)를 빠트리고 상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개자추는 노모와 함께 면상산으로 들어가 칩거하였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진문공이 개자추를 다시 부르려 하였으나 그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산에 불을 지르면 개자추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면상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노모와 함께 불 속에서 죽었고, 진문공은 개자추가 죽은 날을 기일로 정해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삿날에는 개자추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여 한식날에는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보통 4월 초순에 있다)
 [ 진문공을 영화화한 진문공전기, 여명이 주연했고 1990년 제작되었다 ]
로한에도 두문불출과 한식의 경우가 존재하는데, 데칸 족의 수도인 레브데카의 북동쪽에는 잿더미 전쟁터라는 작은 섬이 바로 그곳이다.
로한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로한력 344 년.
101 년 전인 로한력 243 년, 단과 데칸족은 서로 조우,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9년 후인 로한력 252 년에 이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단족의 군장(=최고 지도자)은 레맘 모네드가 6대 군장으로 있었고, 데칸족은 페르디난트 돈 엔드리아고가 초대 왕으로 재임하고 있던 시기였다.
 [ 종종 NPC 들로부터 단과 데칸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단의 군장인 레맘 모네드는 데칸의 국왕인 페르디난트를 암살하기 위해 암살자들을 보냈으나 실패하고 이 암살자들은 하얀 섬의 숲으로 도주했다.
이 하얀 섬은 울창한 숲으로 해안가의 짠 바람 때문에 나뭇잎에 소금기가 달라붙어 하얀 섬으로 불리고 있었던 곳.
이 하얀 섬으로 암살자들이 숨어들자 데칸족은 군사들을 보내 이들을 잡으려 하였으나, 숲속에서 암살자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번번이 패배를 하게 되자, 결국 이들을 숲밖으로 내몰기 위해 숲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 레브데카의 북동쪽에 있는 섬, 잿더미 전쟁터 ]
그리고 단족의 암살자들은 단 한명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하얀 섬의 불길 속에서 모두 최후를 맞이해던 것이다. 이때 하얀 섬의 모든 나무가 불타 잿더미가 되었고 그에 따라 하얀 섬은 잿더미 전쟁터로 불리게 되었다.
90 년 가량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당시 불에 타 죽은 단족의 암살자들의 원한 때문인지 숲은 복원되지 않고 잿더미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있은지 얼마 후인 로한력 255 년, 단과 데칸족은 평화 협정을 맺게 되었고 로한력 344 년인 현재까지도 평화협정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 90년전의 상흔이 남아있는 잿더미 전쟁터,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이 잿더미 전쟁터는 데칸족의 2대 왕을 뽑는 시험의 시험장으로도 활용이 되었는데, 294년경 데칸족의 왕위 후보자는 드비안과 키쉬, 이렇게 두명이었고, 잿더미 전쟁터에서 벌어진 첫번째 시험은 키쉬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최종 결과는 2대 1로 키쉬의 승리였으나 그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온의 파편을 품고 있었던 키쉬는 헬락에 의해 예언된 8인의 전사중 한명으로 로한 대륙을 멸망시키려는 하위신들과의 싸움을 선택, 전사하게 된다.
그리고 키쉬가 포기한 데칸의 왕위는 드비안이 이어받아, 현재는 드비안이 디브칸타라 돈 엔드리아고라는 이름으로 로한력 295 년부터 데칸 족의 2대 왕으로 재임하고 있는 중이다.
Inven LuPin (lupin@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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