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 엔딩까지 나온 마당에 이런 의문제기는 좀 뒷북일 수 있겠지만, 그냥 넘기기는 좀 껄끄럽네요.
살게라스의 무덤 엔딩에서 일리단은 무슨 큰 비책이라도 있는 것 마냥 살게라이트 쐐기석으로 아르거스와의 직결 통로를 열어 버렸었죠. 이 때 기회를 직접 끌고 와야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안토러스를 진행하면서, 결국 살게라스를 봉인하는 것은 판테온이었습니다. 여기서 이 일이 성사될 수 있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일등공신은 티탄과 소통할 수 있는 마그니 브론즈비어드였습니다. 일리단이 아니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일리단은 판테온의 힘으로 살게라스에게 대항한다는 생각이 있었는가?
먼저 검토해봐야할 것은 안토러스의 결말까지 어떻게 도달하였는가입니다
아르거스의 대장정에서 판테온의 현황과 이오나의 상태 등을 알게된 것은 마그니의 감응으로 통해서였습니다. 여기서 티탄의 현재 상태를 알게되고, 이후 안토러스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티탄들의 정수를 해방시켜주면서 살게라스를 판테온의 권좌에 봉인시킨다는 방책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뒤 일은 잘 아시겠죠.
즉, 살게라스에 대항하는 과업에서 가장 큰 공헌자는 일리단이 아닌 마그니가 되는 셈입니다. 마그니가 업었다면, 아그라마르를 쓰러뜨렸을 지라도, 살게라스를 봉인할 방법을 찾지못해, 살게라스가 아제로스를 집어삼키는 것을 막지 못했을 테니까요.
일리단이 아르거스에서 원래 썼을 방책은 나스레자를 파괴했던 것처럼, 아르거스도 차원문을 이용해 파괴해버리는 방법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말 이 방법이 성공할 수 있었을 지는 넘겨두고, 이 방법을 썼더라도 살게라스를 꺾을 수 있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르거스를 잃는 것은 정말 뼈아픈 손실이겠지만, 살게라스 본인이 건재하다면, 수천, 수만년의 와신상담도 어렵지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전부터 누누이 논쟁 거리가 되었던 살게라이트 쐐기석으로 아제로스와 아르거스 사이에 직통 차원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살게라스를 봉인하는 데에 성공해서 무마되었지만, 만약 마그니가 판테온과 만나지 못했다면? 아르거스와 감응하지 못했다면? 아예 마그니가 아제로스에 남아있었다면? 이라는 만약의 경우를 빼놓을 수 없죠.
만약 그랬다면, 안토러스 엔딩은 살게라스가 아제로스를 집어 삼키는, 바로 그 모습으로 막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럼 이 쯤에서 다시 떠올려보죠. 일리단은 어떻게 살게라스를 쓰러뜨리려 했을까요? 제 생각은 별 생각없이 아르거스를 쑤시다 보면 해결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을 거라, 하고 싶네요.
판테온의 상태도 몰랐을 테고, 당연히 판테온의 힘을 이용해 살게라스를 봉인한다는 방도도 일리단의 머릿속에 있었을 거라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아르거스의 세계영혼을 목전에 두고도 세계영혼과 불타는 군단과의 결속을 끊을 방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걸 해결해준 것은 마그니였고요.
결론적으로 군단 확팩에서 일리단이 없었으면 절대 성사될 수 없던 게, 아르거스와의 직통 연결이고, 그것마저 심각한 위험을 감수하는 상황이었고, 설사 아르거스를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더라도 일리단의 말마따나 수만년 후에 다시 쳐들어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운좋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면서 아제로스가 살아남은 것이죠.
이렇게 생각해보면, 군단 확팩에 일리단이 없더라도 스토리 진행에 넘을 수 없는 장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간판 캐릭터가 필요해서 부활되었지만, 솔직히 그렇게 쓸모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